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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교훈가(敎訓歌)
안심가(安心歌)
용담가(龍潭歌)
몽중노소문답가(夢中老少問答歌)
도수사(道修詞)
권학가(勸學歌)
도덕가(道?歌)
흥비가(興比歌)
검가(劍歌)

해설 : 동학의 길, 문명 개벽의 길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 소개 2

동학 창시자이며 호는 수운(水雲)이다. 1824년 음력 10월 28일 경상북도 월성군 현곡면 가정리에서 몰락한 양반 근암 최옥(崔?)과 재가(再嫁)한 어머니 한씨(韓氏) 사이에서 서자(庶子)나 다름없는 신분으로 태어났다. 10세 때 모친을 잃고 16세 때 부친마저 잃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다행히도 부친으로부터 유학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19세(1842) 때 울산 박씨와 결혼하고, 20세 때 화재로 생가가 전소되자 이듬해부터 전국을 유랑하는 일종의 구도의 길에 올랐다. 31세(1854)까지 10년 이상 전국 각지를 유랑하며 유불선(儒佛仙) 삼교, 서학(西學),
동학 창시자이며 호는 수운(水雲)이다. 1824년 음력 10월 28일 경상북도 월성군 현곡면 가정리에서 몰락한 양반 근암 최옥(崔?)과 재가(再嫁)한 어머니 한씨(韓氏) 사이에서 서자(庶子)나 다름없는 신분으로 태어났다.
10세 때 모친을 잃고 16세 때 부친마저 잃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다행히도 부친으로부터 유학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19세(1842) 때 울산 박씨와 결혼하고, 20세 때 화재로 생가가 전소되자 이듬해부터 전국을 유랑하는 일종의 구도의 길에 올랐다. 31세(1854)까지 10년 이상 전국 각지를 유랑하며 유불선(儒佛仙) 삼교, 서학(西學), 무속(巫俗), ≪정감록(鄭鑑錄)≫과 같은 비기도참사상 등 다양한 사상을 접하는 동시에, 서세동점과 삼정문란(三政紊亂)이라는 이중의 위기에서 고통당하는 민중의 참담한 생활을 직접 체험했다. 32세(1855)에 우연히 ≪을묘천서(乙卯天書)≫라는 비서(秘書)를 얻어 일종의 신비 체험을 한 끝에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 근처에 있는 천성산 자연 동굴에 들어가 49일 기도 생활을 했다.
생계를 꾸려가기도 힘든 지경에 처한 가족을 처가에 맡긴 채 구도 생활을 계속하던 수운은 36세(1859)가 되던 해에 오랜 유랑 생활과 처가살이를 청산하고 고향 용담으로 돌아와 정착하기에 이르렀다. 고향에 정착한 지 1년 뒤인 1860년 음력 4월 5일에 수운은 아주 특별한 체험을 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천사문답(天師問答)’이라고 불리는 하늘님과의 문답 끝에 동학을 창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수운은 동학을 펴기 시작한 지 만 3년도 되지 않은 1863년 12월에 체포되었고, 이듬해 3월 10일 ‘삿된 도로 정도를 어지럽혔다는 죄(左道亂正之律)’로 대구 경상감영 안의 관덕정(觀德亭) 뜰 앞에서 처형당함으로써 죽음을 맞이했다. 이때 그의 나이 4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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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맹수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원광대학교 제13대 총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동 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1955년 전남 벌교에서 출생했으며, 1979년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ROTC 장교로 군 복무 도중 1980년 5월 광주를 겪으며 큰 충격을 받았다. 군 제대 후에 5월 광주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굴절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심층적 이해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1983년 한국학대학원에 진학해 전국 각지에 소재한 동학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숨겨진 자료를 찾고 동학 후손들의 증언을 채록하는 등 이른바 ‘발로 쓰는’ 동학 연구에 매진, 199
박맹수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원광대학교 제13대 총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동 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1955년 전남 벌교에서 출생했으며, 1979년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ROTC 장교로 군 복무 도중 1980년 5월 광주를 겪으며 큰 충격을 받았다. 군 제대 후에 5월 광주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굴절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심층적 이해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1983년 한국학대학원에 진학해 전국 각지에 소재한 동학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숨겨진 자료를 찾고 동학 후손들의 증언을 채록하는 등 이른바 ‘발로 쓰는’ 동학 연구에 매진, 1996년 동학 2대 교주인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 7월 일본 홋카이도대학 문학부 소속 후루카와 강당(古河講堂)에서 전라남도 진도 출신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이 100년 만에 ‘방치된’ 상태로 발견되는 사건을 계기로 도일(渡日), 1998년 홋카이도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에 진학했으며 〈근대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동학사상, 갑오농민전쟁, 청일전쟁을 중심으로〉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2년부터는 ‘일본의 양심’으로 존경받았던 나카쓰카 아키라(中塚明, 1929∼2023) 나라여자대학 명예교수와 함께 ‘한일시민이 함께 동학농민군 전적지를 찾아가는 여행(이하, 한일동학기행)’을 조직해 2023년까지 매년 빠짐없이 시행함으로써 한일 양국의 양심적인 시민들과 우호와 교류 증진에 힘써 왔으며, 2023년 10월에는 한일동학기행의 결실로써 일본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전남 나주시에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의 비’를 세웠다. 대표 저서로는 《사료로 보는 동학과 동학농민혁명》(모시는사람들, 2009), 《개벽의 꿈 동아시아를 깨우다?동학농민혁명과 제국일본》(모시는사람들, 2011), 《생명의 눈으로 보는 동학》(모시는사람들, 2014), 《개벽사상과 종교 공부》(공저, 창비, 2024), 《신판 동학농민전쟁과 일본》[공저, 일본 도쿄, 고분켄(高文硏), 2024], 《일본 사료로 보는 동학과 동학농민혁명》(근간, 모시는사람들) 등이 있다. 또한 번역서로는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푸른역사, 2002), 《이단의 민중반란?동학과 갑오농민전쟁 그리고 조선 민중의 내셔널리즘》(역사비평사, 2008), 《동경대전》(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일본의 양심이 보는 현대일본의 역사인식》(모시는사람들, 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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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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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17.05MB ?
ISBN13
9791128856037

출판사 리뷰

시천주(侍天主) : 한국적 평등사상

동학이 창도되었던 19세기 중반. 우리나라는 밖으로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는 서양 열강의 침탈 위기에, 안으로는 삼정문란(三政紊亂)이라는 체제 위기에 놓여 있었다. 거기에 더해 콜레라와 장티푸스가 유행하고 가뭄과 기근 등의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고 발생해 이 땅의 민초들은 단 한시도 편하게 살 수가 없었다. 전대미문의 위기 아래서 수운 최제우는 만민평등과 만물해방의 사상으로서 ‘동학(動學)’을 창도했다.

동학의 핵심은 ‘시천주(侍天主)’, 즉 “모든 사람은 제 안에 가장 성스럽고 거룩한 존재를 모시고 있다”는 것이다. 양반이나 평민이나, 어른이나 어린이나, 늙은이나 젊은이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가 ‘시천주’의 존재로 태어나며, 또한 누구나 ‘시천주’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동학의 요지다. 《용담유사》는 모든 사람이 거룩한 ‘하늘님’을 모신 존재라는 가르침을, ‘다시 개벽’의 새 세상이 오고 있음을 실감나게 노래한 한글 가사다.

동학이 엄청난 속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파고들며 전국에 동학 네트워크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에는 《용담유사》의 역할이 지대했다. 동학의 핵심 경전인 《동경대전》이 한문으로 된 것과 달리, 《용담유사》는 평범한 부녀자, 어린이, 노비, 평민 등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한글로 창작되었기 때문이다. 1860년에 성립한 이래, 34년간의 지하 포교 시대를 거쳐 수백만 명의 민초들이 뛰어들어 보국안민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웠던, 세계사에서 일찍이 그 유례가 없는 최대이자 최고의 민중 운동이었던 동학농민혁명의 사상적, 조직적 기반이 《용담유사》였던 것이다.

서(西)로 활짝 열린 동(東)

서학에 대립하는 동학 또는 서를 배척하는 동이 아니라 서(西)에 활짝 열린 동(東), 생명 또는 광명을 상징하는 동, 타자와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동으로서의 동학(東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제우는 말했다. “운즉일(運則一)이요 도즉동(道則同)이며 이즉비(理則非)라.” 즉 “시운은 하나요, 도는 같으며, 이치는 다르다.”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의 요청으로서 서학이 조선 사회에 받아들여지는 것이나, 조선 땅에서 동학이 창도되어 널리 전파되는 것이나 시운은 똑같다는 것이다. 수운은 자신이 창도한 동학과 서양에서 들어온 서학이 같은 ‘시운’을 타고났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즉동(道則同)” 즉 도는 같다고 했다는 것이다. 서학, 지금의 천주교가 추구하는 길이나 동학이 추구하는 길이 궁극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서학과 동학이 추구하는 ‘도(道)’의 보편성을 강조한 것으로, 타종교에 대한 다원주의적 사고를 보여 준다.

그러나 수운은 “이즉비(理則非)”, 즉 이치는 다르다고 했다. 내가 서 있는 자리, 내가 살고 있는 현장은 다른 사람과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동에서 태어나서 동에서 도를 받았으므로 내가 만든 것을 어찌 서학이라고 할 수 있느냐? 동학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의 상황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는 말인 동시에, 나의 주체성을 역설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서학과 같은 타종교나 서양 문명과 같은 이질 문명에 대해 전면적으로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나는 내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타자를 향해 활짝 열려 있으면서도 자기 주체성을 갖는 것이 바로 동학인 것이다. 상대의 보편성을 인정하면서도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자리에 충실하려는 것이 동학의 핵심 사상이다.

《용담유사》의 초판은 1881년 충청도 단양에서 목활자본으로 간행됐다. 현재 초판본은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1982년 전주에서 발견된 계미중추판(癸未仲秋版), 즉 1883년 음력 8월에 ‘북접(北接)’이라는 이름으로 간행된 판본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이다. 이 책은 계미중추판을 저본으로 삼아 현대 한글로 바꾸었다. 또한 수운 최제우가 체포되어 순교 당하는 빌미가 되었던 〈검가〉[劍歌, 검결(劍訣)이라고도 한다]도 여러 이본(異本)을 비교·대조해 정본화(定本化)해서 수록했다.

* 동학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수운 최제우가 저술한 동학의 핵심 경전인 《동경대전》(박맹수 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을 함께 읽어 보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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