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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나는 존엄한 고양이올시다 9 고양이 나비와 나비 나비 12 항해하는 고양이 도도 14 위풍당당 고양이 만철 씨 18 비 오는 날의 고양이 패러독스 22 고양이 해리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26 새 쌍둥이 싱글 맘 고양희 씨 32 등대지기 고양이 고난길 씨 38 고양이 도도의 항해는 멈추지 않아 42 위풍당당 고양이 만철 씨의 어부 도전기 48 편의점 고양이 태오 52 기타 치는 고양이 브라우니 56 사찰 고양이 먼지 60 그녀를 사랑하는 죄로, 고양이 웨하스의 넋두리 64 고양이 베르터의 슬픔 70 인플루언서 고양이 트윙클의 가출 74 산티아고 순례길 위의 고양이 사야 88 산티아고 순례길 위의 고양이 코나 98 조망하는 게 취미인 고양이 레오 104 나비라는 고양이 이름에 대한 고찰 110 간호사가 된 고양이 은총 씨 112 첫차를 타는 고양이 일용 씨 116 고양이 오덕훈 씨의 사랑 120 고양이 나비의 쓸쓸함에 대하여 124 카페 스테이의 고양이 헤밍웨이 128 해설 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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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절대로 엄마나 누나라는 호칭을 쓰지 않아
물론 집사라고도 생각하지도 않아 솔직히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명명이잖아 명명이야말로 관계를 명명백백하게 해 준단 말이지 어쩌면 내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 최초의 순간은 나를 sweetheart라고 불렀을 때일 거야 귓속이 간질간질한 것이 마음이 뭉글뭉글한 것이 참으로 묘묘한 느낌이었어 [……] 가끔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이런 말을 해 너는 회사 안 가도 되니까 좋겠다 [……] 사실 내 꿈은 전국의 추르 맛집이나 찾아다니며 지역 별 수제 추르의 맛과 특징에 관한 글을 쓰는 건데 사랑이 뭐라고 나는 꿈도 포기한 채 그녀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을까 사랑이 죄로다 사랑이 죄야 하아앜! --- 「그녀를 사랑하는 죄로, 고양이 웨하스의 넋두리」중에서 목적지란 도착하는 순간 또 다른 목적지를 제시하는 정류장이다 대성당에 도착하면 돌아가기 위해 또 길을 떠나야만 한다 그러면 동행은 또 사라질 것이다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것 계획과 예측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사야는 길 위에서 깨닫는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가슴 아릿한 일이고 돌아갈 곳은 결국 보고픈 이가 있는 곳이다 사야는 정다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또 한 걸음을 옮긴다 순례의 길 위에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의 나침반은 목적지인 대성당이 아니라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도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 삶 자체가 고양이나라를 향한 유랑이라 해도 길 위에서는 언제나 서늘한 바람이 불고 그야말로 뼈가 시리게 외롭다 어쩌면 기도라는 걸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기도는 삶에 대한 애정이다 사야는 다시 정겨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또 한 걸음을 옮긴다 바람은 멈출 줄을 모르고……, 77억 개의 털이 길 위의 바람을 타고 흩날린다 --- 「산티아고 순례길 위의 고양이 사야」중에서 분명히 눈에 보이는데 없다고? 한국에서 왔다는 고양이 사야는 코나에게 무지개는 이 세상에 없는 거라고 했다 무지개는 환각이야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환각이지 무지개에 꾹꾹이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코나는 화가 났다 만질 수 없어서 더 아름다운 거야 아름다운 것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만질 수 없다는 것은 외로움을 불러왔다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보니 눈이 시렸다 코나는 한참 동안을 노을 속에 서 있었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머물 곳을 찾아가는 숭고한 길이라는 뜻이다 성당의 종지기가 되겠다는 말에 사야는 묘묘하게 웃었다 웃음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지 않았다 물고기를 잡으로 가지는 않아요, 어머니 어부는 아버지의 꿈이잖아요 종소리라도 들어야 살 것 같아요 종소리 하나로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예언이 실현된다면 종지기는 코나 인생의 종착지가 될 터이다 --- 「산티아고 순례길 위의 고양이 코나」중에서 돌보던 목숨의 불꽃이 사그라지는 것을 보면서도 눈만 깜빡깜빡하고 있었던 은총 씨는 몸보다도 더 고단한 마음을 어찌할 길이 없어 하얀 눈 흩날리는 차가운 길을 건너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가 기도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없다는 건 거기에 있다는 것 거기에서는 아프지 않기를 기도라도 해 보는 것이다 --- 「간호사가 된 고양이 은총 씨」중에서 들고양이로 태어났으니 들고양이로 사는 것뿐이야 작별인사를 하며 떠나는 모든 이에게 건넨 말을 떠난 이들이 아직도 간직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말을 간직한다는 것은 말을 건넨 이를 그리워한다는 뜻이기에 야생이 자연의 질서라면 도시는 문명의 감옥이다. 주어지는 삶은 선택할 수 없지만 살아내는 삶은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 것뿐인데 나비는 선택할 수 없는 삶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고백은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다. 해는 뜨고 지고 달도 별도 뜨고 지고 풀도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덤불숲의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나비에게는 모든 것이 달라진 것처럼 낯설다. 뜨는 해도 지는 해도 밤하늘의 별도 달도 어느 것 하나 이질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태오가 없는 덤불숲은 아무도 없는 덤불숲이구나 나비는 바람도 데려다주지 않는 태오의 냄새를 기억 속에서 꺼내며 까끌까끌한 혀를 꺼내 그루밍을 한다 혀가 지나는 자리마다 까끌까끌하다 바람에 가시가 있는 것처럼 바람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까끌까끌하다 아무도 없는 덤불숲에는 까끌까끌한 바람이 분다 --- 「고양이 나비의 쓸쓸함에 대하여」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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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선율의 첫 번째 시집 『나는 존엄한 고양이올시다』가 도서출판)고몽조몽에서 출간되었다. 서사가 있는 서정시집 『나는 존엄한 고양이올시다』에는 21마리 고양이의 서사가 담겨 있다. 서사가 있는 서정시집이라고 한 것은 시 한 편 한 편에 고양이들의 삶에 대한 서사가, 그리고 그 서사에서 느낄 수 있는 서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서 고양이는 메이저보다는 마이너이고, 이너써클 밖에 있는 주변인이자 아웃사이더에 가깝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보다 나은 삶을 꿈꾸는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는 존엄한 고양이올시다”라는 선언으로 이 시집은 첫 페이지를 연다. 태어남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고, 무엇으로 태어날 것인지 역시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다. 그래서 태어남 자체가 운명이 된다.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모두 같은 처지인 것은 아니다. 금수저 집안에 태어날 수도 있고 흙수저 집안에 태어날 수도 있는데 이것 역시 ‘나’의 의지는 아닌 것이다. ‘나는 존엄한 고양이’라고 말하는 것은 누군가 고양이는 존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라는 선언 역시 ‘어떤 인간’은 존엄하지 않다고 여기는 자들 때문에 필요하다. 그러니까 존엄하다는 선언이 필요한 ‘고양이’는 존엄을 외쳐야 하는 ‘어떤 사람들’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고선율의 시에서 고양이는 단지 고양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의 대유(代喩)이다. 모든 생명이 존엄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생명은 존엄을 주장해야만 하며 특히 태어나고 자란 곳을 떠나 유랑의 이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들고양이들은 시시때때로 존엄에 대한 위협에 직면한다. 내가 태어날 적에 고양이로 태어나겠다 선택한 것도 아니고 고양이로 태어나야지 결심한 것도 아니지만 고양이로 태어난 나는 그저 존엄한 한 마리의 고양이일 뿐이오 어두운 곳에서 더욱더 빛나는 두 눈과 아기의 살결 같은 부드러운 털을 가진 나는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그저 존엄한 고양이일 뿐이올시다 사냥꾼의 피가 흐르니 사나울 거라 단정하지 마오 야생성이 사라졌으니 온순할 거라 안심하지도 마오 나의 삶이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질지 모르지마는 순전한 나의 의지로 오롯이 살아갈 나는 그저 한 마리의 존엄한 고양이일 뿐이니까 「나는 존엄한 고양이올시다」 전문 이 시를 읽고 나면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갖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는 ‘존엄한 고양이’의 온전한 삶을 응원하고 싶으면서 동시에 ‘어떤 사람들’의 삶에도 응원을 보내고 싶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고선율의 시에서 고양이는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의 대유(代喩)이고, 생명이 있는 존재에게 삶이란 ‘살다’라는 글자 그대로의 선명한 뜻이기 때문이다. 고양이라고 해서 사랑을 모르지 않는다. 고양이라고 해서 이별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편의점 고양이 태오」 부분 편의점 고양이 태오는 이렇게 말한다. 태오의 말이 아니더라도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나 고양이로 살아가는 것이나 삶에서 우리가 느끼는 기쁨 혹은 고달픔은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고양이가 단지 고양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의 대유(代喩)라는 말에 납득이 가능하다. 한 편 한 편의 시를 읽다 보면 드러나는 고양이의 구체적인 모습은 평범한 누군가이거나 외로운 아무이거나 마음이 가난한 ‘나’ 자신이기도 한데 이들은 대부분 생활이 고단하고 그 고단한 삶에 대한 위로가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어서 고양이로 태어난 고양이는 없지만 고양이로서의 삶은 고양이답게 살아가는 단단한 의지이기를 바라며 도도는 위로의 노래를 들려주곤 했다 「고양이 도도의 항해는 멈추지 않아」 부분 도도는 혹등고래를 만나 노래를 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항해를 한다. 도도가 아무도 응원하지 않는 항해를 하는 것은 결코 들고양이로 태어난 운명을 거스르려는 것이 아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생명체로서 자기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싶은 것이다. 들고양이로 태어나 도시고양이의 삶을 선택하고 아버지로 살아가면서 위풍당당하려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사냥한 새보다 츄르를 더 좋아하는 아이들의 선호와 욕망은 먹여 살리기만 하면 되는 시절의 종말을 예고했다 「위풍당당 고양이 만철 씨의 어부 도전기」 부분 아버지이자 가장인 만철 씨는 먹여 살리는 것 이상을 원하는 자식을 위해 참치잡이 배에 오른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붉은 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만철 씨의 삶에서는 상황의 아이러니에 불과하다. 꿈을 찾아 바다로 떠난 도도 그리고 생계를 위해 바다로 간 만철 씨는 각자 서로 다른 선택을 했지만 각자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했다. 그런데 선택의 결과는 결국 자기 자신의 몫이다. 타자의 이해를 받지 못하거나 가족의 원망을 들을 수도 있지만 그것마저도 감내해야 한다. 도도와 만철 씨를 이상과 현실의 은유로 읽을 수도 있지만 둘 다를 현실의 한 모습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일용 씨는 털실로 짠 모자에 머리를 깊숙이 넣었다 뜨개질을 하다 눈이 마주치면 달처럼 웃어주던 사랑했던 이는 떠나고 모자만 남았다 일용 씨에게 모자는 배신을 모르는 친구 하지만 때로는 어린왕자의 금발을 떠올리는 밀밭 같은 것 평범하게 살았던 성공한 삶에 대한 기억은 모자로 남았고 달처럼 웃던 사랑에 대한 추억도 모자로 남았다 「첫차를 타는 고양이 일용 씨」 부분 평범하게 살았던 시절이 가장 성공한 한때였던 일용 씨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아무개이다. 일용 씨의 사연 역시 삶을 살아내는 자들의 무수히 많은 사연 중 하나의 사연이다. 그리고 일용 씨에게 모자는 과거의 추억이면서 현재진행형인 그리움이고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다. 결국 일용 씨는 모자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흔들리는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고양이들의 모습에서 독자들은 누군가를 떠올리거나 어쩌면 자신과 닮은 면을 발견하고 깜짝 놀랄 수도 있다. 궁금하지 않다고? 그건 사랑이 변한 거야! 인간이 그러면 그렇지!!! 「고양이 해리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부분 태오가 없는 덤불숲은 아무도 없는 덤불숲이구나 나비는 바람도 데려다주지 않는 태오의 냄새를 기억 속에서 꺼내며 까끌까끌한 혀를 꺼내 그루밍을 한다 혀가 지나는 자리마다 까끌까끌하다 바람에 가시가 있는 것처럼 바람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까끌까끌하다 「고양이 나비의 쓸쓸함에 대하여」 부분 고양이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시인 고선율의 시에는, 시에 마땅히 있어야 하는 서정은 물론 생활의 조각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삶이라는 서사가 있다. 생명의 존엄함과 삶의 존엄함은 결국 같은 말이라는 사실을 고선율 시인은 고양이들의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이다. ―길동주 해설, 「고양이가 존엄하면 모두가 존엄하다」에서 고선율이 스스로 고양이 출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시집 『나는 존엄한 고양이올시다』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시인 자신의 모습과 겹치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들이 응원하지 않는 꿈을 꾸는 도도,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만철 씨,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아버지를 닮아 버린 브라우니,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햇빛과 바람뿐이라고 생각하는 레오, 사랑을 위해 꿈을 포기한 웨하스, 사랑하는 이를 보내고 쓸쓸해하는 나비 등등 각자 주어진 삶을 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고양이들을 만나고 나서 우리의 삶과 존재는 모두 존엄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뒤표지 글 “고양이라고 해서 사랑을 모르지 않는다. 고양이라고 해서 이별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나 고양이로 살아가는 것이나 삶에서 우리가 느끼는 기쁨이나 고달픔은 대동소이하다 이 시집에서 고양이는 단지 고양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의 대유(代喩)이다. 고양이 출신의 시인 고선율의 시에는 시에 마땅히 있어야 하는 서정은 물론 생활의 조각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삶이라는 서사가 있다. 생명의 존엄함과 삶의 존엄함은 결국 같은 말이라는 사실을 고선율 시인은 고양이들의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