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1 제대로 된 한국사를 만났다! (김용석)추천사 2 선진국 대한민국을 위한, 그리고 세계 시민을 위한 한국사 (한영준)추천사 3 이보다 선명하게 과거를 재현한 역사책은 아직 없었다! (박준홍)저자의 말 한국사를 벗어나 한국사를 바라보다1장 왜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동물은 곰이 아니라 호랑이가 되었는가?: 단군 설화가 말해주는 역사적 사실들단군 설화의 진짜 주인공은 환웅?│4.2ka 이벤트가 고대 세계를 붕괴시키다│선진 농경 지식을 갖춘 환웅 세력이 가져온 변화│단군 설화는 한반도 지배 세력의 변화를 보여준다│그래서 왜 호랑이가 우리 민족의 상징이 되었나?2장 고대 한반도의 중국, 낙랑군에 얽힌 역사의 진실: 한사군이 우리 역사에 남긴 유산한(漢), 고조선을 치고 한사군을 설치하다│한 무제는 왜 고조선을 쳤나 1 : 디커플링│한 무제는 왜 고조선을 쳤나 2 : 흉노를 고립시켜라│한사군은 어디에 있었나?│고대 동아시아의 코스모폴리스, 낙랑│낙랑군의 유산│낙랑군은 우리 민족의 부끄러운 역사일까?3장 변방의 약소국 신라가 급부상한 결정적 사건: 한반도의 트로이 전쟁, 포상팔국의 난삼국 시대의 ‘1번 국도’ 서남해 연안해로│낙랑군 소멸로 막혀버린 무역로│동아시아의 보석, 금관가야│동아시아의 트로이 전쟁, 포상팔국의 난│뒤바뀐 신라와 금관가야의 지위4장 장수왕은 왜 광활한 만주를 포기하고 남쪽으로 향했는가?: 군사 강국 고구려의 외교력‘노잼’ 장수왕의 시대│Go South│한랭기와 고구려의 남하│고구려를 봉쇄하라 : 백제판 ‘쿼드’│고구려의 ‘쿼드’ 무력화│개로왕의 과감한 도박│장수왕, 움직이다│수나라의 통일, 고구려의 위기│고구려 외교의 마지막 불꽃│아프라시압 벽화가 말해주는 것5장 우리 땅에 남은 일본식 무덤과 중국의 풍습에 숨겨진 고대의 미스터리: 우리 땅에 새겨진 불편한 흔적들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막장 드라마 같은 무령왕의 출생 설화│왜(倭)는 약한 후진국이었나?│수수께끼의 고분│J-무덤에 꽂힌 전남?│지일파 국왕의 시대│경주에서 발견된 시신들│신라에 온 진(秦)나라 사람들6장 한반도의 합스부르크 왕가, 고려 왕실의 지배 전략: 장사꾼의 마인드로 국제 정세를 살피다무역상 집안│왕건은 왜 나주로 갔을까?│고려식 합스부르크 전략│고려는 자유 무역 국가였나?│고려를 만든 다극 체제의 국제 환경7장 팍스 몽골리카가 고려와 조선에 남긴 유산: 몽골 간섭기는 치욕의 역사인가?몽골을 상대로 한 왕전의 도박│성공한 도박이 고려를 구하다│쿠빌라이 칸의 선물│고려의 대몽 항쟁 포기와 일본 침공│무쿠리와 고쿠리의 전설│고려의 대몽 항쟁 포기는 굴욕일까?│몽골의 정치 개입은 모두 나빴을까?│팍스 몽골리카의 혜택8장 조선 건국이라는 필연적인 상황을 만든 세계정세와 기후 변화: 한반도의 중세 역사를 뒤흔든 기후 이야기14세기 한랭기에 휩싸인 팍스 몽골리카│한랭기의 결핍이 토지 활용법에 혁신을 일으키다│정도전의 토지 개혁│몽골보다 위협적이었던 왜구│자유 무역 시스템의 종말9장 애민 군주 세종 대왕이 노비 억제 정책에 소극적이었던 이유: 유독 고려 말과 조선 사회에서 노비 제도가 발달한 이유는 무엇인가?16세기의 글로벌 노예 마켓│유대계 포르투갈 상인의 조선인 노예│조선 인구의 40퍼센트는 노비│왜 고려 말에 노비가 급격하게 늘어났을까?│대농장의 시대│조선 건국 세력의 집중과 선택│양천교혼으로 노비를 늘린 퇴계 이황│노비를 줄이려는 왕과 늘리려는 사대부10장 대항해 시대, 조선과 일본의 위치가 뒤바뀐 결정적 사건: 팍스 몽골리카 이후 세계정세의 급격한 변화명나라의 폐쇄적 무역 시스템│조공 외교의 이면│이와미 은광│임진왜란은 경제 전쟁?│중국은 왜 바다에서 철수했나?│“납 한 근으로 은 두 돈을 불릴 수 있습니다”│일본에서 넘어온 막대한 은│연은분리법, 일본에서 꽃을 피우다│인삼은 누구의 특산품인가?│중국 대신 일본으로11장 기후 재앙을 이겨낸 한국사의 숨은 영웅: 소빙기가 연출한 병자호란과 대동법임진왜란은 예고편이었다│소빙기가 연출한 병자호란│굶주린 여진족, 조선을 노리다│후금의 후방 보급 기지가 된 조선│온돌의 확산과 함께 사라진 숲│마지막 위기│대동법의 등장│소빙기가 대동법을 살리다│최선을 다했던 현종12장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은 왜 귀국하지 않았는가?: 조선 통신사의 눈에 비친 일본의 변화조선 도공들은 왜 규슈로 갔을까?│나베시마냐, 시마즈냐, 엇갈린 도공들의 운명│나에시로가와, 일본 속 작은 조선│메이지 유신과 나에시로가와의 해체│도공에서 외무대신까지, 박평의 가문의 여정│도공들은 왜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나?│국교 재개가 필요했던 조선과 일본│"귀국에는 만국전도가 없습니까?"│계미 통신사와 가메이 난메이의 만남│일본은 ‘이단의 나라’│통신사의 끝13장 in 서울을 선호하는 정서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한양 독점 시대와 서울 집중화 현상의 기원TK 전성시대에서 한양 전성시대로│서울 독주 시대의 개막│최한기를 붙잡은 서울의 매력, 소프트파워│유만주는 왜 마포에 가서 돈을 빌렸나?│이스트엔드와 마포│급등하는 서울의 집값14장 근대 열강들이 주목한 한반도의 가치와 조선의 운명 : 거대한 제국주의의 파도 앞에서 조선과 일본이 선택한 갈림길거문도 섬 주민과 영국 해군의 기묘한 동거│대양에 진출하려는 러시아와 이를 저지하려는 영국의 대결│열강이 주목한 거문도의 가치│조선의 의도치 않은 '도박' : 인아거청│일본과 조선이 열강을 대하는 자세│일본의 대러 공포증과 을미사변│일본에 날개를 달아준 영일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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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틀 안에서는 결코 한국사를 제대로 볼 수 없다!”고구려 장수왕, 중국 유목 민족, 북유럽 게르만족이 비슷한 시기에 남하한 이유는 무엇인가?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학생 시절에 필수 과목이었던 ‘국사’를 공부했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한국사와 담을 쌓았다 하더라도 몇몇 사건은 기억할 것이다. 그 가운데 ‘그때 그랬다면…’이라는 아쉬움을 자아내는 장면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장면 가운데 하나가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 정책이 아닐까? 우리 역사에서 보기 드문 정복 군주였던 아버지 광개토 대왕이 만주 북부까지 넓혀놓은 광활한 영토를 포기하고 한반도의 한강 지역으로 기수를 돌린 장수왕의 선택은 협소한 한반도에서 복작거리며 살아가는 현대 한국인에게 큰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그런데 장수왕이 만주를 포기하고 한강으로 향하던 시기에 중국과 유럽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아는가? 중국에서는 북쪽의 초원 지대에 살던 다섯 유목 민족이 남쪽의 중원으로 쳐들어가 중국 왕조를 밀어내고 5호 16국 시대를 열었다. 유럽에서는 북유럽을 터전으로 살아가던 게르만족이 대거 남하하여 로마 제국을 뒤흔들었다. 학교에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고 배웠던 사건이다. 이처럼 비슷한 시기에 한반도와 중국, 유럽의 북쪽 세력을 남쪽으로 이동하게 만든 원인이 뭘까? 답은 기후다. 4~5세기경 지구 전체에 평균 기온이 낮아지는 한랭기가 닥치면서 북쪽 지역의 곡물 생산이 어려워지자 고구려의 장수왕과 중국 북쪽의 유목 민족들, 북유럽의 게르만족은 따뜻한 남쪽으로 터전을 옮길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기존 질서에 균열을 가하는 역사적 변혁이 일어났던 것이다.이처럼 ‘기후’라는 변수를 대입하지 않으면 이 시기에 일어난 역사의 흐름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유럽과 미국, 중국 등에서는 이미 기후학과 지리학, 사회학 등을 적용하여 역사를 해석하고 있다. 반면 우리의 역사 연구는 여전히 한국사 내부의 연구 결과만을 자료로 활용하기에 특정 집단의 정치적 결정이나 영토 분쟁을 가장 주요한 잣대로 삼는다. 하지만 이처럼 협소한 시각에서 바라보면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 조선의 근대화가 일본보다 늦었던 이유를 전적으로 흥선 대원군의 쇄국 정책 탓으로 돌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사실은 고려 말기부터 시작되어 조선에 이르러 강화되고 확장된 노비 제도로 인해 국가의 주요 노동력이 상공인과 도시 노동자로 편입되지 못한 점이 가장 큰 이유였음에도 말이다.“한국사를 명징하게 이해하도록 만드는 14가지 사건을 심층 분석하다!”한국사를 세계사로 확장하는 동시에 현대인의 일상으로 소환하다이 책은 고조선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오천 년 역사를 통사적으로 다룬다. 그러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14군데의 급소를 찌른다. 이 14가지 역사적 사건들은 한국사의 물줄기를 바꾼 변곡점이자 동시에 그동안 한국사를 공부하면서도 쉽게 풀리지 않았던 의문을 해소하는 지점이기도 하다.선진 농경 지식을 갖춘 환웅 세력과 결합하여 고조선의 일원이 된 곰 부족은 왜 우리 역사에서 사라졌을까? 고조선 멸망 이후 우리 땅에 들어선 한사군(낙랑군)은 한반도의 우리 민족 국가들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삼국 시대의 세 나라 가운데 가장 뒤처졌던 신라가 통일의 주역이 된 까닭은 무엇인가? 숱한 침략을 당하면서도 한반도가 중국이나 일본의 영토가 되지 않은 이유는? 부동산에 목을 매는 우리 국민의 정서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유럽에서 시작된 대항해 시대와 임진왜란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은 왜 귀국하지 않았는가? 유력 가문들의 아지트였던 TK(대구/경북) 지역이 저물고 한양(서울) 전성시대가 열린 까닭은? 근대 열강들이 탐했던 조선의 지정학적 가치는 무엇인가?한국사를 공부하면서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은 14가지 주제를 심도 깊게 다루면서도 ‘고조선-한반도의 고대 국가-삼국 시대-통일 신라-후삼국 시대-고려-조선-일제 강점기’로 이어지는 통사적 구성을 놓치지 않는다. 이러한 구성은 한국사의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각 사건들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데 유용할 뿐 아니라 한국사 초급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앞서 밝혔듯, 이 책은 기후학, 지리학, 사회학, 세계정세, 시대 변화, 집단 심리 등의 다양한 요소를 적용하여 우리 역사를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이제껏 한국사를 다룬 어떤 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책만의 장점이다. 그렇다고 역사를 해설하는 새로운 시도 그 자체가 미덕일 수는 없다. 이 책의 참된 미덕은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여 역사적 사건의 표면 아래에 숨어 있는 ‘진짜 사실’을 발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발굴한 사실들은 단 몇 줄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내용이 간단하지는 않지만, 그 저변에는 변화하는 시대를 돌파하거나 적응하여 생존해내고자 했던 당대인들의 고뇌가 깔려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와 같은 삶의 고민과 노력은 공간과 인종을 가리지 않기에 한국사의 주요한 사건들은 어쩔 수 없이 세계사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사는 없다’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은 한국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와 환경을 극복하고자 했던 우리 조상들이 쌓아온 시간과 사건이 한국사라는 틀에 가둘 수만은 없는, 세계 역사를 이룬 중요한 흐름이었음을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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