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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천상의 미술과 지상의 투쟁 4
제1부 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 1 루터는 왜 이미지를 공격했나 17 2 성상 정치 47 3 트렌토 공회, 이미지의 반격 91 4 예수회, 가톨릭개혁의 전위부대 117 제2부 시각 정치: 종교투쟁의 이미지들 5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 141 6 일 제수 177 7 틴토레토와 엘 그레코 203 8 베르니니와 보로미니 234 9 카라바조와 가울리 271 10 리베라와 수르바란 305 11 루벤스와 가톨릭 플랜더스 342 에필로그 371 도판목록 376 참고문헌 381 찾아보기 3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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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는 르네상스의 시기면서 또한 종교개혁의 시기였다. 후대에 미친 파급력, 특히 유럽을 벗어나 신대륙과 아시아에까지 미친 파급력을 생각한다면 후자의 의미는 전자보다도 훨씬 더 심대하다. 종교개혁이 천오백 년 교회의 전통에 중대한 의문을 제기한 이후 두 세기 동안 가톨릭 미술은 자신이 그려내는 천상과 지상의 모습을 재확립하고 교회의 의식과 신도들의 신앙수행에 필요 불가결한 요소로 기능함으로써 결국 가톨릭의 교세를 복구하는 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것이 이 책에서 하려는 이야기다. 종교개혁의 도전 이후 가톨릭 미술이 전개되어나간 방향과 양상, 즉 가톨릭개혁의 미술사인 것이다.
- 본문 4~5쪽 트렌토 공회 이후로 가톨릭 진영은 대중을 포섭함으로써 교세를 확장시키는 것을 절대 지상의 목표로 삼았는데, 여기에 화려한 교회 건물이나 감동적인 성화 같은 미술품이 대단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트렌토 공회에서 지적한 대로 매우 ‘금욕적’이고 ‘정확한’ 그림만을 고수해서는 이와 같은 호소력을 끌어내지 못한다는 것도 곧 알게 된다. 따라서 가톨릭 미술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는데, 이것은 미술이 이데올로기나 종교에 지배받는다 하더라도 그 주제와 형식에서 나름의 발전논리와 메커니즘이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 본문 116쪽 종교개혁은 가톨릭교회에서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운 단 하나의 교회가 두 개, 세 개, 그리고 이후로 수도 없이 많은 분파들(denominations)로 나뉘는 분열의 시발점이 아니었던가? 이런 의미에서 일 제수는 그 공간 조성에서, 다시 모든 이들이 하나의 보편적(catholic) 교회 안으로 모여 통합되기를 염원하고 있다. 성 이그나티우스가 분절되지 않은 직사각형의 단순한 공간을 원했을 때 그는 교회 안의 모든 이들이 미사 의식을 통해 하나의 교회로 다시 통합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일 제수의 실내공간은 이러한 메시지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 본문 185쪽 낮은 감각의 단계에서 시작하되 결국은 더 높은, 감각될 수 없는 신성의 인지단계로 솟아올라야 한다. 마찬가지의 의미에서, 카라바조는 신성을 눈에 보이는 빛으로 그리는 것이 단지 메타포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듯하다. 《마태오의 소명》에서는 자연의 빛으로 신성의 빛을 은유하더니 여기에서는 아예 없애버렸다. 진정한 신의 빛은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기에, 우리는 그 빛을 경험한 사울의 경련하는 몸을 통해 빛의 존재를 느낄 수 있을 따름이다. 바로 이런 점이야말로 진정한 리얼리즘이 아닐까? - 본문 283쪽 하지만 나는 르네상스가 자본주의와 식민주의, 유럽중심주의의 시작이며 무한경쟁과 물질적 성취가 긍정되었던 매우 냉혹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화가들 개개인의 삶도 리얼리즘의 극치다. 《페사로 마돈나》와 《글로리아》의 천상적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나는 자신의 공방에 들어온 12살 소년 틴토레토를 열흘 만에 쫓아낸 거장 티치아노의 비정함을 생각한다. 소년의 재주와 천재성에 경악한 티치아노는 호랑이 새끼를 기를 수는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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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에서 가톨릭개혁까지, 미술은 왜 정치가 되었나?
종교개혁은 천 년 넘게 서구의 보편(Catholic)으로 군림해온 한 종교의 체질을 바꾼 사건이다. 가톨릭 세계는 안에서 균열하기 시작했고, 미술 역시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미술의 힘은 오히려 강해졌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미술이 요구되었고, 미술가들은 그 요구에 충실하게 응했다. 이 시기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은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과 예술의 이상이 가장 교묘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2007년 출간된 『천상의 미술과 지상의 투쟁―가톨릭 개혁의 시각문화』의 개정판. 루터와 미켈란젤로 마르틴 루터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한 명은 종교가이고 한 명은 미술가이며, 한 명은 독일 비텐베르크에서, 한 명은 이탈리아 로마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초상화를 보더라도 한 명은 차분하고 냉정해 보이는 데 반해, 한 명은 격하고 불같은 성격을 감추지 못한다. 언뜻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사람. 그런데 이들은 같은 시대를 공유하고 있었으며, 미술을 매개로 한 그물망에 엮여 있었다. 루터와 미켈란젤로가 활동한 16세기는 서양 미술사에서 ‘전성기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다루어진다. 그리고 이 시기는 유럽을 휩쓴 종교개혁의 시기이기도 하다. 르네상스를 이야기할 때 휴머니즘 또는 인문주의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 바로 신교와 구교 가톨릭 사이에 벌어진 종교투쟁이다. 미술사 역시 종교투쟁과 무관하지 않았다. 종교개혁을 대표하는 루터와, 그 반대편에 선 가톨릭교회의 녹을 먹고 살아간 미켈란젤로는 이런 맥락에서 함께 놓일 수 있다. 종교투쟁의 키워드로 보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사 1517년 독일의 루터가 촉발한 종교개혁은, 천 년 넘게 서구의 보편(Catholic)으로 군림해온 가톨릭 종교에 균열을 낸 사건이다. 중세 이래로 유럽에서 종교는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가치관 등 모든 것을 지배하는 강력한 토대였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그저 신앙의 형태가 바뀌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 사회가 움직이는 방식과 사람들의 인식이 총체적으로 변화했다. 미술도 타격을 입었다. 이제까지 가톨릭교회 안에서 미술은 교회의 전통을 담아내는 그릇이었다. 그러나 종교개혁 편에 있던 이들은 성서를 벗어나는 미술 행위가 그리스도교의 본질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했다. 특히 논란이 된 것은 신을 재현하는 문제였다. 인간이 어떻게 신을 재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신교 진영에서는 정치적인 충격 효과를 노리고 미술을 타겟으로 삼았다. 종교개혁 시기에 나타난 열광적인 성상파괴는 교리의 차원을 넘어선 정치적 행동이었다. 위기를 맞은 가톨릭 세력은 오히려 역으로 대응했다. 미술이 공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이들은 미술에 더욱 힘을 실었다. 이들은 이미지가 지닌 강한 정치적 호소력에 주목했다. 이미지는 논리가 아닌 감정을 통해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가톨릭의 정치 선전에 이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가장 적합한 미술은 어떤 것일까? 『루터와 미켈란젤로―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에서 저자 신준형은,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 등 이탈리아 전성기 르네상스의 화가들을 시작으로, 스페인의 엘 그레코 등 원(原)바로크 화가와 일 제수 등 성당 건축, 이탈리아의 카라바조와 그 영향을 받은 스페인 바로크 화가들, 그리고 플랜더스의 루벤스를 두루 거치며 16~17세기 가톨릭권의 미술을 들여다본다. 전성기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옮겨가는 미술의 변화는, 인간의 마음을 가장 강하게 사로잡을 수 있는 미술 언어를 탐색하는 과정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에 동참한 미술가들은 예술가라는 자의식과 종교 권력의 요구 사이에서 저항하거나 타협했다.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는 교회와 세속 군주라는 거대 권력을 업고 예술적 성취와 세속적 출세 두 가지를 함께 추구한 화가들이다. 이들에게 권력의 요구는 기회를 의미했다. 루벤스는 교회와 세속 권력 모두로부터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한 행운아였지만, 그가 경탄해 마지않았던 천재 카라바조는 어느 쪽에서도 환대받지 못한 채 피로와 고독 속에 떠돌다 생을 마쳤다. 미술의 자연주의적 호소력을 추구한 베로네세는 종교재판의 권위 앞에서 자신의 그림 제목을 바꾸면서 그림을 지켜내야 했다. 한편 엘 그레코와 보로미니처럼 종교적 열정을 가지고 극단의 환영주의를 추구했던 보다 ‘예술가적인’ 인물들도 있었다. 이상화된 르네상스 미술을 현실 정치의 눈으로 보다 ‘미술이 정치적이다’라는 메시지는 새롭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은 8세기부터 시작되는 성상논쟁의 방대한 문헌사료를 해석하고, 미술가라는 존재를 교황, 신학자, 군주와의 관계 속에서 읽어내,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사를 수많은 인물들의 관계망으로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를 통해 얻는 가장 큰 수확은 서양 미술사를 명화나 천재화가 위주로 보던 틀 자체를 돌아보게 된다는 점이다. 르네상스와 바로크는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기로 여겨지곤 한다. 미술사를 배우지 않은 사람도 라파엘로, 카라바조, 티치아노, 루벤스 같은 거장들의 이름은 익숙하다. 그리고 이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은 그 ‘이름’을 확인하러 온 관람객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박물관이라는 보물창고의 삼엄한 경비와 보안장치가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을 더더욱 고귀하고 초월적인 것으로 만든다. 박물관은 신전이며, 작품들은 시공을 초월한 미의 신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이 책은 미술을 박물관의 보안장치와 인공조명의 무대에서 떼어내 당시의 시대로, 원래의 장소로 되돌려 놓는다. 16~17세기 종교투쟁의 시기에 만들어진 이 작품들은 ‘미(아름다움)’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림의 대상이나 주제가 천상의 아름다움이라고 해서, 그림이 현실과 동떨어진 채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미켈란젤로와 같은 미술가도 먹고 살아야 하고, 자기의 권력과 지위 때문에 누군가와 싸워야 했던 인간이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가들은 그런 투쟁으로 점철된 인간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구원과 투쟁, 천상과 지상이라는 양극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공존하는 패러독스의 세계,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그리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의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