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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1부__나의 어린 시절 중근이라는 이름을 얻다 / 수양산에서 청계동으로 / 죽음을 면한 첫 번째 고비 2부__갑오년의 소용돌이 동학당의 횡포에 맞서다 / 동학당의 진지 속으로 / 빼앗긴 자 빼앗은 자 / 즐기지만 부끄러운 일 3부__천주교에 입교하다 형제들에게 할말이 있소이다 / 거룩한 주재자를 위하여 / 다만 그 몸을 기댈 뿐 / 주관하는 이가 없다면 /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 4부__의협 청년 무엇을 두렵다 하는가 / 출표식장의 소란 / 그곳에서 만난 동지 5부__힘 있다고 모두 옳은가 이 억울함을 풀어 주소서 / 그것이 죄가 아니면 무엇을 벌하겠소 / 증인으로 법정에 서다 / 어찌 사사로이 법을 쓰겠는가 6부__혼란스러운 날들 나라가 이처럼 어지러우니 / 시대는 어디로 가는가 / 아버지의 치욕 / 집에서 다시 경성으로 7부__독립하는 그날까지 을사년의 울분 / 역사 뒤에 숨은 자들 / 신부에게서 길을 찾다 8부__사람이 희망이다 어찌 이대로 죽기를 바라는가 / 국채보상운동에 가담하다 / 나라를 잃은 처지 /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도울까 / 여러 곳을 돌며 뜻을 모으다 9부__북간도의 독립군 의병장 북간도에 모인 의병들 / 일본군을 사로잡아 풀어 주다 / 아무리 뜻을 한데 모은들 10부__모진 세상을 만나 동지를 모아 몸을 추스르다 / 풍찬노숙과 기아 / 산속의 세례 / 연해주로 돌아오다 11부__피로 결의한 대한 독립 일진회 잔당에게 사로잡히다 / 피로 결의한 대한 독립 / 이토 히로부미의 행방 12부__하얼빈에 울린 총성 하얼빈으로 가는 길 / 불안한 밤 /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다 / 그를 저격한 이유 / 고마운 사람들 / 갑자기 달라진 재판 / 재판관 뜻대로 하라 / 1910년 3월 13부__한국인 안중근 어질고 약한 죄 / 감옥에서 쓴 동양평화론 / 성체성사를 받다 대한 동포에게 고함 인심결합론 / 나 한국인 안응칠 / 일본 법정에 서서 / 대한 동포에게 고함 / 마지막 유언 동양평화론 세계 역사를 돌아보면 / 동양의 평화를 말한다 / 청일전쟁에서 러일전쟁으로 / 어찌 혼자 이겼다 하는가 / 일본의 만행을 규탄한다 |
安重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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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토 히로부미가 그 힘을 믿고 교만하고 극악해져서, 위로 임금을 속이고 백성들을 함부로 죽이며, 이웃 나라와 의를 끊고, 세계의 신의를 저버렸으니, 그야말로 하늘을 반역한 것이라, 어찌 오래 갈 수가 있겠습니까. 속담에 이르기를 해가 뜨면 이슬이 사라지고, 해가 차면 반드시 저무는 것 또한 이치에 맞는다고 했습니다. 이제 귀하께서 임금님의 거룩한 은혜를 받고도 나라가 위급한 때 팔짱 끼고 구경만 해서야 되겠습니까. 만일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그 벌을 받는 것이니 어찌 각성하지 않을 것입니까. 원컨대 귀하께서는 속히 큰일을 일으켜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 p.99 따라서 오늘 의병을 일으켜 이처럼 큰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하며, 스스로 힘을 길러 국권을 회복해야만 독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망하는 근본이요,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은 만사가 흥하는 근본’이라는 말 그대로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는 것이니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 옳습니까? 분발하여 힘을 내는 것이 옳습니까 --- p.106 이제 동양의 흐름을 들여다보면 정상이 아닌 일들이 일어나 이를 기록하기조차 어렵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는 천하의 이치를 깊이 헤아리거나 알지 못하고, 함부로 잔혹한 정책을 써서 동양 전체가 어려움을 처하고 말았다. 슬프다. 천하대세를 걱정하는 청년들이 어찌 팔짱만 끼고 아무런 방책도 없이,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겠느냐. 이에 나는 생각다 못해 하얼빈의 만인이 보는 앞에서 총 한 방으로 늙은 도적 이토 히로부미의 죄악을 벌해, 뜻있는 동양 청년들의 정신을 일깨운 것이다. --- p.173 내가 이토 히로부미를 쏘아 죽인 것은 대한 독립 전쟁의 한 부분이며, 내가 일본 법정에 선 것은 전쟁에 패해 포로가 된 때문이다. 나는 개인 자격으로 이 일을 행한 것이 아니라 대한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조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 행한 것이니, 만국 공법으로 처리하도록 하라. --- p.174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옮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자 나라를 위해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해,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모아 공을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 p.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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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안중근, 세계의 안중근
“죽음은 두렵지 않다. 고문도 두렵지 않다. 나의 이성과 심장은 너희들에 의해 병들었다. 죽으면서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의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 이 말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일본에 체포되어 첫 심문에서 한 진술로, 그해 11월 러시아의 한 일간신문이 보도한 내용이다. 안중근 의사는 재판 과정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유를 정연한 논리와 당당한 태도로 조목조목 진술했는데, 그의 진술에 감복한 일본인 변호인은 이렇게 변론했다. “그의 범죄 동기는 지식 결핍과 오해에서 나왔다고 할지라도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지 않으면 한국은 독립할 수 없다는 조국에 대한 참된 마음에서 나온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옥중 자서전에서 〈동양평화론〉까지 안중근 의사는 32년의 짧은 생애 동안 불의에 당당하게 맞섰고, 조국애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평화 구현을 위해 역동적인 삶을 살았다. 독실한 신앙인이자 교육자이고, 사상가이며 의병장으로서 시대가 요구한 민족적 과제 앞에 온몸을 던졌다. 그가 옥중에서 남긴 〈동양평화론〉과 200여 점의 유필은 지금도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또한 옥중 자서전은 그가 1909년 10월 26일(음력 9월 13일) 상오 9시 30분, 하얼빈역에서 대한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뤼순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동안, 그해 12월 13일에 집필하기 시작해 이듬해 1910년 순국하기 열흘 전인 3월 15일에 탈고한 것으로, 93일 동안 옥중에서 집필한 것이다. 이 글 안에는 그의 삶은 물론 그가 마주한 현실, 그 안에서 그가 이루려 한 꿈이 그대로 담겨 있다. 천국에서도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니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옮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자 나라를 위해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해,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모아 공을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으로 안중근 의사의 삶과 뜨거운 가슴을 읽으며, 나라가 위난에 처했을 때 우리의 선열들이 어떻게 싸워 나라를 지켰는가를 되돌아보고, 그로써 국가와 민족이라는 공동체의 소중한 의미를 새롭게 되새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