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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자서전 미니미니 키링북
안중근
더스토리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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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링북 시리즈 미니미니북

책소개

목차

안응칠 역사(안중근 자서전)

문재가 뛰어났던 아버지
산 좋고 물 좋은 황해도 신천군으로
동학당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천주교인이 되다
젊은 날의 행적들
이웃의 억울한 사연을 돕다
조선인의 설움을 겪다
큰 뜻을 세우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결의하고
의병을 일으키다
패배에 굴하지 않고
약지를 끊어 대한 독립을 맹세하다
이토 히로부미를 쏘다
뤼순 감옥으로
일제의 억지 재판을 받고
영웅의 마지막 순간

동양평화론
안중근 연보

저자 소개1

安重根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안응칠로 불렸고 해외생활 중에도 이 이름을 많이 사용했다. 6세 때 가족이 황해도 신천군 두라면 청계동으로 이사했으며, 학문보다 사냥에 뜻이 있어 명사수로 성장했다. 16세 때인 1896년 김아려와 결혼해 이후 2남1녀를 두었고, 이듬해에 천주교에 입교해 세례를 받고 도마(토마스)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27세 때인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들을 모아 국권회복을 도모했다. 이때 돈의학교와 삼흥학교를 세우는 등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평양에서 삼합의라는 광산회사를 설립해 산업 진흥운동에도 매진했다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안응칠로 불렸고 해외생활 중에도 이 이름을 많이 사용했다. 6세 때 가족이 황해도 신천군 두라면 청계동으로 이사했으며, 학문보다 사냥에 뜻이 있어 명사수로 성장했다. 16세 때인 1896년 김아려와 결혼해 이후 2남1녀를 두었고, 이듬해에 천주교에 입교해 세례를 받고 도마(토마스)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27세 때인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들을 모아 국권회복을 도모했다. 이때 돈의학교와 삼흥학교를 세우는 등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평양에서 삼합의라는 광산회사를 설립해 산업 진흥운동에도 매진했다. 이후 연해주로 가서 의병대열에 참가해 대한의군을 조직하고 무장 항일투쟁에 나셨다. 1909년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동의단지회’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했는데, 이때 이들은 왼손 네 번째 손가락 한 마디를 잘라 태극기에 붉은 피로 ‘大韓獨立’(대한독립)을 새겼다. 그해 10월 26일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조선통감부 초대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1910년 2월 14일 공판에서 사형이 선고되고, 그해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이때 그의 나이 31세였다.

옥중에서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으며, 이 중 『동양평화론』은 형이 집행되면서 미완으로 남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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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5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66*93*20mm
ISBN13
9791175243743

출판사 리뷰

대한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 총을 겨누다.

위대한 영웅이자 고뇌하는 인간이었던 안중근, 그가 쓴 옥중 자서전
온 인류가 평화 속에서 공존 공영해 나갈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제시하다.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지 않는 세계를 꿈꾸다

안중근은 대한 제국이 일본의 침략에 의해 권리를 하나둘 빼앗기던 시기, 민족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투쟁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만주 하얼빈 역에서 아시아 침략의 원흉이자 조선통감부 총독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였다. 체포된 뒤에도 재판정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은 안중근은 동양의 평화를 파괴하는 이토 히로부미의 죄를 낱낱이 밝히고, 자신이 대한 의군의 참모 중장으로서 쟁에 참여하여 정당하게 침략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고 말했다.

안중근이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상을 정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동맹을 맺으며 동지들과 뜻을 모았던 안중근은 동양의 평화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토에게 총을 겨누었다. 이 사건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고, 독립운동 진영에 큰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그의 영웅성은 강조하면 할수록 도리어 안중근이라는 인물에 다가가는 데 장애가 되기도 한다. 다행히도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 저격 뒤 뤼순 감옥에서 〈안응칠 역사(安應七歷史)〉를 남겼다.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써내려간 기록 덕분에 우리는 안중군의 영웅적 행위뿐만 아니라 그의 삶을 총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 《안중근 자서전》은 안중근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 과정, 이토 저격 사건의 전말 및 재판 과정을 오롯이 그려냈다. 또한 이 책에는 안중근이 동양의 평화를 꿈꾸며 기술한 〈동양평화론〉을 〈안응칠 역사〉와 함께 담고 있어 독자들은 안중근 사상에 다면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추천평

만 섬의 끓는 피여! 열 말의 담력이여!
총탄이 쏟아지는데 늠름한 그대 모습이여! - 한용운 (독립운동가, 승려)
겨레 생명 오래오래 불멸의 것이게 하시는 이여, 의사여 - 박두진 (시인)
공은 삼한을 덮고 이름은 만국에 떨치니,
살아 백세가 못되는데 죽어 천추에 빛나는구려! - 쑨원 (중국의 국부, 중화민국 초대 임시 대총통)
평생을 벼르던 일 이제야 끝났구려!
살아 백 살을 못 넘기는데 죽어 천년을 빛내는 구려! - 위안 스카이 (중화민국 초대 대통령)
생명을 버리려는 마음을 가졌기에 그의 마음이 안정되었다.
마음이 안정되었기에 손이 안정되었다.
손이 안정되었기에 탄알마다 명중했다. - 홍콩 화자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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