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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부_낙동강을 거슬러 걷다 첫째 날. 호포에서 삼랑진까지 둘째 날. 삼랑진에서 수산까지 셋째 날. 수산에서 남지까지 넷째 날. 남지에서 신반까지 다섯째 날. 경산리에서 적포리까지 여섯째 날. 적포에서 구지까지 일곱째 날. 현풍에서 옥포까지 여덟째 날. 옥포에서 성주대교까지 아홉째 날. 성주대교에서 왜관까지 열째 날. 왜관에서 구미까지 열한째 날. 구미/산호대교에서 선산/구미보까지 열두째 날. 선산에서 상주까지 열셋째 날. 상주에서 하회마을까지 열넷째 날. 하회마을에서 안동 영호대교까지 열다섯째 날. 안동댐에서 청량산공원까지 열여섯째 날. 청량산공원에서 현동리까지 열일곱째 날. 현동리에서 육송정까지 열여덞째 날. 육송정에서 황지까지 2부_동해안을 오르내리며 걷다 첫째 날. 송정에서 기장까지 둘째 날. 기장에서 월내까지 셋째 날. 월내에서 진하까지 넷째 날. 진하에서 남창까지 다섯째 날. 남창에서 태화강역까지 여섯째 날. 태화강역에서 방어진항까지 일곱째 날. 방어진항에서 정자항까지 여덟째 날. 정자항에서 문무대왕 수중릉까지 아홉째 날. 감포에서 구룡포까지 열째 날. 구룡포에서 호미곶을 돌아 동해면까지 열한 째 날. 포항 두호동에서 월포까지 열두째 날. 영덕에서 송라까지 열셋째 날. 영덕에서 영해까지 열넷째 날. 영해에서 후포까지 열다섯째 날. 후포에서 망양리까지 열여섯째 날. 울진에서 망양리까지 열일곱째 날. 울진에서 호산까지 열여덟째 날. 호산에서 신남항까지 열아홉째 날. 동해에서 삼척 광태리까지 스무째 날. 동해에서 주문진까지 스무 첫째 날. 주문진에서 하조대까지 스무 둘째 날. 속초에서 하조대까지, 강릉에서 정동진까지 스무 셋째 날. 정동진에서 묵호까지 스무 넷째 날. 거진에서 속초까지 스무 다섯째 날. 삼척 광태리에서 신남항까지 스무 여섯째 날. 송정에서 오륙도까지 3부_섬진강을 오르내리며 걷다 첫째 날. 하동읍에서 화개장터까지 둘째 날. 화개장터에서 구례읍까지 셋째 날. 구례읍에서 곡성읍까지 넷째 날. 곡성읍에서 순창 대강면까지 다섯째 날. 섬진댐에서 적성면 구미교까지 여섯째 날. 적성면에서 순창읍까지 일곱째 날. 하동읍에서 섬진강 하구까지 4부_영산강을 따라 걷다 첫째 날. 광주 극락교에서 나주대교까지 둘째 날. 목포 문화거리에서 삼학도와 영산호까지 셋째 날. 담양댐에서 광주까지 넷째 날. 나주역에서 몽탄대교까지 다섯째 날. 몽탄대교에서 목포 하구언까지 5부_금강을 따라 걷다 첫째 날. 대청댐에서 부강역까지 둘째 날. 부여에서 강경까지 셋째 날. 합강리에서 금암리까지 넷째 날. 공주 곰나루에서 부여 지석리까지 다섯째 날. 군산 금강하구언에서 웅포까지 여섯째 날. 강경역에서 함열까지 6부_남해안 이곳저곳을 걷다 첫째 날. 진해 용원에서 부산 하단까지 셋째 날. 진해구청에서 장복터널까지 넷째 날. 장복터널에서 신촌삼거리까지 다섯째 날. 가덕도 여섯째 날. 눌차도 일곱째 날. 해남 땅끝과 녹우당 여덟째 날. 목포 삼학도 아홉째 날. 강진과 장흥 열째 날. 사천과 삼천포 열한째 날. 함안 무진정과 함안향교 열두째 날. 완도/청해진 열셋째 날. 순천만 열넷째 날. 보성과 벌교 열다섯째 날. 고흥 금탑사 7부_서해안 여기저기를 걷다 첫째 날. 안면도 둘째 날. 태안 천리포수목원과 만리포해수욕장 셋째 날. 무안과 함평 그리고 고창 넷째 날. 고창 질마재와 정읍의 정읍사공원 다섯째 날. 김제 벽골제와 군산 채만식문학관 여섯째 날. 서산 해미읍성과 용현리 마애삼존불 일곱째 날. 수원 화성과 인천 검단 여덟째 날. 강화 고려궁지 아홉째 날. 부여 무량사와 김시습부도비 열째 날. 부여 부소산 8부_내륙 동부 몇 곳을 걷다 첫째 날. 영천 도계서원과 임고서원 둘째 날. 예천 회룡포와 의성 구봉공원 주변 셋째 날. 군위 위천 넷째 날. 원주 박경리문학공원과 제천 의림지 다섯째 날. 제천 배론성지와 단양 도담삼봉 여섯 째 날. 횡성 섬강과 홍천 홍천강 일곱째 날. 춘천 김유정문학촌과 공지천 여덟째 날. 남원 만복사지와 경주 용장사지 아홉째 날. 청도 청도천 9부_내륙 중부 몇 곳을 걷다 첫째 날. 의령 안희제생가와 곽재우생가 둘째 날. 함안 칠서 무산사 셋째 날. 충주 탄금대와 진천 백곡지 넷째 날. 진천 왜가리 번식지와 괴산 홍범식 고택 다섯째 날. 여주 영릉과 양평 두물머리 여섯째 날. 남양주 정다산 유적지와 다산 생태공원 일곱째 날. 청원 단재사당과 옥천 정지용생가 여덟째 날. 영동 난계사당 아홉째 날. 합천 홍류동천과 거창 박물관 열째 날. 합천 삼가 남명선생유적지 10부_내륙 서부 몇 군데를 걷다 첫째 날. 예산 추사고택과 아산 이충무공묘 둘째 날. 천안 홍대용생가지, 과학관, 묘소와 유관순열사사우 셋째 날. 공주 송산리고분과 마곡사 넷째 날. 공주 곰나루와 공산성 다섯째 날. 안양천과 마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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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오르내리던, 부산 을숙도 하구언에서 양산시 호포까지의 길을 뒤로 하고, 본격적인 낙동강 거슬러 걷기를 위해 호포마을로 향한다. 낙동강의 수원지에서 시작하여 강을 따라 걷지 않고 거슬러 오르는 것은, 내가 거주하는 곳이 낙동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하구 가까이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호포마을과 황산공원을 잇는 다리를 건너니,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양산천의 끝자락에는 낚시꾼들이 보이고, 생태공원 조성을 위해 마련해 놓은 벌판에는 여자들이 삼삼오오 나물을 캐느라 여념이 없다. 일단 을숙도 하구언에서 안동댐까지 385킬로미터는 낙동강 종주 자전거 길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길가에는 냉이 흰 꽃과 씀바귀 노란 꽃이 피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조금 더 걸어가니 보라색 자운영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남해로 나들이 갔을 때, 물건리 방조림/방풍림 안쪽의 논을 덮고 있던 자운영을 한 포기 캐어 와서 화분에 심었지만, 키우는 데 실패한 경험이 떠오르고, 공선옥의 산문집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 자운영이 농지에서 자라 거름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 도로와 공원에 편입된 곳에 자라, 지나는 사람의 구경거리가 된 것이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자운영은 본디 인간의 쓰임새와 무관하게 한 생을 살고 가겠지만. 풀 사이로 기어 다니는 무당벌레도 그 독특한 무늬와 색깔로 눈에 들어온다. 어젯밤 내린 빗물을 피해 길로 나온 조그만 달팽이들이 햇볕에 말라가고 있다. 눈에 띄는 족족 집어서 풀 속으로 던져준다. 뒤쪽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던 사람이 뭘 줍느냐고 묻는다. 그의 눈에는 달팽이가 보이지 않을 것이고, 그의 귀에는 달팽이라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것 같다. 속도는 관계 맺기의 최대의 방해꾼이니까. 달팽이를 주워 풀 속에 던져주는 동안, 전에 부산에서 진해로 가는 길에 있는 용원에서 본 게들의 모습이, 밀양 대촌리 저수지 가는 길에서 본 뱀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밤의 가로등 불빛을 보고 나온 게들이 그곳을 지나는 자동차 바퀴에 짓이겨져 있었고, 도로를 횡단하는 뱀들이 밤낚시 하러 가는 사람들의 자동차 바퀴에 납작해져 땅에 붙어 있었다. 문명과 자연의 조화는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걷고 있는 자전거 도로 오른쪽에는 호포에서 물금 가는 작은 자동차도로가 있고, 그 뒤쪽은 경전선 철로가 놓여 있다. 왼쪽은 공원으로 조성해 놓은 넓은 벌판이 있고, 거기에 면해 낙동강이 유유히 흘러간다. 강 너머로는 김해 대동 쪽에서 생림을 지나 삼랑진으로 가는 작은 자동차 도로와, 그 뒤쪽으로 부산에서 대구로 가는 고속도로가 보인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제트기 한 대가 하늘에 하얀 선을 만들며 날고 있다. 한 시간 정도 걸었더니 물금에 다다른다. 조금 더 걸어가니 물금취수장이 나온다. 입구 팻말에는 취수장의 역할이 끝나고, 이제는 학습관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는 안내를 해놓았다. 아마 건너편의 매리취수장으로 그 역할을 넘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을숙도에 하구언이 생기기 전에는, 강물의 갈수기에 바다의 만조 때가 겹치면, 바닷물이 물금취수장까지 올라와 수돗물에 소금기가 심해져, 안동댐을 열어 바닷물을 밀어내야 하는데, 안동댐 물이 물금취수장까지 흘러오는 데 2주가 걸린다든가, 물 값을 두고 부산시와 경북도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난다. 조금 나아가니 앉을 자리가 마련된 쉼터 비슷한 곳이 나온다. 할아버지 한 분이 자전거를 세워 놓고 쉬고 있다가, 걸어서 지나가는 나를 보고는, ‘저렇게 걸어가는 사람도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도 왜 이렇게 힘이 드느냐’고 혼잣말처럼 내뱉는다. 연세도 연세이려니와, 내가 가는 길은 내리막이고, 할아버지가 자전거로 가는 길은 오르막이니 그럴 수밖에 없는데, 왜 그런 혼잣말을 했을까? 혹시 같이 쉬면서 얘기라도 나누길 바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혼잣말을 하면서도 내 귀에 들리도록 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헤아려보는 것도 그 할아버지를 여러 걸음 지나친 뒤였다. 그렇다고 돌아가서 말을 붙이는 것도 어색할 듯하다. 취수장 구역을 지나니 물박물관이 나온다. 이제 물금을 지나 원동으로 가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왼편의 벌판이 사라지고, 철도 밑으로는 바로 강물이다. 그래서 강바닥에 교각을 세우고 그 위에 데크를 얹어 자전거길을 만들어 놓았다. 그 데크 한 부분에 안내판이 있는데, 읽어 보니 ‘잔도’에 관한 것이다. 옛 영남대로의 한 부분으로, 벼랑 비탈에 돌을 쌓아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황산잔도와 작원잔도 두 곳의 흔적을 발견하여 그 존재를 알려 놓은 것인데, 안내판 맞은편에 그 잔도의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그 전의 나들이 때는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최치원과 관련된 임경대 부근에 차를 세우고 임경대에 올라 그 밑의 강과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오늘은 그 임경대 밑을 지나고 있다. 그리고 임경대 위쪽 요산 김정한 선생의 「수라도」의 배경이 되었던 마을을 지나다 차를 세우고, 마을의 오래된 나무를 카메라에 담으며 오봉산을 바라보았는데, 오늘은 그 오봉산을 더 멀리서 한눈에 바라보고 있다. 장인/장모 묘소가 있는 양산 신불산 공원묘지에 들렀을 때, 그보다 위쪽에 잠들어 계신 선생의 산소를 찾았던 기억도 난다. 물금에서 원동에 이르는 길은 호포에서 물금까지보다 두 배의 시간과 걸음이 걸린다. 강가에 뿌리를 내린 버들이 바람에 꽃술을 뿌리고 있다. 꽃술이 바람을 타고 얼굴에 날아들어 사람을 귀찮게 하고 앞길을 방해한다. 쉽사리 원동이 눈앞에 나타나지 않자, 옛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중학교 때 나를 포함해 네 명의 아이들이 부산에서 열차를 타고 원동 나들이를 하면서, 객기를 부려 한 정거장 앞인 물금에서 내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 그러니까 물금에서 원동까지 철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철길만 생각했지 터널은 생각하지 못했고, 터널을 통과하는 시간이 열차를 타고 있을 때와 걸어서 지날 때와 얼마나 시간 차이가 나는지를 고려하지 않은 무모함을 저지른 것이다. 혼쭐이 나고 다시 시도해서는 안 될 교훈을 얻은 셈이었다. 그 뒤 진학을 하고 군역을 치르고 하는 사이에 가끔 연락을 하고 만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모두 연락이 두절되어 안타깝고 아쉬운 사이가 되어 버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자전거 도로 밑으로 원동역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그 입구 왼쪽 강변에 파라솔로 햇빛을 가리고 낚싯대를 펼쳐놓은 사람이 보인다. 펼쳐놓은 대가 일고여덟 대는 되는 것 같다. 한두 대는 낚시꾼이고, 여러 대는 어부라고 규정하던, 낚시에 일가견이 있어 그를 따라 낚시를 하던, 직장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건너편 강가에는 낚시꾼이 치는 파라솔보다 훨씬 큰 천막이 쳐져 있어 궁금했는데, 위쪽에서 보트와 그 뒤에 매달린 수상스키가 내려오는 것을 보니, 궁금증이 풀린다. 원동의 조그만 가게에 들러 빵으로 점심 요기를 하고 삼랑진을 향하는 길로 들어선다. 4대강 사업과 자전거 도로가 나기 전에는 농지로 쓰였을 들판을 지난다. 들판 왼쪽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새 한 마리가 정지 비행을 하고 있고, 오른쪽에는 왜가리 한 마리가 날아올라 가는 길 앞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조금 걸어 나가니 왜가리가 수로에 발을 담그고 내 눈치를 살핀다. 다시 날아올라 자리를 옮길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버틸 것인지. 거리를 가늠해 보니 통상 날아오를 만한 거리다. 지나가며 곁눈으로 살피니 그대로 있다. 자신을 방해할 존재로 여기지 않는 눈치다. 한참을 걸어 나가니, 강이 왼쪽으로 굽어 돌고, 멀리 교량이 두 개 눈에 들어온다. 앞쪽의 것이 대구로 가는 고속도로에 난 것이고, 뒤쪽의 것이 김해에서 삼랑진으로 이어지는 옛 다리 같아 보인다. 삼랑진이 가까웠다는 뜻이다. 자전거 도로를 버리고 삼랑진역으로 가는 길로 들어선다. 철로와 도로의 경계 지대의 철망 사이로 쌓아 놓은 철도 침목 같은 것이 보인다. 물론 나무가 아닌 콘크리트로 만든 것이다. 그곳을 지나니 삼랑진역의 급수탑이 보인다. 증기기관차 시절의 유물이다. 조성기의 소설 「통도사 가는 길」에도 묘사되어 있는, 감옥을 연상케 하는 그 급수탑인데, 역 광장에 급수탑을 철도 역사와 관련지어 설명해 놓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부산으로 귀환하는 승차권을 사려고 전광판을 보니,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목이 말라 자판기에서 빼낸 음료수를 들고 광장 벤치에 앉아 마시며 쉬기도 하고, 대합실에 마련된 텔레비전 화면의 뉴스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역 구내로 들어선다. 승차권을 보니, 내가 걸어온 6시간 가까운 시간이 열차로는 채 20분도 걸리지 않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약간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열차나 자동차 또는 자전거로 다닐 때와는 다른 풍광과 사색을, 시간의 길이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열차에 오른다. 다리가 제법 뻐근하고 발가락이 아려온다. --- 「첫째 날. 호포에서 삼랑진까지-2013년 4월 24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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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퇴직이 가까워오자 직장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련보다는, 퇴직 이후의 나날에 대한 기대나 설렘이 더 커지는 것 같았다. 그 기대나 설렘은 어릴 적,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눈길이 미치지 못하는 길 저쪽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를 헤아리던 심정과 같았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 거듭된 단체여행이나 관광여행 또는 드라이브 여행이 그 기대나 설렘을 희석시키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한 여행들은 더러 인상적인 몇몇 장면을 남기긴 했지만, 어차피 주마간산식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풍광과 세상이 눈앞을 스치는 데 머물지 않고, 몸을 통과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발로 걸어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이 이 땅에 살다가는 존재가 치러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지도를 꺼내 놓고 내가 걸어보고 싶은 길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 이 도보여행과 탐방여행에서 몸과 마음에 새겨진 것의 일부는 이미 『걷는 자의 대지 1, 2』로 나타낸 바 있다. 두 책을 내면서 일반적인 여행기 형식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책은 그 피하려고 한 형식을 답습했다. 이제 ‘걷기’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걷기가 자전거나 자동차 또는 열차를 이용한 여행보다 속이 찬 여행일 수 있지만, 그 또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살기’는 되지 않는 것이다. ‘살기’에 비하면 ‘걷기’ 또한 스쳐 지나가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살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걷기였는데, 다시 살기로 돌아가는 것은 우습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의 생활 영역에서 살기와 낯선 곳에서의 살기는 다를 것이다. 낯선 곳에서의 살기는 자신의 생활 영역에서의 살기의 되풀이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걷기의 심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걷기가 끝난 지점에서 마무리를 하며, 또 다른 살기 곧 걷기의 심화를 꿈꾸어 본다. -머리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