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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슬픔
박종언
파이돈 202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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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추천의 글

1부 네 존재를 언어로 호명할 때
2부 허리 꺾으며 우는 백양나무 아래로
3부 가장 아프게 빛나는 별

_ 고운 목소리로 슬픈 얼굴을 불러내어_김완
_ 시인의 말

저자 소개 1

1972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바람과 함께 자랐다. 20대 중반 브라질에서 근대문학을 공부하던 중 극한의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생의 모든 명제가 무너져 내리는 걸 경험했다. 이후 정신분열이라는 의학적 용어인 조현병과 싸웠다. 솔직히 말해 나는 병을 이겨내지 못했고 치유하지 못했다. 그저 온몸으로 여기까지 걸어왔고 걸어오며 시를 썼을 뿐이다. 이제 시를 놓아주고 싶다. 그러므로, 잘 가라,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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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6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188쪽 | 125*200*20mm
ISBN13
9791198561930

책 속으로

깊은
깊고 깊은
우물 속,
생을 할퀴고 지나가는
12월의 바람소리
창가에 선 그림자
너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19세기 맨체스트 방직공장을 나서던 네 이름이
마리아? 혹은 안나?
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말숙이? 춘자?
5월에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한 후
종로 탑골공원에서 고개를 숙이던
젊은 너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 1연 중에서

너무 긴 시간이 걸리는,
형체가 바람에 의해 무너져내린 빨래
가장 아프게 버려지는 것들이 담긴 쓰레기통
그대가 바란 기적은
소망이 모두 무너진 후에
느닷없이 다가오는 것임을
그 녹슨,
철문 앞에 섰을 때
너는 후련하게 깨닫는다
가장 빛나던 곳에서 사랑을 말해버린 너
말하지 말아야 할 곳에서
사랑을 말해 버린 대가로
그대는 사랑을 놓치고
스페인으로 떠나버렸다
--- 33연 중에서

당신은 나의 길
매일 밤 흔들리며 당신에게로 간다
허리 꺾으며 우는 백양나무 아래로
나는 당신의 길을 따라간다
당신은 나의 배후
한 걸음 두 걸음
그대에게로 간다
작별 인사도 없이 갈라서고
사랑 없이도 사랑할 수 있는
당신은 나의 음모
당신에게 나는 뼈아픈 오류
과오가 있었고 부러진 노래가 있었던
당신은 나의 이름
당신을 호명하며 나는
당신에게로 간다
--- 44연 중에서

전직 구로공단 여공(女工) 김복자(78) 씨는
자랐다
태어났다는 말보다 더 앞서서 자랐다
강낭콩 알 톡 터지는 이팔청춘이었나
일하고 놀지 못했고 일하고 쉬지 못했다
시골, 이미 찢어져 버린 가난의 일가권속
아버지 그리고 애달픈 어머니
오빠, 여동생들, 막내 남동생
일한 대가는 그녀의 몫이 아니었다 아버지 손에
주었다 줘 버렸다 공손히 바쳤다
왜 중학교를 보내주지 않았어요
원망하는 마음도 염색물에 씻었다
살았다 아 그래 견뎠다

--- 63연 중에서

출판사 리뷰

고통을 응시하는 시적 언어와 시인의 사투,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

불빛 없는 곳에서 비로소 별은 빛난다고 하지만, 시집 속 화자들의 상처를 헤집고 그 맨얼굴을 드러내는 일이 시의 본령이라면, 시적 언어에는 얼마나 많은 고통이 배어 있을까.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시는 고통이 아니다. “하나의 시적 언어에서 하나의 고통을 본다는 이 말은 거짓말이다. 시는 고통이 아니다. 시는, 진실을 넘어선 어떤 거짓말이다. 따라서 그 거짓을 거짓으로 마주 보게 하는 힘, 진실을 원군으로 소환하는 힘, 삶의 전략을 재편하는 사유, 이 모든 것이 거짓과 함께한다. 시는, 따라서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기에 무엇이 될 개연성을 갖는다. 더럽다 는 것. 그것이 시의 총체적 의미다. 그리하여 연꽃은, 그 자리에서, 핀다.”(‘시인의 말’에서)

『친밀한 슬픔』은 박종언 시인의 첫 시집이다. 이 장편의 연작시에는 고통을 응시하는 시적 언어와 시인의 사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더러운 시’가 있고, 바로 그 자리에서 연꽃이 핀다는 사실을 알몸으로 언어와 접촉하여 치열하고 절실하게 증명하기 위한 시적 고뇌의 만화경이다. “시의 언어로 전화된 시인의 통렬한 울음”은 박종언 시인의 어떤 내력에서 나오는 것일까.

첫 시집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박종언 시인은 2014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에서 시로 우수상을, 2015년에는 소설로 최우수상을 수상한 전력이 있고, 2022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이 주최하는 제7회 학봉상 언론보도 부문에서 “일본 정신장애인 공동체 ‘베델의집’ 철학 분석”으로 대상을 수상할 만큼 시와 글쓰기, 문제의식에서 주목을 받았다. 시인은 2018년부터 정신장애인의 인권 옹호를 위한 대안언론인 ‘마인드포스트’ 편집국장으로 재직할 때 조현병과 싸우며 기자와 작가로서 정신장애인의 목소리를 담은 글을 쓰고 담론화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4년 ‘올해의 장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등 정신의 질병에 관한 당사자, 가족, 전문의, 종교인 등 21명을 인터뷰한 책(‘마음을 걷다’)을 펴냈고, 2019년 정신질환자의 사회참여와 통합에 헌신하고 정신건강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박종언 시인은 글쓰기는 “내가 껴안아야 할 마지막 기둥”이며 그동안의 활동은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추천평

그렇다, 시집 『친밀한 슬픔』은 허무와 냉소의 아교질로 구축된 전대미문의 생의 비가이면서 동시에 시의 언어를 손전등 삼아 뭇 버려진 생의 호적부들을 일일이 호명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실행한다. 어둠만이 발호하는 격절의 시간 속 마침내 시의 언어로 전화된 시인의 통렬한 울음이 그토록 오래 그 자신이 꿈꾸었던 “시간의 밑바닥을 밝히는 환한 눈보라”가 되어주고 있음에야! - 김명리 (시인)
박종언 시인의 이 길고 긴 내력의 시는 부릅뜬 눈 같다. 잠을 잘 때에도 감지 않는 눈. 아무리 더러운 것 앞에서도 외면하지 않는 눈. 그의 시는 눈을 감을 줄 모르므로 끝나지 않는다. 도무지 깜박일 줄 모르는 그의 부릅뜬 시를 읽어나 가다 보니 나도 눈을 한번 부릅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할 수 있는 만큼 깜박임을 참아가며 그와 눈싸움을 해보고 싶다고, 나도 보고 싶다고. - 요조 (뮤지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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