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바람 따라 이야기 따라 북구의 길을 걷다
0장. 장맥과 장강이 만나다 1장. 장골봉에는 세월의 무게가 있다 - 금곡 ① 느티나무 가로수길 ② 메타세쿼이아 산책길 ③ 금곡강변 산책길 ④ 가람낙조길 ⑤ 문리재 등산로 문리재 위로 기러기 날면 2장. 화산과 대천에는 달빛에 물든 전설이 있다 - 화명 ① 대천천 거님길 ② 양버즘나무 가로수길 ③ 회화나무 가로수길 ④ 기찻길 숲속 산책로 ⑤ 대천천 누리길 ⑥ 상학산 둘레길 ⑦ 파류봉 등산로 ⑧ 상계봉과 화산 등산로 대천의 이심이소 이야기 3장. 낙동강 큰 포구는 옛 영광의 기억을 품고 있다 - 구포 ① 시랑 누리길 ② 무장애숲길 ③ 만세길, 구포번영길, 구명길 ④ 주지봉 둘레길 ⑤ 주지봉 등산로 한걸음 더 들어간 구포 이야기 〈1〉 낙동강 수로의 메카 감동포 〈2〉 구포국수 면발에는 향수가 있다 〈3〉 잃어버린 섬들 붉은 동백꽃은 그리움으로 핀다 4장. 의성산에는 길항(拮抗)의 역사가 있다 - 덕천 ① 화명생태공원 수변길 ② 숙등마을길 ③ 의성산 둘레길 그날의 의기는 전설이 되다 5장. 기비골에는 거친 삶의 흔적이 남아 있다 - 만덕 ① 은행나무 가로수길 ② 튤립나무 가로수길 ③ 함박봉 고갯길 ④ 만덕고개 둘레길 문장사와 장사바위 부록 북구의 노을 10경 북구의 문화유산 길찾기 추천하는 글 |
|
길 양편으로 아치를 이룬 메타세쿼이아 큰 나무들이 길게 벋어간다. 멀리 가지들이 점점 낮아지고 길도 점점 사라지는 곳에 마치 무대의 커튼처럼 푸른 장막이 드리운다. 그러나 이 길을 걷는 이는 알게 될 것이다. 감추어진 공간이 열리는 순간 또 다른 장막이 보인다는 것을. 그곳을 향해 다시 걸어야 한다. 인생이 길이라면 걷는 것은 삶이다. 멀리 감추어진 소망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삶이다. 메타세쿼이아 가지들이 손을 맞잡은 산책길에 노을이 내려앉으면 금빛으로 물든 길 위에 나무들의 긴 그림자가 마치 피아노 검은 건반처럼 깔린다. 강바람에 갈대가 흔들리면 길은 아름다운 세레나데를 연주하듯 걷는 이의 하루를 잔잔한 행복으로 이끈다.
--- 「메타세쿼이아 산책길」 중에서 인디언들은 구슬로 목걸이를 만들 때 일부러 흠 있는 구슬 하나를 끼워 넣는다고 한다. 그들은 이를 영혼의 구슬이라고 부른다. 페르시아 직공들도 카펫을 짠 다음 털실 한 올에 흠을 내는데 이를 페르시아의 흠이라고 한다. 범방산 무장애숲길은 등정을 목표로 빠르게 걷는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 다이내믹한 숲길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대신 영혼의 구슬처럼 페리시아의 흠처럼 마음에 빈자리를 품고 자연과 호흡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범방산 등산로는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걷는 느려서 아름다운 길이다. --- 「무장애숲길」 중에서 구포국숫집을 찾다 보면 원조 간판을 단 음식점을 간혹 볼 수 있다. 하지만 원조집의 깊은 맛을 내는 가게는 없다. 구포국수는 역사적으로 아픔을 내장한 음식이다. 전쟁통의 절박한 상황, 농사일 같은 막노동의 고단함이 만들어낸 한 그릇 밥상이다. 구포국수의 생명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절박함과 배고픔이 사라진 현 세대에게 구포국수의 맛은 이야기로만 존재할 것이다. 구포국수의 맛은 국수 한 그릇에 만족과 행복감을 느끼던 그 시절에 있을 것이다. --- 「한걸음 더 들어간 구포 이야기」 중에서 큰 봉우리 정상에는 의성이라고 불리는 신라성이 있었다. 아마도 신라 자비왕 때 축성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성은 황룡장군과 5백여 명의 군사들이 왜구에 맞서 목숨 바쳐 싸웠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의성산이라는 이름도 의성에서 유래한다. 우리 선조들이 왜적과 싸워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자랑스러운 길항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 의성산이다. 그러나 천여 년의 세월이 흐른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군은 의성산을 점령하고 의성이 있었던 장소에 왜성을 쌓았다. 왜성의 잔재가 지금도 산 정상에 남아 있다. 의성산 정상에 오르면 의성의 굴곡진 역사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 「의성산에는 길항의 역사가 있다」 중에서 석불사는 일제의 수탈과 압제가 가장 심했던 시기에 건립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마애석불은 당대 유명한 불교 미술가와 석불 조각가를 초빙해 1953년부터 1956년까지 집중적으로 조각한 것이다. 당시는 한국전쟁이 막 끝나 온 국토가 폐허가 되고 사람들이 전쟁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울 때였다. 이러한 시대상은 그들이 마애석불을 조각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중생들에게 힘든 현실을 견뎌나갈 수 있는 힘과 위로, 위안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염원을 이 작은 공간에 담고 싶었을 것이다. 불심 가득한 석공들이 높고 높은 상계봉의 깊은 숲속으로 찾아들었던 순간을 그려본다. 손에 쇠망치와 징을 들고 큰 암벽에 매달려 오로지 불심을 일심으로 마애불을 새겼을 것이다. 돌 다듬는 소리가 산속에 울려 퍼질 때 만덕고개를 넘던 중생들은 합장을 했을 것이다. --- 「만덕고개 둘레길」 중에서 |
|
저자와 함께 책에 나온 길을 걸었던 이들의 한마디
“북구 출신이면서도 북구를 몰랐었는데 선생님의 상세한 설명 정말 잘 들었습니다.” “만족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4-① 화명생태공원 수변길을 걷고 “이야기가 곁들여진 걷기에 간간이 환경의 중요성을 부각해서 좋았습니다.” “햇살 가득한 길, 봄 향기 가득한 길을, 꽃내음 가득한 좋은 시절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걸었습니다. 노을 지는 시간에 걸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1-③ 금곡강변 산책길을 걷고 “생태해설가, 문화해설가와 함께 간다면 더 좋을 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길을 가면서 보았던 다양한 식물군과 이 지역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듣고 알게 된다면, 내가 걸은 그 길이 더욱 의미 있어진다는 것입니다.” 3-③ 무장애숲길을 걷고 “매우 만족했어요. 민간 향토사연구자이신데 풍부한 지식으로 내내 집중하게 되더라구요. 또 기회가 된다면 참여하고 싶어요.” “운동과 여유로움, 그리고 학습을 한번에^^ 주말에 여유로움을 즐기고 싶은 모두에게 강추하고 싶습니다. 오랜만에 만나고 싶은 사람과 연락해서 함께 걸어도 좋겠습니다.” 5-④ 만덕고개 둘레길을 걷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