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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께해서 멀리 간 아름다운 코즈모폴리턴
세계주의 철학 선명하게 보여준 광고, “끝없는 변화가 우리의 변치 않는 원칙” 외국 친구들과 얘기할 때 훨씬 행복했다.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쁨! 모든 세계주의자는 개인주의자다.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을 넘어 ‘모두’를 위해 종은 인류 모두를 위해 울린다. 사회적?환경적 의무 다하는 인류사회 일원 2. 따듯하게, 조용하게 평창조직위 심금 울린 ‘회장의 편지’, “외롭고 힘들수록 서로 돕고, 격려하라” 대상포진의 고통을 알고 있었다. 마음으로 ‘나’와 ‘너’가 만날 때 어린왕자를 사랑한 야간비행사 날아라! 내가 그린 예쁜 비행기, 어린이 꿈에 날개를 달아주다 소리 소문 없이 실천한 ‘키다리아저씨’, 전 세계로 퍼져나간 따듯한 마음 크리스마스카드와 피아노, 안쓰러운 한진해운 컨테이너 3. 같은 세상도 다르게 본 혜안의 앵글경영 강대국의 언어, 언어의 강대국 모파상이 에펠탑에서 밥먹는 이유, ‘평화의 벽’ 속에 에펠탑을 담다 ‘혼자의 자유’를 아는 바람의 경영자 새의 눈으로 세상을 찍다, 그의 사진엔 길이 보인다 “유가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는 것이다” “외환위기는 우리의 문제, 세계경제는 좋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렌즈, 위에서 내려다보고 찾은 절충안 신뢰의 관점, 델타를 선택한 이유, 약점보다 강점, 과거보다 미래를 고객에 맞춘 스카이팀의 앵글, 스카이팀이 대한항공에 준 선물 두 수를 내다본 ATI 승인, 항공화물 세계 1위의 비밀 윌셔그랜드 ‘제2의 고향’ LA에 우뚝, 완전은 없다, 변화는 멈추지 않는다 LA 경제 살렸다, 한미 민간외교 가교 대한항공-델타 조인트벤처, 태평양노선에서 한 회사처럼 큰 그림, 식견과 결단의 승리 4. 몰입의 기쁨을 만끽한 노력가 〈킹스스피치〉를 다시 실화로 쓴 ‘조스스피치’ 왕이라도 모르면 배워야 하고, 공부에 지름길은 없다 청산유수처럼 말하다 | 파도가 바위에 부닥치듯 멈추고, 화살을 시위에 감아쥐듯 소리를 응축했다 터뜨리다 모르는 게 뭔지 알고, 그걸 아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것. 그것이 공부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 고독과 공부의 함수관계, 몰입의 기쁨 5. 얼리&딥어답터, 깊이의 경영공학자 세계 최고의 항공인, 전문성 기반 오너십 엔진은 엔지니어가 잘 안다. 공학도의 경영, 항공엔 맞다 IT사관학교 총장, 대한항공이 젊어진 이유 메이드인 코리아 차세대항공기의 꿈 서울을 ‘세계 항공산업 수도’로 바꾸다 18년간 IATA 집행?전략정책위원 대활약 “지평리전투의 역사를 기억하라” 전사?무기체계 모두 꿴 군사전문가 빼앗긴 영공을 되찾다. 항공과 그 역사에 대한 통찰 6. 열공하는 기업, 공부 권하는 CEO “모르는 분야에 투자하지 않는다”의 역설 “투자할 분야면 공부로 완벽하게 이해하라” 한진 임원 모두 서울대 단기 MBA 프로그램 이수 교육투자 놓고 계산기 두드리지 않았다 항상 배우는 조직, 한진그룹을 거대한 학교로! “공부엔 때가 없다. 학교에서만 하는 것도 아니다” “실전처럼 훈련하고 훈련한 대로 싸우라” 출산·육아휴가 극대화는 복직교육에 달렸다 기업가 마인드로 정석인하학원 키우다 “학원의 주인은 재단, 책임 통감해야” 7. ‘기준과 원칙’ 작사가, ‘시스템경영’ 작곡가, ‘항공오케스트라’ 지휘자 가업이 아니라 경험이 최고의 유산 장남 아니라 경영자의 자격을 얻다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따라갈 수밖에 없는’, “하면 된다”가 아니라 ‘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 ‘청기와장수’는 필요없다. ‘누가’보다 ‘모두’ 그 사람 없어도 돌아가야 제대로 된 조직 의사결정구조 ‘수직’에서 ‘수평’으로 “얼마나?”가 아니라 “어떻게?” 과정이 맞으면 사후보고도 OK! 경영은 공학이자 과학이다 JAL보다 잘 만든 매뉴얼 ‘원칙과 기준’은 시스템의 회전축 브레이크 고장 나면 달릴 수 없다 8. 절대안전을 향한 도전, 무사고 기록의 비밀 하인리히법칙 넘어야 할 고비, ‘니미츠힐’ FSF 안전진단과 ‘델타컨설팅’ 항공오케스트라 지휘자 ‘KAL OCC’ 정비사 출신 운항본부장 低비용항공의 高안전운항 ‘안전항공사’로 거듭나다 9. 체육인을 사랑한 체육인 점보스 고공행진의 비결 “우연한 승리는 있어도 우연한 패배는 없다” 선수들 은퇴 후까지 내다봤다 “우리도 점보스에 가고 싶다” 조양호 세트업+조원태 스파이크, 대 이은 배구사랑 “팀보다 훌륭한 선수, 국가보다 위대한 리그는 없다” 분열된 탁구계 이끌 새로운 리더, “다투지 않는다 약속하면 맡겠다” 협회도 시스템경영으로 ‘사라예보 전설’도 떨었다 “공부하는 선수는 사라지지 않는다” John Mckay Center를 벤치마킹하라 “승민아, IOC 위원까지 Fight on!” 『우쭐대지 말 것. 사람 조심할 것.』 ‘피시앤칩스’ ‘미니앨범’ 응원의 힘 선수들과 얘기할 때 아이처럼 행복했다 7년 빙속 투자, 금빛으로 돌아와 “나도 이제 체육인이야!” 10. 평창의 승리를 이끈 열정의 민간외교가 ‘3수 이유’ 분석, ‘컨트롤타워’ 설치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결정적 기여 50번 출국, 지구 16바퀴 대장정 ‘달리는 BMW’ 위에 ‘나는 KAL’ IOC “100점 주고 싶다” 극찬 평창의 기적, 아름다운 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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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에게 코즈모폴리터니즘은 생존의 문제였다. “지속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내부뿐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공동체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함께 발전하고자 하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동행의 요체는 ‘유아독존’이나 ‘나만 잘살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이웃과 힘을 보태고 정을 나누어 밝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 p.57 조양호는 소박했다. 가장 좋아한 반찬이 고등어구이였고, 옷도 브랜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카메라만 좋은 것 하나 있으면 됐다. 점심을 짜장면과 샌드위치로 때울 때가 많았는데 조현민 ㈜한진 사장이 한번은 강서구 맛집으로 안내했다. “깨끗이 드시고 나서 ‘맛없어 !’ 하셨죠. 음식 남기는 걸 싫어하셨어요. 샌드위치도 식사시간을 쪼개야 할 만큼 바쁘셔서 자주 드셨지만 입에 맞지 않는 밥도 다 먹어야 하는 성격이라 남기지 않고 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더 좋아하신 것 같아요.” 사진도 “트리밍 하라”, “‘뽀샵’ 하라” 한 적이 없었다. 아내가 골라준 넥타이가 마음에 안 드는 날은 종일 수시로 당기곤 했는데 아내를 탓하거나 바꿔 매는 법이 없었다.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얘기다. “제가 잘못해도 아이들 앞에서 타박하는 법이 없었죠. 그러면 엄마를 무시한다면서요. 그렇게 생각이 깊었어요.” --- p.65~66 내가 “사진을 왜 찍느냐?”고 물어보았을 때 조양호는 “남들이 가보지 않은 곳을 먼저 가보고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처음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조양호의 작품에 담긴 풍경은 대부분 잘 알려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조양호가 말한 ‘남들이 가보지 않은 곳’은 아주 먼 오지나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다른 관점으로 본 세상이었다. 같은 장소, 같은 피사체라도 앵글을 어떻게 맞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진이 나온다는 뜻이었다. 조양호의 ‘앵글경영론’이 형상화된 ‘평화의 에펠탑’도 그런 사진이다. “다들 에펠탑만 덩그러니 찍었지, 앵글을 이렇게 새롭게 잡으니까 느낌이 다르지 않은가. 이미 가본 사람도 다시 가보고 싶지 않을까?” --- p.85~86 한 편의 영화 같았던 조양호의 ‘킹스스피치’는 자기 단점을 아는 것에서 시작됐다. 번즈도 “현명한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게 뭔지 알고, 그걸 아는 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안다. 조 위원장은 〈킹스스피치〉의 버티 같았다”고 말했다. 모르는 게 뭔지 알고, 그걸 아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다. --- p.130~131 2019년 6월 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컨벤션센터에서 대한민국 항공 역사에 한 획을 그은 IATA서울연차총회(75회)가 화려한 막을 올렸다. 하지만 조양호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 개최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4월 8일 타계했기 때문이다. 연차총회 서울 개최를 위해 마지막 혼신의 힘을 쏟고 서울 유치가 확정됐을 때 누구보다 기뻐한 조양호는 정작 〈세계 항공산업의 수도, 서울〉이란 작품만 남기고 무대 뒤로 사라진 것이다. --- p.151 1980년대 초, 전무가 된 조양호는 최고경영자(CEO)가 되기에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정비, 자재, 운항 등 현장에서 실무경험을 쌓으며 항공 분야에서 누구보다 전문성을 키웠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르면 배워야 했다. 조양호는 한 달에 한 번 멘토 4인방과 저녁식사를 하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등 각 분야 석학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경청했는데 나중엔 날카로운 질문도 하고 심도있게 대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식의 만찬’은 2년 넘게 지속됐다. ‘모르는 분야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조양호의 원칙은 역설적으로 ‘투자할 분야라면 공부를 해서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가 된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을 맡은 후 IOC에 제출하는 500쪽 분량의 후보도시 파일(Bid Book)을 달달 외운 것도 그래서였다. --- p.168 조양호는 ‘장남의 자격’이 아니라 ‘경영자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했다. “기업은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자격을 갖추고 가꾸어 나가는 것이다. 아무리 2세라도 경영할 자격이 없으면 기업을 이끌 수 없다. --- p.190 조양호는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면 불행해질 수 있는 것이 항공서비스”라며 “오해를 받더라도 감수하라”고 했다. 조양호에게 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 가치였다. “안전에 협상은 없다”며 “절대로 물러서지 말라”고 했다. 제주 폭설 때 비행기가 뜨지 않자 참지 못한 승객들이 몰려와 지점장에게 항의할 때도 조양호는 영업손실로 이어진다 해도 ‘절대 안전’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이는 창업주 조중훈의 ‘지고 이기는’ 경영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 p.226~227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 탁구는 수원에서 경기를 치렀는데 단체경기가 끝나고 한국팀, 중국팀, 북한팀에게 시상한 조양호가 외쳤다. “나도 이제 체육인이야 !” 정현숙도 그 소리를 들었다.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회장님은 정말로 스포츠를 사랑한 스포츠인이 맞다. 회장님은 체육계에 발을 들여놓으신 후 스스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신 것 같았다.” “나도 이제 체육인이야 !”는 그런 노력에 대한 보람이 응축된 한마디였다. --- p.262 조양호는 대회 개막을 코앞에 둔 2016년 돌연 위원장직을 내려놓아야 했다. 하지만 조양호는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대회 조직위원회에 파견한 한진그룹 직원들이 끝까지 올림픽 현장을 지키도록 했다. 김용순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과 조직위원장으로 보여준 조양호의 열정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회장님은 전장에 나가면서도 갑옷과 투구를 벗고 진심의 옷으로 갈아입는 것 같았다. 조직위원장에서 내려오신 후에도 한 달간 나를 평창으로 보내 각국에서 온 인사들과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게 하셨다.” --- p.274~275 이달일까, 다음달일까 임원들이 퇴원 후 복귀일을 점치던 어느 날 장남 조원태 사장은 여느 때처럼 결재를 받기 위해 조양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짧은 답장이 왔다. 『더 이상 내게 보내지 말고 네가 잘 판단해서 결정하거라.』 그것이 마지막 메시지임을 조 사장은 알지 못했다. LA공항에서 운구를 마치고 나서야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을 절감했다. 이수근 부사장에게 당부하는 조 사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회장님 마지막 비행입니다. 잘 모셔 주시기 바랍니다.” 45년 동안 하늘길을 개척하기 위해 수백 바퀴는 돌았을 만큼 지구가 작았던 코즈모폴리턴의 마지막 비행은 건너고 있는 태평양보다 평온했다. --- p.2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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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예술가’ 이은 ‘경영공학자’
조양호는 아버지를 경외하면서도 사랑했다. 사업을 예술로 여겼던 조중훈은 육운에서 해운으로, 다시 항공으로 사업을 이륙시켰다. 육지가 끝나는 곳에서 바다가 시작되고, 바다가 끝나는 곳에서 하늘이 펼쳐졌다. 조양호는 그렇게 시작된 하늘길에서 아버지가 이룩한 신화를 다시 쓰기 위해 힘겨운 공중전을 펴야 했다. 조중훈이 ‘사업예술가’라면 조양호는 ‘경영공학자’다. 조양호는 아무리 노력해도 아버지만큼 창조적인 경영자가 될 수 없음을 피력했다. 조양호는 아버지가 창조한 ‘사업예술’의 가치를 완전무결하게 지키고 구현하는 데 혼신을 바쳤다. 한진과 대한항공의 역사는 조중훈의 ‘창조’와 조양호의 ‘혁신’이 빚어낸 걸작이다. 사업이 그림이라면 조중훈은 화가의 영감으로 밑그림을 그렸고, 조양호는 공학도의 치밀함으로 채색을 완료했다. 경영이 조각이라면 조중훈은 선견지명으로 ‘코는 크게 눈은 작게’ 시작했고, 조양호는 조각칼로 정교하게 깎고 다듬었다. 조양호는 선친 조중훈의 밑그림의 크기와 ‘각삭지도(刻削之道鼻莫如大目莫如小)’의 지혜를 알고 있었기에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조중훈의 30년은 세계 항공업계에 존재감을 드러냈고, 조양호의 20년은 제2의 창업으로 경쟁사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조양호는 견제와 시장의 위기로 시계제로 상태에 직면하기도 했다. 공성보다 어려운 수성의 시간을 견뎌낸 조양호는 조중훈의 ‘지고 이기는’ 지혜조차 통하지 않는 무한경쟁에서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절벽 위에 ‘나’를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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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회장은 단언컨대, 100년에 한 번 나올 법한 항공전문가다. 오너십보다 강력한 시스템경영의 힘이었다. 조 회장이 타계한 후에도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이 흔들림 없이 성장하고 있는 것도 생전 그토록 탄탄하고 정교하게 갖춰놓은 시스템의 위력을 방증한다. 조 회장이 다른 그룹 회장들에 비해 덜 부각된 측면이 없지 않다.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성품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람보다는 사람이 만든 시스템이 더 활발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조 회장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일화가 많다. 매년 선물받던 사진달력이 오지 않은 지 수년 동안 조 회장과 함께한 나의 시간도 멈추었다. 이 책이 그 멈춤을 깨워주었다. 책 속에서 조 회장은 생전처럼 열심이다. -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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