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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며
제1장 러시아로의 이주와 우수리스크 푸칠로프카 정착 제2장 우수리스크 일대의 원호인, 청부업자, 대부호 문창범과 아편-오늘날의 시각으로만 볼 것인가 제3장 계몽운동에 뛰어들다 제4장 문창범과 홍범도의 엇갈린 시선 제5장 일제의 조선 강점후 권업회와 노령이주 50주년 행사 참여 제6장 격동의 시기, 전로한족회중앙총회 회장이 되다 제7장 파리강화회의 대표선정을 주도하다 미국에서 전해진 파리강화대표회의 소식 / 파리강화회의 파견대표의 결정-미국에 대한 기대 / 우수리스크회의 개최와 파리강화회의 대표 파견 제8장 3·1운동 준비와 민족의식 고취 언론활동 / 고종 추도회, 연극 공연 제9장 정부조직을 위한 노력: 대한국민의회 의장이 되다 전로국내조선인대회 개최 / 전로국내조선인대회 참석자들 / 러시아지역 임시정부, 대한국민의회 의장이 되다 제10장 3·1운동을 주도하다 3·1운동의 전개 제11장 대한국민의회 독립선언서에 대표자로 서명하다 제12장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총장에 선임되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총장 / 상해에서 온 여운형과의 만남 / 대한국민의회와 상해임시정부의 통합 제13장 새로운 길: 대한국민의회의 부활선언 대한국민의회, 블라고베셴스크로 이동 / 러시아 볼셰비키와의 연대 제14장 선택: 자유시참변과 그 후의 향배 자유시참변과 상해파의 비판 / 이르쿠츠크파와의 결별과 연해주로의 회귀 제15장 문창범의 최후와 엇갈린 역사적 평가 최후 / 역사적 평가 |
朴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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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며
올해는 조선인이 러시아로 이주한지 160주년이 되는 의미있는 해이다. 이들은 1864년경부터 러시아로 이주하여 러시아국적을 취득한 인물로서 후대에 이주하여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인물들 즉 여호인과 구별하여 원호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다. 이들 원호인 중 대표적인 인물로 최재형, 최봉준, 김학만, 김알렉산드라 스탄게비치, 문창범 등을 들 수 있다. 아울러 여호인으로서 대표적인 인물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동휘, 홍범도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문창범은 러시아에 초창기에 이주한 러시아국적을 가진 원호인의 아들이다. 그는 1870년 조선에서 출생하였으나 그의 대부분의 시절을 러시아에서 산 사실상 고려인이다. 그는 여호인들이 부르는 얼마우재였다. 바로 2등 러시아인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창범은 러시아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면서도 조국 조선을 잊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와 조선의 경계인이었지만 항일투쟁에 참여하고 주도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원호인 부호출신이었기에 1927년 소련공산당에 가입이 허가되지 않았고, 토호로서 규정되어 추방되었고, 스탈린 시대에 감옥에서 이슬로 사라졌다. 오늘날 문창범은 고려인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않고 존경하지도 않는 잊혀진 고려인일 뿐이다. 스탈린 시대 고려인이 희구한 정체성의 또다른 희생자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원호인이 문창범과 같다고 언급할 수는 없다. 문창범은 원호인의 다양한 유형가운데 한 사람인지 모른다. 원호인이지만 고려인의 칭송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의 추앙을 받는 또 다른 유형의 인물이 있다. 페치카 최재형이라고 불리우는 최재형이 바로 그 인물이다. 최재형은 원호인이지만 당시에도 여호인, 상해파 등 그와 계열을 달리하는 독립운동가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즉 원호인 가운데에는 최재형과 같은, 문창범과 같은 다양한 유형들이 인간 군상이 있는 것이다. 즉, 결을 달리하는 다양한 유형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문창범이다. 본서에서는 원호인 가운데 한 유형의 대표적인 인물인 제2의 최재형인 문창범에 주목하고자 한다. 문창범은 러시아지역을 대표하는 지도자 중 한사람으로서 러시아지역 3·1운동을 주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임시정부 설립의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된 러시아지역 임시정부인 대한국민의회 의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나아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교통총장에 임명되기도 하여, 러시아 한인들로부터 대통령으로 호칭되기도 하였다. 문창범의 반대파인 러시아지역의 대표적인 역사학자 계봉우는 그의 저서 『꿈속의 꿈』 상(上)에서 러시아 국적 한인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러시아에 입적한 원호의 밖에 여호(餘戶)와 외품자리의 명칭을 가진 사람들이 또한 있었다. 여호라는 것은 농촌이나 도시에서 가족을 데리고 살림하면서도 러시아에 입적하지 않은 그들의 명칭이요, 외품자리라 하는 것은 자기와 자기의 그림자밖에는 더 없는, 돈을 벌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노동자들의 명칭이었다.(중략) 원호에는 우리가 숭배할만한 인물이 없거나 하여서는 안 된다. 닭이 천 마리면 봉황이 하나 있다는 셈으로 그들 중에도 인물이 있었다. 이를테면 이범윤의 의병을 편성하였으며, 일본에 망명한 박영효와의 연락을 취하던 최재형, 상해 가정부의, 각 원 속에 하나는 재정총장으로, 그 다음 하나는 교통총장으로 피선된 것은 그들의 인물이 어떻다는 것을 평가하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계의 인물로는 김쓰딴게비츠를 말하여야 되겠다. 라고 있듯이, 계봉우는 러시아국적 한인들 가운데 문창범(바실리 안드레예비치 문 Василий Андреевич Мун), 최재형, 김 스탄게비치 등을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1919년 4월 17일 재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가 외무대신에게 올린 [불령 조선인의 동정에 관한 건]을 보면, 그 중 문창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조선인 사이에서는 문창범을 대통령이라 부르고, 김하석을 총사 령관이라 부르고 있는 듯하다. 문창범은 조선인 청년들 사이에서 한때 눈부신 활약을 떨쳐 촉망받고 있음이 인정된다 라고 있듯이, 문창범은 1919년 3·1운동 당시 러시아 연해주 조선인 사이에 대통령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던 독립운동가였다. 아울러 『조선일보』 1921년 12월 2일자에서도 문창범을 “배일조선거두”로 호칭하고 있다. 또한 문창범과 함께 러시아지역에서 가장 친밀하게 활동하였던 원세훈도 1932년 1월 1일자 발행 『비판』 2권1호 [새해를 마지니 추억되는 고인과 금인]에서, 그는 고 최재형씨와 아울러 노령의 2걸로써 1917년까지는 노령사회에서 칭패(稱覇)하였다, 노국혁명후에 전로한족중앙총회의 의장이 되었고, 1919년에 대한국민의회의 의장이 되었던 때로부터 비로서 완전히 노령사회의 일걸만이 아니라 우리 전사회가 요구하는 인물이 되었다 라고 최재형과 함께 문창범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창범은 그동안 학계의 주목을 별로 받지 못하였다. 그에 대한 본격적인 논문이 한 편도 없다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창범이 주목받지 못한 이유는 몇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일차적으로 러시아지역에서 활동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1990년 한국과 러시아가 국교수교 이전에는 한국학자들의 러시아 방문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와 같은 냉전시대의 상황은 그를 주목하지 못한 가장 기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둘째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의 정통성이 있다는 시각 때문일 것이다. 문창범이 처음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였으나 1919년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통합에 불만을 품고, 새로이 대한국민의회을 부활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즉, 대한민국임시정부적 관점에서 문창범은 이단아로 비추어 짐으로서 그 역사적 평가 역시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셋째는 문창범을 타국으로의 즉, 러시아로의 귀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여호인의 입장, 그리고 우리의 애국주의적 시각에서 평가한 측면이 있다고 보여진다. 필자는 이와 같은 3가지 이유에 의하여 문창범이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이를 객관적으로 검토함으로서 문창범의 역사적 위상을 진솔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본서는 크게 러시아혁명 이전과 이후, 혁명이후는 문창범이 자유시참변 참전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누어질 것이다. 먼저 러시아로의 이주와 정착, 구한말의 계몽운동, 일제의 조선 강점이후의 권업회 활동 등을, 이어서 러시아 혁명후의 대한국민의회 조직, 3·1운동 주도,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총장으로의 참여 등에 대하여 밝혀보고자 한다. 끝으로 연해주에서 아무르주로의 근거지 이전과 대한국민의회의 부활, 자유시참변과 그의 최후 등에 대하여 밝혀보고자 한다. 이 책자를 통하여 오늘날 고려인으로 불리우는 동포들의 역사를 보다 심층적으로 다양하게 분석함으로써 고려인의 특징과 한계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아울러 시베리아 벌판에서 또다른 조국, 조선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경계인, 얼마우재들의 항일투쟁이 보다 밝혀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2024년 6월 문화당에서 청헌 박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