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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현대문학 201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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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윤대녕, 과거로의 시간 여행
‘도서관’ ‘다방’ ‘음악당’ 등 지극히 일상적 장소와 그것을 수식하는 짧은 문구로 이루어진 스물세 개의 제목들. 윤대녕의 시선을 좇아가다 보면 작가의 삶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을 공유했던 공간들을 만나고, 마침내 누구나 한때 지나쳐 온 생의 장면들이 다시금 살아 돌아온다.
2014.06.17. 에세이 PD

책소개

목차

고향집 ― 왜 하필 ‘거기’여야만 했을까?
늙은 그녀 ― 나라는 존재가 비롯된 아득하고 영원한
휴게소, 공항, 역, 터미널 ― 우연과 필연이 마주치는 지점
누군가 술을 마시다 떠난 지하 카페 ― 은행잎이 쏟아져 내리던 날
노래방 ― 그림자처럼 머물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바다 ―영원의 순간과 마주하며
유랑의 거처 ― 글쓰기의 시간대
술집들 ― 폐허에의 환속
골목길들 ― 실루엣들이 서성대는 곳
사원들 ― 성스러운 사유의 집
역전 다방 ― 우리 모두가 남루한 행인이었을 때
경기장 ― 함성과 고독 사이에서
음악당 ― 황홀한 명상의 기쁨이 가득한
여관들 ― 별빛 속의 수많은 나그네들이 길을 가다가
부엌 ― 익숙한 슬픔과 낯선 희망이 한데 지져지고 볶아지는
목욕탕 ― 벌거벗은 몸뚱이로 참회하고 또한 참구하고저
영화관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시절
자동차 ― 근대 이후의 유목민을 위하여
도서관 ― 유령들이 득실거리는 납골당
우체국 ― 제비들이 날아오고 날아가는 곳
공중전화 부스 ― 저쪽 연못에서는 붕어가 알을 까고
병원 ― 그래, 이제 좀 웬만하오?
광장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YOON DEA NYUNG,尹大寧

196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단국대 불문과에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198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원」이 당선되었고, 1990년 [문학사상]에서 「어머니의 숲」으로 신인상을 받아 등단했다. 출판사와 기업체 홍보실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4년 『은어낚시통신』을 발표하며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 책을 통해 존재의 시원에 대한 천착을 통해 우수와 허무가 짙게 깔린 독특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떠오르며 '존재의 시원에 대한 그리움'을 그만의 독특한 문체로 그려나가고
196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단국대 불문과에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198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원」이 당선되었고, 1990년 [문학사상]에서 「어머니의 숲」으로 신인상을 받아 등단했다. 출판사와 기업체 홍보실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4년 『은어낚시통신』을 발표하며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 책을 통해 존재의 시원에 대한 천착을 통해 우수와 허무가 짙게 깔린 독특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떠오르며 '존재의 시원에 대한 그리움'을 그만의 독특한 문체로 그려나가고 있다. 오늘의 젊은예술가상(1994), 이상문학상(1996), 현대문학상(1998), 이효석문학상(2003), 김유정문학상(2007), 김준성문학상(2012)을 수상했다. 2019년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여섯 살 이전의 기억은 전혀 뇌리에 남아 있지 않다는 그의 최초의 기억은 조모의 등에 업혀 천연두 예방 주사를 맞기 위해 초등학교에 가던 날이다. 주사 바늘이 몸에 박히는 순간 제대로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일곱 살 때 조부가 교장으로 있던 학교에 들어갔다. 입학도 안 하고 1학년 2학기에 학교 소사에게 끌려가 교실이라는 낯선 공간에 내던져진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아버지에게 한자를 배웠다. 한자 공부가 끝나면 조부는 밤길에 막걸리 심부름이나 빈 대두병을 들려 석유를 받아 오게 했다. 오는 길이 무서워 주전가 꼭지에 입을 대고 찔끔찔끔 막걸리를 빨아먹거나 당근밭에 웅크리고 앉아 석유 냄새를 맡곤 했던 것이 서글프면서도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독서 취미가 다소 병적으로 변해,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 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 우연히 '동맥'이라는 문학 동인회에 가입한다. 그때부터 치기와 겉멋이 무엇인지 알게 돼 선배들을 따라 술집을 전전하기도 하고 백일장이나 현상 문예에 투고하기도 했고 또 가끔 상을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거의 한 달에 한 편씩 소설을 써대며 찬바람이 불면 벌써부터 신춘 문예 병이 들어 방안에 처박히기도 했다.

대학에 가서는 자취방에 처박혀 롤랑 바르트나 바슐라르, 프레이저, 융 같은 이들의 저작을 교과서 대신 읽었고 어찌다 학교에 가도 뭘 얻어들을 게 없나 싶어 국문과나 기웃거렸다. 1학년 때부터 매년 신춘 문예에 응모했지만 계속 낙선이어서 3학년을 마치고 화천에 있는 7사단으로 입대한다. 군에 있을 때에는 밖에서 우편으로 부쳐 온 시집들을 성경처럼 읽으며 제대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때 군복을 입고 100권쯤 읽은 시집들이 훗날 글쓰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제대 후 1주일 만에 공주의 조그만 암자에 들어가 유예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을 투명하게 보려고 몸부림쳤다. 이듬해 봄이 왔을 때도 산에서 내려가는 일을 자꾸 뒤로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뻔한 현실론에 떠밀려 다시 복학했고 한 순간 번뜩,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문학이라는 것을 아프게 깨닫는다.

데뷔 이래 줄곧 시적 감수성이 뚝뚝 묻어나는 글쓰기로 주목을 받은 윤대녕은 ‘시적인 문체’를 지녔다는 찬사를 받는다. 그의 글에서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그만의 시적 색채가 느껴지는 문체가 있어서이다. 동시에 그의 글에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일상을 마치 스냅사진을 찍듯 자연스럽게 포착하여 그려내는 뛰어난 서사의 힘이 느껴진다.

윤대녕은 고전적 감각을 견지하면서 동시에 동시대적 삶과 문화에 대한 예리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들을 지향점을 잃어버린 시대에 삶과 사랑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젊은 세대의 일상에 시적 묘사와 신화적 상징을 투사함으로서 삶의 근원적 비의를 탐색한다. 내성적 문체, 진지한 시선, 시적 상상력과 회화적인 감수성, 치밀한 이미지 구성으로 우리 소설의 새로운 표정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으로『남쪽 계단을 보라』,『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대설주의보』를 비롯해 장편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추억의 아주 먼 곳』,『달의 지평선』,『코카콜라 애인』, 『사슴벌레 여자』, 『미란』 등을 발표했다. 산문집 『그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 『누가 걸어간다』, 『어머니의 수저』,『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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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6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62g | 153*224*15mm
ISBN13
9788972757047

책 속으로

가끔 이런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비롯된 곳이 왜 하필이면 그곳이었을까? 내게 선택이 주어진 것은 아닐지라도 마당 곳곳에 채송화와 달리아와 백일홍 들이 피어 있는 밝고 화사한 공간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의 운명은 어쩐지 태어날 때부터 그 집에서 이미 결정지어져 세상으로 내보내졌다는 쓸쓸한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뭔가 참을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오곤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집이 그런 의미는 아니겠지만, 내게는 어쩔 수 없이 그렇다.---「고향집―왜 하필 ‘거기’여야만 했을까?」

이윽고 그녀가 완전히 어둠에 묻혀버리면 나는 머뭇거리며 그 골목 안으로 걸어가보곤 했다. 그리고 대개 이러한 풍경들을 목도하곤 했다. 전봇대 옆에 등을 돌리고 서 있는 젊은 남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며 비틀비틀 걸어가는 중년의 남자, 공중전화에 매달려 있는 울고 있는 어떤 여자, 혹은 대문 앞에서 팔짱을 낀 채 초조하게 서성이며 남편을 기다리는 여염집 여자, 그리고 저쪽에서는 누군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이를테면 그녀는 내가 목격하고 있는 풍경들 속을 지나 집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그러니까 막상 필요한 지대에서 나는 그녀 옆에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내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지. 그 경계를 끝내 허물지 못했던 탓일까? 봄에 만났으되 여름이 가기도 전에 그녀와 나는 헤어지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바래다주던 밤, 나는 어느 집 대문 옆에 버려져 있는 화분에서 봉숭아가 피어 있는 것을 보고 그만 울컥, 하는 심정이 되고 말았다. 첫눈이 내릴 때까지는 만날 줄 알았던 것이다.---「골목길들―실루엣들이 서성대는 곳」

내 기억은 다시 유년 시절로 돌아간다. 이제 와 깨달았으되, 그때의 부엌은 부재했던 내 어머니의 자궁을 대신한 공간이었다. 나는 그 어둑하고 따뜻한 공간에서 고요히 불을 지켜보면서 꿈을 꾸고 먹이를 받아먹으며 몸을 불려가던 커다란 태아였다. 이후 그 아이는 아홉 살로 다시 태어나 제 어미의 부엌에서 어미의 슬픔을 먹고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50을 넘긴 지금에도 여태 부엌을 떠나지 못하고 늙은 어미가 그립거나 삶에 지쳐갈 때면 슬그머니 칼을 집어 들고 무언가를 썰거나, 끓이거나 지지고 볶으며 여전히 삶에 대한 낯선 희망과 덧없는 기대를 품곤 한다. 이렇듯 사는 일과 밥을 짓는 일과 글을 쓰는 일은 서로 완전히 일치한다. 실제로 나는 비좁은 주방 옆에 놓인 식탁에서 글을 쓸 때가 가장 마음이 평온하고 어쩐지 행복해지기도 한다. 대장장이에게는 아무래도 대장간이 마음 편한 공간이듯이 말이다.---「부엌―익숙한 슬픔과 낯선 희망이 한데 지져지고 볶아지는」

그 전날 나는 마지막으로 이 차를 몰고 혼자 임진각에 다녀왔다. 그 참에 내가 살던 일산 신도시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내 유목의 삶이 사실상 종료됐음을 깨달았다. 이제부터는 장소와 공간이 일체화된 어느 한 지점에 머물며 상시적으로 지구력과 인내심을 요하는 지극히 단조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겠지. 왠지 그런 예감이 들었다. 어쨌든 나이 50이 다 돼가는 마당에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낡은 스포츠카를 몰고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새로 출시된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라면 혹시 또 모를까.

---「자동차―근대 이후의 유목민을 위하여」

출판사 리뷰

지금 ‘윤대녕’을 읽는다는 것,
여전히 품게 되는 삶에 대한 낯선 희망과 기대를 갖는 일


장소와 그것을 수식하는 짧은 문구로 이루어진 스물세 개의 제목을 따라 윤대녕의 시선을 좇다 보면 문득 작가의 삶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을 공유한(「공중전화 부스」) 당사자인 소설가 구효서의 말처럼 “아득하기만 했던 그 여백의 수면 위로 이 책의 갈피갈피들이 애틋한 징검돌이 되어 내 앞에 꽃잎처럼 떠오”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도서관’ ‘다방’ ‘음악당’ ‘병원’ 등 일상적 장소에 각인됐던 작가의 에피소드들은 무심한 듯 열렬하게 나의 기억과 맞닿는 지점을 내보이며 “각자 자신에게 북받치듯 돌아가”는 독서의 열락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지나고 나면 삶은 한갓 꿈으로 변한다고 했던가. 돌아보니 정말이지 모든 게 찰나의 꿈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나는 그 꿈이라도 한사코 복원하고 싶었던가 보다. 연재를 하는 동안 나는 과거에 내가 머물렀던 곳들을 가끔 찾아가보았다. 짐작했듯 대부분의 공간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더 이상 자취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만 그곳에는 마음의 텅 빈 장소場所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매달 한 편씩 연재를 하면서 나는 무척 행복했던 것 같다.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복원하는 글쓰기가 많은 순간 내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삶을 복원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삶이 내게 남겨준 것이 무엇인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254쪽,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책에서 작가가 복원하는 삶의 지점들은 누구나 한때 지나쳐 온 생의 장면들이 자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인 까닭이다. 삶의 비의가 담긴 그 순간들은 마침내 ‘광장’으로 이동하며 내면에서 외면을, 과거와 미래로 연결시킨다. 독자들은 윤대녕을 함께 읽으며 이미 사라진 생의 많은 부분들이 다시금 살아 돌아오는 새삼스러운 감동과 함께 삶에 대한 낯선 희망과 기대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광장은 어디까지나 장소와 공간을 포함한 개념이다. 언급했듯 거기에 사람들이 존재하면 광장은 그 순간 공간으로 변한다. 말하자면 사람이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어떤 관계도 만남도 상상도 가능하다. 즉 광장은 미래의 삶과 연결돼 있다.” (251쪽, 「광장―「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중에서)


▲ 작가의 말

이 책에 수록된 에세이들은 월간 『현대문학』에 2011년 10월부터 2013년 9월까지 2년 동안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다. 연재를 시작할 무렵 나는 쉰 살의 문턱을 막 넘어서고 있었다. 때때로 지나온 생生을 돌아보게 되는 나이로 접어든 것이었다.
모든 존재는 시공간時空間의 그물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간과 공간이 씨줄과 날줄로 겹치는 지점에서 매 순간 삶이 발생하고 또한 연속된다. 이렇듯 시간의 지속에 의해 우리는 삶의 나이를 먹어간다. 한편 공간은 ‘무엇이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는 자리’이다. 그런데 허망하게도 과거에 내가(우리가) 존재했던 공간은 세월과 함께 덧없이(영원히)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지나고 나면 삶은 한갓 꿈으로 변한다고 했던가. 돌아보니 정말이지 모든 게 찰나의 꿈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나는 그 꿈이라도 한사코 복원하고 싶었던가 보다. 연재를 하는 동안 나는 과거에 내가 머물렀던 곳들을 가끔 찾아가보았다. 짐작했듯 대부분의 공간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더 이상 자취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만 그곳에는 마음의 텅 빈 장소場所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매달 한 편씩 연재를 하면서 나는 무척 행복했던 것 같다.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복원하는 글쓰기가 많은 순간 내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삶을 복원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삶이 내게 남겨준 것이 무엇인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군데군데 문장을 바로잡으며 원고를 정리하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래저래 경황이 없던 탓이었으나, 지금이라도 책을 낼 수 있게 되어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또한 앞으로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더러 공감을 해준다면 이제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겠다.

추천평

윤대녕과는 먼 듯 가깝고 가까우면서도 멀었다. 그의 깊은 눈 때문이겠지. 이마를 꽉 맞대고 들여다보아도 야속하게 속눈만은 저만치 멀었다. 아득한 것들이 그리하여 늘 아득했다. 텅 비었으되 무언가로 가득한 그의 여백을 건너지 못해 나는 늘 허당 짚었다. 딛고 건너려 해도 무얼 디딜지 몰랐잖은가.
아득하기만 했던 그 여백의 수면 위로 이 책의 갈피갈피들이 애틋한 징검돌이 되어 내 앞에 꽃잎처럼 떠오른다. 뒤늦은 순정을 깨달은 처자처럼 나는 처음인 듯 그에게 달려 건너간다. 이것은 가히 그가 세상 어떤 것도 쥐기 이전에 쥐었던 어린 적수赤手의 뭉클한 팩트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 혹은 우리의 것과 다르지 않은 사실들임이 못내 밝혀진다.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는 윤대녕, 그 이름을 빌려 각자 자신에게 북받치듯 돌아가 다다른다. ‘아, 기뻐라/나는 여기에 혼자 있는 게 아니라/별빛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가며/그들은 이렇게 나에게 다가오나니.’
구효서(소설가)
작가의 시선은 치열했던 시대와 욕망의 중심에서 이제 조금 멀찍이 떨어져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보는 눈, 관조觀照로의 이행 중에 있다. 이는 불교적으로 말하면 참된 지혜의 힘이 없거나, 사물에 대한 통찰함이 마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작가가 삶과 죽음의 초월적인 경계에 서 있을 때만이 그 시선을 갖는다는 말. 이는 글을 오래 쓴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욕망과 그것이 투영되는 사물을 다루는 일에 능숙한 산문쟁이라고 할지라도 작가 개인적인 욕망에 대해 적절한 거리감이 없다면 스스로 세월의 지난함 어딘가에 함몰되고 초심에 근거했던 작가의 산문정신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우리에게 만년의 완성된 작가가 드문 것이 그 증거이다. 그의 글은 지난날 오래도록 견지했던 중심의 시선을 버리고 초월적 바다의 경계를 유영한 지 오래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가 윤대녕이 지닌 산문정신의 이행은 후배작가들에게는 과寡하고 귀한 일이다. 지금 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이제껏 한국문학이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관조, 만년의 문학을 향해 묵묵히 수행하는 자의 참선을 미리 엿보는 일이다.
백가흠(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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