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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004
1장 우연의 여신 백수 탈출 013 · ‘영어가 좀 되는’ 016 · 날개가 필요한 새 018 · 도움의 징검다리 022 · 누가 아니, 그런 일이 생길지 025 · 뜻밖의 기회 027 · 행운의 부메랑 030 2장 새내기 글로벌 직원 애물단지의 집 떠나기 039 · 하루 한 단어, 프랑스어 공부 042 · 열려라, 업무 감각 045 · 처음 마주한 전투 048 · 컨설턴트 요지경 051 · 진정한 갑 055 · 콩나물 교실의 교훈 058 · 감사한 물 한 방울 061 · 나는 관광보다 추억 064 · 받는 자에 대한 예의 069 · ‘먹는 척’의 효과 071 3장 현장의 바다 ‘어미 품’을 떠나서 077 · 드디어 현장의 바다로 080 · 재난 재해와 우산 장식 083 · 극한 직업, 그러나 089 · 타인의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것 092 · 굴곡진 국장 승진 098 · 짐바브웨에서 맞은 돈벼락 101 · 전기 없는 나라의 음과 양 103 · 반갑지 않은 VIP 라운지 107 · 칼바람 부는 사무소 재정비 111 · 협박 편지를 받다 115 · 정직한 브로커 119 · 찬밥 신세의 비주재 에이전시 122 · 나만의 휴식처, 디디 125 · 가족의 울타리가 된 앨리스 128 · 똑똑이 캐롤라인 132 · 피부색, 그게 뭐라고 134 · “꼬끼오” 닭의 최후 139 · 병도 주고 약도 주는 아프리카의 의료 서비스 141 · 페기 할머니의 정원 144 4장 다시, 파리로 전근 명령 151 · 안녕, 하라레 153 · 파리에 대한 심술 159 · 물거품이 된 노력 163 · ‘변두리’ 부서 타령 166 · 폭풍 전야의 성찰 170 · 다시 울린 전쟁터의 북 175 · 세계시민교육의 성공과 그늘 182 · 리더의 밥상에 올라온 외로움 186 · ‘뻐꾸기 둥지’를 날다 191 · 파리, 정들어 고향 195 · 마당 너머 나의 이웃들 200 5장 마지막 근무 독일이라 다행이야 207 · 베이스캠프 철수 211 · 조용한 경례 215 · 마지막 프로그램 파일 220 · 기억 속 한국인들 225 · 다시 찾은 평온함 228 · 그놈의 코로나 231 · 팔자에 없던 재택근무 233 · 이래도 되나 237 · “우리 잘 하고 있나요?” 240 6장 돌고 돌아 한국으로 어디 가서 살 것인가? 247 · 명함 없는 삶을 반긴다 251 · 외국어가 재산이 아닌 유물이 되면 253 · 열정이 받쳐주는 은퇴 생활 257 · ‘다행’에서 찾는 행복 261 · 결혼보다 경제적 독립 264 · 힘든 약속을 하는 용기 268 7장 못다 한 이야기 출장 가방 꾸리기의 노하우 277 · 리셉션을 불편해하는 DNA 극복기 281 · 떡잎 알아보기 285 · 유연성 없는 지식은 독이다 289 · 전근 천태만상 293 · 대한민국, 조금만 더 잘하자 296 · 묵음으로 처리하는 자랑 301 · 꿀팁을 찾지 않는다 304 · 고민을 키우는 옵션 리스트 309 · ‘짠돌이’ 국제기구 312 · 무소의 뿔 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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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독자들이 생각한 국제기구 직원의 일과 삶은 내가 전하는 그들의 세계와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신선한 발견은 내가 이 책에서 독자들에게 주고 싶은 선물 중의 하나다. 인생은 요란하게 준비할 것도 아니고, 치열하게 싸워야 할 것도 아니라는 메시지도 받아 갔으면 좋겠다. 거기에 묵묵히 노력하는 사람도 보상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누군가가 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그리고 미운 오리 새끼처럼 튀는 생각을 하거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은 별나서 더욱 값지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 p.6 「프롤로그」중에서 세월이 많이 지난 후에 실장님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자신은 나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았고, 그 장점을 살리기에는 바깥세상이 더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러면서 날개만 달아 주면 멀리 날 수 있는 새 같은 사람인데, 그때 내가 있던 환경에 그냥 놔두었다가는 날기는커녕 곧 터져 나갈 풍선 같았다는 기억을 끄집어내셨다. --- p.20 그렇게 아버지와 함께 구입한 고전 가구들은 20년이 넘도록 나와 삶의 숨결을 같이 해왔다. 수많은 이사에 흠집도 많이 갔지만, 집에 방문하는 외국인 친구나 손님들에게 나의 문화적 정체성을 알리는 외교 사절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제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소중한 기억의 유산으로 남아 있다.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드디어 딸을 집에서 내보내시던 ‘친정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기억 말이다. --- p.41 어느 스님이 뜨거운 감자를 손에서 놓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난다. 그냥 손에서 놓으면 된다고. 마찬가지였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때 방에서 ‘벌떡 일어나는’ 행위가 없었더라면, 그리고 조금은 막막해 보이는 그 조그마한 찻상 앞에서의 작은 시작이 없었더라면 나의 프랑스어 공부는 계속 늦춰졌을 것이고, 그러다가 아마도 아예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시작하지 않으면 시작은 없는 법이다. --- p.42 국제기구 직원보다 더 겸손한 자세로 개발 사업에 임하는 컨설턴트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은 개발 사업에 대한 소명감을 갖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재능과 지식을 나누며 봉사한다는 차원에서 일을 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국제기구 주변에는 얼굴 두꺼운 ‘흥정’ 컨설턴트들도 의외로 많다. 세월이 지나도 나의 컨설턴트 상비군 리스트가 길어지지 않았던 이유 중의 하나다. 그런 ‘흥정이’들에게 묻고 싶다. “세미나 하는 데 욕조가 뭐 그리 중헌디?”라고. --- p.54 과자 상자를 가슴에 꼬옥 끌어안은 채 우리를 바라보는 선생님과 영문도 모르는 채 멀어져 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산길을 내려왔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한 동료에게 했더니, 동료는 그 아이들은 손님인 내가 직접 나눠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이 과자를 받아먹기 위해 차창에 매달리게는 하고 싶지 않았다. 받는 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 p.71 그러나 그 표류의 시간은 나 개인에게는 낭비만은 아니었다. 격동의 시기를 거치면서 현장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고, 파리에서 원거리 지원이나 조정을 하는 것보다 현장의 바다에 뛰어들어 내가 직접 헤엄쳐 보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 내게 필요한 것은 ‘망원경’이 아니라 ‘수영복’이었다. --- p.79 국제기구 직원들은 열악한 회원국 현장에서도 어느 정도 안전망이 쳐진 버블 속에 산다. 그들 업무의 대상인 회원국의 어려운 현실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사는 것이다. 나도 그 버블 세계의 일원이었고, 버블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날 수영장에서 제공하던 주스에 꽂힌 파라솔 종이 장식은 왠지 눈에 거슬렸다. 아니, 내가 죄 없는 주스 장식에 시비를 걸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윤동주는 「서시」에서 이렇게 적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나는 뭔가 부끄러웠다. 숱한 재난 재해를 겪은 나라가 내게 준 부끄러움이다. --- p.87 그 비방 편지 사건이 있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하라레에 있는 우리 집으로 협박 편지가 한 장 날아들었다. 필적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글자를 여기저기서 오려 작성한 편지였다. 나보고 다치기 전에 하라레를 떠나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내 반려견의 목숨이 위험할 것이라는 경고도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 p.116 사람이고 조직이고 간에 인기는 살 수 있지만, 존경은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존경은 상대방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어서 더욱 귀하고 소중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유네스코가 회원국들로부터 쌓아 온 신뢰의 내공이 느껴졌고, 나의 조직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유네스코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10년이 지나서야 나는 나의 조직이 꿈꾸는 세상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됐다. --- p.121 그리고 할머니에게서 배운 또 다른 기도를 해 본다. 뉘엿뉘엿 저무는 해를 뒤로 하고 마티니 한 잔을 마시면서 추리 소설을 읽고 계시던 할머니가 누리던 노년의 삶의 여유와 멋을 누릴 수 있게 해달라고. 할머니 살아계실 때 나도 이다음에 당신같이 늙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으니, 아마도 하늘에서 내 기도를 기억하고 들어 주시리라 믿는다. 페기 할머니의 작은 정원이 그립다. 인생 후반길을 정리하는 지혜와 작은 우정이 싹트던 그 정원이. --- p.147 나를 조용히 들여다보았다. 남이 아닌, 나의 손가락이 나를 더 깊게 찔렀다. 내가 생각하는 옳고 그름에 흥분하지 않고, 행동을 조금 더 너그럽게 했더라면 그렇게까지 상황이 확대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불길에 부채질을 했구나’ 하는 반성의 채찍질이 시작됐다. --- p.174 고맙기는 했지만, 감사패를 받을 정도로 내가 무슨 큰 공헌을 한 것이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만 내가 한 일이 있다면 상식 수준에서 주어진 상황을 판단하고, 내가 믿는 구석에 대한 확신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간 것뿐이다. 그 과정에서 책임자인 나의 밥상에 올라온 외로움이라는 반찬을 혼자 꾸역꾸역 먹은 것이 기특해서 주는 상이라면, 그런 거라면, 감사패가 타당할 수도 있겠다. --- p.190 조직에는 조직의 냄새가 있다. 그 냄새에 숨이 막혀 살아보려는 몸짓으로 ‘반항’을 택할 수도 있지만, 이는 아예 숨이 끊어지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루한 직장 생활은 가끔의 객기로 달래며 살아가는 것이 안전한지도 모르겠다. 나, 미생은 그렇게 지냈다. --- p.195 초콜릿 가게가 있고, 그 옆에 약방이 있고, 그 건너편에 태국 식당이 있고, 조금만 더 가면 와인 가게, 정육점, 치즈 가게, 마당 딸린 아파트가 있고, 또 조금만 더 가면 신고 일어서지도 못할 구두만 파는 가게가 있는 곳. 뒤돌아보니 이 모든 것이 소꿉장난 세트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22년간 소꿉장난을 했다. 파리에 대한 그만큼의 기억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다. --- p.199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일요일엔 대신 아들이 바게트를 옆구리에 끼고 노모를 찾아와 점심을 같이했다. 마당 너머의 창문으로 보이는 구비용 할아버지의 식탁 의자는 빈 채로 남아 있었다. 식탁 앞 창문에서 우리 집을 감시하시던 할아버지에 대한 나의 그리움도 그 옆에 같이 남아 있었다. --- p.201 코로나로 세상이 뒤집어지는 동안, 가난한 자들이 더욱 가난해지는 동안, 나는 아파트 한가운데서 일하다가 녹음이 우거진 거리에 디디를 산책시키고, 다시 일하다가 컴퓨터 끄고 하루를 마쳤다. 봄에 피는 꽃, 가을에 지는 낙엽, 겨울에 날리는 눈을 시야 트인 내 아파트에서 바라보며 일하고, 월급 받고, 밥 먹고 살았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질문을 하나 한다. “그래도 되는 건가?” 이것이 뜬금없는 질문이어야 할까? --- p.239 파리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사진 속의 여인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슬픔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얼마나 강하게 느껴졌던지, 마치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로 달려가는 사람 같았다. 그림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내가 그린 그녀의 모습은 조잡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는 뭔가를 강하게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 p.259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디디와 언젠가는 헤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 순간이 오면 후회가 없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아픔의 크기를 조금이나마 줄여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후회는 디디에게 평생 “기다려”라는 말을 하고 지내는 것일 듯하다. 그런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디디 옆의 내 자리를 지켜야 할 것 같다. --- p.272 돌진하는 무소의 뿔. 시간이 흐른 후에라도 누군가가 그 충격을 고마워한다면, 그러면 된 거 아닐까? 인생은 끝까지 가봐야 아는 법이다. --- p.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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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모든 연령층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와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기점으로 한국 사회가 급속하게 글로벌 사회에 편입되기 시작한 지 어느덧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연휴 때마다 공항이 여행객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외국의 거리나 식당에서 같은 한국인을 마주치는 일은 더 이상 신기하거나 낯설지 않다. TV에서는 외국인 출연자들이 능숙한 한국말로 농담을 주고받고, 우리의 음악, 드라마, 영화, 음식, 심지어 미용 관리법까지 알파벳 ‘K'가 붙은 채 세계 시민들의 일상 곳곳을 파고든다. 한 해 외국인 입국자가 천만 명, 한국인 해외여행객이 이천만 명을 훌쩍 뛰어넘는 오늘의 우리는 그야말로 글로벌 시대의 입구를 지나 그 한가운데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우리의 상상력과 활동 반경은 삼면이 바다로 가로막힌 지리적 조건과 분단이라는 지정학적 장벽을 뛰어넘어 좁은 반도의 경계를 벗어난 지 오래다. 하지만 우리네 대다수 장삼이사에게는 아직 선뜻 엄두가 나지 않는 영역이 있으니, 바로 외국에서 일자리와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것이다. 언어 장벽과 낯선 문화, 차별 등에 대한 두려움도 두려움이거니와, 일단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좀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유엔 산하의 국제기구에 들어가 일한다는 것은 더더욱 그러하다. 『나의 글로벌 직장 일기』는 그렇게 막연하고 구현하기 힘든 상상을 실제 삶으로 살아낸 한 인물의 자전적 기록이다. 저자는 1990년대 말 유엔의 교육 담당 전문기구인 유네스코(UNESCO)에 과장으로 입사해 한국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유네스코 국장 자리에까지 올라 아프리카의 준지역사무소 소장, 평화지속가능발전 교육국 국장, 유네스코 국제직업기술교육센터 책임자 역할까지 두루 거쳤다. 이러한 이력을 바탕으로 저자는 “우연히 국제기구에 들어가게 된 사람이 글로벌 무대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국제적인 활동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로망과 마주쳐야 하는 진실에는 어떤 온도 차가 있는지”를 실제 경험에 비추어 담담하면서도 생생하게 풀어낸다. 실제로 저자가 경험한 국제기구 직원의 일터는 일반적인 환상과는 달리 국제기구 간의 “밥그릇 싸움이 그렇게 치열하다는” 사실에 실망하기도 하고, “화내고, 토하고, 설사하고, 왕만두 못 먹겠다고 소리치는” 컨설턴트들을 상대하거나, 때로는 무시무시한 협박 편지도 감수해야 하는 “극한 직업”의 현장이다. 그와 동시에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국제 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모범적인 국가들의 모습을 직접 지켜보고, “리더의 밥상에 올라온 외로움이라는 반찬”을 혼자 꾸역꾸역 먹으면서도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겠다는 꿈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은 단순히 한 엘리트 여성이 유엔 기구에 ‘당당히’ 진출해 세계를 무대로 누비는 활약상이나 경험담을 풀어놓은 평면적인 회고록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보다는 “스스로 날개를 만드는 재주를 갖지 못한” 30대 늦깎이 사회 초년생이 자신을 믿고 관대하게 밀어주는 상사들을 만난 덕분에 “나 먹고살게 해 주는” 직장에 들어간 뒤 2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겪은 일과 사람, 세상을 담담히 풀어낸 삶의 회고이자 독백이라는 편이 정확하다. 터무니없는 비방과 협박을 받고도 “남이 아닌, 나의 손가락이 나를 더 깊게” 찌르는 성찰의 경험과 “뉘엿뉘엿 저무는 해를 뒤로 하고 마티니 한 잔을 마시면서 추리 소설을 읽던” 이웃 할머니가 누렸던 노년의 삶의 여유와 멋을 소망하는 관조적 태도는 『나의 글로벌 직장 일기』와 그 저자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이다. 국제기구를 비롯해 해외에서 진로를 쌓아가고 싶은 청년들, 인생의 수많은 방향 표지판 앞에서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 치열한 삶의 여정을 거쳐 인생 후반길을 정리하는 지혜를 갈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