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근대 명리학의 지평을 열고 이론과 실전을 집대성한 거목(巨木). 절강성(浙江省) 가흥에서 태어나 푸단(復旦)대학교 문학과를 졸업, 14세부터 명리학과 관상학에 심취하여 안정된 관직 대신 명리학자의 길을 걸었다.
상하이 활동 시절, 장제스 총통의 부인 송미령 여사의 점괘를 정확히 맞춘 일화를 계기로 전국에 이름을 알렸으며, 원수산·서락오와 함께 ‘상하이 명리학 3대가’ 및 ‘남원북위(南袁北韋)’로 일컬어지며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렸다.
그는 방대한 실전 사례를 바탕으로 학문성과 실용성이 조화를 이룬 실전 중심의 명리학을 정립했다. 저서로 《천리명고(千里命稿)》를 비롯해 《
중국 근대 명리학의 지평을 열고 이론과 실전을 집대성한 거목(巨木). 절강성(浙江省) 가흥에서 태어나 푸단(復旦)대학교 문학과를 졸업, 14세부터 명리학과 관상학에 심취하여 안정된 관직 대신 명리학자의 길을 걸었다.
상하이 활동 시절, 장제스 총통의 부인 송미령 여사의 점괘를 정확히 맞춘 일화를 계기로 전국에 이름을 알렸으며, 원수산·서락오와 함께 ‘상하이 명리학 3대가’ 및 ‘남원북위(南袁北韋)’로 일컬어지며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렸다.
그는 방대한 실전 사례를 바탕으로 학문성과 실용성이 조화를 이룬 실전 중심의 명리학을 정립했다. 저서로 《천리명고(千里命稿)》를 비롯해 《정선명리약언》, 《팔자제요》, 《점복강의》 등이 있다.
1949년 중국 공산화 이후에는 홍콩으로 이주 후 명리학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생애 후반에는 대만 타이베이에서 강학(講學)을 펼치며 후학을 양성했다. 탁월한 통찰력과 현장성, 그리고 학문을 향한 진정성으로 근대 명리학이 하나의 학문 체계로 자리 잡는 데 위대한 궤적을 남기고 1988년 향년 77세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