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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행기 조종사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막에 불시착해 정신을 잃고 있는 게 아닌가. 사람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이 곳에서 한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목이 마르니 물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좀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엉뚱하게도, 그저 작은 양을 한 마리 그려 달라고 할 뿐이었다. 맙소사! 난 여섯 살 때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린 뒤로 화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가.
그 아이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아이는 내가 그린 보아뱀 그림을 단번에 이해한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그 아이가 들려 주는 이야기를 통해 그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신비로움을 한 꺼풀씩 벗겨나가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여러 행성을 여행하기 위해 B 612라는 소행성에서 온 어린 왕자였던 것이다. 일곱 군데의 행성에 살고 있는 특이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진정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관계 맺음은 무엇이고 책임은 또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놀랍게도 난 고장 난 내 비행기를 고치는 데 성공했다. 때마침 어린 왕자도 자기 행성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어린 왕자와의 이별이 슬픈 걸 보니 어느새 나도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졌나 보다. 길들인다는 건 조금 슬프기도 하다는 걸 여우를 보고 알았다. 지금, 나를 보며 웃어 주는 수억 개의 별이 있고 그 안에서 어린 왕자도 나를 보고 웃어 주고 있으니 조금쯤은 덜 슬프게 되었다. 하지만 누구라도 황금빛 머리카락의 아이를 만난다면 내가 더 이상 슬퍼하지 않게 얼른 편지해 주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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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책을 통한 관계맺음
책은 참 많은 일을 한다. 우리 익히 알고 있는 ‘학습적’인 역할 외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 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 권의 책을 모두가 함께 읽음으로써 정서적 일체감 및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자 하는 취지로 순천시, 원주시, 부산시, 익산시 등에서 개최한 바 있는 ‘한 도시 한 책읽기’ 운동 역시 이러한 책의 역할을 이용한 아주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하물며 100년도 더 전에, 그것도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작가가 쓴 책이 세기와 국경을 뛰어넘어 현재까지도 꾸준히 그 수명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 책의 힘은 얼마나 위대하겠는가. 바로 그 위대한 힘을 지닌 책이 『어린 왕자』이다. 『어린 왕자』는 세계에서 성서 다음으로 많이 출판된 책이라고도 한다. 우리 나라에 나와 있는 무수한 판본들을 고려해 봐도 그 힘을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러니 『어린 왕자』를 통해 맺어진 인연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법정 스님은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어린 왕자』를 읽고 좋아하는 사람과는 금세 친화력을 느끼고 벗이 될 수 있’다고도 말한다. 뿐만 아니라 처음 『어린 왕자』를 소개해 준 친구를 은인과도 같다고 여기고 있다. 『어린 왕자』라는 책을 처음으로 내게 소개해 준 벗은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한평생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벗이다. 너를 대할 때마다 거듭거듭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벗은 나에게 하나의 운명 같은 것을 만나게 해 주었으니까. 지금까지 읽은 책도 적지 않지만, 너에게서처럼 커다란 감동을 받은 책을 많지 않았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나한테는 단순한 책이 아니라 하나의 경전(經典)이라고 한 대도 조금도 과장이 아닐 것 같다. 누가 나더러 지묵(紙墨)으로 된 한두 권의 책을 선택하라면 『화엄경』과 함께 선뜻 너를 고르겠다. - 법정 스님, 「영혼의 모음」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어린 왕자』는 ‘우리 마음 속에 늘 자리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어린 시절, 그 어린 시절 특유의 순수함과 명철함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는 옮긴이의 말처럼, 사람들에게서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향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어린 왕자』는 지금부터 또 한 세기를 거듭하는 동안에도 그 감동을 이어갈 것이다. 더불어 ‘『어린 왕자』 인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