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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이 묻고 퇴계가 답하다 (큰글자책)
퇴계와 율곡의 성리학과 정치 철학
김형찬
바다출판사 2024.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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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 top2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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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 조선유학의 근간, 퇴계와 율곡

1. 만남

나아감과 물러남 | 지나친 시어(詩語) | 기대와 다짐

2. 율곡이 묻고 퇴계가 답하다 1

공부의 목표 | 경건한 집중 | 실천 | 이해와 체득
인식과 실천의 단계 | 성인의 권위

3. 사단과 칠정 : 퇴계와 고봉의 8년 논쟁

천명도 | 도덕감정과 도덕본성 | 리와 기 | 결과의 관점과 원인의 관점
성현의 뜻 | 도덕감정의 원인 | 리의 ‘작용’이라는 은유 | 논쟁의 마무리
이치가 닿는 말 | 리가 스스로 이르다 | 형이상학적 충동

4. 율곡이 묻고 퇴계가 답하다 2

글 읽는 법 | 공부 | 지각 | 마음의 수양 | 성인과 현인
합쳐 보기와 나누어 보기 | 도(道)와 사람

5. 율곡이 묻고 퇴계가 답하다 3

〈서명〉 | 〈심학도〉 | 『성학십도』의 순서

6. 사단칠정과 인심도심 : 율곡과 우계의 논쟁

인심과 도심 | 본연지성과 기질지성 | 리통기국(理通氣局)
인간의 의지 | 논쟁의 마무리 | 사단칠정논쟁의 이해와 평가

7. 군왕의 정치와 신하의 정치

군왕과 신하 | 군왕의 한 마음 | 왕통과 도통

맺음말 : 군왕의 마음과 신하의 도통
부록 | 한국유학의 쟁점과 퇴계·율곡의 위상

저자 소개1

金炯瓚

1963년 생으로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및 철학과를 졸업했다. 지곡서당(芝谷書堂, 태동고전연구소) 한문연수과정을 수료 하였고, 고려대 철학박사(동양철학 전공), 동아일보 학술전문기자 등으로 활동하였다. 현재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이다. 저서로는 『오래된 꿈』, 『조선유학의 자연철학』(공저), 『논쟁으로 보는 한국철학』(공저)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理氣論의 일원론화 연구」, 「氣철학에서의 총체적 통찰과 경험적 인식」, 「전도된 형이상학과 경험세계의 파편들, 그리고 深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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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9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294쪽 | 210*290*20mm
ISBN13
9791166892752

책 속으로

율곡은 무엇을 묻고, 퇴계는 어떻게 답했는가

“이 책에서는 노학자와 청년학도로 만나 스승과 제자의 연을 이어가다가 학문적·정치적으로 대립되는 관계로 평가되기까지, 퇴계와 율곡의 삶과 생각을 따라가 볼 것이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이 같은 이상을 가졌으면서도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이들이 시대의 과제에 각기 어떻게 대처했는지 주로 철학적 관점에서 살펴볼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오고간 학술적 문답, 그리고 그들이 참여한 이론 논쟁을 통해 각각의 철학적 문제의식과 이론적 성과를 면밀히 검토할 것이며, 그것이 이 책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논의의 토대가 될 것이다. 나아가 그들이 추구하고 구축한 철학을 통해 각기 제시하고자 했던 인간의 길과 국가의 길은 어떠한 것이었으며, 그것이 서로 다른 길을 간 그들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추론해 갈 것이다.”

--- 「머리말_조선유학의 근간, 퇴계와 율곡」 중에서

출판사 리뷰

퇴계와 율곡,
논쟁과 우정의 13년 대기록

인간의 본성은 무엇이고, 어떻게 발현되는가?
참된 삶을 위한 공부란 무엇인가?
올바른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


율곡이 퇴계에게 물은 첫 질문은 ‘출처’(出處)였다. 출(出)이란 ‘세상에 나아감’을 뜻하고, 처(處)란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곧 “어떤 경우에 조정에 나아가 국가의 공적인 일에 참여하고 어떤 경우에 관직에서 물러나 조용히 은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처신의 문제”였다. 퇴계는 율곡과 첫 만남(1558년)이 있기 훨씬 전인 1549년, 49세의 나이에 현실 정치를 떠나 경상도 예안에 은거했다. 그곳에서 서원을 세우고 이미 10년째 학문을 탐구하며 후학을 키우고 있었다. 군왕의 부름을 다 사양하지 못해 잠시 관직에 나갔지만 이내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하며, 뭇 선비들의 존경을 받고 있던 터였다.

당시 율곡은 스물세 살 젊은 나이였고,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학문과 수양을 통해 익힌 가치와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세상에 나아가기로 마음먹은 율곡에게 ‘출처’는 가장 중요한 물음이 아닐 수 없었다. 유학 공부의 중요한 목적이 바로 내성외왕(內聖外王, 안으로는 성인이 되고 밖으로는 통치자가 되는 것)이기에 ‘출처’의 문제는 유학자들에게 일생일대의 가치이자 물음일 수밖에 없었다. 퇴계는 “출세를 목적으로 공부를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하면서 “도를 구현할 만한 시대를 만난다면 세상에 나아가 그 뜻을 펼쳐야 한다”는 가르침을 율곡에게 주었다. 퇴계와 율곡은 공부와 수양의 성과가 인정되어 주어지는 관직 진출의 기회라면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동의한 것이다.

율곡은 다시 공부의 목표에 대해 물었다. 유학 공부의 목표는 “하늘로부터 받은 밝고 깨끗한 마음을 회복하는 데 있고, 유학의 가르침을 따라 백성을 계몽하는 데 있으며, 궁극적으로 지극한 선의 가치를 실현하는 삶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주자는 “나아갈 지향점을 정하고 마음의 평정을 이루어 편안해지는 단계”는 누구나 가능하지만, “깊이 생각하고 지극한 선을 이루는 단계”는 안자 정도의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안자는 공자의 제자 안연으로 요절하지 않았다면 공자를 능가했으리라 평가되는 인물이었다.

율곡은 이에 대해 퇴계에게 물었다. 성리학의 이론을 따르자면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될 수 있는 데도, 안자 정도 되어야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은 결국 아무리 공부와 수양을 쌓아도 누구도 성인이 될 수 없다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퇴계는 “성인의 말씀은 위 아래로 모두 통하며, 정밀한 것과 개략적인 것이 모두 갖추어져 있으므로, 그 사람의 학문의 얕고 깊은 정도에 따라 모두 활용할 수 있다”면서 주자의 말을 편파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이해의 지평을 넓혀 주며 젊은 학자 율곡을 격려했다.

율곡은 퇴계의 제왕학 교과서였던 『성학십도』의 순서를 바꾸어야 한다는, 어찌 보면 당돌한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퇴계는 완숙한 경지에 이른 학자답게 젊은 유학자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였고, 때론 내용을 수정하며 자신만의 학문적 완성을 이뤄갔다. 애초에는 율곡이 질문을 통해 학문적 가르침을 청했지만, 13년 동안 이어진 두 사람의 문답은 퇴계의 학문적 성숙을 이뤄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퇴계와 고봉,
사단과 칠정을 묻고 답하다


퇴계와 율곡이 서신을 통해 유학의 의미를 논하기 시작할 즈음, 고봉 기대승은 퇴계에게 편지를 보내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조선유학의 대표적 논쟁 중 하나인 ‘사단칠정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퇴계와 고봉은 26년이 나이 차이를 넘어 서로 예의를 갖추면서도 치열하게 논박하며 무려 8년 간 논쟁을 거듭했는데, 이 논쟁은 오랜 세월을 두고 지식인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사단칠정논쟁은 인간의 도덕감정이 도덕본성으로 어떻게 발현되며, 그 발현 과정을 효과적으로 조절하기 위해서 마음, 본성, 감정의 구조와 작용 과정 및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관한 논의였다. 사단칠정논쟁은 심성론에 관한 논의가 조선유학의 주된 주제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나아가 도덕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와 국가를 운영하는 성리학적 이상국가의 구축을 위한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사실 사단칠정논쟁은 율곡과 퇴계가 주고받은 문답에서 퇴계가 얻은 중요한 학문적 성과를 담고 있다. 이는 다시 율곡에게 보낸 질문과 답변에도 반영되었다. 율곡은 퇴계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입장을 세워갔고, 이를 바탕으로 훗날 퇴계와 우계 성혼의 인심도심논쟁으로 이어진다. 사단칠정논쟁은 중국성리학의 수용 단계를 넘어 조선유학이 독자적인 심화,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논쟁이었다.

율곡과 우계,
인심과 도심을 묻고 답하다


1572년, 퇴계 사후 2년이 지난 시점에 율곡은 평생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우계 성혼과 학문적 논쟁을 벌인다. 우계가 퇴계의 사단칠정설에 동의를 표하고 율곡에게 의견을 물으면서 시작된 논쟁이었다. 율곡은 이 논쟁에서 퇴계의 학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자신의 학설을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율곡은 퇴계와 고봉의 8년 논쟁, 즉 사단칠정논쟁의 전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신만의 입장을 정리하고 있던 터였다.

퇴계와 고봉의 사단칠정논쟁이 도덕감정의 구조와 작용에 대한 논의에 집중되었다면, 율곡과 우계의 논의는 그러한 도덕감정을 마음으로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가, 즉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의 논의로 발전했다. 율곡은 인심과 도심은 본래 하나의 마음이기 때문에 근원이 다를 수 없다고 본 반면, 우계는 이상적인 도덕감정(사단)과 일반적인 도덕감정(칠정)을 나누는 구분법이 기본적으로 인심과 도심을 나누는 방법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율곡과 우계는 무려 12차례 왕복서한을 통해 논쟁을 진행했지만, 주목할 만한 의견 접근을 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율곡과 우계의 논쟁 역시 지식인들의 논쟁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로 자리매김했다.

퇴계·율곡·고봉·우계
조선유학의 이론적 기반을 세우다


퇴계, 율곡, 고봉, 우계와 같은 조선유학자들이 이기심성의 존재론적 구조를 밝히려고 논쟁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도덕감정의 조절 방법을 찾아서 도덕적인 삶을 구현하기 위해 논의한 것이었다. 퇴계, 율곡, 고봉, 우계는 조선을 성리학의 이념 위에서 기획하고 만들고 운영해 온 지식인들의 후예였다. 어린 시절부터 성리학을 배우고 익히며 자신들이 나라를 이끄는 주체라고 여긴 지식인이었다. 이기론·심성론 같은 형이상학부터 수양론·정치철학 같은 응용이론에 이르기까지 학술적 논의를 선도한 학자였다. 아울러 일상에서 시를 읊었던 시인이었고, 현실정치에 직접 참여한 관료이자 정치가였다. 율곡과 퇴계가 13년 동안 집요하게 묻고 답한 정치와 사상, 인간됨에 대한 논의는 조선유학의 수준을 드높인 빼어난 결과물이다. 아울러 퇴계와 고봉의 사단칠정논쟁, 연이은 율곡과 우계의 인심과 도심에 대한 논의는 사회와 국가를 운영하는 성리학적 이상국가의 구축을 위한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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