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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맑은 강물에 발을 씻고 흰 모래 밭에 누우니
한 토막의 시간도 가볍게 여겨서는 아니 된다 꽃은 하얀 옥빛의 향기가 사랑스럽다 부쳐 보면 문득 번갈에서 깨어남을 깨닫는다 가을에 앞서 바람은 절로 서늘하다 가을바람에 영락하여 옛 상자 속에 버려진다 어머니는 문에 기대어 바라보신다 가고 또 가다가 날 저물면 꽃에서 자면 된다 쇠와 옥을 녹이고 하늘을 태우려 하다 맑은 강물에 발을 씻고 흰 모래밭에 눕다 기왓고랑에 흐르는 물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8월 맑고 넓은 가을 호수에 구슬 물결이 푸른데 술잔을 마주하고 꽃구경하는 게 더 낫다 유유히 한가롭게 기이한 산봉우리나 만든다 구름과 산이 분간되지 않는다 단심으로 변함없이 태양을 향하고 있음을 안다 풍정은 줄지 않았건만 살쩍은 실같이 되었다 군자다운 꽃은 군자다운 사람과 같다 혹시 남에게 알려질까 싶어 한나절 부끄러워한다 백 일 동안 활짝 핀 꽃이 여전히 가지를 연모한다 입에 넣으면 젖보다 더 달다 깨끗한 열매살을 잘게 씹으니 이와 뺨이 시리다 신선의 음료인 양 맛이 절로 달콤하다 천 년을 세 번 지낸 결실이 아름답다 홀연 좋은 선물을 받았거늘 기쁨을 과장하랴? 바람이 불면 때때로 나무 사이로 떨어진다 해마다 사람들은 전례가 없는 더위라고 말한다 9월 임도 저 달 보고 날 생각할는지 “별 일곱 나도 일곱” 하고 노래 부른다 한 해에 한 방울씩 상사의 눈물을 흘린다 문득 불 먼지를 씻으러 올 맑은 바람을 기다린다 천하에 가을바람이 일어난다 목을 빼고 머리를 들어 날아오를 듯하다 오색 꽃의 둥근 열매가 선심을 깨뜨리려 한다 참게는 막 살이 오르고 들판의 벼는 누렇다 빈 배에 달빛을 싣고 돌아온다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선비 노릇이 어렵기만 하다 “귀뚤, 귀뚤!” 울음소리가 훤한 새벽까지 이른다 잎에 싸였던 검은 구슬이 와서 집을 환하게 한다 너는 본디 무심하지만 듣는 나는 근심스럽다 8월에 벌써 국화가 노랗다 가을 열매는 다투듯이 아람이 벌어진다 특별한 향기와 진액으로 심장과 폐가 맑아진다 임은 응당 달을 보며 또 나를 그리워하리 10월 이 생애에 이 좋은 밤은 늘 있는 게 아니거늘 손가락 끝에서 하나하나 조개 입술이 합해진다 이 생애에 이 좋은 밤은 늘 있는 게 아니다 고향의 말소리는 그대로인데 귀밑털이 쇠락했다 두 개의 못에서 달이 셋으로 나뉜다 기이한 형상은 우산 같고 또 주먹 같다 가을 하늘의 기러기가 무리를 잃다 언문을 쓸 줄 모른다 과실즙이 이빨 사이로 뿜어 나온다 저녁 햇살 속에서 억새꽃이 바람결에 일렁인다 한 줄기 반쯤 굽은 새 달이 황금빛을 뿜는다 육십 년 전에는 스물세 살이었다 술에 취해 산수유 열매를 꽂고 혼자 즐긴다 한송정에는 밤 달이 밝다 말 앞에는 오히려 속리산이 버티고 있다 11월 시내 다리에 말을 세우고 돌아갈 길 묻나니 내 몸이 그림 속에 있는 줄을 모른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오른다 달이 골짜기 남쪽의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옛날의 노래가 바로 오늘 아침의 일 그대로이다 울면서 보내고 돌아올 때 배 속에 있던 아이이다 오늘 아침에 술 있으면 오늘 아침에 취한다 임금 마음이 변화하여 환히 빛나는 촛불이 된다 뱁새는 숲 속의 둥지로 나뭇가지 하나에 만족한다 기와 조각으로 찜질하니 마음이 조금 풀린다 모래톱에서 발을 쳐들고도 기회를 잡지 못한다 또 소나무 현악기가 악보 없는 곡조를 연주한다 밝은 달만 찾아와서 비추어준다 짐작은 두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 모두가 고향 사람이 된다 가을 하늘에 기러기가 이르기만 기다린다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도 높다 문 앞의 돌길은 바로 모래가 되었을 것이다 한 점의 붉은 마음이 어찌 변하랴? 오래 바라보니 잠시 머무르는 신선이 되네 12월 오래 바라보니 오히려 잠시 머무는 신선이 된다 궁중 의상은 새롭게 고려양을 숭상한다 저녁에 하늘에서 눈이 내리려고 한다 이른 새벽의 닭인들 어떻게 하겠는가? 봄이 아닌데도 수많은 나무에는 꽃이 피었다 해마다 도리어 빈방에서 홀로 잔다 흑백을 한 가지 색으로 섞으려 한다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해진다 내가 임을 찾았을 때 임도 나에게로 떠났다 주먹 바람은 만년토록 전해진다 은근히 풀어내어 짧은 밤에 덧붙여 이어야겠다 아버님이 그리울 때마다 우리 형님을 뵈었다 모름지기 어지럽게 다녀서는 아니 된다. 다음 세상에는 부부가 처지를 서로 바꾼다 자라나는 한 가닥의 미미한 양기가 있음을 안다 달팽이 뿔 같은 세상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어떻게 이 한 몸뚱이가 처신해야 하는가? 새해, 1월 산에는 새의 비상 끊어지고 길에는 사람의 자취 없어졌네 밤사이에 눈이 몇 길이나 내렸다 홀로 차가운 강의 눈 속에서 낚시질한다 눈을 업신여기고 서리를 깔보는 뜻은 한가지다 사랑을 얽어서 동여매고 또 사랑을 동여맨다 송골매가 지나가니 숲과 나무는 엄숙해진다 저녁 바람에 버들개지가 되어 날린다 암자 앞의 눈에 눌린 솔가지를 보려고 한다 문득 물 튀는 소리를 듣고 한꺼번에 난다 푸른 산의 그늘 속에서 사슴이 알을 품는다 나를 찾아올 이 누가 있는가? 가볍게 흔들려 바람에 날리는 솜처럼 희다 눈 온 때는 옥룡의 나뭇가지를 특히 좋아한다 땅을 덮고 공중에 이어져 백옥 눈꽃이 어지럽다 어떻게 눈 속에서 이처럼 푸르겠는가? 시단에서는 도리어 찾아온 시인 이백을 만난다 바야흐로 지킴이 견고함을 안다 만고에 백골이 서 있다 2월 옛 현인이 남긴 자취는 응당 그리기도 어려우니 봄이 와도 다시는 예전의 흥취가 일지 않는다 등불 하나가 두 해의 사람을 나누어 비춘다 축축 늘어진 맑은 풍모가 추운 날씨에 오만하다 옛 현인이 남긴 자취는 응당 그리기도 어렵다 거울 속 얼굴은 해마다 달라진다 매화 가지에는 쇠잔한 달이 예쁘게 남아 있다 억만 개의 시름이 앞으로 물러나려 한다 봄은 이미 가지 위에 완연히 와 있다 홀로 스스로 싱그럽게 꽃술 향기를 풍긴다 천 송이 눈이 몇 가지의 매화에 맺혀 있다 냉면 사리에 곁들인 절인 배추가 푸르다 회를 치니 은실처럼 가늘다 부질없이 푸른 허공에 던져 버렸다 3월 누구 집에 술이 익어 꽃이 한창 흐드러졌는가 구름 속 기러기는 뜻을 얻고 버들은 생기가 돈다 아침에 눈이 허공에 가득하니 어찌할 수 없다 수많은 벌레 족속이 떨쳐 일어남을 탄식한다 ‘소쩍, 소쩍!’ 하며 솥 적다고 울어댄다 푸른 미나리는 병든 사람의 구미에 맞다 매화나무 가지 위에 좋은 꽃을 재촉한다 냇가의 버들 네가 먼저 봄소식을 안다 뜰에는 한 그루의 매화 향기가 가득하다 오늘 아침에 붉은 꽃술이 몇 조각이나 피었는가? 봄밤은 일각이 천금의 가치가 있다 갑자기 봄바람이 오늘 아침에 찾아왔다 긴 둑길에는 개나리꽃이 피어 있다 봄의 음기는 자욱하고 한낮의 바람은 가볍다 누구 집에 술이 익어 꽃이 한창 흐드러졌는가? 꽃이 지고 나니 온갖 가지가 비어 있다 4월 달인 양, 꽃인 양 두 사람 마주앉아 옛 담장 가에는 산수유 꽃이 피어 있다 달인 양, 꽃인 양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다 그대 집에 이른 것도 깨닫지 못한다 강에 가득한 봄비가 실실이 푸르다 목동은 멀리 살구꽃 핀 마을을 가리킨다 산꽃의 그림자가 무논 중에 떨어진다 객사의 짙푸른 버들은 빛깔이 신선하다 벗이 오는가? 아이야, 멀리 바라보아라 복사꽃이 종일토록 물 따라 흘러간다 얄미울손 주렴 밖에 새로 돌아온 제비이다 이별을 말하려고 하니 애간장이 먼저 끊어진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진다 뜰 가의 복사꽃이 눈물짓는다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참으로 그윽하다 원한 맺힌 두견새는 소리마다 피를 토하며 운다 연일 내리는 비에 봄이 가는 줄 모른다 배꽃에 걸린 달을 향하여 눈물짓는다 5월 풀 속의 푸른 벌레 나비가 되어 복사꽃이 시내에 떠서 아득히 흘러간다 풀 속의 푸른 벌레는 나비가 되어 난다 반 사발의 맑은 액체로 번민을 씻는다 봄바람아, 머물 생각 말고 잘 떠나가거라 꽃이 시들면 잎이 더욱 좋음을 알지 못한다 버들가지 꺾어 천릿길 가는 이에게 보낸다 병을 기울이면 달도 없어진다 인간 세상에서 어찌 이런 일이 있는가? 등꽃 한 그루가 싸늘한 소나무에 붙어 있다 이웃집의 젊은 아낙은 저녁거리가 없다 한밤중의 종소리가 나그네의 배에 들려온다. 가시가 있다고 해서 꽃의 흠결이 되지는 않는다 오동나무 꽃은 밤안개 속에 진다 초록 사이에 보통이 아닌 봄빛이 남아 있다 주인 없이 늙어가는 들판의 붉은 꽃이 애석하다 어떤 꽃이 승상이 되려는가? 곱게 꾸민 두 뺨은 잔뜩 술에 취한 듯하다 산에는 아무 죄 없는 짐승과 에레나보다 어여쁜 꽃들 6월 산에는 아무 죄 없는 짐승과 에레나보다 어여쁜 꽃들 빨간 앵두가 익어서 찬란하다 산꽃에서 채취하여 돌방에서 빚어내었다 보리가 노랗게 익어 사방 들판이 향기롭다 오디가 자욱하여 마을이 온통 어둑하다 모내기가 으뜸으로 좋다 청산에서 얻어서 청산에서 잃었다 요란한 그네뛰기에 비단 새끼줄이 드날린다 석류꽃이 무수히 선홍 빛깔로 피어 있다 뜰의 매화나무에 좋은 열매가 맺혀 있다 온통 산딸기의 달콤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긴 하짓날이 또 겨우 한 번뿐이다 큰 잎은 붉고 푸른 주름이 잡혀 있다 가지는 과실과 채소를 겸하고 있다 잎은 파와 같고 뿌리는 마늘과 같다 일곱 잔을 마시고 나니몸 위의 맑은 하늘로 날아갈 듯 다시, 7월 문득 양쪽 겨드랑이에서 맑은 바람이 시원하게 관문과 하천에는 수레와 말이 통행하지 못한다 좋은 벼가 꽃도 못 피우고 반쯤 타서 말랐다 추연이 슬퍼하니 여름에 서리가 내렸다 가을에 앞서 바람은 절로 서늘하다 다만 농어의 좋은 맛을 좋아할 뿐이다 천 개의 화로에서 붉은 숯불을 부채질한다 불기운을 싸지도 않고 늦지도 않게 조절한다 푸른 치마를 입은 여인이 목화밭에서 나온다 문득 곤륜산에 걸리는 긴 소매가 못마땅하다 가는 뿔 모양이 마치 갈대 이삭과 비슷하다 석벽에 빗방울이 콩을 뿌리듯이 점을 찍는다 돌 주머니를 머리 위로 넘기는 이가 내 마음에 맞다 문득 무더위가 밤에 온통 사라짐을 깨닫는다 홍류폭포 아래에 술잔을 걸어 두었다 예전의 달고 시원한 맛이 변함없이 그대로이다 꿀처럼 달고 살이 엉기지 않고 부드럽다 정이 많아 두 넓적다리를 벌리고 있다 엄지를 감싸 쥐고 조용히 생각한다 노인은 참새를 쫓느라고 남쪽 비탈에 앉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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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게 익은 살구는 그 향미 때문에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과일이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속담처럼 개중에는 빛깔만 곱고 맛은 시고 떫은 것도 있지만 과육이 풍부한 떡살구 한 개를 통째로 입에 넣었을 때 입안에 가득 퍼지는 그 황홀한 맛은 잊기 어려운 경험이다. 어릴 때 고향 집 마당 한쪽에서 빨랫줄을 가지에 걸고 있던 그 살구나무가 그리워진다.
가지 끝의 살구는 금빛 탄환 같은데 枝頭杏子似金彈 바람이 불면 때때로 나무 사이로 떨어지네. 風動時時落樹間 두 아이가 서로 가지려고 다투는 것을 兩箇小童爭拾得 병든 사람이 말없이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네. 病夫無語倚?看 -서거정, 〈즉석에서 짓다(卽事)〉 _ 63면, ‘8월의 시’ 중에서 음력 10월은 기러기가 찾아오는 계절이다. 이미 남쪽 지방의 우포늪이나 주남저수지,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에는 겨울 철새가 떼 지어 이르렀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기러기는 늦가을에 북쪽에서 왔다가 이른 봄이면 다시 북쪽으로 가는 규칙성 때문에 예로부터 그것을 보고서 절후를 짐작하기도 하였다. 천 리 밖의 친구에게서 소식이 드문데 故人千里訊音疏 가을 하늘에 기러기가 이르기만 기다리네. 只待霜天雁到初 새도 시류時流에 따라 정情이 얕아지는지 鳥亦隨時情意薄 날개가 무거운 게 싫어서 서신을 가져오지 않네. 唯嫌翅重不將書 -이규보, 〈기러기를 읊다(詠雁)〉 _ 160면, ‘11월의 시’ 중에서 새로 담근 술거품 위로 밥알이 떠오르고 綠蟻新?酒 작은 화로에는 붉은 불길이 무르녹네. 紅泥小火爐 저녁에 하늘에서 눈이 내리려고 하거늘 晩來天欲雪 술 한 잔 안 마셔도 되겠는가? 能飮一杯無 -백거이, 〈유십구에게 묻다(問劉十九)〉 이 시는 중당中唐의 시인 백거이의 작품으로 벗에게 눈 오는 저녁에 술 한 잔을 함께하지 않으려는지 묻고 있다. 백거이는 하지장賀知章이나 이백李白처럼 탐주貪酒하지는 않았으나 “꽃 피면 함께 취해 봄 시름을 깨뜨리고, 취하면 꽃가지 꺾어 술잔 수를 헤아렸네(花時同醉破春愁 醉折花枝當酒籌)”라고 하며 풍류를 즐긴 인물이었다. _ 175면, ‘12월의 시’ 중에서 봄의 음기는 자욱하고 한낮의 바람은 가벼운데 春陰漠漠午風輕 환한 조그만 뜰에는 녹음이 짙고 붉은 꽃이 쇠잔하네. 綠暗紅殘小院明 언뜻 내리던 비가 보이지 않는데 微雨乍來看不見 갑자기 두어 마디 꾀꼬리 울음소리가 들리네. 忽聞黃鳥兩三聲 -이색, 〈봄의 음기(春陰)〉 이 시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전개되는 뜰 안의 변화상을 평담한 어조로 제시하고 있는데, 후반부의 반전은 독자의 시선을 끌 만하다. 가랑비가 조금 눈에 비치는 듯하더니 어느새 사라지고 맑고 고운 꾀꼬리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고 함으로써 궂은 날씨를 걱정하던 분위기가 밝고 화창한 분위기로 돌변하고 있다. 박은도 〈복령사福靈寺〉에서 “봄의 음기로 비가 올 것이라고 새는 서로 속삭이고, 늙은 나무가 정이 없다고 바람은 스스로 슬퍼하네(春陰欲雨鳥相語 老樹無情風自哀)”라고 하여 봄의 음기를 지적한 바 있다. 호사가는 이 구절에 대해 신조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_ 295~296면, ‘3월의 시’ 중에서 ---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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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 치고 우레 달려 수많은 나무 울 때, 문득 찾아온 깨달음
한시는 고상하고 특별한 옛 선비들의 전유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시의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심내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그것을 시로서 다스리고 풀어내는 선인들의 지혜가 있다. 또한 그 속에는 천변만화하는 계절과 삶의 찰나를 포착한 순간의 미학이 있다. “번개 치고 우레 달려 수많은 나무가 울더니/금세 걷히고 둥근 달이 밝네/변하는 하늘의 뜻은 모르지만/다만 빈 서재에서 온갖 생각이 맑아짐을 깨닫네(?電奔雷萬木鳴 須臾捲盡月輪明 不知變化天公意 唯覺虛齋百慮淸).” 폭우가 쏟아지는 여름밤, 이황은 빈 서재에서 홀로 깨어 있다. 나무들이 우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괴로움을 생각하는 사이, 어느덧 비가 그치고 달이 떠오른다. 고개를 드니 그의 번뇌가 맑게 씻어졌음을 깨닫는다. 계절은 바뀌고 가을비 쓸쓸히 내릴 때, 문득 세월의 덧없음과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누군가를 떠올리는 이 시는 어떠한가. “빈산에는 낙엽이 지고 비가 쓸쓸히 내리는데/상국의 풍류가 이처럼 적적하네/슬프게도 술 한 잔을 다시 권하기 어려우니/옛날 노래가 바로 오늘 아침 일 그대로이네(空山木落雨蕭蕭 相國風流此寂寥 ??一盃難更進 昔年歌曲卽今朝).” 송강 정철의 묘소를 찾은 문인文人 권필은 음주와 풍류를 즐기던 송강의 삶도 덧없이 사라졌음을 느끼고 그의 시를 떠올린다. “이 몸이 죽은 후면(…)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숲에 가기곳 가면(…)뉘 한 잔 먹자 할꼬.”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사의 무상함을 표현한 그 옛날의 노래가 바로 오늘 아침의 노래가 되어 흐른다. 다시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 권필의 시를 읽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유장한 시간의 흐름 속에 스러져가는 운명을 지닌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치고 간다. 이렇게 기나긴 세월과 찰나의 삶을 담은 한시는 우리로 하여금 먼 과거에서부터 현재와 미래에 이르는 삶까지 비로소 생각하게 한다. 조선시대 아낙의 슬픔이 대중가요 속에 흐른다 저자는 한시뿐 아니라, 고대부터 현대에까지 널리 불린 우리 가락을 엄선하여, 진솔하고 감칠맛 나는 우리 노래의 풍미를 더하였다. “사랑을 찬찬 얽동여 뒤설머 지고(…)가다가 자즐려 죽을망정 나는 아니 버리고 갈까 하노라”는 옛 시조에 이어, “사랑을 얽어서 동여매고 또 사랑을 동여매어(…)차라리 사랑의 짐에 눌려 죽을지언정 그것을 버린다는 데는 본디 수긍할 수 없네(纏情復纏情 寧爲情壓死 棄之本不肯)”라는 한시는 어떠한가. “이웃집의 젊은 아낙은 저녁거리가 없는데…문에 들어서니 어린것들이 울면서 옷을 끌어당기네(隣家少婦無夜食 入門兒女啼牽衣)”라는 조선시대 아낙의 슬픔이, 1970년대 대중가요에서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라는 아이의 슬픔에 이르기까지, 고금의 시간을 넘어 보편적 정서가 담긴 우리 가락의 정수를 맛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