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EPUB
eBook 호조 다미오 단편집
EPUB
가격
18,240
16,420 18,240 쿠폰혜택가
YES포인트?
91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 분야의 이벤트

소개

목차

나병원 기록
나병 가족
눈보라의 첫울음
마키 노인
생명의 초야
망향가
소극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 소개 2

호조 다미오

관심작가 알림신청
 
본명은 시치조 데루지(七條晃司)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1914년에 조선 경성부 한강도에서 태어났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육군 경리부 소속으로 조선 경성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열아홉 살이 되던 1933년 도쿠시마 시내 병원에서 한센병 진단을 받았고, 이듬해인 1934년 한센병 수용 시설인 전생원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입소했다. 입소 전 시치조 집안의 호적에서 제적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문학을 갈망하던 호조 다미오는 요양소 내에서 발행하던 기관지 《야마자쿠라》의 7월호에 〈동정기〉를 발표한다. 한센병을 진단받고 화엄 폭포로 자살하러 갔던 일을 다룬 짧은 글이었다. 이때 필
본명은 시치조 데루지(七條晃司)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1914년에 조선 경성부 한강도에서 태어났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육군 경리부 소속으로 조선 경성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열아홉 살이 되던 1933년 도쿠시마 시내 병원에서 한센병 진단을 받았고, 이듬해인 1934년 한센병 수용 시설인 전생원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입소했다. 입소 전 시치조 집안의 호적에서 제적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문학을 갈망하던 호조 다미오는 요양소 내에서 발행하던 기관지 《야마자쿠라》의 7월호에 〈동정기〉를 발표한다. 한센병을 진단받고 화엄 폭포로 자살하러 갔던 일을 다룬 짧은 글이었다. 이때 필명은 자신의 기숙사 이름을 따서 지치부라고 했다.

1934년 8월에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보낸다. 이후 가와바타의 극진한 격려 속에 〈생명의 초야〉가 탄생한다. 〈생명의 초야〉는 1936년 《문학계》 2월호에 게재되어 제2회 문학계상을 수상했으며 제3회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과 함께 ‘호조 다미오’라는 필명도 세상에 나왔다.

문단에 등단한 지 얼마 안 되어 호조 다미오는 자살을 결심하고 요양소를 빠져나온다. 친구 집에 머물면서 가와바타와 절친한 친구였던 도조에게 괴로운 심정을 담은 편지를 보냈는데, 그들로부터 진심 어린 답장을 받고 크게 감동하여 돌아온다. 그 후 새로운 작품 창작에 매진한다. 1936년 여름부터 급격히 쇠약해졌으나 〈나병원 수태〉,〈안대기〉, 〈나병원 기록〉을 연이어 발표한다. 같은 해 12월 초에는 생전에 간행된 유일한 단행본인 《생명의 초야》가 가와바타의 손을 거쳐 쇼겐샤에서 출판된다.

12월 말 호조 다미오는 극심한 신경통으로 몸져눕게 된다. 이듬해 일시 귀성을 목적으로 외출했지만, 고베, 오사카, 도쿄 등을 방황하다가 요양소로 발걸음을 돌린다. 4월경 호조는 〈소극〉의 원고를 완성하여 가와바타에게 보냈는데, 몸을 혹사한 탓인지 만성 신경증과 결핵으로 고생하다가 결핵 병동으로 들어가게 된다.

도조 고이치가 쓴 〈임종기〉에 따르면 호조 다미오는 죽기 2∼3일 전 “나는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아. 이미 준비는 되어 있어. 단지 내가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못 쓰고 간다는 것이 애석할 뿐이야”라는 말을 남겼다. 극심한 통증과 싸우던 호조는 1937년 12월 5일 새벽 “나는 회복한다, 나는 회복한다, 단언컨대 회복한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다. 그의 마지막 식사는 칡가루와 설사를 막는 데 쓰는 생약을 섞어서 갠 유동식이었다. 호조는 그날 새벽 5시 35분 9호 병실에서 눈을 감았다. 사인은 장결핵과 폐결핵이었다.

창작 기간이 단 3년에 불과함에도 〈나병원 기록〉, 〈나병 가족〉, 〈눈보라의 첫울음〉, 〈마키 노인〉, 〈생명의 초야〉, 〈망향가〉, 〈소극〉, 〈동정기〉, 〈안대기〉, 《호랑가시나무 울타리 안에서》, 〈발병했을 때〉 등의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호조 다미오의 다른 상품

연세대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 동양어문학과에서「요코미쓰 리이치의 유물론적 인식에 대한 고찰 - '상하이'를 중심으로 -」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 오테마치(大手町)에 있는 주식회사 대한재보험 동경 사무소에서 통·번역 비서로 근무한 바 있으며, 영진전문대학과 영남이공대학, 한국IT교육원, 평생교육원 등에서 전임 강사로 일했다. 현재 기업체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며 번역에 힘쓰고 있다. 번역서로는 『구니키다 돗포 단편집』, 『요코미쓰 리이치 단편집』, 『바다에서 사는 사람들』, 『씨앗, 그리고 열매』, 『하루 5분으로 만나는 일본문학 괴담편 : 인간의자』, 『귤(하루 5분
연세대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 동양어문학과에서「요코미쓰 리이치의 유물론적 인식에 대한 고찰 - '상하이'를 중심으로 -」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 오테마치(大手町)에 있는 주식회사 대한재보험 동경 사무소에서 통·번역 비서로 근무한 바 있으며, 영진전문대학과 영남이공대학, 한국IT교육원, 평생교육원 등에서 전임 강사로 일했다. 현재 기업체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며 번역에 힘쓰고 있다.

번역서로는 『구니키다 돗포 단편집』, 『요코미쓰 리이치 단편집』, 『바다에서 사는 사람들』, 『씨앗, 그리고 열매』, 『하루 5분으로 만나는 일본문학 괴담편 : 인간의자』, 『귤(하루 5분으로 만나는 일본문학 대표작가 단편선)』, 『하루 5분으로 만나는 일본문학 동화편 : 화재와 포치』, 『가이코 다케시 단편집』, 『오카모토 가노코 중단편집』, 『하루 5분으로 만나는 일본문학 환상소설 편 : 묘한 이야기』, 『장마 전후』, 『하루 5분으로 만나는 일본문학 민담 편 : 원숭이 꼬랑지는 왜 짧을까』가 있고, 저서로는 『시나공 JLPT 일본어능력시험 N1 문자어휘』, 『비즈니스 일본어회화 & 이메일 핵심패턴 233』, 『비즈니스 일본어회화 & 이메일 표현사전』, 『일본어회화 표현사전』이 있다.

인현진의 다른 상품

관련 분류

카테고리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6월 14일
이용안내
  •  배송 없이 구매 후 바로 읽기
  •  이용기간 제한없음
  •   TTS 가능 ?
  •  저작권 보호를 위해 인쇄 기능 제공 안함
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17.67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5.2만자, 약 4.8만 단어, A4 약 95쪽 ?
ISBN13
9791128890505

출판사 리뷰

20세기 초 제국주의로 치닫던 일본은 우생 사상을 받아들여 국민을 우열로 구분하여 약자를 사회에서 걸러 내는 정책을 폈다. 이 때문에 당시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은 병으로 인한 고통뿐 아니라 사회적인 고난까지 극심히 겪어야 했다. 당시 한센병자는 법에 의해 격리 수용되어 사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음은 물론 강제 불임 시술과 임신 중절 수술을 당했으며 가족으로부터 절연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이런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한센병 환자들은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문학에 녹여 냈다. 호조 다미오가 바로 그 대표 작가다. 1926년부터 2000년까지 발표된 한센병 문학 작품들을 모아 2002년에 발간한 《한센병 문학 전집(ハンセン病文?全集)》(전 10권) 중에서도 호조 다미오의 작품은 단연 최고작으로 손꼽힌다.

호조를 문학 세계로 이끈 이는 다름 아닌 《설국(雪?)》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호조는 1934년 8월 가와바타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보낸다. 그때 호조는 가와바타(川端)의 성을 가와바타(河端)로 잘못 쓰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면서도 자신이 할 일은 문학밖에 없고 문학에서 한 줄기 빛을 찾고 있으니 제발 답장을 부탁한다고 애원하는 내용을 담아 보냈다. 만일 당시 문학지 《문학계》의 편집자이자 유명 인사였던 가와바타가 호조 다미오를 주목하지 않았다면 그의 작품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마침 《설국》을 구상하고 있던 야스나리는 호조의 편지를 받고서 두 달여 후 답장을 보냈고, 이후 호조의 작품 활동에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발표된 것이 호조의 대표작 〈생명의 초야〉다. 이 작품은 1936년 《문학계》 2월호에 게재되었으며 이후 제2회 문학계상을 수상했고 제3회 아쿠타가와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호조 다미오’라는 필명도 이 작품과 함께 세상에 나왔다. 이 작품을 필두로 가와바타의 손을 거쳐 간행된 작품집이 호조 다미오의 생전인 1936년에 출판되었는데, 출판되자마자 1년 만에 2만 부가 팔리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이번 책에는 호조의 대표작 〈생명의 초야〉 외에도 데뷔작인 〈마키 노인〉과 유작 〈소극〉을 비롯해 〈나병원 기록〉, 〈나병 가족〉, 〈눈보라의 첫울음〉, 〈망향가〉의 총 일곱 작품을 수록했다.

책의 첫 작품 〈나병원 기록(癩院記?)〉은 호조 다미오가 직접 체험한 한센병 요양소에 대한 내용을 담은 글로서 일종의 르포다. 한센병 요양소 입원 절차부터 병동 건물의 구성과 규모, 병실의 종류, 병원 내 경제생활, 한센병의 구체적 증상과 치료법 등이 소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요양소 내의 결혼 사정과 단종 수술의 실태도 엿볼 수 있다.

〈나병 가족(癩家族)〉은 아내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차례로 요양소에 들어오면서 빚어지는 부모 자식 사이의 갈등과 슬픔이 잘 묘사된 작품이다. 한센병의 발병 사실을 숨긴 채 결혼한 아버지 사시치 때문에 장남 사키치와 장녀 후유코, 종국에는 막내 사타로까지도 한센병에 걸려 요양소 신세를 지게 된다. 한센병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한 가족을 통해 인간 구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눈보라의 첫울음(吹雪の産?)〉는 병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새 생명에 대한 희망을 품는 숭고한 인간 정신이 깊은 감동을 주는 수작이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어느 밤, 한센병 수용소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아기와 목숨을 맞바꾸듯 한 사람이 스러진다.

〈마키 노인(間木老人)〉은 호조 다미오의 문단 데뷔작이다. 일본 모더니즘 문학의 거두였던 요코미쓰 리이치(?光利一)가 격찬했으며, 가와바타 역시 호조에게 보낸 편지에서 훌륭한 작품이라며 아낌없이 칭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센병 요양소에 입소한 지 얼마 안 되는 청년 우쓰와 마키 노인의 정서적 교류를 다룬 작품이다.

〈생명의 초야(いのちの初夜)〉는 오다 다카오라는 한 남자가 한센병 요양소에 입소하여 맞이한 첫날의 경험을 담은 호조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으로 호조는 제2회 문학계상을 수상했으며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다. 당시 아쿠타가와상 선고위원이었던 가와바타는 “이러한 작품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이런 작품을 곧바로 선정하지 않는다면 편찬자로서 문학에 종사할 자격도 권위도 없다”라면서 문학으로서의 순수성을 높이 평가했으며, 문예평론가이자 작가인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역시 “이상하리만큼 단순한 이야기지만 생명 그 자체를 표현한 몇 안 되는 소설로, 작품에서 문학 그 자체의 모습을 보았다”라는 평을 《요미우리신문》에 기고하며 극찬했다.

〈망향가(望?歌)〉는 호조 다미오가 죽기 직전인 1937년에 발표됐다. 스물다섯 살에 발병하여 요양소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 도리조와, 불행한 가족사를 겪고 고아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한센병에 걸려 요양소에 들어온 야마시타 후토시라는 사내아이의 교분을 담은 작품으로,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 독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작품이다.

〈소극(道化芝居)〉은 1938년 《중앙공론》 4월호에 실린 작품으로 1937년 12월에 사망한 호조 다미오의 유작이다. 전향한 사회주의자인 야마다가 한센병에 걸린 옛 제자이자 사회주의 사상의 동지인 쓰지 잇사쿠라는 청년과 재회하는 이야기로, 이 작품에는 복자(伏字)가 상당히 많다. 이 역시 당시 요양소와 내무성 경보국의 검열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