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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만 남다
양장
홍순관
풍월당 202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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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여는 글 7
여백 13
글씨라는 마을 14
종이 위의 길 15
먹을 갈다 17
숨을 쓰다 19
묵향 20
먹만 남다 21
쓰지 않고 쓴 22
먹은 물이 있어 24
먹은 한지를 만나 25
내 몸에 맞는 27
눈을 감은 듯, 쓰는 29
전체를 보고 31
획을 긋듯 32
그냥 33
글씨를 쓴다는 것은 34
글씨라는 장르 36
서예 39
까다로운 유머 45
슬픈 유머 47
다른 한 세상 49
그들의 선물 53
향기 기운 정서 55
낯선 58
아주 오래된 62
가리지 않는 64
획 하나에 하루가 담기고 66
생긴 대로 68
개, 머루 먹듯 70
글씨체와 건축 72
겉과 속 76
경계 78글을 빼앗기면 80
동주의 떨리는 획 82
조선학교 복도에서 만난 한글서예 84
우리 사이에 86
세종의 언어, 정음 87
정음에서 다시 한글로 90
모어 92
한글서예 94
모음과 자음 99
쉬운 100
여성이 진화시킨 글씨, 한글궁체 103
궁 안, 그 시간에서 나온 109
민체, 그냥 다른 111
저다운 114
글꼴로 가두지 못하는, 글씨 116
문을 열고 나가면 117
말하려는 것 118
모래에 쓴 글씨, 힘을 뺀 힘으로 쓴 121
농현과 발묵 123
붓은 언어가 되어 125
이 세상 모든 글씨 127
붓의 길 128
맺는 글 130
덤, 뒤풀이 일곱 수다
한글서예를 두고 ‘컨템퍼러리’라는, 133

저자 소개 1

열 살에 서예를 배웠고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이후, 35년간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며 15개 국가에서 공연했다. 꽤 다양하고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조그만 작업실에서 혼자 있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음악, 미술 , 무대, 방송 등 다양하게 활동한 경험과 정서를 모아 유일한 분단국가에 아트피스뮤지움을 짓고자 하는 것이 오래된 꿈이다. 지금 용인에서 비영리단체 '춤추는 평화'를 꾸려나가고 있다. 미술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홍순관은 현대무용 무대미술, 행위예술 등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했다. 그러던 그는 돌연 기타를 들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노래하기 시작했
열 살에 서예를 배웠고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이후, 35년간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며 15개 국가에서 공연했다. 꽤 다양하고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조그만 작업실에서 혼자 있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음악, 미술 , 무대, 방송 등 다양하게 활동한 경험과 정서를 모아 유일한 분단국가에 아트피스뮤지움을 짓고자 하는 것이 오래된 꿈이다. 지금 용인에서 비영리단체 '춤추는 평화'를 꾸려나가고 있다.

미술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홍순관은 현대무용 무대미술, 행위예술 등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했다. 그러던 그는 돌연 기타를 들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직접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이고 노래와 반주까지 도맡아 말 그대로 현대의 음유시인이 되었다. 일본군성노예문제를 알리기 위한 공연이 10년, 평화박물관 건립을 위한 공연이 10년, 결식 학생을 돕기 위한 공연이 5년, 그 외에 통일, 환경, 디아스포라 등의 주제로 200회가 넘는 공연을 하며 무심한 세상의 고독한 나팔수를 자처했다. 그렇게 내놓은 정규음반이 10집에 이른다. 싱어송라이터로 알려져 있는 홍순관의 이력은 대부분 동료 이웃을 위해 부른 노래로 가득 채워져 있다. 예술가를 자처하는 많은 이들이 세간의 인기와 금전적 이익을 쫓을 때, 그는 다만 자신이 불러야 할 노래만을 부르고 자신의 만들어야 할 작품만을 만들며 35년의 세월을 묵묵히 걸어온 것이다. 그렇게 음악과 미술과 문학을 아우르며 여러 무대를 넘나든 그의 이력은 모든 예술이 사실 하나이며 각 장르의 표현 방식이란 수단에 불과하고 예술가가 나타내려는 것은 오직 작가의 정신이라는 진실이 뚜렷하게 보인다.

「새의 날개」, 「신의 정원」,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지」, 「저기 오는 바람」 등 12장의 음반과 『춤추는 평화』, 『나는 내 숨을 쉰다』 등 4권의 책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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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9월 3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54쪽 | 320g | 140*205*18mm
ISBN13
9791189346720

책 속으로

시간이 가며 절로 알 수 있었던 것은 흰 종이 위로 먹이 지나간 후에 남는 여백이었다. 한 글자 속에 있는 공간들, 글씨와 글씨 사이를 잇는 보이지 않는 선, 글씨를 둘러싼 예민한 둘레, 붓이 지나간 뒤의 여운, 붓이 만든 종이 위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 p.13

먹은 물이 있어 가능하고 붓은 먹이 있어 가능하다. 먹은 또한 벼루가 있어 가능하고 먹과 붓은 종이가 있어 가능하다. 이토록 떨어질 수 없는 벗도 드물다.
--- p.15

서예는 종이 위의 길을 알아가는 공부다.
--- p.16

먹을 갈 때 생기는 묵향은 노동의 향이요, 그로 인한 묵상의 향이다. 그 은은한 향기가 외로운 ‘서예길’을 걷게 하는 그리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 p.20

먹이 글씨가 되어 남는다. 먹이 뜻이 되어 남는다. 먹이 ‘그 사람’이 되어 남는다. 그리하여 먹을 함부로 종이에 남길 수 없다.
--- p.21

한지는 먹을 마다않고 온전히 받아들인다. 먹을 한지보다 더 드러나지 않게 흠뻑 받아들이는 종이는 없을 것이다. 개미가 제 몸의 몇 곱절 되는 무게를 짊어질 수 있는 것처럼, 한지는 가볍고 얇은 제 몸으로 놀라울 만큼 많은 양의 먹을 한껏 품는다. 함부로 먹을 번지게도 하지 아니하고, 헤프게 퍼뜨리지도 않는다. 지나친 번짐으로 붓의 길을 잃게도 하지 아니하고 야속하게 먹을 밀어내지도 않는다. 그냥 지긋이 머금는다. 그렇게 붓이 거짓으로, 가식으로, 과장으로 가는 길을 막아준다.
--- p.25

‘글씨’라는 말은 참 아름답고 신비하다. 글속에 ‘씨’가 들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말씨’는 말속에 씨가 들어 있다는 뜻이요, ‘마음씨’는 마음속에 씨가 들어 있다는 말이다. 씨는 근본이며, 뿌리가 되는 알맹이고, 열매로 가는 처음이다. ‘마음속 씨’와 ‘말속 씨’가 만나서 피어나는 열매가 글씨다. 그리하여 글씨는 씨도 되고 열매도 된다.
--- p.36

서예는 먹의 아름다운 빛깔로 붓의 유연성을 빌어 시간과 동행하는 유머다. 그 끝에서 헐렁함과 무구함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걷는 걸음과 태도는 꼿꼿하고 정갈해야 한다. 서예는 까다로운 유머다.
--- p.46

자연은 저마다 고유한 숨으로 산다. 사람도 누구나 다른 숨을 쉬며 산다. 그 조화와 어울림으로 지구는 숨을 쉰다. 자연이 부르는 노래와, 자연이 사는 몸짓을 따를 문장은 없다. 하여, 자연스럽고 무심한 문장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이다.
--- p.52

서예로 걸어야 할 길은 다만, 글씨에 내 정신을 어떻게 담느냐, 무엇을 담느냐에 있다.
--- p.54

어느 날, 종이에 쓴 글씨가 슬프게 보일 때가 있다. 먹이 획이 글자가 종이가 슬프게 보인다. 문자와 종이에 담긴 시간들을 읽어서다. 그 시간 속에서 유한한 인간의 역사가 비춰져서다. 글 쓰는 이가 서예를 통해 연민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움튼 연민이 문향과 문기와 문정을 만든다.
--- p.57

서예가 낯선 것은 우선, 학교나 주위에서 잘 배우지 못해서다. 한글서예에 대한 무관심도 있겠다. 그것은 한편으로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독특한 문명인 한글에 얼굴을 돌린 채 살아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학교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해서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는다.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은 흐릿해지듯, 가장 가깝고 귀중한 우리문자 한글에 소홀한 것이다.
--- p.59

그리스어가 어원인 ‘캘리calli(아름다운) 그래피graphy(쓰는 것)’는 글자 그대로 ‘아름답게 글씨를 쓰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한국에서 두루 쓰이는 캘리그래피는 글씨를 예쁘게 보이려는 것에 집중하여 겉치장이나 외모에 신경을 쓴다. [...] 캘리그래피와 서예는 그 가는 길도 다르거니와 그 결도 사뭇 다르다. 캘리그래피가 아름다운 글자를 쓰는 것이라면, 서예는 아름다운 정신을 쓰는 것이다. 글씨의 ‘겉’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씨의 ‘속’을 쓰는 것이 서예다.
--- p.76

어느 해인가 우연히 조선학교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 복도에서 만난 붓글씨. ‘조선은 하나다’ ‘우리는 하나다’ 울컥했던 순간이다. 가슴이 일렁이고 묵직한 감동이 온 몸에 퍼졌다. “아, 여기에 있었구나. 바로 이곳 조선학교에선 우리 한글서예가 살아 있었어.” 학생들이 쓴 글씨와 마주한 것은 우리 역사와 마주한 것이고, 한반도 현실과 마주한 것이며, 재일조선인들의 세월과 또한, 우리 한민족의 미래와 마주한 것이었다.
--- p.84

세종이 백성에게 가르치려고(훈민) 했던 글자는 ‘정음’이었다. 정음은 글자 그대로 ‘옳은 소리’다. 백성들이 하는 말을 문자로 만들었으니 이 땅에 일상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말로 생각하고, 우리말로 말하고, 우리글로 쓰게 된 것이다.
--- p.89

세종이 지독한 한자권력에서 모든 사람을 언어로 해방시킨 ‘혁명의 언어’를 만들었다면, 주시경은 실제로 한국인이 쓰고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일상의 언어’를 선물했다. 그가 지키려고 애썼던 한글도 세종시대 못지않은 개혁이었다. 그는 정음이라는 씨앗을 터뜨렸다. 그리고 고이 길러 한글로 피워냈다. 잠자던 ‘정음’을 ‘한글’로 부활시켰다.
--- p.91

‘모어’는 ‘모국어’와 그 개념이 다르다. 말은 엄마에게 배운다. [...] 모어는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눈을 마주친 엄마에게 듣고 배운 말이다. 모어는 자궁으로부터 배우는 언어다. 모어는 한 인간의 언어씨앗이다.
--- p.92

무엇보다 한글서예를 말하는 이유는, 거듭 강조하지만 서예는 내 생각을 쓰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 p.96

한글을 연민의 문자라고 했는데, 그런 면에서 한글은 평등의 언어요, 낮은 자들을 위한 언어다. 바로 그 중심에 여성들이 있다. 그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역설적이면서도 위대한 역사다. 양반 남성들에게 한글이 애물단지였다면, 여성들에게 한글은 자식 같은 존재였다. ‘암클’이라고까지 하며 한글을 낮춰 부른 시대상황을 눈여겨본다면, 남성들에게 한글은 내놓은 자식이었고, 그 불쌍한 존재를 여성들이 품고 아껴 키운 것이다.
--- p.107

궁체는 아침세수를 한 듯 산뜻하고, 저고리 선처럼 가지런한 글씨다. 자상하고 민감하며 꿋꿋하고 섬세하다. 궁체는 그 글꼴이 정숙하면서도 강직하여 고요하면서도 은근한 울림이 있다. 한편, 조심스러운 궁 안 생활이 있어 긴장감이 없지 않지만, 특유의 여성성과 모성애가 닿아 모음과 자음을 어루만지듯 자상한 글꼴을 유지한다. 한결같으나 리듬감이 살아 있다. 고아하면서도 통속적인 글꼴로 부담이 없다. 그 글씨는 흐트러짐이 없고 총명하며 세심하면서도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과연 한글글씨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 p.108

이른바, 민체는 자연스러운 파격이 풍성한 동산이다. 올라갈 수도 없는 높고 뾰족한 곳이 아닌, 나지막한 데다 바로 뒤에 있어 전혀 부담이 없는 마을동산처럼 민체가 보여주는 글씨는 살갑고 정답다. 그러나 파격이라고 할 만큼 저마다 글씨가 제멋대로여서 속없는 웃음을 자아낸다. 사람마다 쓰는 말이 다르듯, 집집마다 웃음소리가 다르듯, 민체에는 저마다 고유한 생김새가 있다. 글씨가 서툴지만 문맹을 벗어나고픈 비장함이 없다. 오히려 과하지 않은 유머가 비친다.
--- p.112~113

씨앗을 뿌리던 손이 쓴 글씨요, 빨래하던 손이 쓴 글씨요, 설거지하던 손이 쓴 글씨요, 나무하던 손이 쓴 글씨요, 밭을 갈던 손이 쓴 글씨다. 민체는 글씨 그대로 우리 삶이요, 우리 숨이다. 그리하여 우리 글씨다.
--- p.113

우리 눈앞에 역사청산, 분단, 통일, 평화라는 숙제가 놓여 있다. 이렇게 쌓인 문제들을 뒤로하고 서예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산수와 격언에 갇혀 있다는 것은 고루함을 넘어 신랄하게 말한다면 죄다.
--- p.119

농현의 유연성도 연주자의 손에 달려 있다. 그 감정에 실린 떨림으로 다른 음악이 된다. 연주자마다 정서와 톤과 음색이 다른 이유다. 때론 작은 파문처럼, 때론 거센 파도처럼, 때론 호수처럼, 때론 시냇물처럼 곡을 연주하는 농현弄絃이 곧, 글씨를 만드는 먹과 붓의 어울림이다.
--- p.124

이 세상 모든 글씨가 선생이고 스승이다. 다른 만큼 스승이고 다른 만큼 선생이다.
--- p.127

글씨를 쓴다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다름’을 공부하는 일이다.

--- p.127

출판사 리뷰

고요한 마음과 뭉근한 열기

홍순관의 한글서예 에세이 『먹만 남다』는 독특한 울림을 가진다. 낭송하고픈 마음을 불러내는 문장들의 음조는 고요하고 그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마치 먹을 가는 것처럼, 글씨를 쓰는 것처럼 홍순관의 글은 내용만이 아니라 상황이며 분위기까지 통으로 옮겨 놓는다. 글이 정갈하다는 것은 불필요한 미사여구가 없이 맑다는 것이요, 쉬이 흐르기보다 머물러 있는 듯한 정적인 느낌은 느림을 기꺼이 머금어 가벼움에 저항하겠다는 뜻이다. 맑음과 무게감의 병행이라는 독특한 운치가 그의 글에 살아 있다. 글 쓴 사람의 마음과 글이 함께 하고 쓰인 내용이 말하는 대상과 함께 하기에 그 운치는 그저 휘발되지 않고 그윽한 묵향처럼 책 전체를 아우른다.

그러나 그의 글에는 잘 다스린 불꽃의 이글거림이 숨겨져 있다. 오래 데운 뭉근한 열기다. 한글 서예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오랜 세월을 만나 변한 형태다. 읽는 이를 다치게 하지 않으나 글쓴이 안에 오래 살아 있는 사랑과 열정을 기꺼이 전달하겠다는 사람다운 온기가 그의 숨결 안에 깃들어 문장 너머로 전달된다.

노래처럼, 몸처럼

홍순관의 에세이 『먹만 남다』에는 공감각적 상상력이 깃들어 있다. 서예만큼이나 길었던 노래의 이력 때문인지 처음에 고요하던 그의 글에는 점점 굽이치는 가락이 생겨나고 거기 시간이 와 엮인다. 서예에 대한 고요한 묵상이 이 책의 시작이라면 중후반부터는 보통 사람들이 제 뜻을 펼칠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춤의 기운을 신명으로 풀어놓는다.

아마도 저자 홍순관은 그가 쓰는 에세이의 내용과 그 대상인 한글서예가 한 가지로 공명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한글서예의 어떠함이 그의 에세이와 그 문장에도 반영되게끔 고심한 흔적이 그리 길지 않은 이 책 안에 그득하다. 한글서예의 획마다 고요함와 세참, 안온함과 거친 생명력이 모습을 드러내듯이 그의 글 안에도 같은 변화가 미묘하게 넘실거린다. 특별히 그가 서예라는 고즈넉한 공간을 떨치고 나와 우리 민족과 우리 나라와 우리 사람의 지금, 여기에 대해 말할 때 그의 문장은 보다 더 음악을 닮아 넘실거린다. 현재화되는 것이고, 더 뜨거워지는 것이며 노래처럼 공간을 굽이치며 퍼져나가는 외침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글씨와 글을 기호로 보지 않고 하나의 기운이요 생동하는 힘으로 보는 것은 『먹만 남다』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그의 글은 육화된다. 마치 먹이 몸인 것처럼, 그 몸의 흔적이 글씨에 남는 것처럼, 한지가 제 몸으로 물에 스민 먹의 몸을 끌어안는 것처럼, 사람의 뜻도 행위를 통해 시간에 흔적을 남긴다. 물론 이 또한 저자 홍순관의 이력에서 비롯하는 독특한 개성이다. 조소를 전공하고 공간을 다루는 예술에 몸 담았기에 그의 글은 살에 닿는 감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촉각을 생생하게 피워낸다. 그의 글에는 체온 같은 것이 있어 그 따뜻함이 일정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면은 글쓰기의 지향과 관련된 부분이다. 홍순관은 실천적으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우리 눈앞에 역사청산, 분단, 통일, 평화라는 숙제가 놓여 있다. 이렇게 쌓인 문제들을 뒤로하고 서예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산수와 격언에 갇혀 있다는 것은 고루함을 넘어 신랄하게 말한다면 죄다.” 그러니 한글서예란 관념일 수가 없다. 내 피부에 와 닿는 것이어야 한다. 모어로 쓴다. 내 몸을 거쳐 나온 것을 쓴다. 내 현실을 반영한 것을 쓴다. 그러나 정갈하게 다뤄내어 고요한
가운데 쓴다. 그의 글이 육화되는 글이라면 응당 읽는 이에게 삶으로 응답할 것을 촉구하기 마련이다. 그는 우리 글에 대한 관념적 사랑을 한글서예를 향한 눈과 손과 숨의 사랑으로 옮겨내기를 힘있게 권한다. 무엇을 쓸 것인가 고민하고 삶을 돌아보며 그렇게 쓰고 쓴 대로 산다. 그렇다면 이것이 곧 한글서예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의 글에서 글씨라는 이미지, 시간과 한데 엮이는 굽이치는 음악, 피와 온기가 머물러 있는 살의 감촉이 동시에 전달된다. 공감각적으로 한데 열려 있기에 그의 글은 굳이 시의 형식을 취하지 않았더라도 시를 닮았다.

한글날을 맞이하여 한글서예를 생각하다

풍월당은 홍순관의 『먹만 남다』를 10월 9일 한글날에 맞춰 출간한다. 한글서예는 세종께서 창제하신 훈민정음의 본뜻을 되살리고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맞서 우리 한글을 지켜낸 선각자들의 정신을 오늘날 여전히 이어가려는 실천적 삶의 일부다. ‘훈민정음’에는 백성을 가엾이 여기는 연민의 정신이 들어 있었다. 홍순관은 이 연민의 정신을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한글서예를 포함한 모든 예
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말한다. 그의 수십년 노래 인생도 같은 것을 지향해 왔고, 그의 이번 책에도 그 울림은 여전하다.

홍순관의 이번 책은 한글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지향을 던져 준다. 우리 시대에 맞는 우리 한글은 어떤 모습일까. 이 책 말미에 우리 시대의 한글서예를 고민하는 ‘수다’ 일곱 마당을 추가한 것도 그런 뜻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한글 사랑을 어떻게 현실에서 풀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새로운 취향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다듬어 새로운 세대를 길러내는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을까. 이 에세이는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맑고도 무게 있는 질문을 남겨 놓는다.

한글 서예 전시회도 함께 열려

이번 출간과 함께 홍순관의 한글서예 작품 세계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전시회도 열린다. 누구나 배워 쓰기 쉬우나 구성은 단촐하다 여겨지는 한글로 작가 홍순관은 그동안 어떤 붓의 길을 만들어 왔을까. 『먹만 남다』가 한글서예에 관한 홍순관의 뜻을 한 권의 책에 모은 것이라면 이번 전시회는 그 뜻이 종이 위에서 실현된 바를 하나의 시공간에 모아 겪어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글로 알게 될 뿐 아니라, 눈으로, 마음으로, 온 몸으로 끌어안는 데까지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열게 된 전시다. 전시회를 기해 도록 『저녁 꽃을 아침에 줍다』(풍월당)도 함께 출간된다. 전시회 장소와 기간은 아래와 같다.

일시: 2024년 9월 28일(토) ~ 2024년 10월 10일(목): 매일 오전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
장소: 아르떼숲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인사동5길 12)
문의: 010-3331-7490 (박혜정) / 02-512-2356 (풍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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