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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문 ⅴ
‘독도, 영토의 시작’ 국민운동을 주창하며 추천사 ⅹⅴ 머리말 ⅹⅹ 제Ⅰ부 근대 일본의 영역 확정 제1장 이도(離島)의 일본영역 편입 … 야나기하라 마사하루(柳原正治) ― 이오토와 미나미토리시마를 중심으로 해서 ― 1. 시작하며 3 2. 이오토(硫黃島) 5 3. 미나미토리시마(南鳥島) 17 4. 마치며 35 제2장 류큐(琉球) 귀속문제와 어니스트 사토우 … 모리 다다시(森肇志) ― 일청(日淸) 신문 논전에 대한 평가 및 그 배경 ― 1. 시작하며 39 2. 사토우 각서의 대상 및 일청 신문 논전 46 3. 일청 신문 논전에 대한 평가 53 4. 사토우 각서에 의한 평가의 배경 62 5. 마치며 72 제Ⅱ부 근대 일본의 영역적 외연 제3장 일본의 ‘식민지’ 획득과 법칙 … 야마다 데쓰야(山田哲也) 1. 시작하며 77 2. 헌법·국제법과 주권 80 3. ‘외지(外地)’의 형성과 그 개념 87 4. 외지법의 체계화와 문제점 104 5. 마치며 107 제4장 근대 일본에서 본 조차(租借) 개념 … 사사키 유이치(佐?木雄一) 1. 시작하며 111 2. 중국에서 생긴 조차 1117 3. 조차의 성질을 둘러싼 세계의 학설 118 4. 근대 일본의 조차 개념 이해 121 5. 마치며 146 제Ⅲ부 영역분쟁에서의 의사·시간 제5장 영역문제에서의 ‘법’에 입각한 주장 … 가네하라 아쓰코(兼原敦子) 1. 이 장의 주제 151 2. 법과의 관계의 청구 154 3. 법과의 관계 결정에 관계되는 주요소―의사·시간 173 4. 영역분쟁에서의 「의사의 작용」이라는 요소의 재검토 180 5. 마치며 183 제6장 영역분쟁에서의 침묵의 의의 … 기타무라 도모후미(北村朋史) ― 센카쿠 제도(尖閣諸島)에 관한 ‘75년의 침묵’의 법적 구성을 위해 ― 1. 시작하며 187 2. 제2차 세계대전 전의 판례와 학설 190 3. 국제사법재판소 초기의 판례 208 4. 마치며 226 제7장 영역분쟁에서의 시간적 요소와 그 규율 … 사카이 히로노부(酒井啓亘) ― 일본 영토문제에 대한 구체적 적용에 대해 ― 1. 시작하며 229 2. 재판실례에서의 결정적 기일과 시제법 원칙의 작용 230 3. 영역분쟁 판례에서 보는 결정적 기일과 시제법 원칙의 적용과 그 특징 234 4. 일본 영토문제에 대한 결정적 기일과 시제법 원칙의 적용 246 5. 맺으며 259 제Ⅳ부 국제재판에서의 영역분쟁 제8장 국제재판에서의 ‘전근대/비유럽 영역지배’의 원용과 평가 … 후카마치 도모코(深町朋子) 1. 시작하며 265 2. 전근대/비유럽 영역지배를 다룬 국제 판례 269 3. 영역귀속 판단과 전근대/비유럽 영역지배 288 4. 맺으며 296 제9장 국제재판에서의 영토주권분쟁의 존재인정 · 다마다 다이(玉田 大) ― 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에서의 연안국소송 이용 ― 1. 시작하며 299 2. 국제법상의 분쟁 발생기준 301 3. UNCLOS 연안국소송 308 4. 독도에 관한 영토주권분쟁의 존재인정 320 5. 마치며 326 후기 327 판례색인 333 집필자 일람 (집필순) 335 역자 소개 338 도움을 주신 분들 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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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청강화조약(1895년 4월 17일 서명, 동 5월 8일 효력 발생) 제1조에서 “청국은 조선이 완전무결한 독립자주의 국(國)임을 확인하고 이로써 우(右) 독립자주에 손해를 끼치는 조선국으로부터 청국에 대한 공헌전례(貢獻典禮)등은 장래 완전히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해서, 청한의 조공(朝貢)=책봉체제(冊封體制)를 부정한 것은 그 후의 한국병합을 향한 큰 발판이 되었다.
--- p.89~90 포츠머스조약도 “로서아(露西亞)제국 정부는 일본국이 한국에 있어서 정사(政事)상, 군사상 및 경제상의 탁절(卓絶, 탁월)한 이익을 갖는 것을 승인하고 일본제국 정부가 한국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지도, 보호 및 감리의 조치를 집행하는 데 있어서, 이를 막고 방해(阻?)하거나 또는 이에 간섭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제2조)고 규정하고 있어, 일로전쟁은 조선반도에서의 양국의 패권을 둘러싼 것이었다. --- p.97 메이지 시대 일본 외교에 있어서의 과제 혹은 일중 및 일로 간에서의 현안은 조선의 취급이었다. 그 의의나 경위는 생략하지만 여기에서 조선의 국제법상의 지위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겠다. 원래 1871년 7월 29일 체결된 일청수호조규(日淸修好?規) 제1조는 조선을 염두에 두고 청에 “속屬하는 방토邦土(漢譯에서는 所屬邦土)”에 대한 불가침을 규정하고 있다. 이 조문에서 청이 당시의 조선을 완전한 주권국가가 아니라고 간주하고 있었던 것이 추찰(推察)되지만, 1876년 2월 체결된 일조수호조규(日朝修好?規) 제1조는 “조선국은 자주自主의 방邦으로서 일본국과 평등한 권權을 보유한다(朝鮮國ハ自主ノ邦ニシテ日本國ト平等ノ權ヲ保有セリ)”고 규정하여, 일본으로서는 조선이 독립주권국가라고 하는 인식, 바꿔 말하면, 청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기대를 안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조선 자신은, 적어도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주권국가 관계가 성립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구래의 교린관계의 회복으로 인식하고 있어, 일조 양국의 이해에는 현저한 격차(懸隔)가 있었다. 그 후의 미조수호조약(米朝修好條約, 1882년) 등을 통해 구미 제국은 한성(현재의 서울)에 공사관을 개설한다. 이러한 사실에서 여러 외국은 조선을 국제법상의 국가로 간주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청에 있어서 조선은 계속해서 속국이며, 다만 통상의 정무 처리에 있어서는 자주를 인정하는 ‘속국자주(屬國自主)’라는 관계를 유지했다. 그 후, 일청강화조약日淸講和?約(1895년)에 의해 전통적인 청한淸韓관계가 소멸하고, 나아가 포츠머스조약(1905년)에서 조선에서의 일본의 러시아에 대한 우위가 결정적이 됨에 맞추어 일본은 조선을 보호국화 한다. 1904년 2월 체결된 일한의정서 제1조는 “대한제국 정부는 대일본제국 정부를 확고히 믿고 시정(施政) 개선에 관해 그 충고를 받아들인다”고 규정했다. 나아가 같은 해 8월 체결된 제1차 일한협약에서는 재무고문과 외교고문의 수용을 인정케 하고, 1905년 11월 체결된 제2차 일한협약에 있어서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다. 이 일련의 흐름의 배경에 일영동맹(1902년)이나 가쓰라·태프트협정(1905년)을 통한 영미의 지지·승인이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1907년 7월 체결된 제3차 일한협약에서 더욱 한국내정 전반에 대한 일본인의 관여를 확대하게 되어 제1차 일한협약에 입각한 재무고문·외교고문 제도는 폐지되었다. 그리고 1910년 8월 22일 일한병합조약日韓倂合?約이 조인된다(공포는 8월 29일). 그 제1조는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全部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하고 영구히 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한다(韓國皇帝陛下ハ韓國全部ニ關スル一切ノ統治權ヲ完全且永久ニ日本國皇帝陛下ニ?與ス)”, 또 제2조는 “일본국 황제 폐하는 전조에 게재한 양여를 수락하고 또 완전히 한국을 일본제국에 병합하는 것을 승낙한다(日本國皇帝陛下ハ前條二?ヶタル?輿ヲ受諾シ且全然韓國ヲ日本帝國二?合スルコトヲ承諾ス)”고 규정하고 있다. --- p.98~100 메이지 시대 일본 외교에 있어서의 과제 혹은 일중 및 일로 간에서의 현안은 조선의 취급이었다. 그 의의나 경위는 생략하지만 여기에서 조선의 국제법상의 지위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겠다. 원래 1871년 7월 29일 체결된 일청수호조규(日淸修好?規) 제1조는 조선을 염두에 두고 청에 “속屬하는 방토邦土(漢譯에서는 所屬邦土)”에 대한 불가침을 규정하고 있다. 이 조문에서 청이 당시의 조선을 완전한 주권국가가 아니라고 간주하고 있었던 것이 추찰(推察)되지만, 1876년 2월 체결된 일조수호조규(日朝修好?規) 제1조는 “조선국은 자주自主의 방邦으로서 일본국과 평등한 권權을 보유한다(朝鮮國ハ自主ノ邦ニシテ日本國ト平等ノ權ヲ保有セリ)”고 규정하여, 일본으로서는 조선이 독립주권국가라고 하는 인식, 바꿔 말하면, 청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기대를 안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조선 자신은, 적어도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주권국가 관계가 성립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구래의 교린관계의 회복으로 인식하고 있어, 일조 양국의 이해에는 현저한 격차(懸隔)가 있었다. 그 후의 미조수호조약(米朝修好條約, 1882년) 등을 통해 구미 제국은 한성(현재의 서울)에 공사관을 개설한다. 이러한 사실에서 여러 외국은 조선을 국제법상의 국가로 간주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청에 있어서 조선은 계속해서 속국이며, 다만 통상의 정무 처리에 있어서는 자주를 인정하는 ‘속국자주(屬國自主)’라는 관계를 유지했다. 그 후, 일청강화조약日淸講和?約(1895년)에 의해 전통적인 청한淸韓관계가 소멸하고, 나아가 포츠머스조약(1905년)에서 조선에서의 일본의 러시아에 대한 우위가 결정적이 됨에 맞추어 일본은 조선을 보호국화 한다. 1904년 2월 체결된 일한의정서 제1조는 “대한제국 정부는 대일본제국 정부를 확고히 믿고 시정(施政) 개선에 관해 그 충고를 받아들인다”고 규정했다. 나아가 같은 해 8월 체결된 제1차 일한협약에서는 재무고문과 외교고문의 수용을 인정케 하고, 1905년 11월 체결된 제2차 일한협약에 있어서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다. 이 일련의 흐름의 배경에 일영동맹(1902년)이나 가쓰라·태프트협정(1905년)을 통한 영미의 지지·승인이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1907년 7월 체결된 제3차 일한협약에서 더욱 한국내정 전반에 대한 일본인의 관여를 확대하게 되어 제1차 일한협약에 입각한 재무고문·외교고문 제도는 폐지되었다. 그리고 1910년 8월 22일 일한병합조약日韓倂合?約이 조인된다(공포는 8월 29일). 그 제1조는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全部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하고 영구히 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한다(韓國皇帝陛下ハ韓國全部ニ關スル一切ノ統治權ヲ完全且永久ニ日本國皇帝陛下ニ?與ス)”, 또 제2조는 “일본국 황제 폐하는 전조에 게재한 양여를 수락하고 또 완전히 한국을 일본제국에 병합하는 것을 승낙한다(日本國皇帝陛下ハ前條二?ヶタル?輿ヲ受諾シ且全然韓國ヲ日本帝國二?合スルコトヲ承諾ス)”고 규정하고 있다. --- p.37~38 식민지 지배를 허용한 근대 국제법은 식민지에 진출한 구미제국(민)의 권익을 확보한다고 하는 불평등(조약) 체제를 지탱하는 것이었다. 일본이 그와 같은 근대 국제법을 수용하고, 스스로가 체결한 불평등조약의 개정에 매진하는 한편, ‘식민지’ 획득을 포함한 스스로의 권익 신장에 있어서 근대 국제법의 논리를 어떻게 활용하고, 관계국과의 교섭에 임했는가. --- p.109 독도문제에 대해서는 일본과 한국이 상기의 요건을 만족할만한 주장을 설득적으로 행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시제법 원칙의 기능에 의존하게 된다. 독도에 대해 일본 정부는 1905년의 영토편입 조치로 역사적 권원이 재확인되었다고 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이러한 편입 조치와 그 후의 국가권능의 계속적 표시는 17세기 당시의 국제법에 합치하여 유효하게 설정된 권원을 현대적 요청에 응해 대체하는 데 충분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그 일례이지만, 일본 측은 시제법 원칙에 따라, 항상 그 시대의 법에 의해 규율되는 요건을 충족해왔다는 것을 정성껏 논증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주장을 그러한 요건과 합치한 실행에 의거해 갈 필요가 있다. --- p.252~253 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에 연안국소송을 제기할 때, 우선은 UNCLOS 분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전제이다. 독도 주변 해역에 대해 개개 해역별로 검토해 두자. 첫째, EEZ에 관해서는 일한어업협정(1998년)으로 잠정수역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경계획정이 이루어져 있다(7조1항, 7조2항). 다만, 독도를 포함하는 잠정수역 내에서는 경계획정은 이루어져 있지 않다. 또, 잠정수역 내에서는 일한 함께 “타방 체약국의 국민 및 어선에 대해 어업에 관한 자국의 관계법령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부속서 12조1항). 따라서 독도 주변 EEZ의 경계획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일본이 EEZ를 설정하고 있지 않는 이상, “한국이 일본 EEZ에서의 주권적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고 해도, UNCLOS 분쟁으로는 간주되지 않는다. 둘째, 대륙붕에 관해서, 일한북부대륙붕협정(1974년)에서는 경계선의 최북점이 상기 잠정수역으로 이어지는 부분이기 때문에, 독도 주변의 대륙붕 경계획정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UNCLOS 발효 이전, 일본 정부는 독도 주변에 대륙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지만, UNCLOS 발효 후에 이런 입장을 변경하여, 대륙붕이 존재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측의 행위에 의해 독도 주변 대륙붕의 주권적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UNCLOS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셋째, 독도 주변 영해·접속수역에서의 일본의 주권 및 주권적 권리의 침해를 주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①독도 영해 내에서의 군사연습 실시로 한국은 일본의 영해주권을 침해하고 있다. ②독도 영해 내에 대한 일본 어선의 접근을 방해·배제함으로써 일본의 영해주권을 침해하고 있다. ③독도 영해 내에서 일본의 사전 동의를 얻지 않고 해양조사를 실시함으로써(2017년, 2019년), 일본의 영해주권을 침해하고 있다. ④한편으로, 일본이 독자적으로 해양조사를 실시하여, 한국 측으로부터 방해를 받은 경우에도, 같이 영해주권의 침해를 주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상과 같이, 일본이 독도의 영토주권을 갖고 있다고 하는 전제를 계속하면서, UNCLOS 상의 제 권리의 침해(즉 ‘연안국’인 일본의 주권 및 주권적 권리의 침해)를 UNCLOS 분쟁으로서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에 제소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 p.320~321 이상과 같이, 연안국소송의 메리트는, 가령 본안판단까지 진전이 가능하게 된 경우에는 ‘연안국’(즉 영토주권의 소재)에 관한 인정을 얻을 수가 있고, 가령 실패했다고 해도(=재판관할권이 부정된 경우라 하더라도) 최소한 ①의 판단(=영토주권분쟁의 존재인정)을 얻을 수 있는 점에 있다. --- p.323~324 둘째, UNCLOS 연안국소송은 모든 UNCLOS 가맹국이 이용 가능하다. 예를 들어, 센카쿠 제도에 관해, 중국이 영토주권분쟁의 존재인정을 얻기 위해 이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일본의 입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장 「2. 국제법상의 분쟁 발생기준」에서 본 것처럼, “중국 측의 주장은 ‘근거 없는 주장’(mere assertion)에 불과하여, 분쟁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는 일본 측의 주장을 구축해 둘 필요가 있다. (중략) 넷째, 최근 UNCLOS 연안국소송에 관한 판례가 급속히 형성되고 있지만, 한편으로, UNCLOS 제7부속서 중재절차의 남용이라는 비판도 보인다. 금후, 연안국소송 이용 확대에 의해 절차남용이라는 비판이 확산되는 경우, 판례가 변경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가령 제소를 검토하는 경우에는 판례가 크게 변경되기 전에 제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p.325~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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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후기
‘독도, 영토의 시작’ 국민운동을 주창하며 그동안 역자 혼자 종이 위에서 펼쳐왔던 ‘독도, 국토의 시작’이란 주장을 ‘독도, 영토의 시작’ 국민운동으로 확대해서 추진할 것을 정식으로 주창한다. 2022년 4월 『?際法から見た領土と日本』(柳原正治/兼原敦子 編, 東京大?出版?)이란 책이 출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구입해서 살펴보았다. 수록된 9편의 논문이 모두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무게 있는 글이었지만 역자 입장에서는 특히 제9장 「국제재판에서의 영토주권분쟁의 존재인정?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에서의 연안국소송의 이용」(다마다 다이)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집필자 다마다玉田는 이 글에서 ‘연안국소송’?차고스 제도 MPA(해양보호구역) 사건과 연안국권리 사건?을 상세히 분석하고, 여기에서 제시된 차고스방식 A와 크리미아방식을 활용하면, 가령 독도에 대해서도 영토주권분쟁의 존재를 인정받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책이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주는 가장 민감한 시사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른 글에서는 독도와 달리 일본이 실효지배 하고 있는 센카쿠 제도에 대해 일본은 우선 ‘무주지無主地 선점’을 주장하고, 예비적으로 ‘75년의 침묵’으로 상징되는 ‘시효취득’을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조용한 외교’의 함정이라고 하면서 조용한 대응이 능사가 아님을 학술적으로 보여준다. 독도에 대한 우리 정부의 태도를 되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책을 번역하고 출간하는 데 있어서는 크게 두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하나는 바로 이 다마다의 연구를 포함한 일본의 주장을 여과 없이 공개적으로 소개해야 하는가이다. 혹시 번역서 출판이 일본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한국에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민감한 영토문제에 대한 일본 학계의 최신 동향을 우리 사회에 알려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걱정이 되었다. 임진왜란을 앞두고 일본이 침략할 것이라고 한 황윤길과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김성일의 상반된 입장이 떠올랐다. 고민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고 한 『손자孫子』의 글로써 말끔히 정리했다. 일본의 전략을 알아야 한다. 일본이 회심의 카드로 꺼내 든 ‘연안국소송’은 유엔해양법협약의 모든 가맹국이 이용 가능하다. 센카쿠 제도에 관해 중국이 영토주권분쟁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이용할 수도 있다. 집필자는 이 점도 간과하지 않고 있다. ‘연안국소송’에 대해 한국과 중국의 공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두 번째 어려움은 책 전반부에 130여년 전 메이지 시대의 문서가 많이 인용되어 번역하기가 매우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역자 개인의 역량이다. 여기저기 찾아보고 물어보고 일본 지인의 자문을 받으면서 겨우겨우 번역을 마쳤다. 혹 오류가 있지는 않은지 염려가 되는 부분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그렇겠지만 역자도 독도에 대한 관심이 높다. 특별한 인연과 사연도 많다. 1982년 군 복무 시에는 당시 막 발표되어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던 「독도는 우리 땅」을 패러디한 소대가小隊歌를 만들어 날마다 전우들과 함께 불렀다. 2007년에는 독도 관리 행정선 이름 공모에 3등으로 입선되어 울릉군수 표창을 받았다. 아쉬웠던 것은 입상자를 직접 울릉도에 초청해서 군수가 상을 주고 독도 견학까지 시켜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상장만 달랑 보내준 것이었다. 울릉군의 어려운 재정 여건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역시 2007년에는 『검증 국가전략 없는 일본』(요미우리신문 정치부 저, 2006) 「역자 후기」에서 독도가 국토의 막내가 아니고 맏형이며, 대한민국의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는 ‘독도, 국토의 시작론’을 전개했고, 2023년 『국가전략이 없다』(위 『검증 국가전략 없는 일본』의 개정 증보판) 「역자 후기」에서는 이를 발전시켜 ‘독도, 국토의 시작’ 국민운동을 주창하고, ‘대한민국 동쪽 땅 끝’ 표지석 옆에 ‘대한민국의 시작, 독도’ 표지석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2011년에는 독도를 처음 방문했고, 독도 일주 수영을 추진했으나 실행 직전에 타의로 현지에서 중단되었다. 역자의 필생 염원인 독도 일주 수영은 언젠가는 꼭 실현될 것이다. 독도를 대한민국 해양교육의 성지로 육성해야 한다. 이렇게 독도에 대한 열정이 나이가 들어도 식지 않는 가운데 이번에 독도문제에 대한 일본의 날카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책을 소개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 감정이 아닌 냉철한 이성으로 독도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했다는 데 대해 기쁨과 함께 두려움을 느낀다. 독도를 국제재판의 무대로 끌어내고자 하는 ‘연안국소송’이라는 방법론에 대해 전문가들의 체계적이고 신중한 검토와 대응을 바란다.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면서 한일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었다. 양국 간 장관급 이상 회의가 모두 중단되고, 외교부를 제외하고는 장관급 인사의 일본 방문도 없었다. 이것이 풀린 것은 2014년 8월 이주영 해양수산부장관이 요코하마에서 열린 한·중·일 교통물류장관회의에 참석하면서였다. 이주영 장관은 세월호 참사로 몇 달째 진도에서 생활하고 있어 3국 장관회의 참석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3국 간 막힘없는 물류협력체계 정착을 위해 이주영 장관이 결단을 내렸고 이에 오타 아키히로太田昭宏 국토교통대신이 크게 고마워했다. 이후 한국 장관들의 도쿄 방문이 재개되었다. 2013년 여름 국립수산과학원 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일 어업협상 과장급 회의가 개최 며칠 전 일본의 요청으로 갑자기 연기되었다. 회의실에 ‘동해’라고 표기된 지도가 걸려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한민국 관공서에 동해 표기 지도가 걸려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데 어처구니없는 일본의 주장은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근거 없는 주장’(mere assertion), 즉 ‘트집’과 ‘생떼’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는가 싶다. 이 두 사례는 외교 관계나 일상의 교류에서 영토문제가 얼마나 민감하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주기적으로 독도가 일본 땅이란 주장을 하고 있다. 매년 3월 역사 교과서 검정, 4월 외교청서와 7월 방위백서가 새로 나올 때마다 이런 주장을 연례행사처럼 되풀이한다. 그럴 때마다 역자는 오키노토리시마를 떠올린다. 일본이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면 좀 엉뚱하지만 우리는 오키노토리시마는 섬이 아니라 암석이라고 주장하면 어떨까? 일본의 억지 주장에는 의연히 대처하면서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을 일본도 느끼게 하면 어떨까? 오키노토리시마(沖ノ鳥島)는 도쿄에서 남서쪽으로 약 1,700㎞ 떨어진 태평양에 떠있는 암초다. 일본의 최남단 영토다. 만조 시에는 더블침대 크기에 볼펜 길이보다 짧은 높이 10㎝ 전후의 바위 2개가 해면 위에 머리를 내민다. 바위 아래에는 남북 1.7㎞, 동서 4.5㎞ 정도의 넓은 암반이 펼쳐져 있다. 주변 해저에는 구리 등을 함유한 망간단괴와 ‘불타는 얼음’이라고 하는 메탄하이드레이트 등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1980년대 후반부터 해면 아래로 침몰할 위기에 처한 오키노토리시마를 보전하기 위해 호안공사를 실시했다. 2007년에는 여기에 등대를 건설하고, 1,600억 엔(한화 약 1조 4천억 원)을 투입하여 2011년도부터 2027년도까지 수송과 보급 등이 가능하도록 ‘오키노토리시마 활동거점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선박이 접안하는 안벽의 연장은 160m이고 박지를 포함하여 수심은 -8m이다. 임항도로와 부대시설도 함께 건설한다. 일본 정부가 이렇게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이 암초를 개발하고 보전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 오키노토리시마가 엄청난 규모의 해양영토와 자원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오키노토리시마가 일본 국토 면적(약 38만㎢)보다도 광대한 약 40만 6천㎢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국토 면적은 세계 60위이지만, EEZ 면적은 447만㎢로 세계 6위라고 한다. EEZ 내의 개발 권리는 연안국에 있다. 유엔해양법협약은 “인간의 거주 또는 독자적인 경제적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암석”(제121조제3항)에는 EEZ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키노토리시마가 섬이라면 주변 해역은 자원의 보고일 가능성을 내포한 EEZ이고, 암석이라면 일본의 주권적 권리가 미치지 않는 공해가 된다. “‘독자적인 경제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으면, 해양법협약의 암석이 되지 않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듯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논리를 펼치면서 오키노토리시마가 200해리의 EEZ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2004년 4월 “오키노토리시마는 EEZ의 기점이 되는 섬이 아니라 암석이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같은 입장이다. 다른 나라의 EEZ에서 해양조사를 실시하는 경우에는 사전에 통보해야 한다. 오키노토리시마가 섬이 아니라 암석이라면 이 해역은 공해가 되므로 사전 통보는 불필요하다. 일본 방위성(당시는 방위청-역주)에 의하면 중국 해양조사선이 2004년 1년에만 15회에 걸쳐 사전 통보 없이 오키노토리시마 주변해역에서 해양조사를 실시했다. (참고: 『???家?略なき日本』(요미우리신문 정치부 저, 2006), 한글 번역판 『국가전략이 없다』(김연빈 역, 2023)) 최근에도 중국 해양조사선이 2024년 6월 중순, 오키노토리시마 북방 시코쿠해분(四?海盆) 공해상(일본은 자국 대륙붕 상부수역이라고 주장)에 쓰나미 관측용 부이를 설치했다. 일본 정부 관방장관은 목적이나 계획 등을 통보하지 않은 채 부이를 설치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각국은 공해에서 과학연구에 종사할 권리가 있으며, 일본측이 간섭할 권리가 없다”며 “유감이다”고 한 일본측을 견제했다(2024.7.5. NHK, 요미우리신문 등). 유엔대륙붕한계위원회는 2012년 4월, 일본 국토 면적의 80퍼센트에 상당하는 약 31만㎢의 대륙붕을 일본에 추가로 인정했다. 일본은 이것이 오키노토리시마가 유엔으로부터 섬으로 인정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의 주장을 한국과 중국은 부인하는 입장이다. 해양문제에 있어 일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법에 의한 지배’를 주장하며 주변국에 법의 준수를 외치고 있다. 그러면서 정작 유엔해양법협약은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며 오키노토리시마가 EEZ를 갖는 섬이라고 주장한다.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하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할 때마다 우리는 오키노토리시마는 EEZ를 갖는 섬이 아니라 그냥 영해만을 갖는 암석일 뿐이라고 일러주자. ‘법에 의한 지배’를 숭상하는 일본의 양면성을 점잖게 비판하면서 우리가 느끼는 거북함을 그들도 느끼도록 해주자. 가끔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 1923-1996)는 독도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바 료타로의 소설 속에 『언덕 위의 구름(坂の上の雲)』(1968년)이란 작품이 있다. 러일전쟁(1904)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 우리 바다 동해 울릉도 부근에서 벌어진 일본과 러시아의 해전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독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1905년 2월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시키게 된다. 이 시바 료타로의 대표작 『료마가 간다(?馬がゆく)』(1962년-1966년) 마지막 부분에 한 무사가 동해의 무인도를 점령하러 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본문 제1장에 나오는 미나미토리시마에서 수목을 깎아 방문기록을 남겨 ‘선점’의 증거로 삼은 미즈타니 신로쿠水谷新六와도 비슷한 행동이다.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약간 길지만 인용해보자. 이와사키는 날마다 장부만 주무르며 세월을 보내고 있는 현 직무에 싫증난 모양인지 이해 (1867년) 봄 (도사) 번국 기선에 명령하여 미친 듯이 항해에 나섰던 일이 있다.“무인도를 점령하겠다.” 하는 것이다. 이 소문을 교토에서 듣고 료마는 피식 웃어버렸다. 목표는 조선과 일본 사이에 떠 있는 고도 울릉도(*원문은 竹島. 이하 같음)였다. 이와사키가 대단히 진지한 태도였다는 증거로 “일본 도사 번국의 명령을 받아 이와사키가 이 섬을 발견함.” 이라는 말뚝도 싣고 갔다. 부하 관리 야마자키를 수행시켰다. 이와사키는 울릉도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무인도라고 나가사키에 사는 백락白樂이라는 조선 사람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수목이 풍부하다 해서 벌채 인부까지 데리고 갔다. 놀랄 만한 행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울릉도에 상륙하고 보니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이와사키는 울릉도 해변가에 서서 사방을 살펴보았다. 사람이 사는 것 같다. (무인도가 아니었는가?) 이런 경우 이와사키는 실망보다는 울화가 치미는 성미이다. 이 섬에 살고 있는 자야말로 돼먹지 않은 자라고 생각했다. 해변에 자리를 깔고 그 위에서 식사를 시작하자 곧 십여 명의 남자들이 나타나 이와사키를 둘러싸고 진기하다는 듯이 구경했다. “이 섬은 뭐라는 이름인가?” 이와사키가 종이에 적어 그들에게 건네자 그들 중 연장자인 듯한 흰 옷 입은 노인이 “대한 울릉도야大韓鬱陵島也” 라고 글로 답변했다. 모두 조선 사람인 것 같다. 다시 이와사키는 필담을 했으나 더욱 실망했다. 그들은 상주하지는 않고 이따금 해수(海獸)를 잡으러 온다고 말했다. 이와사키는 화가 치밀어 “나는 일본 도사국의 무사 이와사키라는 사람이다. 오늘부터 당신들도 도사 번국의 백성이 되었으니 기뻐하라.” 라는 내용의 문장을 만들어 노인에게 건넸다. 노인은 무슨 수작을 하느냐는 표정만 지을 뿐 대답이 없었다. 이와사키는 과자를 내놓았다. 그러자 모두 달려들어 먹었다. 산쪽으로 들어가 보니 재목감이 될 만한 나무는 없고 대수롭지 않은 잡목만이 조금 있을 뿐이다. 이와사키는 누구에게 분통을 터뜨려야 좋을지 몰랐다. 어쩌다 산간에 오두막 한 채가 눈에 띄었다. 들어가 보니 사람은 없고 큰 솥 밑에 불이 지펴져 있다. 솥 속에 물개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통째로 삶아 가죽을 벗길 모양이다. “불을 질러라!” 별안간 이와사키가 소리쳤다. 수행원인 야마자키가 놀라 반대했다. 그렇게 하면 조선 사람들이 가엾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사키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통쾌할 거야.” 하는 것이 이유였다. 야마자키가 다시 말렸으나 다른 자가 이미 지붕에 불을 질렀다. 오두막은 흰 연기를 뿜으며 타기 시작했다. “도망치자!” 이와사키가 맨먼저 앞장 서서 산에서 뛰어내려와 배를 출범시키고말았다. [출처] 장편소설 『제국의 아침』(시바 료타로 씀, 박문수 옮김, 하늘, 1992) 136-140쪽.원전 司馬遼太? 『?馬ガゆく』(文芸春秋, 1966) 문고판 제8권 218-225쪽 소설 속에서 이와사키가 울릉도를 점령하러 간 때 즉 1867년은, 이미 1787년에 프랑스인 탐험가 라 페루즈가 울릉도에 ‘다줄레섬’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서 한참 후였다. 1847년에는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가 서양 선박으로는 처음으로 독도를 발견하여 리앙쿠르 락스(Liancourt Rocks)라는 이름을 붙였다. (호사카 유지·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 『대한민국 독도』, 책문, 2019.3. 84-86쪽, 96-98쪽) 픽션이기는 하지만 울릉도를 왕래하는 항해 중 눈에 보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독도에 대해 이와사키 야타로(岩崎?太?, 1835~1885, 도사번 번사, 후에 미쓰비시 재벌 창립)는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가공인지 허상인지 굳이 이 장면을 소설에 집어넣어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일본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는 독도에 대해 어떤 영토관을 가졌을까? 그것이 항상 궁금했다. 독자 여러분들도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에 대비하지 않은 조선 왕조는 무능하고 무책임했다.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을 다시 꺼내 읽는 마음으로 ‘연안국소송’의 실체를 파악하고 이해하고 준비해야 한다. 어려운 국제법과 민감한 영토문제를 다루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자문을 해주시고 교정에 동참하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린다. 특히 서현섭 전 주교황청 대사, 신각수 전 주일 대사,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함께 근무했던 이동기 외교부 심의관을 비롯한 옛 동료들께 감사드린다. 윤명철 동국대학교 명예교수는 전체적 틀에서 교정의 방향을 잡아주었으며 많은 분들이 세부적인 교정 작업에 함께 참여해주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속으로 함께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독도는 안녕한가? 일본 학자들이 꺼내 든 비장의 독도 카드 『국제법으로 본 영토와 일본』 출간 원전은 『?際法からみた領土と日本)』(2022) 知彼知己는 百戰不殆, 역자는‘독도, 영토의 시작’ 국민운동 주창 이 책은 센카쿠 제도(尖閣諸島)와 독도(일본은 竹島라 함. 이하 같음)를 둘러싼 정세 등 일본이 안고 있는 영토문제를 전망하기 위해 영역 개념의 역사적 변천과 영토분쟁의 해결 법리를 다각적으로 다룬 학술 논문집이다. 제일선에서 활약하는 국제법 연구자를 중심으로 오랜 과제를 독자적 시점에서 넓고 깊게 분석해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영토문제에 새로운 시사점을 도출한다. 도쿄대학출판회 홈페이지 영토·주권·역사 분야에서 조사연구 및 대외홍보 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공익재단법인 일본국제문제연구소가 2017년 기획한 ‘영토·주권·역사조사연구’ 프로젝트 중 ‘영토·주권분과회’의 연구성과를 2022년 3월 도교대학출판회를 통해 공식 간행했다. 역사 분야에서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와 동아시아』와 『중일전쟁 연구의 현재』2권을 출판했다. 전자에서는 지금까지 미국 사료를 중심으로 연구되어 온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역사적 의의를, 일본 및 동아시아, 나아가 국제적인 문맥으로부터 재검토하고, 전후의 동아시아 지역 질서 형성의 역사상을 다각적·포괄적으로 다시 파악했다. 후자는 노구교(盧溝橋) 사건을 발단으로 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일본인)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일전쟁에 대해 일본 국내 정치·사회의 분석을 비롯하여 장개석 일기(蔣介石日記) 등 중국 측 사료와 구미를 중심으로 한 국제정세의 분석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상을 재구축한 것이다. 이 책의 주된 목적은 ‘영역’ 개념의 역사적 변천과 영역분쟁 해결의 다양한 법리를 분석함으로써, 지금까지와는 다른 독자적 관점에서 일본 영토를 둘러싼 정세에 대해 조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북방영토, 독도, 센카쿠 제도에 대해 각각의 역사적 경위와 법적 제 문제를 면밀하게 분석해서 국제법의 관점에서 각각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 혹은 일본에 유리해질 것 같은 새로 발견된 1차 자료를 제시해서 일본 정부의 입장을 강화하는 것을 직접적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기본에 두는 것은 ‘영역’ 개념의 역사적 변천과 영역분쟁 해결방식이라는 2개의 관점이다. 특히 제9장 「국제재판에서의 영토주권분쟁의 존재인정-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에서의 연안국소송 이용」은, ‘연안국소송’을 활용함으로써, 가령 독도에 대해서도 영토주권분쟁의 존재를 인정받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제시한다. 집필자 다마다 다이는 “연안국 소송의 이용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방영토, 독도, 그리고 센카쿠 제도 문제 해결에 큰 시사를 주는 논점이 아주 많이 제시되어 있어 실무담당자, 연구자, 나아가서는 영토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반인들에게도 참고가 될 점이 많다. (편저자 야나기하라 마사하루 - 머리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개의 관점에서 연구를 하는 2개의 검토회를 조직하여 편집자 2명이 각각 간사를 맡았다. 검토회는 멤버의 ‘상호참여’가 장려되었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더욱 활발해졌다. 이러한 연구체제와 그 실시 상태는 다양한 레벨에서 각 논문 상호 간의 유기적 관계의 성립을 촉진했다. 수록된 각 논문은 그 자체로서 완결되고 독립된 저작이다. 이 책은 연구체제에 의한 모든 집필자의 공동작업의 성과이다. (편저자 가네하라 아쓰코 - 후기) 일본 국제법학회(?際法??) 계간지 『국제법외교잡지(?際法外交?誌)』 제122권 제1호(2023년 5월)에 서평이 소개되었다. 나카노 데츠야(中野徹也) 간사이대학(?西大?) 법학부 교수의 서평을 중심으로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한다. 제Ⅰ부 제1장 「이도(離島)의 일본영역 편입-이오토(硫黃島)와 미나미토리시마(南鳥島)를 중심으로 하여」 (야나기하라 마사하루)는, 센카쿠 제도와 독도(원문은 竹島)를 포함하여 10개의 주요 사례가 열거된 근대일본에서의 이도의 편입에 대해, 그 방식으로서, 무주지의 선점과 영역이라는 사실의 재확인(영유의사의 재확인) 2가지가 존재하는 것을 명확히 제시한 것이 이오토 사례이며, 선점의 방식을 명확히 취한 것이 미나미토리시마 사례라고 결론짓는다. 제Ⅰ부 제2장 「류큐(琉球) 귀속문제와 어니스트 사토우 ― 일청(日淸) 신문논전에 대한 평가 및 그 배경」 (모리 다다시)은, 류큐 귀속문제에 관해 1880년 2월 13일 작성된 어니스트 사토우의 각서를 분석하고, 사토우가 사실(史實) 논쟁에도 조공(朝貢)의 의의나 양속론(兩屬論)에도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서, 근대 국제법적 질서관에 입각한 평가를 하여 류큐에 대한 일본의 주장을 지지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제Ⅱ부 제3장 「일본의 ‘식민지’ 획득과 법칙」(야마다 데쓰야)은, 일본이 이른바 ‘외지(外地)’를 획득했을 때 영역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었는지, 또 그것이 법제 면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검토하고, 그것은 이론적인 문제이기도 했지만 헌법 적용 문제는 의회 대책 등 정부 내 파벌싸움이라는 정치적 측면을 갖는 문제이기도 했다는 점에 착안한다. 제Ⅱ부 제4장 「근대 일본에서 본 조차(租借) 개념」(사사키 유이치)은, 조차를 가장적·변태적 할양이라고 간주하는 관점에서 할양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이해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변화해간 구미와 대조적으로, 근대 일본에서는 당초부터 가장할양설보다는 비할양설 쪽이 우세였다고 하면서, 그 배경에는 일본이 갖고 있는 조차지를 둘러싼 사실관계와 상황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제Ⅲ부 제5장 「영역문제에서의 ‘법’에 입각한 주장」 (가네하라 아쓰코)은, 법과의 관계의 주장이나 청구에 대해, 법이 그것을 어떻게 법의 세계로 끌어들이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법과의 관계의 청구로서 ‘역사적 권리’, 법과의 관계 결정에 관계되는 주된 요소로서 의사·시간, 그리고 영역분쟁에서의 ‘의사의 작용’의 순으로 검토하고, 마지막으로 센카쿠 제도 문제에 대한 일본의 주권국가로서의 통합적인 입장의 구축을 제안한다. 제Ⅲ부 제6장 「영역분쟁에서의 침묵의 의의―센카쿠 제도에 관한 ‘75년의 침묵’의 법적 구성을 향하여」(기타무라 도모후미)는, 센카쿠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하고, 묵인, 금반언, 시효 등에 관한 제2차 세계대전 전의 판례와 학설 및 국제사법재판소 초기의 판례와 이에 관련된 학설을 검토함으로써, 이들 개념의 맥락을 해독하고, 그 존부와 내용을 파악하는 시도를 한다. 제Ⅲ부 제7장 「영역분쟁에서의 시간적 요소와 그 규율―일본 영토문제에 대한 구체적 적용에 대해」(사카이 히로노부)는, 영역분쟁에서의 결정적 기일과 시제법원칙의 각각의 역할을 정리한 후, 이들 2가지 규칙이 재판실례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고찰하고, 여기에서 얻은 2가지 규칙의 실천적 역할을 기초로, 일본 영토문제에 대한 구체적 적용을 검토한다. 제Ⅳ부 제8장 「국제재판에서의 ‘전근대/비유럽 영역지배’의 원용과 평가」(후카마치 도모코)는, 전근대의 유럽과 비유럽의 영역지배에 관련된 10건의 판례에 대해, 재판소는 당사국의 의도 내지 목적과 적용된 권원개념을 어떻게 취급해왔는가, 즉, 전근대/비유럽의 영역지배의 검토와 법적 평가는 어떻게 행해졌는지를 확인하고, 이러한 취급을 이끌어낸 요인을 고찰한다. 제Ⅳ부 제9장 「국제재판에서의 영토주권분쟁의 존재 인정―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에서의 연안국소송의 이용」(다마다 다이)은, 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에서의 ‘연안국소송’―차고스제도 MPA 사건과 연안국권리 사건―을 상세히 분석하고, 여기에서 제시된 차고스방식 A와 크리미아방식을 활용하면, 가령 독도(원문은 竹島)에 대해서도, 영토주권분쟁의 존재를 인정받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제시한다. [소 개] 야나기하라 마사하루·가네하라 아쓰코 편 『국제법으로 본 영토와 일본』 (도쿄대학출판회, 2022년, ⅵ+262쪽) 간사이대학(?西大?) 교수 나카노 데츠야(中野徹也) Ⅰ. 일본 정부는 타국과의 사이에 해결해야 할 영유권 문제(any issues of territorial sovereignty with other states that need to be resolved)라는 의미에서 ‘영토문제’(territorial dispute)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동 정부에 따르면, 일본이 관련된 영토문제는 러시아와 사이의 북방영토문제 및 한국과 사이의 다케시마(竹島)문제 일본 외무성 「일본의 영토를 둘러싼 정세〉일본의 영토 Q&A : Q4 ‘“영토문제”란 무엇입니까?’」, at https://www.mofa.go.jp/mofaj/territory/page1w_000013.html#q4 이며, 센카쿠 제도(尖閣諸島)를 둘러싼 해결해야 할 영유권 문제는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 “센카쿠 제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인 것은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상으로도 명확하며, 현재 우리나라는 이것을 유효하게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 상, Q7 ‘센카쿠 제도를 둘러싼 정세에 대한 일본의 입장은 어떠한 것입니까?’ . 따라서 러시아 및 한국과의 사이에는 ‘영토문제’가 존재하고, 중국 및 대만과의 사이에는 ‘영토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본서 「머리말」은 “일본의 영토를 둘러싼 정세는 매우 어려운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란 일절로부터 시작된다. 실제, ‘영토문제’가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러시아 및 한국과의 사이에서 문제해결을 향한 전망은 전혀 서 있지 않다. 또, 최근 중국 해경국에 소속된 선박 등이 센카쿠 제도 주변의 접속수역에 입역하거나 영해 침입을 계속해서 자행하고 있는 점에서, ‘영토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센카쿠 제도의 현상변경을 ‘힘’에 의해 강요당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이런 상황 속에서 본서가 출판되었다. 본서의 주된 목적은 “‘영역’ 개념의 역사적 변천과 영역분쟁 해결의 다양한 법리를 분석함으로써, 지금까지와는 다른 독자적 관점에서, 일본의 영토를 둘러싼 정세에 대해 조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북방영토·다케시마·센카쿠 제도의 역사적 경위와 법적 제 문제를 분석해서, 국제법의 관점에서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나 일본에 유리하게 될 것 같은 새로 발견된 1차 자료를 제시해서 일본 정부의 입장을 강화하는 것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본서 수록 각 논문에는 문제의 해결에 큰 시사를 주는 논점이 아주 많이 제시되어 있어, “실무담당자, 연구자, 영토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반인들에게도 참고가 될 점이 많다고 확신한다”는 것이다(「머리말」 ⅱ, ⅳ쪽). 본서는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Ⅰ부(근대 일본의 영역 확정)과 제Ⅱ부(근대 일본의 영역적 외연)에는 각 2편, 제Ⅲ부(영역분쟁에서의 의사·시간)에는 3편, 그리고 제Ⅳ부(국제재판에서의 영역분쟁)에는 2편의 본문이 수록되어 있어. 이하 총 9편의 논문의 개요를 소개한 다음, 상술한 ‘주된 목적’은 달성되었는가 하는 점을 포함하여, 본서의 의의와 문제점을 고찰하기로 한다. Ⅱ. 제1장 「이도의 일본 영역 편입 ― 이오토와 미나미토리시마를 중심으로 해서」(야나기하라 마사하루, 柳原正治)는, 일본 영역 편입조치의 법적 위치라는 관점에서 획기적이었다고 간주되는 이오토(硫黃島)와 미나미토리시마(南鳥島)의 사례를 다룬다. 전자는, 근대국제법 이론상 이도(離島)를 영역으로 편입해 갈 때의 방식으로서, ‘무주지(無主地)’의 선점과 영역이라는 것의 재확인(영유의사의 재확인)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명확히 제시한 사례이다. 그리고 후자는, 선점의 방식을 명확히 취한 사례이다. 이러한 검토가 북방영토·다케시마(竹島)·센카쿠 제도의 법적 위치부여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 점에 대한 분석은 금후의 작업에 맡기면서, 분석을 할 때에는 다음 두 가지 점이 중요한 논점이 된다고 서술하고 있다. 즉, 이전부터 일본의 부속도서(屬島)였는지, 칙령 발포로 처음으로 부속도서가 되었는지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한 다음, 전자로 인식되는 이오토 사례가, 선점의 사례라고 하는 센카쿠 제도 편입 시에 얼마만큼 고려되었는가? 선점의 사례로 평가되는 미나미토리시마를 ‘참고’한 다케시마에 대해, 선점이 아니라 영역이라는 것의 재확인 사례라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의 현재 입장이 법적으로 가능한가, 또 정책적으로 바람직한가 하는 점이다. 제2장 「류큐 귀속 문제와 어니스트 사토우 ― 일청(日靑) 신문 논전에 대한 평가 및 그 배경」(모리 다다시, 森肇志)는, 류큐(琉球) 귀속문제에 관한 어니스트 사토우의 각서를 분석한다. 사토우는 1879년까지 주일 영국공사관에서 제시된, 양속(兩屬)과 조공이라는 전통적 동아시아적 질서관을 바탕으로 한 평가를 하지 않고, 근대국제법적 질서관에 입각하여 ‘권력(authority)’의 행사에 주목한 평가를 하고 일본의 주장을 지지했다. 이로써 영국의 일청 관계에 관한 평가축의 전환을 의미하는, 혹은 일청 관계에 있어서의 국제법 적용을 청국이 인정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각서가 집필된 배경을 고려하면,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혹은 그에 관한 질서관이 변화해 가는 과정의 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정밀하게 검토해가는 것이 중요하며, 이후의 변화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나가는 것이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국제법의 수용’을 보다 상세하게 살펴나가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시사하며, 본고를 마무리한다. 제3장 「일본의 ‘식민지’ 획득과 법칙」(야마다 데쓰야, 山田哲也)은, 식민지 제국으로서의 일본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주로 외지(外地) 획득에 이르는 조약의 체결 과정과 헌법 적용의 유무를 둘러싼 논쟁을 중심으로, 외지법제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정리한다. 식민지의 획득과 식민지에 어떠한 법제를 시행할 것인지는, 이론적 문제인 동시에, 헌법의 적용 문제는 의회대책이기도 하고 정부 내 파벌싸움이라는 정치적 측면을 갖는 문제였다. 그리고 외지법은, 식민지가 사할린(樺太)을 제외하면 최후까지 이법역(異法域)화하여, 내지 편입이 진척되지 않고, 격차(格差)원리에 입각한 속인적 지배·통치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잠재적으로 인권억압적’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정리한 다음,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허용한 근대국제법을 수용하고, 스스로 체결한 불평등조약의 개정에 매진하는 한편, 식민지 획득을 포함한 스스로의 권익을 신장하는 데 있어서, 근대국제법의 이론을 어떻게 활용하고, 관계국과의 교섭에 임했는지 등의 과제를 제기한다. 제4장 「근대 일본에서 본 조차 개념」(사사키 유이치, 佐?木雄一)은, 조차(租借)가 주목을 받은 계기가 된 중국에서 생긴 조차에 관한 기본적 사실관계와, 조차의 성질을 둘러싼 세계의 학설 경향을 개관한 다음, 근대일본의 조차개념 이해를 검토한다. 조차의 성질에 관해,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구미에서는 할양(割讓)과 같다고 하는 가장할양설(假裝割讓說)이 유력했다. 일본에서도 그와 같은 학설 상황은 인식되고 있었지만, 일로전쟁 후 할양이 아니라고 하는 비할양설이 우세하게 된다. 그 배경에는, 포츠머스조약 및 일청 간의 조약으로 조차지에 대한 조대국(租貸國)의 주권 존재와 조차와 할양의 차이가 인상(印象)되는 형태로, 일본은 조차지를 갖게 되었다는 점, 또 국가·정부로서 관동주조차지를 영토로 취급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조차는 할양과 다르고 조차지는 조차국(租借國)의 영토가 아니라고 하는 결론에 이르기 쉬웠다고 하는 사정이 있었다고 한다. 제5장 「영역문제에서의 ‘법’에 입각한 주장」(가네하라 아쓰코, 兼原敦子)은, 영역분쟁과 관련된 국제법(‘법’과의 관계에 대한 주장이나 청구에 대해, 법이 그것들을 어떻게 법의 세계로 끌어들일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우선, 역사적 권리를 다룬다. 역사적 권리는, 원래 국제법상의 권리인지 아닌지에 대해 이견이 있으면서, 국제법상 근거가 있다, 또는 국제법상의 권리라고 주장되는 전형적인 예이며, 그러한 주장에 대해 국제법이 어떻게 타당성을 확보할 것인가, 어떠한 요건으로 국제법의 세계로 끌어들일지를 검토한다. 그런 다음, 국제법이 타당성을 확보하는 것과 관련된 국가의 의사 요소와 시간적 요소에 초점을 맞춰, 센카쿠 제도와의 관련이라는 구체적 문맥으로 문제가 되는 논점을 검토해 나간다. 그리고 영역분쟁에 있어서의 ‘의사의 작용’이라는 요소의 재검토를 거쳐, 일본은 센카쿠 제도 문제에 대해, 영역권원론·해양법·분쟁개념·주권존중이라는 국제법의 근본원칙 각각에 입각한 복합적 시점을 구사한 ‘통합적인’ 입장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구체적으로는, (1) 중국의 주장에 어떠한 합리적 근거도 수반되지 않는다는 것을 논증해서, 그것을 철저하게 부정한다, (2) 분쟁개념에 입각하여, 중국의 주장이 ‘근거 없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 분쟁의 성립을 부정한다, (3) 해양법에 입각한 조치 및 일본의 주권침해를 근거로 해서 ‘주권존중’이라는 국제법의 근본원칙에 호소함으로써, 실효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제6장 「영역분쟁에서의 침묵의 의의― 센카쿠 제도(尖閣諸島)에 관한 ‘75년의 침묵’의 법적 구성을 위해」(기타무라 도모후미, 北村朋史)는, 특히 센카쿠 제도에 대한 ‘75년의 침묵’을 어떻게 법적으로 구성할지를 고찰하기 위한 준비작업으로서, 시효등(時效等), 묵인, 금반언에 관한 제2차 세계대전 전의 판례와 학설 및 국제사법재판소(이하 ICJ)의 초기 판례와 이에 관련된 학설을 검토함으로써, 이들 개념의 맥락을 풀고, 그 존부와 내용을 파악하고자 한다. 검토 결과, 75년간 중국 및 다른 국가들이 침묵했다는 것에 의심이 없기 때문에, 일본으로서는 어느 시기의 침묵에 대해, ①시효등, ②묵인, ③금반언이 성립하는지를 고려하면서, 이들 개념을 적의 선택해 원용해갈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한다. 다만 ICJ의 일부 판례에서 새로운 ‘침묵’의 개념에 입각하여, 종합적으로 권리의 변동을 판단하는 어프로치가 채택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므로, 그 존부나 의의의 고찰을 별도로 한 다음에, 센카쿠 문제에 관한 ‘75년의 침묵’의 법적 구성의 고찰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시효등’에 시효, ‘영역주권의 계속적이고 평온한 표시’인 권원 및 역사적 권원이 포함되며, 이들은 동일한 목적과 내용을 갖는 동일한 법제도라고 하는 정리 방법은 흥미 깊다. 제Ⅲ부 제7장 「영역분쟁에서의 시간적 요소와 그 규율 ― 일본 영토문제에 대한 구체적 적용에 대해」(사카이 히로노부, 酒井啓亘)는, ‘시간’의 관념에서 사실과 행위를 규율하는 규칙으로 전개되어 온 결정적 기일과 시제법 원칙의 역할을 정리한다. 그런 다음, 각각의 규칙을 일본의 영토문제에 적용한 경우 다음과 같이 된다고 한다. 다케시마 문제의 결정적 기일에 대해서는, 어느 시점이 설정되어도 한국에 의한 실효적 지배가 결정적 기일을 끼고 계속해서 행해져 왔는지 어떤지가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센카쿠 제도문제의 결정적 기일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는 선점이 주장된 시점이 된다. 시제법 원칙은 원시권원 또는 역사적 권원과 관계된다. 다케시마에 관해서는, 일본 정부는 1905년 이후의 실행으로, 원시권원을 현대적 요청에 맞게 대체했다고 평가된다. 따라서 일본 측은 시제법 원칙에 따라 항상 그 시대의 법에 의해 규율되는 요건을 충족해왔다는 것을 논증하면서, 요건과 합치된 실행에 의거해서 스스로의 주장을 구축해 갈 필요가 있다. 센카쿠 제도문제에 관해서는, 역사적 권원으로부터의 대체나 역사적 권원의 보완을 증명할 책임은 중국 측이다. 탈식민지화의 진전에 비추어, 현대국제법의 전개를 반영시켜 영역법을 적용한 판례가 있기 때문에, 법적 논점이 식민지였다고 주장하는 측에 유리하게끔 재정립되는 계기가 존재한다는 지적은 중요하다. 제8장 「국제재판에서의 ‘전근대/비유럽 영역지배’의 원용과 평가」(후카마치 도모코, 深町朋子)는, 전근대 유럽과 비유럽의 영역지배와 관련된 10건의 판례에 대해, 재판소가 전근대 비유럽의 영역지배의 검토와 법적 평가를 어떻게 판단해 왔는지를 고찰한다. 판례 검토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당사국이 전근대 비유럽의 질서에 직접 의거해서 전근대 비유럽의 영역지배를 논한 것은, 재판소로부터 관련성을 부정당하거나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편, 전근대 유럽의 영역지배가 문제가 된 경우와, 비유럽의 영역지배에 대해 원시권원의 개념을 적용하여, 또 비유럽 질서에 입각하여 그 영역지배를 입증하려고 하지 않은 경우에는, 전근대 비유럽 영역지배의 존재가 영역귀속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전근대 비유럽 정치체의 원시권원이 인정된 사례와 인정되지 않은 사례를 가른 것은, 전근대 비유럽의 정치체에 ‘국가성’이 인정되었는지 않았는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재판소가 어떠한 ‘국가’ 개념을 조정(措定)하고, 어떠한 판단기준과 방법으로 타당성의 판단을 하고 있다고 보이게 될 것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현대의 영역귀속판단에 있어서의 전근대 비유럽 영역지배의 의의를 확정하는 데 이르기 위한 다음 과제이다. 제9장 「국제재판에서의 영토주권분쟁의 존재 인정 ― 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에서의 연안국소송 이용」(다마다 다이, 玉田 大)은, 연안국소송을 이용하면, 가령 다케시마를 둘러싸고 일한 간에 영토주권분쟁(영유권분쟁)이 존재하는 것을 한국이 반대해도, 강제적이고 객관적으로 국제재판소에 인정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 연안국소송의 메리트는 재판관할권이 부정되는 경우에도 영토주권분쟁의 존재인정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다케시마 문제에 대해 연안국소송의 이용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은 “독도에 관해서는 어떤 분쟁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이상, ‘분쟁’ 해결절차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ICJ 제소를 획책해도 분쟁해결을 위한 진전은 바랄 수 없다. 연안국소송을 이용해서 영토주권‘분쟁’의 존재인정을 얻을 수 있다면, 한국이 ‘분쟁’ 해결정차의 이용을 거부할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연안국소송은 모든 유엔해양법협약 가맹국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센카쿠 제도에 관해 중국이 영토주권분쟁의 존재인정을 얻기 위해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따라서 “센카쿠 제도를 둘러싸고 해결해야 할 영유권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일본의 입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국측의 주장이 ‘근거 없는 주장’(a mere assertion)에 불과해 ‘분쟁’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을 구축해 갈 필요가 있다. Ⅲ. 그러면 처음 예고한대로 이 책의 ‘주된 목적’은 달성되었는가 하는 점을 포함하여 이 책의 의의와 문제점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우선, 이도의 편입 방식(제1장), 동아시아에서의 질서관의 변화 과정(제2장), 식민지법제의 성질(제3장), 조차 개념(제4장), 역사적 권원의 성립 요건(제5장), 시효등의 개념(제6장), 결정적 기일과 시제법 원칙의 기능(제7장), 역사적 권원과 원시권원의 개념(제8장), 분쟁 부정기준(제9장) 등, 특히 영역권원론에 치우치기 쉬운 이런 종류의 논문에서는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던 논점이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일본의 영토를 둘러싼 정세에 대해 조명하고자 한다“고 하는 이 책의 ‘주된 목적’은 충분히 달성되었다. 또, 몇 개인가의 논문에서 제시된 일본 정부에 대한 구체적 제언도 유익하다. 센카쿠 제도에 관해서는, 중국의 주장이 ‘근거 없는 주장’에 불과해, 일본과 중국 간에 센카쿠 제도를 둘러싼 ‘분쟁’은 발생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 주장을, 일본 정부가 구축해두어야 한다는 것은, 복수의 논문(제5장, 제7장 및 제9장)이 기술하고 있는 바이다. 또 다케시마에 관해서는, 영유의사의 재확인이라고 하는 현재 일본 정부의 입장에 의문을 던지며, 암암리에 재고를 촉구하는 기술도 있다(제1장). 이런 것들은 ‘연구자’뿐만 아니라, ‘실무담당자’나 ‘일반인들’도 높은 관심을 보일 것으로 생각되는 제언이며, “문제 해결에 큰 시사를 주는‘ 것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책의 의의는 지금까지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던 논점을 조명하고, 또 ”문제 해결에 시사를 주는” 제언도 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점도 있다. 우선, 본서 집필자는 “현대 일본의 영토문제에 관련해서 논점을 정리한다” 또는 “현대 일본의 영토문제를 염두에 두고 논점을 정리한다”고 하는 공통된 문제의식 또는 검토 목적을 가졌다고 하지만(256쪽), 제2장부터 제4장까지의 논문에서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살펴보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각 논문은, “근대 유럽 국제법에서의 영역 개념이 어떻게 해서 성립하고 변천해 왔는가 하는 점을 논한 다음, 근대 유럽 국제법 관계 성립 이전의 동아시아의 공간질서와 그 실태를 검토”(동상)했다고 하지만, 얻은 결론과 현대 일본의 영토문제와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 책에 수록된 모든 논문은 이와 같은 공통된 문제의식 또는 검토 목적에 입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토문제’에 대한 인식은 집필자 간에 통일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점이다. 한편으로, 일본의 공식 견해로 ‘분쟁’이 있다고 하는 북방4도와 다케시마, ‘분쟁’이 없다고 하는 센카쿠 제도를 합해서 표현하는 경우에 ‘영토“문제”’로 한다(제5장 117쪽 주1)는 기술이 있다. 한편으로, 일본이 관계된 영토문제 중, 특히 다케시마 문제와 센카쿠 제도 문제를 검토한다고 하면서, 이들은 “분쟁의 존재 자체도 다툼이 있기 때문에 영토‘문제’로 한다”(191쪽)는 기술도 있다. 영토‘문제’라는 표기야 같지만 그 표기를 채용하게 된 이유가 다르므로 독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나아가 유사한 개념으로 ‘영토주권의 소재를 둘러싼 분쟁’으로서, ‘영토주권분쟁(영유권분쟁)’ 또는 ‘주권분쟁’이란 개념이 제시되어 있는 점도(231쪽 주1) 혼란에 박차를 가한다. 모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 정부는 ‘영토문제’를 “타국과의 사이에 해결해야 할 영유권의 문제”로 정의하고, 센카쿠 제도문제는 ‘영토문제’가 아니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센카쿠 제도문제에 대한 언급은 이 책 여러 곳에서 볼 수 있고, 모든 집필자는, 센카쿠 제도문제도 “현대 일본의 영토문제”라고 하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영토“문제”’로 표기를 통일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혹은 ‘영토문제’ 대신에 ’영토주권분쟁(영유권분쟁)‘을 채용하는 선택지도 있었다. 관계국은 각각 북방영토, 다케시마 및 센카쿠 제도에 대한 주권이 자기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영토주권분쟁(영유권분쟁)‘의 정의는 ’영토문제‘의 본질을 보다 단적이고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합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의문을 줄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점이다. 상술한 것처럼, 중국의 주장이 ‘근거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구축할 필요성은 복수의 논문이 지적하고 있는 바다. 그러나 제7장 및 제9장에서 언급된 판례에 의하면, 주장의 타당성이나 강도(validity or strength)는 개연성 기타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며, 분쟁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문턱은 매우 낮다. 그렇기 때문에 제9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일본 정부가 미국 전토에 대해 영유주권을 주장”(233쪽)하는 경우 등은 확실히 ‘근거 없는 주장’으로 간주되는 것 같지만, 과연 센카쿠 제도에 관한 중국의 주장이 이와 동등한 타당성이나 강도밖에 갖지 않는다는 것을 논증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매우 곤란한 작업인 것은, 제7장에서 센카쿠 제도를 둘러싸고 일중 간에 “분쟁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재판소에 의해 객관적으로 인정될 사항”이므로 “재판소가 분쟁의 존재를 인정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186-197쪽)고 지적하고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제5장에서의 제안이 제7장 및 제9장에서 암암리에 부정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이러한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영토에 관한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연구자 층은 매우 엷다. 그런 현재 상황에서 이 책이 출판된 의의는 헤아릴 수 없다. 이 책을 계기로 영토에 관한 문제에 매달리는 연구자가 늘어날 것을 간절히 바란다. [옮긴이] 김연빈(2024. 5. 25.) [출전] 『國際法外交雜志』(제122권 제1호, 2023년 5월) pp.119-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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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은 때로는 일본 정부의 영토정책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교정을 요구하는 언급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저자들은 일본 정부가 영유권을 주장하는 법적 근거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영토 선점과 영유의사 재확인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졌는지, 독도에 대하여 선점이 아니라 영역의 재확인이라고 하는 입장이 법적으로 가능한지, 혹은 정책적으로 바람직한지 등에 대한 우려도 토로하고 있다.
영토문제 해결 혹은 일본의 공세 강화를 위한 새로운 이론적 분석 시도도 엿보인다. 특히 독도문제와 관련하여 저자들은 국제재판을 통한 분쟁해결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토주권분쟁’의 존부가 해결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일본은 국제판례를 통해 시도되었던 소위 ‘연안국소송(Coastal State litigation)’을 제기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이 다수의 유엔해양법협약(UNCLOS) 분쟁 요소를 재판 청구서에 포함시킴으로써 설령 중재재판소에 의한 관할권이 부정될 경우에도 ‘영토주권분쟁의 존재’는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의 이러한 공세를 근거 없는 주장(mere assertion), 혹은 국제소송의 남용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무시하기 보다는 주변국의 이론과 정책적 지향점을 다시 이해하고 대응하는 것은 국가 전략상 꼭 필요한 과제다. 이 번역서는 비교적 이해가 어려운 국제법 연구서이지만 국제법 학자 외에 해양정책 실무를 담당하는 모든 관계자들이 필독할 만하다. 특히 일본의 영유권에 대한 거의 전반적 내용과 입장, 정책 방향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대응방안을 수립하는 데도 유익할 것이다. 일본의 영유권 편입부터 분쟁 단계에서 논의될 수 있는 전반적 내용을 포괄하고 있고, 관련 사례도 꼼꼼하게 분석하여 제시하고 있다는 점도 이 책을 권하는 이유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하지 않는가. - 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