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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4
에필로그 209 작품 해설 | 안윤자의 수필 세계 212 1부 별이 잡아 주었다 은하의 빛 12 나무들의 집 17 사대문 밖 마을 20 조각달 24 시애틀 연가 27 유럽의 향수 33 블래드 호수의 추억 38 색의 미학 42 시간 속의 존재 47 2부 바다가 노래했다 바다의 노래 55 반월 60 우주의 숲 65 남편이라는 집 69 서방을 멀리하고 書房遠離 72 교회당 77 마지막 인사 83 투가리스트 주교님 96 최초의 주미공사관 101 3부 진주목걸이를 샀습니다 그 길 앞을 지나며 108 진주목걸이 113 레테의 강을 건너 119 예수마누라님 124 아혜야 134 에메랄드빛 초록 섬 138 푸른 비망록 145 부적이 되고 싶은 마음 161 나를 기억해 줄 사람 166 4부 두 권의 책을 읽고 있다 맑고 깊게 흐르는 강 174 인생에서 두 권의 책 177 삶의 나침판이며 길동무인 책 183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하자 186 크리스마스카드 190 이 세상의 한 저녁에 194 천년의 숨 198 소원이 없는 여자 204 |
벨라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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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잠에서 깨어난 한밤중. 흰 시폰 커튼을 젖힌 창가에는 그림 같은 조각달이 걸려 있었다. 어머머, 달님이 내 침실을 엿보고 있었나 봐.
알고 보니 이곳은 달의 길 월로(月路). 망망대해를 떠도는 허연 쪽배 같은 반달도, 옛 여인의 고무신을 훔쳐다 신은 초승달도, 어느 운수 좋은 날 밤에 설원의 알프스 산정에서 떡하니 마주쳤던 쟁반같이 둥근 보름달님도, 가던 길을 멈추고는 홀로 잠든 나의 침상에 은빛 가루를 뿌려주고 있었다. 그날에야 내 집 창밖이 달님이 지나가는 길목인 걸 알았다. 그것이면 되었다. 창망한 우주 공간에서 반짝이는 저 별 하나처럼 희미한 촉광을 발하고 있을 나의 실존이 더는 혼자가 아니란 걸 알아챘으니. 외로움은 신이 내게 내린 선물인지도 모른다. 예수의 발아래서 하염없이 울은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뜨거운 눈물로 씻겨지라고, 눈처럼 새하얘지라고. 그러니 나의 외로움은 신께 기도로 돌려드려야만 하는 것. 글을 쓰려면 속이 맑아져야 한다. 내면이 맑게 정돈되기 위해서는 겉이 고요해야 한다. 외로움은 눈물을 뿌리지만 손을 맞잡고 걸어가야 하는 친구.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두 눈이 곪도록 나는 왜 꼭 글을 써야만 하는가? 절대고독의 밀실을 진정 향유하고 있었던가를 자문해 본다. 전 국민 작가 시대를 지금 우리는 향유하고 있다. 누구나 맘만 먹으면 작가가 되고, 화가가 되는 세상, 때론 그 타이틀의 겉멋에 현혹되어 수많은 사람이 부나방처럼 작가라는 행렬에 끼어든다. 하나 고독이라는 성안에 진정 갇혀보지 못한 사람, 외로움과 정면으로 맞서본 사람이 아니라면 그를 두고 어찌 작가라 말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 사람은 결코 시원(始源)의 늪에 닿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사유의 지평이 얕을 것이기에. 배고픔을 참는 것도 극기이나 내적인 고요를 잃은 허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고독은 무구(無垢)한 내음의 회로이니까. 나의 창가에도 친구들이 모여든다. 숲을 희롱하며 휘파람을 불고 지나가는 명지바람과 낮게 드리운 능선에 기대 잠자는 뭉게구름 떼. 선지 빛 처연한 노을. 연두에서 초록으로 번지는 숲의 적막을 깨고 이름 모를 새들이 한바탕씩 울다가 간다. --- 「조각달」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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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안윤자의 수필세계와 문학적 정체성
안윤자는 그의 수필집 『사대문 밖 마을』에서 자신의 문학적 정체성을 솔직히 드러내고 있다. 그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꿈꾸었고 헤르만 헤세처럼 고뇌했던 젊은 날들”이라고 회상하며, 자신의 문학적 뿌리를 그들로부터 찾고 있음을 밝힌다. 이러한 고백은 안윤자의 문학적 세계가 릴케와 헤세의 영향을 깊이 받았음을 의미하며, 그의 글쓰기의 동기와 방향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릴케와 헤세는 각각 탐미주의적 지성과 방랑자의 고뇌와 꿈을 상징한다. 릴케는 그의 시와 산문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며,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 릴케의 문학적 탐미주의는 감각적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미학적 인식을 중시하며, 이를 통해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키고자 하는 목표를 지닌다. 안윤자는 릴케의 이러한 태도에 깊이 공감하며, 그의 문학적 탐미주의를 자신의 글쓰기에서 구현하고자 한다. 반면, 헤세는 방랑자적 삶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며, 그의 작품에서 고뇌와 꿈을 주요 주제로 다룬다. 『수레바퀴 아래서』와 『유리알 유희』는 각각 청소년기의 방황과 열정적인 삶, 그리고 지적 탐구와 영혼의 고독을 그려낸 작품들이다. 헤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방랑자의 고뇌와 꿈은 안윤자의 문학적 여정과도 닮아 있다. 안윤자는 헤세의 집필 태도를 본받아,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 고독한 영혼의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한다. 안윤자는 그의 수필에서 이러한 릴케와 헤세의 영향을 받았음을 자주 상기한다. 그는 "모국어를 빛내는 작가가 되리라 다짐했던 등단의 각오"를 언급하며, 자신의 글쓰기를 성소(聖召)라고 표현한다. 이는 그에게 글쓰기가 단순한 창작 활동을 넘어선 신성한 행위임을 의미한다. 안윤자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탐구하고,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전달하고자 한다. 안윤자의 수필세계는 지성의 탐미, 방랑자의 고뇌와 꿈, 고독한 영혼, 그리고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릴케와 헤세의 문학적 유산을 이어받아, 자신의 독특한 문학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안윤자의 수필은 감각적이고 섬세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자들은 그의 내면세계와 교감하게 된다. 그의 글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독자들에게 깊은 정서적 울림을 제공한다. 안윤자는 릴케와 헤세의 영향을 받은 작가로서, 그들의 문학적 가치를 자신의 글쓰기에 녹여내고 있다. 그의 수필은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며, 방랑자의 고뇌와 꿈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를 통해 그는 독자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전달하며,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빛내고자 하는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있다. 안윤자의 문학적 여정은 그의 수필을 통해 계속되고 있으며, 독자들은 그의 글에서 릴케와 헤세의 정신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안윤자의 수필세계는 릴케와 헤세의 문학적 영향 아래에서 형성되었다. 그는 탐미주의적 지성과 방랑자의 고뇌와 꿈을 자신의 글쓰기에 담아내며, 이를 통해 독자들과 깊은 정서적 교감을 나눈다. 안윤자의 글쓰기는 그에게 성소(聖召)이며, 이를 통해 그는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빛내고자 하는 자신의 소명을 실현하고 있다. 그의 수필은 독자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제공하며, 그의 문학적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