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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1장_우리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이상적 부인 혼인론, 여권론 K언니에게 여(與)함 2장_더 단단히 살아갈 길 모(母) 된 감상기 백결 선생에게 답함 생활 개량에 대한 여자의 부르짖음 3장_나를 잊고 어찌 살 수 있으랴 우애결혼, 시험 결혼 나를 잊지 않는 행복 아아 자유의 파리가 그리워 4장_여자도 다 같은 사람이외다 이혼 고백서 5장_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신생활에 들면서 구미 여성을 보고 반도 여성에게 독신 여성의 정조론 영미 부인 참정권 운동자 회견기 |
Na Hye-seok ,晶月 羅蕙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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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촉박한데 어떻게 나를 기다려 달라 하겠고, 무슨 심사로 남 가는 것을 시기하겠소? 너 잘 가는 것이 내게도 영광이요, 나는 못 가더라도 너만 무사히 도착되어도 좋다. 허나 너무 달음질 말고 이따금 뒤 좀 돌아보아주오. 올라가지 못할 곳에는 손목도 좀 끌어주어야겠소. 다리가 아파 주저앉을 때 가야만 할 이유를 설명해주어야겠소. 믿건대 먼저 밟으시는 언니들이여! 푹푹 디디어 뚜렷이 발자취를 내어주시오. 좀체름하게 또 눈이 오더라도 그 발자국의 윤곽이나 남아 있도록. 깔려 있는 백설 위로도 만곡 요철이 보이건만 그 속에 묻혀 있는 탄탄대로는 보이지 않는구려.
--- p.25 남들의 욕과 칭찬은 이러하외다. 학문이 없다, 견식이 좁다, 용기가 없다, 기술이 부족하다……. 이런 욕을 먹습니다. 활발 영리하다, 웅변가다, 문장가다, 과학적 사상이 있고 철학과 이성을 가졌다……. 이런 칭찬을 듣는구려. 우리는 무의식중에 얌전을 부리나 남들은 의식으로 얌전을 부리고, 우리는 남의 흉내로 공손을 차리나 남들은 자각을 가지고 공손하는 것이외다. 우리는 남자를 원수같이 알고 남녀 양성 간은 육체로만 결합되는 줄 아는데 남들은 남자를 이해해 남성의 특징을 내가 취하기도 하고 여성의 장점을 그에게 자랑도 해 남녀 양성 간에 육(肉) 외에 영(靈)의 결합까지 있는 줄을 압니다. --- p.31 “남자가 이해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여자도 능히 이해할 수 있다. 이로 추리해볼진대 여자의 본성적 이론, 즉 심리적 작용에는 조금도 남자와 다름이 없다. 일용의 직분에 이르러서는 혹 차별이 생길는지 모르겠다. 여자들아! 껍데기만 살지 말고 영혼이 있을지어다.” 절규함이 20세기 여자의 무대요. 언니! 우리 조선 여자도 이 무대상에 참석할 욕심을 가져야 할 줄 알아요. 루소의 말이“ 나는 학자와 장군을 만드는 것보다 먼저 사람을 만들겠다.” 했다 하오. 내가 여자요. 여자가 무엇인지 알아야겠소. 내가 조선 사람이오. 조선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을 알아야겠소. --- p.35 나는 할일이 많았다. 아니 꼭 해야만 할 일이 부지기수다. 게다가 내 눈이 겨우 좀 뜨이려고 하는 때였다. 예술이 무엇이며, 어떠한 것이 인생인지, 조선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겠고, 조선 여자는 이리 해야만 하겠다는 것을. 이 모든 일이 결코 타인에게 미룰 것이 아니라 내가 꼭 해야 할 일이었다. --- p.47 나도 신여성으로 자처한 일이 한 번도 없었고 신인이라고 해주는 것을 별로 영광으로 알지 않는다 함이외다. 나는 사상가도 아니요, 교육가도 아니요, 예술가도 아니요, 종교가도 아니외다. 다만 사람의 탈을 썼고, 여성으로 태어났으며, 사랑으로 살아갈 도리만 찾을 뿐이외다. 혹 다른 때 인연을 맺게 되더라도 명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씨여, 사상적 방황이란 그다지 못된 일이오니까? 방황해야만 할 때 방황하지 말라는 것은 못된 일이 아니오니까? 그다지 조바심을 내어 걱정할 것이야 무엇 있으리까? 방황도 아니 하고 고정부터 하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화석의 그림자나 아닐까요? --- p.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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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성의 희생은 당연해야 하는가
나혜석의 《여자도 사람이외다》 1922년 〈모(母) 된 감상기〉에서 나혜석은 어머니가 되는 과정과 심정을 말하며 여성 고유의 경험을 처음으로 공론화했다. 이 글은 모성의 가치를 언급하고 옹호하면서도 출산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뒷전으로 미뤄야 하는 여성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여성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 글을 지면에 실린 후 비난이 쏟아졌지만, 그는 굽히지 않았다. 1934년 잡지 《삼천리》에 실린 〈이혼 고백서〉는 〈모(母) 된 감상기〉에 대한 비난 수위를 훨씬 뛰어넘었다. 결혼에서 이혼에 이르게 된 과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 이 글에서 이혼 과정에서 남성들의 편협함을 읽고,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정조 관념을 강요하는 사회와 부딪쳤으며, 여성들이 현모양처라는 경직된 틀에 구속당하는 시대에 저항했다. 〈이혼 고백서〉는 그가 경직된 사회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었으며, 그 때문에 얼마나 저항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더구나 그것은 그만의 일이 아니었다. 새롭게 되살려낸 나혜석의 삶과 꿈 남성 중심 사회에 맞선 불꽃 인생! 우리나라 여성 중 최초의 서양화가 나혜석. 신여성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유학길에 오르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일본에서 서양 유화를 배웠고 국내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미술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재능은 그림에만 머물지 않았다. 1918년에 조혼과 가부장제 등 여성에게 불리한 관습을 비판한 소설 〈경희〉를 발표하며 작가로도 남다른 재능을 키웠다. 그는 화가와 작가이기 전에 인형이 되기를 거부한 여성이자 여성의 권리를 찾고자 한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부장적인 사회제도와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 침묵하지 않았으며, 그런 현실을 누구보다 강하게 비판하고 저항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따가운 시선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와 맞서 싸웠다. 그 싸움은 인형이 아닌, 여성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온전히 살고자 한 바람이자 실천이었다. 그렇게 시대를 뛰어넘었고, 지금 우리 앞에 살아 돌아왔다. 사회는 그를 고립과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저항과 도전은 시대를 앞서가는 용기로 되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