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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장 : 들뢰즈의 생기론 1) 비유기적 생기론 2) 비소속성의 이름으로서의 생명 3) 잠재화/현실화, 선과 악을 넘어서 4) 벌거벗은, 비인격적인, 비유기적인, 중성적인 생명 5) 중성성과 내재성 2장 : 철학적 생기론의 계보 1) 스토아 학파 i) 비물체적/물체적, 열외 존재/존재 ii) 동사와 명사 iii) 긍정적 비존재 iv) 순수 사건, 생성, 보이드, 일의성 2) 라이프니츠 i) 술어, 사건 ii) 방법-배경, 비본질적, 변조, 방법주의 iii) 주름, 모나드 3) 베르그송 i) 분화와 진화 ii) 생명으로서의 전체, 지속 iii) 기계론 비판, 비유기적 생명 4) 아르토 : 기관 없는 신체 5) 에피쿠로스,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칸트, 니체, 푸코 3장 : 들뢰즈에서의 생기론의 생물학적 참조 1) 유전학 i) 구조와 미분적 관계 ii) 반복, 드라마화, 분화 iii) 일의성 iv) 유전자 본질주의의 극복 2) 배아 발생학 I) 세계는 알이다 ii) 기관 없는 신체, 추상적 동물 iii) 주름 3) 진화론 i) 분화와 차이로서의 진화, 자연 선택 ii) 잠재적 일원론으로서의 진화 iii) 분자적 다윈주의, 속도, 미분적인 것 iv) 신다윈주의 4) 행동학 4장 : 현대 건축과 도시론에서의 생기론적 사유 1) 랜드스케이프, 환경, 제 2의 자연 2) 증가, 감소, 유연성 3) 생성, 발생, 과정, 진화, 돌연변이 4) 비물질적인 것, 프로그램, 사건, 잠재성 5) 프랙탈, 카오스 이론 6) 비형태적인 것, 미분적 연속성, 유동성, 주름 7) 이질성, 용해 8) 무의미, 비장소, 비본질적인 것 9) 생물학적 구조, 피부로서의 표피 10) 퍼지(fuzzy), 다중선택, 시간적 다수성 5장 : 과학에서의 생기론적 전망 1) 네트워크 이론 2) 인공 생명 3) 복잡계 이론 i) 비결정론, 혼돈, 비선형계 ii) 자기 조직화 iii) 자기조절, 항상성, 피드백 4) 기계에서 생명으로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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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철학의 생기론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생명(vie)의 개념과 유기체(organisme)의 개념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들뢰즈의 철학은 생명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지만, 유기체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입장을 취한다. 들뢰즈에게서 유기체는 생명을 실어 나르는 용기이며, 꿈틀거리는 생명의 역능을 제한시키는 구속복이다. 들뢰즈에서 생명은 유기적 생명(vie organique)을 뜻하지 않는다. 들뢰즈에서 생명은 유기적 생명이라기보다는 비유기적 생명(vie inorganique)이다. 유기적 생명과 비유기적 생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3권에서 살펴본 것처럼, 들뢰즈는 신체, 의미, 주체를 3가지 지층-유기체화, 의미화, 주체화-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키려고 노력한다. 개체화의 새로운 양태인 즉개성(hecceite)에 의해서 정의되는 신체는 기관 없는 신체이다. 이 기관 없는 신체는 아직 기관이 형성되기 이전의, 기관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생명 그 자체의 신체를 뜻하며, 이것은 유기체의 의해 지층화되고 구속되는 ‘유기적 생명’ 이전의 ‘비유기적 생명’을 뜻한다.
---「1장 〈들뢰즈의 생기론〉」중에서 이러한 측면에서 들뢰즈는 바이스만을 인용하지만 유전자 환원주의를 넘어서는 복잡계 생물학자들의 생각의 영향을 받고 있다. 구드윈을 비롯한 복잡계 생물학자들은 바이스만이 지나치게 생식질이나 DNA의 역할을 물신화한 것을 비판한다. 구드윈은 동물들의 체세포 원형질로부터 생식질이 분리되지 않음을 지적한다. 복잡계 생물학은 DNA를 만드는 분자 메커니즘들이 그것을 하나의 고정된 고분자가 아니라, 일종의 액체가 되게 함으로써 유연성을 작동시킨다고 생각하며, 난세포나 유기체의 조직화가 발생하는 역동적 맥락을 제공하는 ‘발생적인 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즉 중요한 것은 DNA의 ‘본질’이 아니라 ‘역동적 힘들의 장’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들뢰즈에 있어서, DNA 도그마를 비판하고 장의 역할을 강조하는 관점에 영향을 끼친다. 유전자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체세포 연계된 발생을 중요시하는 관점은 자발성과 비결정론에 영향을 끼친다. ---「3장 〈들뢰즈 생기론의 생물학적 참조〉」중에서 20세기를 전반과 후반으로 나누어 볼 때, 전반기에서 후반기로 갈수록 그 사유방식이 기계론에서 생기론으로 전환되고 있다. 분명히, 이런 전환은 현대의 컴퓨터 기술과 유전학 같은 생명 과학의 발전과 연결되어 있다. 생기론적 사유로의 이행을 공상 과학 영화에서도 읽어낼 수 있다. SF 영화는 과학 기술의 발달에 굉장히 민감한 장르이다. 유전 공학의 발단은 90년대 이후의 SF 영화의 상상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90년대 이전까지 SF영화의 주소재가 기계, 우주여행, 시간여행이었다면, 유전자 조작과 인간 복제는 90년대 이후의 SF 영화의 주요한 소재가 된다.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 〈아일랜드(Island)〉 등의 영화들이 그런 예이고, 〈스타워즈(Starwars)〉도 9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프리퀄 삼부작에는 그 이전의 세 편에는 없었던, 유전자 복제의 소재가 들어가 있다, 〈매트릭스(Matrix)〉 역시 인간 배양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드라큘라나 좀비 영화들까지도, 그 원인을 바이러스에서 찾고 있다. 이처럼 굉장히 많은 SF 영화들이 생물학적, 유전학적인 패러다임의 영향 하에 있다. ---「4장 〈현대 건축에서 생기론적 사유〉」중에서 90년대 이후의 SF영화의 큰 소재는 컴퓨터 기술과 ‘가상 현실’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메카닉적인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보는 실재가 하나의 프로그램의 시뮬레이션일 수 있고, 우리가 보는 것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뇌가 느끼는 것이라는 관점에 의거한다. 우리의 뇌의 작동에 대한 관심과도 연결된다. 들뢰즈는 『시네마2 : 시간-이미지』에서 뇌의 문제가 현대 영화의 특징 중의 하나라고 지적한다. 알랭 레네(Alain Resnais)나 알랭 로브-그리에(Alain Robbe-Grillet) 같은 누벨 바그 감독들과 미쉘 공드리(Michel Gondry) 같은 현대의 몇몇 영화 감독들은 기억, 환각, 꿈, 거짓말을 통한 허구의 역능(puissance du faux)의 다중층(multicouche)에 대한 실험을 한다. 이런 실험들은 우리가 보기에 유전 공학 영화보다 더욱 생기론적으로 판단된다. ---「4장 〈현대 건축에서 생기론적 사유〉」중에서 현대 과학에서 인공은 점점 더 자연의 논리를 따라가고 기계는 생명의 논리를 따라간다. 퍼지 제어, 인공 생명, 인공 지능 등은 그러한 예이다. 고도로 발달한 컴퓨터는 인간의 지능을 닮아가고, 고도의 자기제어 시스템, 네트워크 시스템은 생명의 모습을 닮아간다. 가장 진보된 기술이 그 존재가 느껴지지 않으면서 인간에게 봉사하듯이, 고도로 진보된 건축은 자연과 더 이상 구별되지 않고 그 존재가 느껴지지 않게 될 것이다. 또한 고도로 발달된 도시는 스스로 창발하며 자기 발생, 자기 조직, 성장하며,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진화하는 환경과 구별되지 않는 도시가 될 것이다. 현대에 생명/기계, 자연/인공의 구분은 점점 모호해져 가고 있다. 들뢰즈가 생명과 기계를 구별하지 않고 ‘기계권(mecanosphere)’이라고 부른 것은 그런 의미에서이고, 그의 철학이 ‘생기론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미시물리학적인 것과 생물학적인 것 사이의 비차이/무차이의 영역이며, 생명체에 기계들이 존재하는 만큼이나 기계 내에 생명체들이 존재한다.” 근대 과학이 만들어낸 코스모스/카오스의 이분법을 벗어나서, 코스모스는 카오스의 아주 특수한 경우라는 것을 복잡계 과학이 밝혀낸 것처럼, 기계와 인공은 생명과 자연과 대립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생명과 자연의 매우 특수한 경우일지 모른다. ---「5장 〈과학에서의 생기론적 전망〉」중에서 뉴턴으로 대표되는 근대 과학의 환원적 세계관은 복잡계 이론으로 대표되는 현대 과학의 종합적, 전일적 세계관으로 전환되고 있다. 궁극적인 단위와 실체를 추구하던 전통적인 과학의 관점에서 패턴과 시스템을 파악하고자 하는 관점으로의 전환은 기계론적 사고에서 생기론적 사고로의 전환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대상(object)에서 관계(relation)로의 전환 또한 이러한 맥락과 연결될 수 있다. 이것은 근대 과학이 물리학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현대 과학이 생물학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을 다시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생물학적 패러다임은 고전 생물학에서처럼 유기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인공 생명학에서처럼 생명의 범위를 넓게 보는 생물학으로서 생명의 형식과 논리에 더욱 주목하는 생명에 대한 ‘시스템적인 관점’을 제공하는 과학이다. 이런 이유에서 보다 정확하게는 생기론으로 부르는 것이 더욱 적합할 것이며, 현대 과학의 전환은 근대의 기계론적 패러다임에서 생기론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라고 부를 수 있다. ---「5장 〈과학에서의 생기론적 전망〉」중에서 브라질리아나 ‘빛나는 도시’ 같은 근대 도시가 그리드 체계에 따른 질서를 강요하는 하향적 방식으로 설계되었다면, 중세 도시는 오히려 자기 조직화와 창발의 원칙을 허용하는 복잡계의 논리를 수용할 수 있는 상향식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근대 도시보다는 중세 도시가 생명의 지혜를 함축하고 있다. 근대 도시가 강요된 질서에 의해서 안정적 평형상태에 있는 반면, 중세 도시는 비평형적으로 보이고 불균형적으로 보이지만, 비평형적 균형 상태에서 오히려 변화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혼돈의 가장자리’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현대 도시는 더 이상 브라질리아나 ‘빛나는 도시’ 같은 단순한 몸짓으로 통제되지 않는다. 현대 도시는 하나의 비평형 복잡계이고, 수많은 변수들이 방정식을 만드는 다체 비선형 방정식으로 이루어져있다. 태양계의 행성들의 운동이나 유체의 운동, 생물체의 운동처럼 카오스와 코스모스가 섞여있는 미묘한 질서와 혼돈의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위치한다. 렘 콜하스의 믈렁-세나르 도시 계획은 질서에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혼돈을 끌어안는 도시론을 시도하였다. ---「5장 〈과학에서의 생기론적 전망〉」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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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함께 떠나는 현대 건축의 철학적 모험』 시리즈 1, 2, 3권에서 살펴본 위상학, 은유, 생성, 내재성을 모두 포괄하는, 그 개념들 밑에 깔려 있는 하나의 패러다임 혹은 시대정신이 있지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 이 책은 우리 시대를 아우르는 패러다임으로 생기론적 사유를 제시한다. 시리즈의 결론에 해당하는 이 책은 생기론적 사유에 대한 철학적, 건축적, 과학적, 예술적 공명을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들뢰즈가 탐구한 구조, 발생, 미분적 관계, 주름, 일의성, 생성, 역능, 유목적 사유, 강도성, 내재성, 즉개성, 기관 없는 신체 등의 개념은, 기계적이며 요소 환원적인 관점에 억눌려 있던 생명과 생의 약동의 가치를 끌어올리려는 노력이다. 들뢰즈는 자신의 철학이 생기론적인 것이 되기를 바랬다. 그의 세 명의 철학적 스승인 스피노자, 니체, 베르그송 역시 생기론적 계보 하에 있다. 들뢰즈는 생기론적 철학적 개념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유전학, 배아 발생학, 분자적 진화론, 신-다윈주의, 행동학을 참조한다. 또한 뉴턴으로 대표되는 근대 과학의 환원적 세계관은 복잡계 이론으로 대표되는 현대 과학의 종합적, 전일적 세계관으로 전환되고 있다. 대상(object)에서 관계(relation)로의 전환 또한 이러한 맥락과 연결될 수 있다. 이 책에서 20세기 후반에 부각된 생물학 이론들과 복잡계 이론, 네트워크 이론, 인공생명 이론이 생기론적 사유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밝힌다. 건축과 도시론에서도, 20세기 전반의 근대 건축이 “건축=기계”라는 은유적 사고가 지배적이었던 기계론의 시대였다면, 20세기 후반의 현대 건축은 “건축=생명”이라는 은유적 사고가 지배적이었던 생기론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현대 건축에 나타나는 생성, 발생, 진화, 비물질성, 프랙탈, 주름, 표피, 시간, 자연의 개념을 통해서 생기론적 사유를 읽어낸다. 현대건축과 철학의 상호공명 -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건축가 민현식 『현대건축의 철학적 모험』은 건축가 장용순의 지적 모험이다. 자신이 건축의 현장에서 감지한, 온몸에 소름이 돋는 전율과 같은 감동이 무엇인가를 밝혀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장용순이 주목하는 건축공간은 “빛 속에 자태를 드러내는 매스들의 교묘하고 정확하며 장엄한 유희”(르 코르뷔지에의 정의)로서의 건축공간이라기보다, 그것을 있게 한 원초적인 무엇, 이름 붙여지기 전, 힘의 강도와 흐름만이 있었던 혼돈하고 공허한 공간이다. 아마 고딕 성당의 공간에서 하늘로부터의 장엄한 빛의 다발이 주는 감동 너머에 리브 볼트(rib vault)를 지나 기둥을 타고 흐르는 힘을 보았고, 시에나 광장에서 시민들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 뒤에 작동하는 경사진 표면에 퍼지는 힘의 망상 조직(network)을 주목했으며, 도미노의 자유 평면과 자유 입면이 힘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뒤에나 가능했음을 먼저 읽었다. 현대는 이전의 시대와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모든 영역의 그 확고했던 경계선이 쉽게 무너지면서, 불확정, 비결정, 가상, 비실재, 무의미, 시뮬라크르(simulacre) 등이 득실대는 곳이며, 모든 의미어들 앞에 비非, 반反, 부不, 탈脫 등의 접두사를 붙이고, 개념화가 미칠 수 없는 곳으로 탈주하고 있다. 그런 탓인지 장용순이 떠나는 모험의 여정은 의심으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 19세기 의심의 대가였던 니체, 마르크스 그리고 프로이트에게서 의심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그들의 의심이 플라톤과 데카르트가 구축해온 굳건한 형이상학적 설계를 무너뜨린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여정의 마지막, 장용순이 주목한 철학자는 질 들뢰즈이고, 그에게서 ‘아이스테시스(aisthesis, 감성적 지각)에 대한 이성의 우위’라는 수천 년 묵은 도식을 뒤집는 극적 반전을 보았기 때문이다. 헤겔에게서조차도 예술을 ‘이념의 감각적 현현’으로 보고 철학적 인식의 아래에 놓았지만, 들뢰즈는 아이스테시스를 이성에 선행하여, 그 바탕에서 그것을 비로소 가능하게 해주는 어떤 근원적인 능력이라고 본다. 그래서 들뢰즈에게 감각은 감관에서 직접 몸으로 내려가는 존재론적 사건이며, 생명체의 몸과 바깥의 환경이 서로 접하는 삼투막의 표면에서 ‘진동’처럼 발생하는 어떤 유물론적 사건이다. 이러한 통찰을 통하여, 장용순은 ‘현대’ 건축에서, 하나의 정체성에 함몰한 공간론에서 떠나 끝없이 자기의 존재를 다양화하는 유목적 성격을 발굴해 낸다. 이러한 현대건축의 성격을 발굴해내는 과정에서 장용순은 많은 건축가, 철학자, 예술가, 과학자를 거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러한 현대성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건축가로서 렘 콜하스를 호명하여, 해체론의 중심에 선 철학자 질 들뢰즈를 만나게 한다. 이들의 만남 속에 건축과 철학은 새로운 시작을 경험하고 있다. 사실 철학은 과학에 대해서, 예술과 윤리적 실천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말해왔다. 철학은 비철학적 현상에 대하여, 그 안에 들어 있는 의미와 기원과 한계에 대하여, 그것이 향해야하는 이념적 목표에 대하여 평가적이고 규정적인 어조로 판결해 왔다. 그러나 니체에서 현대 프랑스 철학자에 이르는 해체론적 전통의 주도력 안에서 볼 때, 철학은 다른 것들이 지닌 본성을 물으러 오는 법정으로서의 권위를 이미 상실하였다. 건축 또한 이러한 사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예전의 건축, 특히 가까이 모더니즘 시대의 건축은 이론 속에 안주하는 건축, 이론에 의하여 순화, 규정, 보존, 지도, 조직화되는 건축이었다. 반면, 현대건축은 이론화될 수 없거나, 이론화되기 이전의 건축을 구한다. 건축에 대한 현대철학의 개입은 건축에 대한 이론의 간섭을 물리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기서 구태여 건축가 콜하스와 철학자 들뢰즈을 ‘만나게 한다’라고 쓰는 것은 들뢰즈의 철학으로 콜하스의 건축을 설명하거나, 들뢰즈의 철학을 콜하스적으로 건축하려 함이 아니라, 그들이 만나 일으키는 공명(共鳴)을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아니 둘 사이에 공명을 일으키게 하기 위함이다. 이 둘 사이에 일으키는 공명으로 하여, 렘 콜하스의 건축과 질 들뢰즈의 철학이 새롭게 태어나게 할 뿐 아니라, 사유의 지평이 확장되어, 건축과 과학, 건축과 예술, 그리고 건축과 윤리가 어떻게 공명하는가를 이야기할 수 있기까지 이른다. 주관적이고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감성적 체험이 이성적 논리에 뒤지지 않는 보편적 타당성을 지닐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장용순은 ‘이성을 해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성 자신뿐’이라는 동어반복적인 대답에서 그리 크게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글쓰기의 태생적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장용순의 『현대건축의 철학적 모험』은 현대건축의 철학적 해설서라기보다는 글로 쓴 하나의 잘 지어진 ‘건축’으로 보인다. 장용순의 글쓰기는 건축창작현장을 떠난 적이 없으며, 그곳에서의 감동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이론서들이 건축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석하기만 했지만, 장용순의 이러한 실천적 작업은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을 바꾸어 놓는 데 크게 일조할 것이다. 자끄 뤼캉 서문 - 로잔 공과대학 교수 자크 뤼캉 장용순의 책은 위상학, 은유와 생성, 용해와 내재성, 생기론이라는 서로 다른 주제를 통해 건축과 도시론, 그리고 철학을 공명을 일으킨다. 연구의 방향을 설정하는 1권에서 펼쳐지는 논변은 위상학과 관련되어 있다. 정확성과 비례라는 변수를 통해 형태를 사유하는 (유클리드) 기하학과는 반대로, 위상학은 검토 대상이 되는 요소 자체보다는 요소들 사이의 관계에 강조점을 둔다. 위상학적 접근은 특히 2차 대전 이후의 건축과 도시론에서 커다란 중요성을 차지하고 있다. 저자는 위상학의 이런 영향력을 보여 주고 있으며, 연산들(변형, 관통, 포함, 보이드의 전략, 접기 등)을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연산들을 ‘전통적인’ 구성 절차와 대조하면서, 현대의 건물과 프로젝트를 예로 들고 있다. 이런 예들을 선택한 것은 유효적절했으며, 이를 통해 이 연구는 철학적 관점에서 본 현대 건축과 도시에 대한 독창적인 이해를 제시하고 있다. 2권 은유와 생성은 문제틀의 중첩과 상호 텍스트성의 문제들을 도입한다. 3권에서는 탈영토화와 심지어 건축의 용해로서의 현대성을 다루고 있다. 2권과 3권은 생기론을 다루는 4권을 최종 목적지로 삼고 있다. 4권은 지금까지 다룬 모든 관심사를 한데 모으면서, 특히 증가와 가변성의 문제를 다룬다. 이처럼 난해한 문제들을 다루기로 한 장용순의 용기와, 철학은 물론이고 건축과 도시론의 영역에서도 작동하는 여러 관념과 개념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한 그의 능력에 경의를 표한다. 철학과 건축 사이의 관계가 최근에 드물게나마 탐구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이렇게 체계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장용순의 연구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젖히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이해를 제공하는 이론적인 구성물임을 밝히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