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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
추천사 제1장 1909년 4월 28일 테살로니키 유배 첫날 밤 - 한밤중에 온 아이스크림 - 황제의 피해망상 - [라 트라비아타] 외 제2장 젊은 왕자 시절 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해설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
Zulfu Livane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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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자마자 날 호랑이 등에 태웠던 거야.’ 그는 생각했다. ‘호랑이 등에서 자란다는 건 황제의 아들이 짊어져야 할 운명인 게야. 모두가 경탄할 정도의 힘과 권력을 소유하는 것과 동시에 호랑이 같은 무시무시한 짐승을 지배하는 느낌이기도 하지. 그리고 허벅지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맹수의 단단한 근육을 체감하는 것이기도 해.’
--- p.19 죽음의 공포로 손발은 떨렸고, 입안은 바싹 말랐다.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을 더듬어 팔걸이의자 옆에 놓아두었던 탄산수병을 찾아 한 모금 들이켰다.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켜고 주위를 훑어보았다. 방문에 귀를 대고 밖에서 나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p.32 한편, 무릎까지 내려오는 회색 이스탄불린을 입은 압둘하미드에게는 아무도 관심이나 눈길을 주지 않았다. 작은아버지와 형의 외모에 호감을 보이던 유럽 사람들은 압둘하미드를 투명 인간 취급했다. 솔직히 이런 대접에 그가 상처받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압둘하미드에게는 방문한 모든 곳, 목격한 모든 것, 그리고 만난 모든 사람에 대해 여유 있게 관찰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다. --- pp.73~74 그는 황제와 나눈 대화를 기록했다, 이 기록이 나중에 세상에 알려질지는 알 수 없지만, 후세를 위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대화가 필요했던 황제는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앞으로 얼마나 더 황당한 이야기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메모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됐다. --- p.135 자신이 올라타고 있는 사나운 호랑이에게 모두가 복종하는 재미를 맛보지 않고서야 어찌 황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황제라고 해도 일상은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그렇게라도 해야 황제가 되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황제든 왕이든 벌거벗은 채 태어나서 벌거벗은 채 죽고 벌거벗은 채 사랑을 나누며, 먹고 자고 병 들고 화내고 기뻐하지 않는가? 모든 게 백성들과 똑같다면, 저 멀리 인도까지 뻗어 있는 알라신의 지상 그림자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 pp.185~186 “어쩌면 오늘 밤이 될지도 모릅니다. 오늘 밤 충돌할 것이고 지구는 사라질 겁니다. 이걸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불길이 세상을 집어삼킬 겁니다. 엄청난 진동과 폭발, 천지를 뒤집어 놓을 재앙과 함께 무시무시한 마지막 밤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황제는 군의관을 똑바로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이 상황에서 뭘 해야 하는가?” --- p.202 제국을 위해 오랜 세월 헌신했는데 자신의 공은 새까만 천으로 다 가려져 버렸다. 이 어둠 속에서 진실이 묻히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머지않아 죽음이 찾아올 테고, 눈을 감으면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겪었던 중요한 사건들을 직접 들려주는 것이었다. 어쨌든 역사는 자신의 누명을 벗겨 줄 테니 진실만은 가리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 p.237 ‘불쌍한….’ 군의관은 ‘불쌍하다니?’라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불쌍하다고? 내가 지금 그자한테 불쌍하다고 했어?’ 황제는 아무 소식도 모른 채 정원에도 나가지 못하고 저택에서 몇 년을 보내고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걸 알지 못한 채로 어느 날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실 황제에게는 그게 최선이 아닐까. --- p.341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켜졌다 꺼진 안광. 이제 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는 걸 알아챘다. 자신이 다시 권좌에 앉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것이었다. 동생이 현재 상황을 해결할 수 없기에 폐위시키고, 자신의 경험이 제국에 필요하니 다시 황제 자리로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신의 뜻에 달려 있었다. 모든 건 운명에 달린 것이니까. --- pp.382~3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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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의 ‘행동하는 양심’ 쥴퓌 리바넬리
그가 전하는 오스만 제국 절대 권력의 운명은 튀르키예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정치 활동가인 쥴퓌 리바넬리.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소재와 주제와 구성까지 광범위한 스펙트럼에 감탄사가 나온다. 정치를 소재로 독재 정부를 비판하는 이야기를 쓰는가 싶으면, 난민 이야기와 같은 국제,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그리고 이내 『호랑이 등에서』처럼 실제 역사를 방대한 스토리로 엮어내기도 한다. 이렇듯 매번 다른 스타일의 글은 그의 행보와도 연관되어 있다. 쥴퓌 리바넬리는 이십 대 중반 군사 쿠데타에 반대해 세 차례나 구속되어 군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다음, 해외에서 11년간 망명 생활을 했다. 이후 1978년 단편소설 「아라파트의 한 아이」로 데뷔한 이래 시, 소설, 에세이, 시사 비평 등 분야나 여성, 환경, 정의, 평화 등 소재를 가리지 않고, 왕성한 집필 활동을 했다. 『호랑이 등에서』는 그런 리바넬리가 쓴 역사 소설로, 튀르키예의 여러 언론은 출간되자마자 이 소설에 주목했다. 오스만 제국의 실질적인 마지막 황제 압둘하미드 2세는 오스만 제국, 튀르키예 근현대사에서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호랑이 등에서』가 출간되자 튀르키예 언론, 학계, 정계의 이목이 쏠렸다. 독재자 압둘하미드 2세가 다시 주목을 받는 건 장기 집권 중인 에르도안 정부가 반길 만한 일은 아니었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리바넬리는 왜 이 책을 썼을까? 그의 인터뷰 내용에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이 말한 것에 대한 책임만큼이나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 결국 역사와 정치와 사회를 외면하지 않은, 책임감 있는 거장 덕분에 우리는 다시 위대한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호랑이 등에서 태어난 거야 운명을 바꿀 수는 없지” 폐위를 당해 가택 연금 생활을 하게 된 압둘하미드 2세는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로 저택에서 시간을 보낸다. 재위 기간 중 여러 번의 암살 시도를 겪은 그는 폐위 후에도 누군가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처형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시달린다. 한편 가택 연금된 그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가족을 제외하고는 두 명뿐이다. 주기적으로 물품을 가져다주는 경비대 지휘관은 황제로서가 아닌, 한 피해망상을 겪는 인간으로서의 압둘하미드 2세를 바라보며 혼란을 겪는다. 압둘하미드 2세를 진찰하는 군의관 역시 잔혹한 황제를 상상했으나 소문과 달리 왜소하고 불안에 떠는 노인이 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간적인 고뇌에 빠지는데…. 독자들은 처음엔 약 50개의 소제목으로 이루어진 소설의 방대한 양에, 읽는 중엔 깊은 몰입감에, 책을 덮은 후엔 쉴 틈 없이 몰아친 이야기의 여운에 압도당할 것이다. 특별히 『마지막 섬』, 『어부와 아들』, 이번에 소개하는 『호랑이 등에서』까지 리바넬리 3부작 모두 장강명 소설가가 추천사를 썼다. 그리고 리바넬리의 팬을 자처하는 장정일 소설가는 해설을 썼다. 두 소설가가 이 작품에 대해 어떤 언급을 했는지는 책에 잘 스며있다. 책에서 ‘호랑이’는 권력을 의미한다. 호랑이 등에서 내려온 그에게 남은 것은 자신을 암살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피해망상이다. 결국 “자신이 올라타고 있는 사나운 호랑이에게 모두가 복종하는 재미를 맛보지 않고서야 어찌 황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던 황제는 온데간데없고, 죽음의 불안에 떠는 왜소한 노인만 남은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혼란에 빠진 경비대 지휘관과 군의관의 시선은 어쩌면 이 소설을 읽는 독자의 시선과도 닮아있을 것 같다. 소설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각도로 살피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역사 소설은 더욱더. 역사학자이자 전 이스탄불 톱카프궁전 박물관장인 일베르 오르타일르의 말을 빌리자면 『호랑이 등에서』는 황제 압둘하미드 2세가 통치했던 시대를 거울의 반대편에서 들여다보는, 리바넬리의 문학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다. 그리고 장정일 소설가는 책의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독재자들이 그립고, 예쁘고, 미더워 보일 때는, 진보의 발동이 꺼지거나 방향을 상실했을 때다. 바로 그럴 때, 역사적 인물은 역사적으로, 공적인 인물은 공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공준(公準)이 허물어진다. 압둘하미드 2세는 언젠가 그럴 때가 올 것을 기다리며, 자신의 회고록을 계획했을 것이다. 폭군과 독재자는 회고록을 남긴다.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이, 그들은 한 단어도 틀림없이 이렇게 말한다. “이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모든 인간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집에서 선택하지 않은 운명을 타고 태어나. 우리는 모두 호랑이 등에서 태어난 거야. 운명을 바꿀 수는 없지.” - 해설 중에서 이제 이 책을 읽은 더 많은 독자들의 해석이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