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작가, 여는 글
글씨를 본다는 것은 6 노랫말과 한글서예 가장 먼 거리 10 가장 먼 거리 12 작품 16 노랫길 서옛길 106 |
홍순관의 다른 상품
|
그냥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일을 그냥 모르고 하는 것입니다. 바람 계절 아침 숨 같은 것입니다. ---「그냥_2022_ 65cmX95cm」중에서 글씨를 쓴다는 것은 글씨를 쓴다는 것은 글씨와 노는 것이다. 글씨와 놀다보면 글 씨는 노래가 되고 춤 이 되고 그리하여 글씨는 내가 된다 ---「글씨를 쓴다는 것은_2022_70cmx100cm」중에서 나도 모르게 돕는 일을 할 때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은 남모르게 하라는 말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하라는 말이다. 그냥 하라는 말이다. 나도 모르게_2022_50cmx91cm 먹만 남다 서예에서 결국 남는 것은 먹이다. 먹은 글씨요, 글씨는 뜻이다. 뜻도 글씨도 먹이 없다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글씨의 획을 긋기 위해 붓이 지나간 자국은 빠름과 느림, 셈과 여림으로 남는다. 빨리 지나간 곳과, 잠시 멈춘 곳과, 머문 곳과, 다시 움직인 곳이 때론 은근히 때론 뚜렷이 보인다. 이렇게 획이 지나간 시간에서 붓을 들었던 사람의 시간도 그대로 남게 된다. 먹이 있어서다. 붓을 빌려 먹이 보인다. 먹을 빌려 뜻이 보인다. 종이에는 붓이 보이지 않고 먹만 남는다. 끝내 먹으로 인해 뜻이 남는다. 이처럼 인생도, 그 몸이 사라진 후에 그가 행한 일만 남는다. 그 뜻만 남게 된다. 먹이 글씨가 되어 남는다. 먹이 뜻이 되어 남는다. 먹이 ‘그 사람’이 되어 남는다. 그리하여 먹을 함부로 종이에 남길 수 없다. ---「먹만남다_2024_40cmx79cm」중에서 무명초는 무명초는 바람이나 만들지 하루종일 ---「무명초는_2013_36cmx37cm」중에서 묵향 먹을 가는 일은 이 세상에 새로 생길 글씨를 만나러가는 첫 걸음이다. 먹을 갈면서 무거운 일상에서 무심한 세상으로 건너간다. 먹을 갈면서 생기는 무심함은 노동의 단순함에서도 오지만, 그윽한 묵향이 한 몫 한다. 묵향은 그냥 냄새만으로 그치지 않고 서예를 대하는 마음과 자세까지 다잡는다. 깊고 짙은 먹색에서 나는 향은 나무그늘 냄새 같아 묵묵한 묵상에 잠기게 한다. 묵향은 먹을 갈 때 비로소 생긴다. 담담한 노동에서 나오는 만큼 그 향은 순하면서 깊다. 묵향은 그래서 밥 냄새 같다. 정성스레 쌀을 씻고 안친 밥은 마침내 솥 안에서 뜸을 들이며 밥내를 풍긴다. 지긋한 향이다. 들판냄새 바람냄새 농부냄새가 거기 있다. 밥을 짓지 않으면 밥내를 모른다. 이미 만들어진 밥에선 향을 맡기 어렵다. 먹을 갈 때 생기는 묵향은 노동의 향이요, 그로인한 묵상의 향이다. 그 은은한 향기가 외로운‘서예길을 걷게 하는 그리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묵향_2024_40cmx82cm」중에서 봄은 침묵으로부터 온다 봄은 겨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침묵으로부터 온다 ---「봄은 침묵으로부터온다_2023_62cmx81cm」중에서 숨 내 숨을 쉬는 것이 숨 막히는 세상을 향한 가장 쉬운 혁명이요, 가장 치열하고 엄숙한 혁명입니다. ---「쉬운 혁명_2016_27cmx38cm」중에서 슬픈 유머 시는 슬픈 유머입니다. 자연을 넘지도 못하고, 평범한 일상을 쫓아가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과 자연을 시보다 더 신랄하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장르도 없습니다. 서예도 문자라는 문명에서 태어나 자라납니다. 탁월한 서예라고 하더라도 문자 자체보다 위대할 수 없고, 아무리 빼어난 문장이라도 인생 자체보다 진할 수는 없습니다. 무덤가에 묘비명이 근사하게 생을 포장하였어도 정작 그 무덤 속에 잠든 인생보다 더 은유적이고 극적일 수 없듯이 말입니다. 서예는 문자라는 문명을 꽃피우는 슬픈 유머입니다. 서예가 문자라는 문명을 넘어설 수는 없으나, 문자를 서예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하는 장르는 없을 테니까요. ---「슬픈유머_2024_67cmx94cm」중에서 |
|
작가의 말
도록 『저녁 꽃을 아침에 줍다』라는 제목은 루쉰 글에서 가져왔습니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입니다. ‘지켜봄’과 ‘기다림’의 뜻이 담겨 있지요. 제가 도록 제목으로 빌려 쓰며, ‘아침 꽃’을‘저녁 꽃’으로 바꾼 것은 아예 버려진 존재들을 살리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밀려난 이웃과 사회 뿐 아니라, 글씨도 쓰다보면 버려진 글씨들이 많습니다. 그러나‘그런 하루를 살아낸’ ‘내가’ 쓴 것이기에 함부로 버릴 수 없는 글씨들이요, 다시 살리면 근사한 글씨가 될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향했던 관심과 사랑이 여기 글씨로 모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재주가 많았습니다. 음악과 미술과 문학 등에서 두루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게다가 개별 장르 안에서도 창작과 연주와 행위에 심지어 연출까지 망라하는 솜씨를 발휘하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좋은 뜻으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옛 말에 한 가지 재주가 있으면 밥을 먹고 살지만, 열 가지 재주가 있는 사람은 빌어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제가 우리 어머니로부터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입니다. 잘할 수 있는 것이 많다가 보니, 한 가지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그래서 한 자리에 안주할 수도 없다는 말일 겁니다. 그의 지나온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에게는 죄송하나 듣는 내내 떠오른 것은 저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그가 걸어온 길과 제 족적의 흡사함 속에서 저는 계속 솟아오르는 저의 기억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습니다. 서로가 걸어온 방향이 비록 다르지만, 궤적의 흡사함은 마치 저의 과거를 들킨 것 같아 제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환갑을 맞았을 때, 같은 도시 빈에서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던 정신분석가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용기를 내어 그에게 축하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에서 프로이트는 자신과 너무나 흡사하여 도플갱어처럼 느꼈던 슈니츨러를 애써 피하려고 했다는 그간의 속내를 고백했습니다. 프로이트는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이고 슈니츨러는 소설가라는 각기 다른 분야에 있었지만, 슈니츨러가 소설에서 보여주던 인간에 대한 견해를 읽은 프로이트는 자신과 참으로 흡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프로이트는 닮았다는 부끄러움이 그에게 쉽게 다가가는 것을 막았다고 밝힌 것이죠. 저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슈니츨러를 만난 프로이트의 심정이 연상되었습니다. 물론 그의 활동은 저에 비해서 모든 면에서 훨씬 도전적이며, 성취는 더욱 크고, 완성도도 아주 높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호사가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저와는 비교할 것이 되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감히 저와 비유한 점을 널리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 그는 중학교 시절 음악선생님의 눈에 띄어 선생님의 짧은 지도 끝에 성악대회에 나아가 최고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음악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음악세계로 들어갑니다. 미션스쿨인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성가를 불러서 온 학교를 휘어잡습니다. 책가방 대신에 기타를 들고 등교를 해도 아무도 제지하지 못하는 면죄부를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부여받습니다. 그렇게 학교의 음악 스타이면서 동시에 특출 난 미술의 재능을 보입니다. 당대 최고의 경지에 있었던 서예의 대가였던 그의 아버지는 귀한 아들을 곁에 두고 싶어 했습니다. 반면 그런 아들이 종종 그러듯 그는 아버지로부터 달아나 서울로 갈 궁리만 했습니다. 방법은 그의 고향 대학에는 없었던 전공을 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조소를 선택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조소 전공으로 미대에 진학합니다. 그리고 대학축제에서 미술전공임에도 넘치는 의욕과 재능으로 행위미술을 공연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뉴욕에서 귀국한 무용과 교수님이 그의 공연을 보고 커다란 인상을 받습니다. 이후로 교수님이 제작하는 많은 현대무용 공연에서 그는 무대미술을 도맡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남을 위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기타를 들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청을 높였습니다. 자신이 작사와 작곡에 노래와 반주까지 한 것이죠. 일본군성노예문제를 알리기 위한 공연이 10년, 평화박물관 건립을 위한 공연이 10년, 결식학생을 위한 공연이 5년에다, 그 외에 통일, 환경, 디아스포라 등 200회가 넘는 공연을 하며 무심한 세상의 고독한 나팔수를 자처했습니다. 그렇게 내놓은 정규음반이 10집에 이릅니다. 또한 전공을 살려서 자신만의 설치미술 세계에 탐닉합니다. 예술가를 자처하는 많은 이들이 세간의 인기와 돈을 쫓을 때, 그는 다만 자신이 불러야 할 노래만을 부르고 자신의 만들어야 할 작품만을 만들며 35년의 세월을 묵묵히 걸어왔습니다. ? 그렇게 음악과 미술과 문학을 아우르며 여러 무대를 넘나든 그를 바라보면, 모든 예술은 사실 하나이며 어떤 장르에서 무엇을 표현하더라도 그런 것은 모두 수단에 불과하고 예술가가 나타내려는 것은 작가의 정신이라는 진실이 뚜렷해집니다. 그는 오직 자신의 내면에서 터져 나와서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만을 노래하며 여기까지 걸어 왔습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서예를 통해서 새로운 말을, 그만의 세계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이어온 그의 혈관에 흐르는 서예를 향한 뜨거운 사랑과 분출하는 열정의 작품들입니다. 긴 시간 동안 제가 짐작도 할 수 없는 추위와 외로움 속에서 탄생했을 노고의 소중한 결과물들입니다. 한글을 자랑하고 내세우면서도 정작 우리가 별반 주목하지 못했던 한글서예 분야에 획을 긋는 새로운 깨달음의 잔치가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번 전시는 평생 세상과 남을 위한 노래만 불러왔던 그가 비로소 내놓은 자신을 위한 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 박종호 (풍월당 대표) 한글 서예 전시회도 함께 열려 이번 출간과 함께 홍순관의 한글서예 작품 세계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전시회도 열린다. 누구나 배워 쓰기 쉬우나 구성은 단촐하다 여겨지는 한글로 작가 홍순관은 그동안 어떤 붓의 길을 만들어 왔을까. 『먹만 남다』가 한글서예에 관한 홍순관의 뜻을 한 권의 책에 모은 것이라면 이번 전시회는 그 뜻이 종이 위에서 실현된 바를 하나의 시공간에 모아 겪어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글로 알게 될 뿐 아니라, 눈으로, 마음으로, 온 몸으로 끌어안는 데까지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열게 된 전시다. 전시회를 기해 도록 『저녁 꽃을 아침에 줍다』(풍월당)도 함께 출간된다. 전시회 장소와 기간은 아래와 같다. 일시: 2024년 9월 28일(토) ~ 2024년 10월 10일(목): 매일 오전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 장소: 아르떼숲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인사동5길 12) 문의: 010-3331-7490 (박혜정) / 02-512-2356 (풍월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