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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 안이 궁금하다 (큰글자책)
판으로 열고 소리로 그리는 홍보가
드레북스 2024.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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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글

1막_가난이야 가난이야

놀보는 심술부가 있으니
쫓겨나는 흥보네
가난이야 가난이야
형님, 제가 왔습니다
흥보가 누구인고
몹쓸네라 시아주버니 몹쓸네라
흥보네의 품팔이
노승이 알려준 집터라네

2막_제비를 살려준 복

사랑옵다 우리 제비
제비가 물고 온 박씨
어기여라 톱질이야
선동들이 들고 온 선약
이 속에 쌀 또 있네
온갖 것이 다 나오니
무슨 비단으로 감으려오
박에서 나온 양귀비

3막_이 박 안이 궁금하다

흥보가 부자 되었다는 말에
우리 형님 오셨으니
제 복 아니면 할 수 없는 법
제비 박씨에 야단난 놀부
제비집에 손을 넣어 자끈
원수 갚는 박씨라
이 박 안이 궁금하다
어서 타서 황금옥을 지어볼까

4막_놀보가 기가 막혀

강남 가서 종살이 하려드냐
이는 재산을 뺏는 주머니라
돈이라면 귀신도 무섭지 않아
밀린 돈 받아 오라
양반 나와 결박, 걸인 나와 공박
놀부의 톱질 사설
안채가 안장하기 좋은 곳이라
놀보 놈을 잡아들여라

저자 소개 2

申在孝

신재효는 본관이 평산(平山)이요 자는 백원(百源)이며 호가 동리(桐里)로, 순조 11년(1812) 11월 6일 신광흡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73세 되던 고종 21년(1884) 태어난 날과 같은 11월 6일, 그 삶을 마감하기까지 격동적인 시대 변화를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나이 마흔이 넘도록 아들을 얻지 못하다가 치성을 드려 신재효를 얻었다고 한다. 부모는 나이 들어 얻었으니 효도하라는 뜻으로 이름을 재효라고 지었는데, 부모의 이러한 뜻에 어긋나지 않게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신재효는 고창현의 이방에 이어 호장까지 오른 뒤 오랜 공무에서 벗어났는데,
신재효는 본관이 평산(平山)이요 자는 백원(百源)이며 호가 동리(桐里)로, 순조 11년(1812) 11월 6일 신광흡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73세 되던 고종 21년(1884) 태어난 날과 같은 11월 6일, 그 삶을 마감하기까지 격동적인 시대 변화를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나이 마흔이 넘도록 아들을 얻지 못하다가 치성을 드려 신재효를 얻었다고 한다. 부모는 나이 들어 얻었으니 효도하라는 뜻으로 이름을 재효라고 지었는데, 부모의 이러한 뜻에 어긋나지 않게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신재효는 고창현의 이방에 이어 호장까지 오른 뒤 오랜 공무에서 벗어났는데, 치산(治産)의 지혜와 근면성, 성실성을 기반으로 40대 전후에 이미 곡식 1000석을 추수하고 50가구가 넘는 세대를 거느린 부호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모은 재산을 쓸 줄 모르는 졸부가 아니었다. 병자년(1876)의 대흉년에는 아끼면서 모은 재산을 굶주린 재해민을 돕는 데 아낌없이 썼다. 또한 자신이 근무하던 관아인 형방청의 건물을 중수하는 데에 돈을 시주했고, 경복궁의 복원 사업에 원납전으로 500냥을 헌납했다. 특히 광대의 양성과 후원에는 전 재산을 기울였다. 그는 굶주린 백성을 구휼한 공으로 가선대부의 포상을 받았고, 경복궁 재건을 위한 원납전 희사의 공으로 고종 15년(1878)에는 통정대부라는 품계와 절충장군 용양위 부호군이라는 명예직을 받기도 했다.

신재효는 축적된 부와 투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판소리를 애호하고, 풍류를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 판소리와 관련한 신재효의 활동으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가 기존의 판소리 사설을 개작해 우리에게 전했다는 점이다. 판소리 열두 작품 중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가]의 여섯 작품을 정리 개작했는데, [춘향가]의 경우는 남창(男唱)과 동창(童唱)의 두 가지를 남겨 주었다. 또한 [오섬가]의 창작을 통해 판소리에 ‘옴니버스(omnibus) 형태’를 도입함으로써 그 외연을 넓히기도 했다. 엮어질 것 같지 않은 춘향의 이야기, 배 비장의 이야기, 그리고 강릉 매화의 이야기 등을 한 주제에 의해 통합함으로써 판소리의 한 방향을 제시했던 것이다.

신재효는 [허두가], [호남가], [광대가], [치산가]와 같은 많은 가사도 지었다. 신재효가 지은 가사는 그의 기질과 사업, 그리고 지향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재효나 그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 후기의 문화 실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판소리에 관련한 신재효의 활동 중 지나칠 수 없는 사실은 판소리 연창자에 대한 지원이 대단히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그는 판소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안목으로 지속적이고도 계획적인 판소리 지원 활동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최초의 여성 명창인 진채선이 나타남으로써 판소리사의 새로운 국면이 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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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계예술대학교를 졸업했으며, 기획편집 일을 한 후 현재 드레북스 대표로 있다. 에세이집 《마흔의 봄》을 썼고, 《여자도 사람이외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잎이 푸르러 가시던 님이》 등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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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7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148쪽 | 210*290*20mm
ISBN13
9791193946183

책 속으로

굶어서 죽게 된 사람에게 먹던 밥 덜어 주고, 얼어서 병든 사람 입은 옷 벗어 주기, 늙은이의 짊어진 짐 자청하여 져다 주고, 장마 때 큰 물가에서 삯 받지 않고 건네주기, 남의 집에 불이 나면 살림살이 지켜주고, 길에 보물이 떨어져 있으면 지켜 섰다 임자 찾아주기, 청산에서 백골 보면 깊이 파서 묻어주며, 수절과부 보쌈하면 쫓아가서 뺏어놓기, 어진 사람 모함하면 대신 나서서 죄 없다고 밝혀내고, 애잔한 놈 횡액 당하면 달려들어 구원하기, 길 잃은 어린아이 제 부모를 찾아주고, 주막에서 병든 사람 있으면 본가에 기별하기, 자라나는 초목 함부로 꺾지 않더라. 남의 일만 하느라 한 푼 돈도 벌지 못하니 놀보 오죽 미워하랴.
--- p.19

고향 근처로 도로 찾아 한 곳을 당도하니 마을 이름은 복덕이요, 인심은 순후한데 빈집 한 칸이 서 있거늘 잠시 거처하여 살아보니 집 꼴이 말 아니어서 집 마루에 이슬 오면 천장에 큰 빗방울이 떨어지는구나. 부엌에 불을 때면 방안은 굴뚝이요, 흙 떨어진 벽 구멍에 바람은 화살 쏜 듯하네. 틈만 남은 헌 문짝에 빈 가마니로 창호하고, 방에 반듯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별자리를 붙인 듯이 이십팔수를 세어보고, 일하고 곤한 잠에 기지개를 불끈 켜면 상투는 허물없이 앞 토방에 쑥 나가고, 발목은 어느 새에 뒤란에 가 놓였구나. 밥을 하도 자주 하지 않으니 아궁이의 풀을 뽑았으면 한 마지기 못자리는 넉넉히 할 테거든.
--- p.23

“그래도 내가 알고 저래도 내가 아네. 몹쓸네라 몹쓸네라, 시아주버니 몹쓸네라. 하나 있는 그 동생을 보지 못한 지가 몇 해던가? 오늘같이 추운 아침 형 보자고 간 동생의 몰골을 보거드면 오려논제철보다 일찍 여무는 벼를 심은 논에 새 볼 터요, 의복을 보거드면 구럭무엇을 넣기 위하여 새끼를 그물처럼 떠서 만든 물건 속에 황육(黃肉) 든 듯, 얼굴은 누렇게 들뜨고, 말소리 기진맥진, 여러 해 굶은 줄과 금방 죽을 처지를 뻔히 알 터인데, 구완하긴 고사하고 저리 몹시 때렸으니 사람이 할 일인가? 애고애고 설운지고! 옛사람은 구름 보면 아우를 생각하고 수유꽃 함께 꺾어 놀던 때로 갈 수 없음을 탄식하였다는데, 우리 집 시아주버니는 어찌 그리 모질고 독한가.”
--- p.39

“불쌍한 네 목숨 이무기에게 죽지 않기에 모질게 살아 있는 목숨으로 알았다가 다리가 부러졌으니 웬일이냐. 전생의 죄악이냐 잠시의 횡액이냐? 삼백 날짐승 많은 중에 죄 없는 게 제비로다. 네 알이 아니면 은나라가 없으렷다. 네 턱이 아니면 만리봉후 누가 하리? 어떤 곡식에도 해가 없고 사람을 각별히 따랐으니, 제비가 들보에 진흙을 떨어뜨리기는 문장가의 솜씨요, 그 지저귐은 사람의 수심이라. 네 모양이 불쌍하니 기어이 살리리라.”
--- p.50

“어기여라 톱질이야, 좋을씨고 좋을씨고. 밥 먹으니 좋을시고. 옛날 수인씨께서 불로 음식을 다루는 법을 가르치신 일이 날 위하여 가르쳤네.”
“어기여라 톱질이야.”
“태평성대에 배부른 사람들도 나만치나 먹었던가. 일하고 쉬는 것이 나만치나 즐기던가.”
“어기여차 톱질이야.”
“옛날에 영웅들도 밥 없으면 살 수 있나. 오자서도 도망할 때 오시(吳市)에 빌어먹고 한신도 곤궁할 때 빨래하는 여자에게 얻어먹었도다.”
“어기여라 톱질이야.”

--- p.67

출판사 리뷰

극과 청중이 하나 되는 공간, 판소리
판으로 열고 소리로 그리다

2003년 11월 7일 유네스코는 우리나라의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인 판소리를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언했다. 한국의 전통문화로는 2001년 5월에 선정된 종묘 제례 및 종묘 제례요에 이어 두 번째다.

‘판소리’는 ‘판’과 ‘소리’의 합성어로, ‘여러 사람이 모인 곳’ 또는 ‘상황과 장면’을, ‘소리’는 ‘음악’을 뜻한다. 즉 ‘많은 청중이 모인 놀이판에서 부르는 노래’로,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의 장단에 맞추어 소리(창), 아니리(말), 너름새(몸짓)를 섞어가며 구연(口演)하는 일종의 솔로 오페라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판소리의 내용에 익숙하다. 판소리의 뼈대를 이루는 이야기는 우리 민족 내부에서 오랜 세월 동안 전승되어 온 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수궁가〉(토별가)의 기본이 되는 ‘토끼와 자라 이야기’는 《삼국사기》 〈김춘추조〉에 실려 있으며, 〈심청가〉의 기본이 되는 효행에 관한 이야기는 곳곳에 전해지고 있다. 〈춘향가〉의 열녀나 암행어사 이야기 또한 ‘옛날이야기’ 형태로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라면 판소리의 줄거리는 작품을 읽지 않아도 다 알 수 있으며, 우리 민족의 정서와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

특히 판소리는 문학, 음악, 연극의 요소를 모두 갖춘 예술이자 이들 요소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연 과정에서 나름대로 고쳐지고 청중에 의해 완성된다. 관객석에서 지켜보는 서양 공연 예술과 달리 판소리에서 청중은 추임새를 통해 공연에 참여하며, 청중들의 추임새라는 적극적인 개입으로 완전한 공연이 된다.

‘길거리 예술’에서 ‘명창’의 시대로
대중의 희로애락을 담은 판소리

대중의 삶의 희로애락을 음악과 어울려 표현하며 청중도 참여하는 민중예술인 판소리는 오늘날 전문적인 예술로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연 예술로 자리잡았다.

별도의 악보 없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서편제, 동편제, 중고제 등 창법에 차이가 생기기는 했지만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민중예술로서 서민 의식을 반영해 작품 안에 평민들의 인상어, 욕설 등이 혼재되어 있다. 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과정에서 그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새로운 사회와 시대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판소리는 민중예술을 대표한다.

조선 중기 이후 남도 지방에서 발달한 판소리는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시작되어 19세기 말에는 ‘판소리의 황금시대’라 불릴 정도로 대중에게 인기가 높았다. 18세기 중엽에 고정된 레퍼토리가 형성되었는데, 당시에는 한 마당의 길이가 길지 않았고,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토별가), 〈흥보가〉(박타령), 〈적벽가〉, 〈배비장타령〉, 〈변강쇠타령〉, 〈장끼타령〉, 〈옹고집타령〉, 〈무숙이타령〉, 〈강릉매화타령〉, 〈가짜신선타령〉 등 그 수가 많았다.

평민들 사이에 인기가 있던 판소리를 양반들도 함께 누리게 되면서,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서민적인 내용과 음악이 양반들의 취향에 맞게 바뀌고 무게감이 실리게 되었다. 서민적인 재담이 많은 것은 도태되고 사대부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정리되면서 이 결과 충, 효, 의리, 정절 등 조선시대의 가치관을 담은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와 〈변강쇠가〉 등으로 정착되어 보다 예술적이고 전문적인 장르로 자리잡았다.

판소리를 정립하고 격을 높인 신재효
그가 새롭게 정리한 〈흥보가〉

생활 속의 공연이던 판소리를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에서 절대 빠뜨리지 말아야 할 인물이 신재효다. 그는 판소리 열두 마당을 여섯 마당으로 정리하며 예술적인 음악으로 가다듬었고, 판소리를 전문적인 예술로 승화시켰으며, 판소리 이론을 정립했다. 고도의 수련을 거친 명창들을 길러내기도 했는데, 이 중 한 명이 조선 최초의 여성 명창인 진채선이다.

신재효가 판소리에 몰두한 데는 그의 아버지가 모은 재산과 남다른 재능이 큰 몫을 했다. 고창 관아의 관약방을 맡으며 상당한 재산을 모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그는 중인 계급의 한계로 과거를 볼 수 없고 벼슬길이 막혔다. 이 경우 저항의 길을 걷는 경우가 적지 않은 데 반해 그는 이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여러 학문을 두루 섭렵했지만 중인 계급 때문에 벼슬길에 나아갈 도리가 없었던 그는 음악에 관심을 두기 시작해 가무 음률에 정통했고 가곡, 창악, 속요까지 깊은 경지에 이르렀다.

그는 자기 집을 자신의 아호인 ‘동리’를 따서 동리정사라 이름 붙이고 소리청을 만들어 소리꾼들을 불러들였다. 당시 소리꾼들은 판소리의 가사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음을 제멋대로 부르기 일쑤였는데, 그는 이들을 모아 문자를 가르치고 판소리의 정확한 발음과 뜻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고전 소설을 토대로 한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가〉 여섯 편의 가사를 고쳐, 난잡하거나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을 합리적이고 품위 있게 정리하고 체계를 세웠다. 이를 통해 민중예술이던 판소리를 전문적인 예술 장르로 격을 높였다.

《이 박 안이 궁금하다》
〈흥보가〉를 쉽게 풀어 쓰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흥보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난하고 착한 아우 흥보는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제비가 물고 온 박씨를 심어 박을 타서 보물들이 나와 부자가 되고, 부자이지만 모진 형 놀보는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고 그 제비가 물고 온 박씨를 심어 박을 타서 망한다는 이야기로, 형제간의 우애와 인과응보, 권선징악을 재치 있게 다루고 있다.

〈흥보가〉는 〈춘향가〉, 〈심청가〉와 함께 3대 판소리의 하나로, 토속적이고 익살맞은 재담으로 사랑받는 작품이다. 스물다섯의 자식을 둔, 찢어지게 가난한 흥보네 집 이야기나 놀보의 악행을 열거한 대목에서는 연민과 노여움보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울러 비속한 표현과 생동감 넘치는 묘사로 당대 서민들의 발랄함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으며, 흥보와 놀보라는 대조적인 인물을 통해 부정적인 상황까지 해학과 웃음으로 극복한 그들의 현실 인식을 잘 드러나 있다.

《이 박 안이 궁금하다》는 신재효의 〈흥보가〉를 작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쉽게 풀고 다듬었으며, 필요한 경우 본문에 뜻풀이를 달았다. 이를 통해 〈흥보가〉를 쉽게 즐기며, 우리 민족의 전통 공연 예술인 판소리를 좀 더 가까이 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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