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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
프롤로그|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 1장 코리안특급, 메이저리그를 질주하다 이기는 법을 배우다|에이스 케빈 브라운과의 선발 대결|타자 박찬호 첫 안타와 첫 타점|선발 진입을 위한 소중한 수업|1997년 5선발, 고생 끝에 거둔 첫 승리|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로 성장하다|본즈의 자이언츠를 꺾다|5연승 그리고 첫 10승 달성|첫 완투승, 156km 강속구를 꽂다|두 번째 완투승, 1997 시즌 막이 내리다 2장 위대한 도전의 서막 1998 홈 개막전 승리, 트레이드설을 잠재우다|노모가 떠난 LA다저스|‘여름의 사나이’ 홈경기 11연승을 달리다|박찬호의 폭포수 커브|본즈의 대기록을 저지시키다|최고의 명승부 1_케빈 브라운과의 강속구 대결|시즌 최초 15승 달성 3장 시련, 그리고 눈부신 전성기 사상 최악의 날을 딛고 일어선 마운드|하이킥 그리고 박찬호의 부진|투수둘의 무덤,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삭발은 박찬호의 힘, 파죽의 7연승|메이저리그 최초의 한일전|최고의 명승부 2_강타선을 압도하는 새로운 무기|통산 5번째 완투승, 정상에 서다|4년 연속 10승 고지에 서다|데뷔 후 첫 홈런 그리고 찬란한 호투|개인 최다 18승에 오르다 4장 대한민국 대표선수가 되다 2001년 개막전 선발에 나서다|퀄리티스타트(QS) 행진의 서막|부상과 부진의 시초|최고 연봉 투수 마이크 햄턴을 잡다|김병현과 운명의 맞대결| 첫 올스타전 출전|최고의 명승부 3_생애 첫 무사사구 완봉승|5년 연속 10승 달성|자신의 존재를 알린 ‘혼을 실은 역투’|LA 다저스에서의 마지막 승리 5장 혹독한 부상과 슬럼프 박찬호 5년 6,500만 달러에 텍사스로|부상 그리고 고난의 시작|가장 외로웠던 시절, 부진은 계속된다|부활의 불꽃을 당기다|이치로와의 첫 대결|2003 시즌의 유일한 승리, 결국 재활을 시작하다|1년여 만에 찾아온 승리|99일 만에 복귀, 106일 만에 승리|양키스와 레드삭스 연파|캔자스시티에서 이룬 센추리 마크, 100승|텍사스에서의 마지막 승리 6장 숨겨진 땀과 아픔의 기록, 124승의 신화 코리안특급의 샌디에이고 입성|화려한 컴백, 그리고 결혼|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맹활약|불펜에서 다시 선발로|내셔널리그 전 구단을 상대로 승리투수가 되다|장출혈로 조기 마감된 2006 시즌|마이너리그, 새로운 출발점|빅리그로 재입성하다|구원투수 박찬호의 첫 세이브|23개월 만에 다시 거둔 선발승|메이저리그 마지막 선발승|월드시리즈 첫 출전|뉴욕 양키스의 유니폼을 입다|메이저리그 마지막 승리로 대기록을 쓰다 에필로그|저는 약속을 지킨 사람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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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팀이 3대1로 승리하며 두 번째 투수로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박찬호에게 첫 승이 안겨졌다. 그렇게 1996년 4월 7일의 LA 다저스와 시카고 커브스전은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승리 투수가 탄생한 경기로 기록에 남게 됐다. 경기가 끝난 후 리글리필드의 좁은 원정팀 클럽하우스는 축제분위기에 싸였다. 선수들은 모두 루키 투수의 첫 승리에 축하를 보냈고, 라소다 감독은 그날의 라인업 카드를 박찬호에게 넘겨주며 포옹하고 이마에 키스를 해주기도 했다. 나는 박찬호의 그날 인터뷰 내용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에게는 역사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내 목표가 10단계라면 2단계 정도 올라선 기분이다. 이 작은 기쁨들이 자꾸 쌓여 큰 기쁨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경기가 끝나고 나는 박찬호와 함께 한국 식당에 가서 첫 승리를 자축했다. 이 첫 승리의 기억 덕분인지 박찬호는 그 후 커브스와의 대결을 유난히 즐겼고 시카고라는 도시도 무척 좋아하게 됐다. - p. 25
당시 케빈 브라운은 최고의 투수였다. 이미 18승을 거두면서 사이영상의 강력한 후보이기도 했는데 그날도 역투했다. 그러나 박찬호도 밀리지 않았다. 힘이 들어갔는지 제구력이 조금 흔들렸지만 밀리지 않는 강력한 구위를 뽐내며 파드리스 타자들을 압박했다. 그날 콸컴 스타디움의 전광판 속도계는 계속해서 97, 98마일(156~158킬로미터)이 찍히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마치 속도 경쟁이라도 하듯 박찬호와 브라운은 강력한 광속구를 앞세우며 타자들과의 대결은 물론이고 치열한 자존심 대결을 벌였다. 두 투수가 뿜어내는 기싸움의 기운이 기자실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이날 박찬호는 7이닝 동안 10개의 삼진을 뽑았고, 브라운은 9이닝을 완투하며 11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21개의 삼진이 나왔으니 두 투수가 삼진으로만 7이닝을 끝낸 셈이다. 그러나 브라운이 볼넷 1개만 내주는 제구력을 과시한 반면, 박찬호는 볼넷 7개 등 데뷔 후 최다인 8개의 4사구를 내줬다. 관록의 차이가 보이는 대목이었다. 노장 브라운은 흔들리지 않는 냉철함으로 경기를 이끌었지만 신예 박찬호는 고비마다 힘이 들어가는 등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박찬호의 승리였다. 박찬호가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7이닝을 3실점으로 막은 반면, 다저스 타선을 압도하던 브라운은 7회에만 4점을 내주며 패전 투수가 되고 말았다. 7회까지 박찬호는 132개의 공을 던져 두 경기 연속으로 130개 이상의 투구 수를 기록했다. 이날 10개의 삼진을 보태며 시즌 170K를 기록, 전년도의 166K를 넘어 자신의 시즌 최다 기록을 세웠다. 또한 이날로 192.2이닝을 소화, 최초의 200이닝 시즌을 눈앞에 두었고, 두 시즌 연속 13승을 거뒀다. 이제 개인 최다인 한 시즌 14승에 바짝 다가서며 최초의 15승마저 노리게 됐다. 이날 경기가 케빈 브라운에게도 아주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시즌이 끝나고 브라운은 다저스와 투수 사상 최초로 1억 달러가 넘는 메가 계약을 맺었는데 박찬호와 드라이포트 등 막강한 투수들이 있어서 우승 가능성이 높아 다저스를 택했다고 했다. - p. 97~98 지역 언론은 냉정했다. “박찬호는 승리를 거뒀지만 결코 깔끔하지 못했다”, “레인저스의 ‘에이스’ 박찬호가 궁지에 몰렸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박찬호의 부진을 질타했다. 지역 언론이 날을 세운 데는 이유가 있었다. 부진이 계속되자 박찬호는 한동안 언론과의 인터뷰를 아예 거부해버렸다. 난생처음 큰 부상이 온데다 거액의 다년 계약을 맺은 것에 대한 책임감,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력 등으로 박찬호는 심하게 자책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점점 현지 언론과의 관계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운동장으로 가다가 자동차 접촉 사고까지 나는 등 여러 악재가 겹치기도 했다. 게다가 이어진 인터리그 등판에서는 애틀랜타를 상대로 1.1이닝 9실점이라는 데뷔 후 최악의 피칭까지 나오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어서 신시내티와 시카고 커브스전에서도 6이닝 4실점, 5이닝 3실점의 부진으로 승수를 쌓지 못했다. 노력이나 운동, 준비가 부족했던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애틀랜타전에서 난타당한 후 박찬호는 삭발까지 하면서 재기 의욕을 다졌다. 당시 국내 특파원들과의 사이도 많이 소원해졌다. 삭발 후 누가 머리를 잘라주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답을 회피한 적이 있다. 얼마 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미안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본인이 직접 거울을 보며 머리를 잘랐으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박찬호는 “늘 시작하려는 마음을 가지겠다는 각오였으나 실행이 부족했다”며, 다시 정상에 도전할 것이며 팬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박찬호가 미국 생활을 하면서 가장 외로웠던 시절이다. - p. 215~216 박찬호는 1996년 4월 7일 시카고 컵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2회 구원 등판,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메이저리그 첫 승리를 기록했다. 1996 시즌을 5승으로 마친 그는 1997년부터 매년 10승 이상을 거두며 승수를 쌓아나가 2001년까지 LA 다저스에서 통산 80승을 올렸다. 그러나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한 뒤 다섯 차례나 DL에 오르면서 페이스가 뚝 떨어져 20승을 추가하는 데 4년이 걸렸다. 2003년에는 단 1승뿐이었고, 2004년에도 4승을 거두는 데 그쳤다. 그러나 2005년 재기하며 6월 초에 이미 시즌 6승째를 따내 통산 100승 고지를 점령했다. 100승을 거두는 동안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가운데 총 27개 구단을 상대로 승리를 올렸다. 경기 후 박찬호는 비교적 담담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각오를 다졌다. “한국에서 기대를 많이 했을 것이다. 오늘은 투수보다는 타자들이 잘 친 날이었다. 팀원들이 더없이 고맙고 또 자랑스럽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지난 몇 년간 아팠는데 지금은 건강해서 기쁘다. (오늘 쾌거는) 나 혼자 이룬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이룬 것이다. 내가 보답하는 길은 그들과 꾸준히 같이하는 선수가 되는 것이다. 팬들이 항상 고맙다. 이제 올 시즌 두 달이 지났을 뿐이다. 갈 길이 멀다.” 야구를 하다 보면 선발 투수가 9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도 승리 투수가 되지 못하기도 하고 또 이날처럼 5이닝을 겨우 넘기며 많은 실점을 하고도 승리 투수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길게 보면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고 또 도움을 받으면서 공평하게 성적이 나오는 것이 야구이기도 하다. 처음 박찬호가 LA 다저스와 계약했을 때 그가 100승 투수가 되리라 기대했던 사람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박찬호는 눈부신 전성기와 혹독한 슬럼프를 겪으면서 메이저리그 데뷔 9년 만에 결국 100승을 거뒀다. - p. 252~253 도쿄돔을 가득 채운 4만여 일본 팬들이 일방적인 응원을 보내는 가운데 박찬호의 표정은 담담했다. 초구 140킬로미터짜리 속구가 바깥쪽에 꽂혔다. 스트라이크다. 2구째 141킬로미터 속구가 이치로의 몸쪽을 파고들었다. 약간 높은 코스의 볼이었다. 볼카운트 1대1에서 3구째, 박찬호의 손을 떠난 백구가 142킬로미터의 구속으로 날아들자 기다렸다는 듯 이치로의 방망이가 힘차게 돌았다. 그러나 박찬호는 고개를 들며 오른손 검지를 힘차게 공중으로 뻗었다. 평범한 내야에 뜬 공이었다. 유격수 박진만이 3루수 뒤쪽으로 이동해 여유 있게 잡아내는 순간 3루 쪽 더그아웃에서 숨죽이고 있던 한국 선수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1이닝 무안타 무실점 세이브, 한일전 역대 최고의 명승부를 메이저리그 100승 투수 박찬호가 그렇게 마무리했다. 태극 마크를 달고 3월을 대표팀에서 보낸 시기는 박찬호에게 영광과 감격의 나날이었음과 동시에 메이저리그에서 그의 위치에 큰 변화를 주는 시기가 되기도 했다. 미 전역에 중계된 그 대회를 그가 속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포함하여 메이저리그 관계자들도 당연히 열심히 지켜봤다. 그러면서 ‘박찬호=선발 투수’라는 공식이 깨졌다. 파드리스는 스프링 캠프에 참가하지 못하고 국가대표로 뛴 박찬호가 뒤늦게 팀에 합류하자 시범 경기에서는 일단 선발로 등판시켰다. 그러나 두 경기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박찬호가 시즌을 불펜에서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후에 박찬호는 “WBC에서 마무리 투수로 뛴 것이 분명히 영향을 끼쳤다. 개인적으로는 영광스럽고 무척 즐거웠던 추억이지만 선발 투수가 아니어도 뛸 수 있다는 인상을 메이저리그에 심어준 계기가 돼버렸다”라고 회고했다. - p. 270~272 박찬호는 이미 메이저리그 생활만 10년이 넘은 베테랑으로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었고 결혼까지 해서 아이도 있었다. 그런 박찬호가 왜 텍사스의 소도시를 기점으로 한 마이너리그 팀에서 그렇게 고생하며 돌아다니는지 대부분 사람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좋은 성적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2007년 트리플A에서 박찬호의 성적은 6승 14패에 평균자책점 5.97이었다. 하물며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렇게 나쁜 성적을 거둔 적은 드물었다. 그러나 다음 인터뷰를 보면 왜 박찬호가 고생을 사서 하면서까지 야구를 놓지 않았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중략) 그해 뉴욕 메츠의 스프링 캠프 후 오랜만에 만난 박찬호의 얼굴은 밝았다. 악수를 나누는 순간 ‘얼굴이 참 밝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렇다면 내가 예상했던 것은 어떤 얼굴이었나’ 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운동장에서 클럽하우스로 들어가는 복도에 서서 30분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를 하기에는 클럽하우스가 너무 좁기도 했지만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옮기려던 것이 그렇게 길어졌다. 앞서 언급했지만 마이너리그의 삶, 당연히 어렵다. 메이저리그의 호화로움을 겪어본 선수에겐 당연히 더 그렇다. 그러나 박찬호는 무척 긍정적인 접근법으로 마이너리그 선수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언제까지 마이너리그에서 계속할 생각인가?”라고 묻자 박찬호는 “민 기자님은 언제까지 사실 건데요?”라고 되물었다. 우문현답이 아닐 수 없었다. 야구선수에게 야구를 언제까지 할 것인지를 물었고, 그는 야구선수로서 사는 날까지 야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대답한 셈이다. 그날의 담벼락 인터뷰를 소개한다. - 박찬호 선수는 돈도 많이 벌었고 명예도 얻었고 가정도 꾸렸는데 왜 저렇게 마이너에서 고생하고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 세상에는 돈도 많이 벌고 해볼 것을 다 해본 사람들이 있을 것 아닌가. 그럼 그런 사람들은 일찍 세상을 떠나야 하나? 나 같은 경우는 메이저리그 다시 가서 야구를 하는 것이 1차적인 목표지만 아직도 이렇게 배우고 있다. 나름대로 마음처럼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이 나를 굉장히 자극하고, 그 자극이 나를 노력하게 한다. 미래가 어떻게 갈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하나하나 새로운 것을 배우고, 까먹었던 것을 확인하고 그러는 것이 좋다. 시골을 다니면서 몇 안 되는 한국 사람들을 만나고 하면서 옛날 생각도 많이 한다. 예전에 마이너에서 뛰던 때와는 또 다르더라. 예전에 다저스에서 마이너리그 있을 때는 사람들이 박찬호 하면 한국에서 온 선수로만 여기고 반가워했다. 그러나 이젠,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한국의 대표 선수라는 식으로 나를 생각하고 대해주고 그러신다. 시골에서 어렵게 사는 분들을 만나고 하면서 고마움도 많이 느끼고 야구뿐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받는 것 같다.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도 그렇긴 하지만 요즘은 더욱 고마움도 많고 간절함도 많고 그렇다. 이렇게 느끼고 사는 것이 내가 나중에 야구를 끝내고 사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거다. 공부가 많이 되는 것 같다. - 언제까지 계속할 생각인가? ▶ 기자님은 언제까지 사실 건가? 사실 살면서도 때론 참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곤 하지 않은가. 야구를 하면서도 이젠 정말 못 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지만 처음에 야구를 시작할 때도 여러 환경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런 것들이 다 나를 만들어가는 것들이더라. - p. 293~297 박찬호는 124승을 향한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다양한 구질을 섞어가며 예리한 제구력으로 플로리다 타선을 압도했다. 5회 말 말린스 타선은 2번 오스발도 마르티네스, 3번 로건 모리슨, 4번 댄 어글라의 상위 타선이었다. 그러나 박찬호는 세 선수를 하나같이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기세를 올렸다. 6회 역시 4번 개비 산체스와 5번 채드 트레이스, 6번 지안칼로 스탠튼의 만만치 않은 타자들이었지만, 3루 땅볼과 센터 플라이 그리고 삼진으로 말끔한 삼자 범퇴였다. 7회 말 박찬호는 또 마운드에 올랐다. 구원 투수가 3이닝을 오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박찬호의 구위는 식을 줄 몰랐다. 8번 브래드 데이비스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자 말린스의 에드윈 로드리게스 감독은 대타 스콧 커즌스를 내보냈다. 하지만 커즌스 역시 헛스윙 삼진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어 1번 에밀리오 보니파시오가 힘없는 유격수 뜬공으로 잡히면서 박찬호는 3이닝 무안타, 무볼넷, 6탈삼진의 퍼펙트 피칭으로 등판을 마쳤다. 피츠버그는 직전 6회에도 2점을 추가해 5대1로 앞선 상황이었는데 결국 경기는 그 점수 그대로 끝났다. 승리 투수는 5회 말부터 나와 3이닝을 완벽하게 막아낸 박찬호였다. 박찬호는 2010년 양키스에서 첫 승을 거둘 때 3이닝을 던졌고, 이날 다시 3이닝을 던졌다. 이 두 경기가 2010년 시즌 최다 이닝 기록이었다. 우연히도 두 차례 모두 승리 투수가 됐다. 3이닝 1안타 1삼진을 기록한 첫 승의 내용도 좋았지만 3이닝 무안타 6K로 마지막 승리는 더욱 완벽했다. 박찬호의 역투도 눈부셨지만 사실 이날의 승리는 감독의 배려와 동료들의 헌신이 뒷받침됐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러셀 감독은 통산 123승을 거둔 노장 박찬호에게 그다음 1승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승리의 기회를 주려는 배려의 마음에 이날 4회까지 1실점으로 잘 던진 대니엘 매커친을 빼고 5회부터 박찬호를 투입했다.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매커친에게 양해를 구하고 5회 초에 그의 타석에서 대타를 냈다. 1이닝만 더 던졌으면 승리 투수가 됐을 매커친도 대선배 박찬호의 대기록 달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다. 박찬호는 다음 날 매커친에게 감사의 뜻으로 아이패드를 선물했다고 한다. ---pp. 326~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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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저리그 동양인 투수 최초의 124승을 이뤄낸 박찬호 최초의 평전
● 코리안특급 박찬호의 17년에 걸친 환희와 눈물의 대서사시 ● 우리들의 위대한 야구영웅 박찬호의 숨겨진 아픔과 환희의 기록 “야구는 나의 꿈 그리고 운명” 대한민국 최초의 메이저리그 기자와 메이저리거가 만나다 이 책은 국내 최고의 야구전문기자로 손꼽히는 민훈기 기자가 박찬호의 야구 인생에서 의미가 깊은 승리를 통해 우리나라 최초의 메이저리그 투수의 여정을 따라간 책이다. 스포츠지 사상 첫 해외 상주 특파원인 민훈기 기자는 메이저리그를 비롯하여 박찬호 및 코리안 빅리거 관련 전담기자로 활동했다. 저자는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첫 입성부터 2004년까지 만 14년간 박찬호의 124승 현장 대부분을 함께했다. 두 사람은 때로는 마음 든든한 친구로 때로는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 조언자로 지금까지 깊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서 박찬호에 대한 평전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박찬호의 소중한 경기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면서 우리들의 야구영웅 박찬호에 대해 이야기한다. 국내 최고의 MLB전문기자라는 명성에 걸맞은 객관적이고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박찬호의 첫 승 경기부터 메이저리그 마지막 경기까지 마치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처럼 박진감 넘치는 생생한 감동을 전해주면서 박찬호와 함께했던 메이저리그 여정에 우리들을 초대한다. 박찬호가 LA 다저스와 계약할 당시만 해도 현지에서는 명문 구단 다저스가 왜 어린 동양 투수와 거액의 계약을 했는지 호기심 반, 의아심 반의 반응을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지만, 18일 만에 더블A로 강등된다. 좌절감에 포기를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는 남다른 의지와 목표 의식으로 그 시기를 견뎌냈다. 이후 박찬호는 1996년 4월 7일에 시카고를 상대로 거둔 첫 승리를 시작으로 15년간 총 124번의 승리를 거둔다. 이 책은 단순히 박찬호의 승리의 순간에 집중하지 않는다. 숱한 역경과 부상과 부진을 딛고 일어서서 124승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까지의 고난과 좌절의 시간을 견뎌낸 인간 박찬호의 모습도 담았다. LA 다저스에서 거액의 이적료를 받고 시카고 레인저스로 입단한 뒤에 계속되는 부상으로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이른바 ‘먹튀’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부상과 부진을 반복하면서도 그는 단 한 순간도 야구를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모두가 끝났다고 질타할 때도 쉬지 않고 묵묵히 공을 던졌다. “나는 계속 꿈을 꿔왔다.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가슴 속에 남은 박찬호의 숨겨진 아픔과 환희의 기록 IMF로 고생하던 1990년대 말, 국민들은 박찬호의 경기를 보며 희망과 즐거움을 얻었고 그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박찬호의 1승이 우리의 1승이었던 시절. 그는 그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위로와 꿈이 되어준 선수였다. 그러나 등판 다음 날 실핏줄이 터진 어깨를 얼음으로 감싸거나 아픈 허벅지를 압박 붕대로 칭칭 감은 그의 모습을 떠올려본 팬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등판한 다음 날조차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홀로 운동장을 끝없이 달린 후 웨이트 트레이닝과 스트레칭을 녹초가 될 때까지 했다는 것도 말이다. 우리는 박찬호가 야구를 통해 쌓고 누린 명성과 부와 여러 혜택을 봐왔지만 그가 허벅지 사이즈 28의 하체를 갖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면서 쉴 새 없이 달렸는지는 잘 보지 못했다. 마운드에서 160킬로미터 가까운 강속구를 던지면서 거구의 메이저리거들을 삼진으로 잡는 통쾌한 모습에 열광했지만, 그런 공을 던지느라 하도 이를 악물어 나중에는 마우스피스를 끼지 않으면 이가 시려 공을 던지지 못할 정도가 됐다는 건 잘 알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476경기 출전, 287번의 선발 등판. 124번 승리했고 98번 패했다. 1,993이닝을 던지면서 8,714명의 타자를 상대했다. 안타 1,872개를 허용했으며, 1,715개의 삼진을 빼앗았고, 910개의 볼넷을 허용했다. 2016년부터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후보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 박찬호.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남긴 기록 중 어느 것은 소중하고 어느 것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은퇴한 지금, 그가 던진 공 하나하나는 이미 누구도 쉽게 접근하지 못할 역사가 되었다. 그는 정말 멀고도 험한 길을 포기하지 않고 한결같이 진군해 ‘메이저리그 124승’이라는 동양 투수 최고의 기록을 남겼다. LA 다저스 입단식 당시 “꼭 훌륭한 메이저리거가 되겠습니다”라며 온 국민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켜낸 것이다. 이 책은 그 의미 있는 기록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만, 한편으로 그가 걸었던 험로의 숨겨진 노력과 땀과 아픔의 기록을 많은 이들에게 전해주면서 특히 야구선수를 꿈꾸는 아이들과 또 다른 희망과 꿈을 지닌 사람들에게 커다란 귀감을 주는 책이다. 이제 ‘야구선수 박찬호’의 시대는 찬란한 기록과 업적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 한국 야구의 살아있는 전설로 남아 우리 모두에게 야구는 물론 인생에서 꿈과 희망과 목표에 대한 이정표를 보여준 박찬호. 이 책은 승리한 자의 기록이지만 동시에 온전하게 패배할 줄 아는 자의 기록이기도 하다. 동시에 박찬호의 길고 위대한 도전에 함께했던 우리 모두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랜 시간 승리와 패배의 시간을 함께했던 친구가 전하는 선물과도 같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