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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lie Nothomb,파비엔 클레르 노통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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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해요. 제가 특히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게 뭔지 아세요? 이런 끔찍한 일이 아주 어여쁜 아이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이예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전 한때 눈부시도록 예뻤어요. 폭격을 당하기 전에 이미 못생긴 아이였다면 훨씬 덜 불행했을 거예요."
"그런 소릴 하면 못써요."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저도 어쩔 수 없으니 내버려 두세요. 저도 알아요. 18년 가까이 아름다움을 누린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해야 하겠죠. 고백하건대 전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요.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커서 시력을 잃은 사람들보다 성격이 훨씬 좋다고 해요. 난 그게 이해가 돼요. 저도 제가 잃어버린 것을 차라리 몰랐으면 좋겠어요." "하젤..." "걱정 마세요. 제가 부당하다는 것도, 제가 운이 좋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거울은 고사하고 모습을 반사하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마치 절 위해 지어진 것처럼 보이는 집에서 사는 행운을 누리고 있잖아요. 창문이 얼마나 높은 곳에 뚫려 있는지 보셨어요? 너무 높아서 어떤 유리에도 제 모습을 비춰 볼 수가 없어요. 이 집을 지은 사람은 아마 미친 사람이었을 거예요. 바다를 전혀 내다볼 수 없다면 바닷가에 산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선장님도 이 집을 누가 지었는지는 모른대요. 그분 역시 바다에 염증을 느껴 이곳에 살기로 결심했대요."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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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젤, 내 사랑.
모든 욕망은 누군가를 추모하는 것이란다. 사랑받는 모든 여인은 욕망만 남기고 훌쩍 떠나 버린 사람의 화신이지. 너는 죽은 여인이자 살아 있는 여인이야. 부디 안녕히. 오메르 롱쿠르.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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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과 『머큐리』, 하나의 주제에 대한 두 개의 변주
『공격』과 『머큐리』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두 개의 변주곡이라 할 수 있다.
노통브식 「노트르담의 꼽추」 혹은 「미녀와 야수」의 재해석 비록 보답 받지는 못했지만 그 숭고한 사랑만으로도 이미 <아름다운> 카지모도, 야수의 겉모습 속에 숨어 있는 순수한 영혼과 진실한 사랑을 알아보고 그를 구원하는, 이름마저 아름다운 벨 아가씨. 수 세기를 거쳐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이 이야기들에서 야수의 겉모습은 그가 마음에 품은 고귀한 사랑을 돋보이게 하는 장식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죽음으로 끝을 맺지 않았다면 카지모도와 에스메랄다의 사랑이 가능했을까? 저주에서 풀려난 야수가 왕자가 아니라 70세를 훌쩍 넘긴 노인네라면 어떨까? 『공격』의 도입부에 이루어지는 잔인할 정도로 자세한, 에피판의 흉한 겉모습에 대한 묘사, 그리고 하젤이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자각하고 자신을 떠날까 두려워 외딴섬에 거울 없는 감옥을 만든 『머큐리』의 야수, 오메르의 집요함은 우리로 하여금 진실 된 영혼과 절대미의 결합이라는 문학계의 공리에 대해 진지한 의문을 가지게 한다. 사람들은 이야기 속의 미녀에게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라고, 그 안에 깃든 사랑과 고귀한 영혼을 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왜 추남들이 미녀의 외적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것에 대해서는 나무라지 않는가? 공격과 감금 현실 속 미녀와 야수의 관계는 동화 속의 해피 엔딩과는 다르다. 이들 사이에는 보다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들이 자리하고 있다. 결국 『공격』과 『머큐리』는 그러한 문제를 풀어내려는 야수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공격』의 야수 에피판은 자기 사랑의 정당성을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사랑 이야기의 또 다른 당사자인 미녀 에텔은 그의 논리의 뻔뻔함에 분노한다. 에피판은 자신을 끝까지 거부하는 에텔에 대해, 그를 거부한 세상에게 그러했듯이 <공격>을 가하기로 결심한다. 『머큐리』의 오메르는 좀더 지능적인 방법을 택한다. 이미 한 번의 실패를 맛본 그는 보다 완벽한 공격, 즉 미녀에게 자신의 추함을 뒤집어 씌워 그의 미모를 확인시켜 줄 그 어떤 것도 없는 섬에 <감금>시키는 방법을 택한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시도는 제목이 시사하는 진실을 비추는 거울, 전령사의 역할을 자처하는(원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