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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간행하며
헌사 이 책을 읽기전에 1부 쿠바 한인사회의 지도자 안순필 1. 안순필의 출생지: 수원군 팔탄면 입암동 2. 제물포에서의 마지막 밤과 영국선박 일포드호 3. 에네켄의 비극 4. 멕시코 메리다에서의 가시 돋친 채찍과 에네켄 농장 5. 3·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을 통한 민족적 자각 6. 새로운 기회의 땅, 쿠바 이민 7. 쿠바로 향한 288인의 한인들 소식 8. 안순필가족의 쿠바 정착기: 에네켄밭의 새로운 노동 9. 민족교육의 요람: 한글학교에 관심을 기울이다 10.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의 설립과 독립운동의 전개 11. 민족종교 천도교를 통한 독립의 추구 12. 아바나지방에서의 대한인국민회 활동 13. 아바나 최초의 국어학교인 흥민국어학교 운영 14. 피땀으로 번 돈, 독립운동자금으로 2부 쿠바 독립운동의 젊은 역군: 안씨 3형제 1. 1930-40년대 쿠바 한인의 동향 2. 안군명: 가문의 기둥이자 아바나 독립운동의 새로운 구심점 3. 안재명: 아바나의 청년지도자 4. 안수명: 아바나 한인청년들의 심장이 되다 3부 쿠바의 에네켄 아래 피어난 무궁화: 김원경과 그 딸들 1. 김원경: 쿠바한인 여성공동체의 등불 2. 안정희: 대한부인회 활동과 민족교육을 통해 어머니의 길을 계승하다 3. 안옥희: 카리브해의 딸, 독립의 꽃이 되다 4. 안홍희: 노래를 통한 독립운동의 전개 4부 기록, 기억 그리고 기념 1. 쿠바한인 디아스포라의 산 증인 안순필의 기록 2. 아바나의 묘지: 돌아가지 못한 ‘에네켄’들의 통곡 3. 안순필의 아들 안수명 생전 인터뷰 신문기사 참고문헌 |
朴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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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만에 배달된 훈장
신비의 나라, 미지의 나라. 체 게바라로 상징되는 혁명의 나라 쿠바. 우리와 국교 수교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쿠바와 2024년 국교가 수립되고, 2025년 1월 그곳 아바나에 우리대사관이 설치되었다. 1905년 조국을 떠나 멕시코로, 그리고 다시 1921년 쿠바로 떠난 한인 이주민들, 이들 중 아바나 등지에서 조국을 잊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안순필과 그의 가족들이다. 이들 가족 8명 모두는 쿠바에서 미주 대한인국민회 회원으로서 한글교육과 군자금 마련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2023년, 2025년에 걸쳐 일가족 모두가 100여 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포상받는 전대미문의 독립운동가 명문가족으로서 그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이처럼 ‘쿠바의 순흥안씨 일가’ 한 집안 8인의 독립유공자 이야기는 세계독립운동사를 통틀어도 매우 보기 드문 감동적인 사례이다. 쿠바 한인 이민사의 거대한 산맥이자, 일가 8명이 독립유공자로 서훈된 안순필·김원경과 그 자녀 안군명, 안재명, 안수명, 안정희, 안옥희, 안홍희 육남매의 삶은 한 편의 서사시와 같다. 1921년, 멕시코의 뜨거운 에네켄 농장을 뒤로하고 더 나은 삶을 찾아 쿠바로 향했던 한인들의 발걸음은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행진이었다. 그 중심에 안순필과 김원경,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이 있었다. 그들이 마주한 쿠바의 현실은 가혹했다. 살점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에네켄(어저귀) 잎과 숨 막히는 열기 속에서 그들은 노예와 다름없는 노동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그 가시밭길 위에서도 그들은 ‘대한인’이라는 이름을 결코 놓지 않았다. 어머니 김원경은 쌀을 아껴 독립금을 모았고, 아버지 안순필은 대한인국민회를 이끌며 공동체의 기둥이 되었다. 아들들은 청년의 기개로 항일의 의지를 다졌고, 딸들은 한글과 노래를 가르치며 민족의 뿌리를 지켰다. 한 집안 여덟 명의 이름이 나란히 독립유공자 명부에 오른 것은 전 세계 독립운동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기적과도 같은 기록이다. 본 평전은 카리브해의 낯선 파도 소리를 조국의 독립 만세 소리로 바꾸어 놓았던, 가장 먼 곳에서 가장 뜨겁게 타올랐던 한 가족의 위대한 헌신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자 한다. 이제 우리는 100년의 세월을 건너와 비로소 우리 곁으로 돌아온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본다. 쿠바의 정식 명칭은 쿠바공화국(Republic of Cuba)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안틸열도의 진주’라 칭할 만큼 아름다운 도서국가로 해안선의 길이는 3,735㎞이다. 면적은 11만 860㎢, 인구는 1114만 7407명(2017년 기준)이다. 2025년 3월 현재 쿠바에는 교민 약 30여명과 1921년이후 이주한 한인 후손 약 1,1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수도는 아바나(Havana)이다. 종족구성은 뮬라토 51%, 백인 37%, 흑인 11%, 중국인 1% 등이다. 언어는 스페인어가 공용어이며, 종교는 가톨릭교가 85%로 주종을 이룬다. 기후는 아열대기후로, 특히 사탕수수 재배가 유명하다. 1492년 콜럼버스(Columbus, C.)가 발견한 후 스페인의 식민지로 편입된 이래 400여 년간 스페인의 통치를 받다가 1898년 미 · 서전쟁으로 미국에 양도되어, 4년간 미군정을 거친 뒤 1902년 5월 20일 독립하였다. 독립 이후 카스트로(Castro, F. R.) 정권 수립까지 정치·경제면에서 미국의 영향권 하에 있었으며, 1903년 미국과 관타나모기지 조차협정을 체결하여 현재에도 미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다. 독립 이후 독재, 부패, 쿠데타가 빈발하는 가운데 변호사 출신의 카스트로가 6년간의 혁명운동 끝에 1959년 정권을 장악하여, 러시아를 비롯한 공산제국의 원조를 받아가며 극좌성향의 사회주의 건설을 위하여 공산통치를 해 나갔으며, 이 과정에서 1962년 러시아의 중거리미사일 반입과 관련하여 쿠바봉쇄사건을 유발하기도 하였다. 1949년 7월로부터 쿠바는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하고 있었다. 그러나 1959년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 이후로 대한민국과 쿠바는 공식관계가 단절된 채로 지냈다. 2024년 2월 14일(현지시간) 양국은 마침내 미국 뉴욕에서 양국의 유엔 대표부를 통하여 외교 공한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이로써 쿠바는 한국의 193번째 수교국이 되었다. 우리 교민이 쿠바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1905년 멕시코 사탕수수농장으로 이민한 275가구 1,003명 중에서 288명이 1921년 3월 쿠바로 이민하면서부터였다. 6·25전쟁 당시만 해도 쿠바는 유엔에서 미국과 보조를 같이하여 북한의 남침을 규탄하였으며, 주 유엔 쿠바대표는 미주국가가 단합하여 한국을 지지할 것을 호소하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 쿠바정권은 유엔결의에 따라 1개 중대규모의 병력파견을 제의하였으며,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긴급구호결의에 따라 270만 달러 상당의 원조를 보내왔다. 그러나 1959년 카스트로혁명 이후 쿠바의 대한 태도는 역전되어 북한의 상주공관 개설을 허용하고, 유엔을 비롯한 각종 국제회의에서 북한에 유리한 결의안을 선두에서 제의하는 것으로 전환하였다. 따라서 카스트로 집권 이래 우리나라와의 문화교류 및 통상관계 등은 거의 없었다. 쿠바지역의 한인 연구는 멕시코한인이주와 관련하여 이자경, 성주현, 김도형, 김재기, 정일영, 이향희 등에 의하여 개척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쿠바에서 활동한 임천택이 쿠바 한인독립운동을 상징하는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임천택은 1950년대 『쿠바한인이민사』를 간행함으로써 쿠바한인사를 한국에 알린 대표적인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임천택은 식민지시대에도 『개벽』 등 한국의 잡지 신문 들에 쿠바한인들의 상황을 전달함으로써 쿠바한인의 존재를 한국에 알린 큰 역할은 한 인물이다. 그러나 임천택은 쿠바의 마탄사스지역에 살고 있던 이민자였으므로 그 서술에 일정한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 이 책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안순필 가족은 경기도 수원군 팔탄면 출신으로 임천택과 마찬가지로 1905년에 멕시코로 이주하여 1921년 쿠바로 재이주한 전형적인 쿠바이주 한인의 원형 형태를 띠고 있는 인물들이다. 다만 안순필가족은 임천택이 멕시코에서 쿠바로 이주하여 마나티를 거쳐, 마탄사스에 정착하여 활동한 반면, 안순필은 아바나에 정착, 아바나 지역을 중심으로 1930-40년대에 활동한 대표적 독립운동가라고 볼 수 있다. 즉 임천택이 마탄사스를 상징한다면, 안순필은 아바나지역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지역적 차이 외에 안순필가족은 임천택가족과는 달리 1959년 쿠바에 카스트로 정권이 들어선 이후 가족 중 일부가 미국으로 이주하는 등 공산정권에서 탄압을 받은 경우로서 대비된다고 볼 수 있다. 쿠바인의 미국으로의 이주는 카스트로 공산화 혁명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쿠바혁명 전에 쿠바의 중상층 이상에 속했던 이들이 공산화로 인해 기존에 누리고 있었던 경제적 이권마저 위협받자 자신들의 자유와 재산을 지키기 위해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미국 정부는 미국으로 이주한 쿠바인들을 정치적 난민으로 규정하고 ‘쿠바인 정착법(Cuban Adjustment Act)’을 제정하여 이들이 미국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등 매우 관대한 태도를 보여왔다 안순필의 막내아들인 안수명은 1959년 카스트로 공산혁명 이후 1961년 미국 마이애미로 이주하였던 것이다. 임천택의 아들 임은조(헤로니모 임, Jeronimo Lim Kim)는 카스트로와 혁명을 같이 하여 중요 직책에 올랐으나, 안순필은 운영하던 방직공장을 몰수당하고 이후 카스트로 정권하에서 어려운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안순필 일가족 8명이 모두 독립운동에 나섰던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1919년 4월에 자신의 고향 수원군 팔탄면과 접해 있는 향남면 제암리에서 벌어진 〈제암리학살〉사건이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 즉 안순필일가의 독립운동 참여는 수원군 지역의 3·1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미주의 한인들이 구독하였던 신한민보의 1920년 6월 1일자 〈한국사정과 브리튼정부〉에 〈제암리소화사건〉이란 제목으로 당시의 참상이 다음과 같이 상세히 보도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잊혀진 쿠바지역의 한인독립운동사를 새롭게 부활시키는데 일차적 목적을 갖고 있다. 아울러 그동안 잊혀진 안순필가족들을 발굴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 안순필 외에 부인 김원경을 비롯하여 아들 안군명, 안재명, 안수명, 딸 안정희, 안옥희, 안홍희 등 일가족 8명 모두를 살펴본다는 특징 또한 갖고 있다. 이 연구를 계기로 머나먼 카리브해의 쿠바에서 활동한 수많은 잊혀진 영웅들에 대한 학계 및 일반독자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이 책을 간행하는데는 주변의 도움이 컸다. 일차적으로 국가보훈부, 독립기념관, 한국이민사박물관, 대한적십자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수원박물관, 화성시 독립운동기념관, 화성문화원 등 주요 기관과 고 김재기 교수, 정길화 교수, 김도형 학형, YTN의 이은지 PD,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님께 감사 드린다. 아울러 국가보훈부의 정명희, 박준현, 박영헌, 윤여민, 독립기념관의 임공재, 오대록, 김용진, 자료수집가 박현철, SBS 광복 8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쿠바로 간 화성인〉 사진자료들을 제공해주시고 사용을 허락해 주신 SBS방송국의 임상범 기자, 쿠바 현지를 다녀온 서병교 PD, 그리고 진용선 학형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또한 쿠바 현지에서 가르침을 주신 문윤미(Julie Moon)님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2025년 11월 문화당에서 청헌 박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