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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옹녀가 뭇 사내들을 죽여 쫓겨나다
옹녀와 변강쇠가 길에서 만나 부부가 되다
변강쇠 부부가 지리산에 정착하다
변강쇠가 장승을 뽑아 불 때다
팔도 장승들이 변강쇠를 죽이다
중이 강쇠 치상하려다가 죽다
초라니가 강쇠 치상하려다가 죽다
풍각쟁이들이 강쇠 치상하려다가 죽다
뎁득이가 강쇠 송장을 넘어뜨리다
송장 여덟과 짐꾼 넷이 땅에 달라붙다
움 생원이 땅에 달라붙다
사당패가 땅에 달라붙다
옹 좌수가 땅에 달라붙다
계대네가 굿을 해서 사람들을 땅에서 떼어 내다
뎁득이가 변강쇠에게 빌어 짐꾼들을 땅에서 떼어 내다
뎁득이가 송장을 다 떼어 내고 돌아가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 소개 2

申在孝

신재효는 본관이 평산(平山)이요 자는 백원(百源)이며 호가 동리(桐里)로, 순조 11년(1812) 11월 6일 신광흡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73세 되던 고종 21년(1884) 태어난 날과 같은 11월 6일, 그 삶을 마감하기까지 격동적인 시대 변화를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나이 마흔이 넘도록 아들을 얻지 못하다가 치성을 드려 신재효를 얻었다고 한다. 부모는 나이 들어 얻었으니 효도하라는 뜻으로 이름을 재효라고 지었는데, 부모의 이러한 뜻에 어긋나지 않게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신재효는 고창현의 이방에 이어 호장까지 오른 뒤 오랜 공무에서 벗어났는데,
신재효는 본관이 평산(平山)이요 자는 백원(百源)이며 호가 동리(桐里)로, 순조 11년(1812) 11월 6일 신광흡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73세 되던 고종 21년(1884) 태어난 날과 같은 11월 6일, 그 삶을 마감하기까지 격동적인 시대 변화를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나이 마흔이 넘도록 아들을 얻지 못하다가 치성을 드려 신재효를 얻었다고 한다. 부모는 나이 들어 얻었으니 효도하라는 뜻으로 이름을 재효라고 지었는데, 부모의 이러한 뜻에 어긋나지 않게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신재효는 고창현의 이방에 이어 호장까지 오른 뒤 오랜 공무에서 벗어났는데, 치산(治産)의 지혜와 근면성, 성실성을 기반으로 40대 전후에 이미 곡식 1000석을 추수하고 50가구가 넘는 세대를 거느린 부호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모은 재산을 쓸 줄 모르는 졸부가 아니었다. 병자년(1876)의 대흉년에는 아끼면서 모은 재산을 굶주린 재해민을 돕는 데 아낌없이 썼다. 또한 자신이 근무하던 관아인 형방청의 건물을 중수하는 데에 돈을 시주했고, 경복궁의 복원 사업에 원납전으로 500냥을 헌납했다. 특히 광대의 양성과 후원에는 전 재산을 기울였다. 그는 굶주린 백성을 구휼한 공으로 가선대부의 포상을 받았고, 경복궁 재건을 위한 원납전 희사의 공으로 고종 15년(1878)에는 통정대부라는 품계와 절충장군 용양위 부호군이라는 명예직을 받기도 했다.

신재효는 축적된 부와 투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판소리를 애호하고, 풍류를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 판소리와 관련한 신재효의 활동으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가 기존의 판소리 사설을 개작해 우리에게 전했다는 점이다. 판소리 열두 작품 중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가]의 여섯 작품을 정리 개작했는데, [춘향가]의 경우는 남창(男唱)과 동창(童唱)의 두 가지를 남겨 주었다. 또한 [오섬가]의 창작을 통해 판소리에 ‘옴니버스(omnibus) 형태’를 도입함으로써 그 외연을 넓히기도 했다. 엮어질 것 같지 않은 춘향의 이야기, 배 비장의 이야기, 그리고 강릉 매화의 이야기 등을 한 주제에 의해 통합함으로써 판소리의 한 방향을 제시했던 것이다.

신재효는 [허두가], [호남가], [광대가], [치산가]와 같은 많은 가사도 지었다. 신재효가 지은 가사는 그의 기질과 사업, 그리고 지향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재효나 그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 후기의 문화 실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판소리에 관련한 신재효의 활동 중 지나칠 수 없는 사실은 판소리 연창자에 대한 지원이 대단히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그는 판소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안목으로 지속적이고도 계획적인 판소리 지원 활동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최초의 여성 명창인 진채선이 나타남으로써 판소리사의 새로운 국면이 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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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昌辰

전남 목포에서 아버지 金在彬김재빈 님과 어머니 金慶心김경심 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목김창진(金昌辰)은 서울교대와 국제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 논문이 〈‘흥부전’의 이본과 구성 연구〉이며, 그 뒤에도 《흥부전》 관련 논문을 20여 편 써서 우리나라에서 《흥부전》 관련 논문을 가장 많이 발표한 학자가 되었다. 그밖에도 판소리계 소설과 관념적 시공, 한국어문 정상화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초당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와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현재는 사단법인 전통문화연구회 이사와 《남악신문》 논설위원이다. 수필
전남 목포에서 아버지 金在彬김재빈 님과 어머니 金慶心김경심 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목김창진(金昌辰)은 서울교대와 국제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 논문이 〈‘흥부전’의 이본과 구성 연구〉이며, 그 뒤에도 《흥부전》 관련 논문을 20여 편 써서 우리나라에서 《흥부전》 관련 논문을 가장 많이 발표한 학자가 되었다. 그밖에도 판소리계 소설과 관념적 시공, 한국어문 정상화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초당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와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현재는 사단법인 전통문화연구회 이사와 《남악신문》 논설위원이다. 수필가로서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2006년에 종문화사에서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흥부전》 풀이본을,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2008년에 《박타령》과 《배비장전》 교주본을, 2009년에는 《변강쇠가》와 《두껍전》 교주본을 내놓았다. 그밖에도 《작문의 정석》, 《수필 이론 바로 세우기》 등을 내놓았다. 제1회 청다 이유식 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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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3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195쪽 | 128*188*9mm
ISBN13
9791128866050

책 속으로

중년에 맹랑한 일이 있던 것이었다. 평안도 월경촌에 계집 하나 있으되, 얼굴로 볼작시면 춘이월(春二月) 반개도화 옥빈에 어리었고 초승에 지는 달빛 아미간에 비치었다. 앵도순 고운 입은 빛난 당채 주홍필로 떡 들입다 꼭 찍은 듯, 세류같이 가는 허리 봄바람에 흐늘흐늘, 찡그리며 웃는 것과 말하며 걷는 태도 서시와 포사라도 따를 수가 없건마는 사주(四柱)에 청상살이 겹겹이 쌓인 고로 상부를 하여도 징글징글하고 지긋지긋하게 단 콩 주워 먹듯 하것다.

열다섯에 얻은 서방 첫날밤 잠자리에 급상한에 죽고, 열여섯에 얻은 서방 당창병에 튀고, 열일곱에 얻은 서방 용천병에 펴고, 열여덟에 얻은 서방 벼락 맞아 식고, 열아홉에 얻은 서방 천하에 대적(大賊)으로 포청에 떨어지고, 스무 살에 얻은 서방 비상 먹고 돌아가니, 서방에 퇴가 나고 송장 치기 신물 난다.

이삼 년씩 건너가며 상부를 할지라도 소문이 흉악할 텐데 한 해에 하나씩을 전례로 처치하되, 이것은 남이 아는 기둥서방, 그 나머지 간부, 애부, 거드모리, 새호루기, 입 한 번 맞춘 놈, 젖 한 번 쥔 놈, 눈흘레한 놈, 손 만져 본 놈, 심지어 치맛귀에 상촉자락 얼른 한 놈까지 대고 결딴을 내는데, 한 달에 뭇을 넘겨 일 년에 동반 한 동 일곱 뭇, 윤삭 든 해면 두 동 뭇 수 대고 설그질 제, 어떻게 쓸었던지 삼십 리 안팎에 상투 올린 사나이는 고사하고 열다섯 넘은 총각도 없어 계집이 밭을 갈고 집을 이니.

황·평 양도(兩道) 공론하되,
“이년을 두었다는 우리 두 도내에 좆 단 놈 다시 없고 여인국(女人國)이 될 터이니 쫓을밖에 수가 없다.”

양도가 합세하여 훼가하여 쫓아내니, 이년이 하릴없어 쫓기어 나올 적에, 파랑 봇짐 옆에 끼고 동백(冬柏)기름 많이 발라 낭자를 곱게 하고 산호(珊瑚) 비녀 질렀으며, 출유(出遊) 장옷 엇매이고, 행똥행똥 나오면서 혼자 악을 쓰는구나.

“어허, 인심(人心) 흉악하다! 황·평 양서 아니면 살 데가 없겠느냐. 삼남 좆은 더 좋다두고!”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변강쇠가》는 신재효가 실전(失傳) 판소리 〈변강쇠가〉를 사설로 정리한 것이다.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판소리로 전승되고 있었던 듯하나 20세기 들어서는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게 되었고, 고소설 형태로도 전환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유일하게 신재효의 사설만이 전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창극이나 마당극으로는 종종 상연되며 만화나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여타의 판소리계 소설과는 차별화된 과정으로 이어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괴상망측한 이야기에 담긴 조선 후기의 모습

《변강쇠가》는 괴상망측하고 음란하기로 둘째가면 서러운 작품이다.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주인공인 ‘변강쇠’와 ‘옹녀’는 익히 알고 있다. 그들이 정력가와 색골의 캐릭터로 널리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양반이나 부녀자가 감상하기에는 부적절하게 여겨져 판소리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도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다시 재창조되는 것은 단지 노골적인 주인공 캐릭터 때문만은 아니다. 작품은 조선 후기 사회에서 발생한 유랑민이 유랑에도 실패하고 정착에도 실패해 패배하고 죽어 갔던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변강쇠의 무지와 심술 이전에 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회적 현실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성(性)’과 ‘죽음’을 노골적으로 다루는 작품

또 《변강쇠가》에서 주목되는 점은 예술 작품에서 금기로 여기는 ‘성(性)’과 ‘죽음’을 노골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의 시작부터 옹녀의 남편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하고, 동네에서 쫓겨난 옹녀가 유랑하다 만난 강쇠와는 관계 장면이 노골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강쇠가 장승에게 징벌을 받을 때, 온갖 징그러운 병이 나열되고, 계속해서 죽어나가는 송장의 모습도 계속 묘사된다. 《변강쇠가》는 매우 괴이하고 끔찍해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작품이라 자칫 작품의 본질을 보지 못할 수 있다. 당시 사회상과 인물의 처지를 곰곰이 생각하며 표면적인 내용 아래 감춰진 깊은 의미를 찾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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