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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화약 무기를 만들어 왜구를 소탕하다, 최무선 조선시대 최고의 기술자, 장영실 기술을 사랑한 위대한 실학자, 정약용 우두법 보급에서 언어학 연구까지, 지석영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양의사, 김점동 한국의 근대 건축을 개척하다, 박길룡 라디오 국산화의 주역, 김해수 가난한 목공에서 동명그룹의 총수로, 강석진 한국의 철강 산업을 만들다, 박태준 도전과 끈기로 혁신하기, 현대자동차 추격에서 선도로, 삼성 반도체 산학연관을 섭렵한 우주개발의 선구자, 최순달 디지털 이동 통신의 상용화, CDMA 밥솥의 절대 강자, 쿠쿠전자 참고문헌 |
宋成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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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우기에 대한 오해는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측우기를 장영실이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중략) 측우기의 창제자가 문종이라고 해서 ‘조선시대 최고의 기술자’라는 장영실의 명성에 흠집이 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조금 번거롭더라도 장영실 동상 옆에 측우기 대신 자격루 모형을 제작하여 설치하는 편이 나아 보인다. 측우기의 과학기술적 의미는 제작의 난이도보다는 정량적 사고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깡통에 자를 붙였다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겠는가? 오히려 비가 얼마나 왔을까를 측정해 보겠다는 발상이 대단하지 않은가? 오늘 비가 많이 왔다는 생각에 멈추지 않고 얼마나 많이 왔는지를 수량화해보자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셈이다. 이와 함께 측우기를 표준화시키고 전국적으로 보급한 후 통계 자료를 수집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 「조선시대 최고의 기술자, 장영실」 중에서 물론 지석영이 조선 우두법의 역사에서 두드러졌던 인물이고 그가 일본인에게서 우두법을 배웠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두법은 이미 19세기 초부터 정약용을 비롯한 조선인 학자들에 의해 소개되었으며, 개항을 전후해서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중국인과 서양 선교사를 통해 우두법이 조선에 들어왔다. (중략) 일반인이 우두법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종 나타나는 일종의 문화적 현상에 해당한다. 이러한 여러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한 개인의 업적을 칭송하게 되면 부지불식간에 영웅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 「우두법 보급에서 언어학 연구까지, 지석영」 중에서 조선 총독부에서 건축을 담당하는 부서에는 2~5명의 기사, 평균 60명의 기수, 10~20명의 촉탁이 근무했다고 한다. 박길룡은 1920~1932년의 12년 동안 기수로 재직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그는 매우 빠르고도 정확한 설계 도면을 그려내는 능력을 보였으며, 이에 따라 ‘오토바이’ 혹은 ‘재봉틀’과 같은 별명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 「한국의 근대 건축을 개척하다, 박길룡」 중에서 “박[태준] 회장님은 일본에 가서 그자들이 가르쳐주는 기술만 배워 오는 것이 아니라 가르쳐주지 않는 기술까지 모조리 눈에 담아 오라고 하셨습니다. 눈으로 담아 오라는 말씀은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훔쳐 오라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당시에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값비싼 것인지 알 수가 있었겠습니까? 도둑도 큰 도둑이 되려면 보석을 감정할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알아야 진짜와 가짜를 가리지 않습니까? … 죽을 똥을 쌌습니다. 일본 기술자들한테 술값이 엄청 들어갔어요. 설계도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도 없고 … 결국 나중에는 그 사람들이 일부러 캐비닛을 열어 놓고 피해 주더군요. … 어찌나 고마운지 … 그런데 기막힌 것은 파견된 우리 기술진들입니다. 아무리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술을 마셨어도 설계도만 보면 정신을 번쩍 차리고 주머니에 쑤셔 넣고 눈에 담곤 하는 겁니다. 진짜 왕도둑놈들이더군요. 눈물겨운 일이었습니다.” --- 「한국의 철강 산업을 만들다, 박태준」 중에서 사실상 최순달은 일선 연구자가 아니라 연구 관리자로서 우리별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시켰다. 그는 우리별 사업에 대한 자신의 역할을 세계 일류의 교향악단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찾고 있다. “내가 한 일을 교향악단에 비유하자면, 기존의 악단에 지휘자로 영입된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악단을 직접 구상하고, 소요되는 경비를 모금하고, 악기를 다뤄본 적은 없으나 음악에 소질이 있는 유능한 인재를 손수 뽑아, 일부는 국내에서 또 다른 일부는 외국 유학으로 훈련시켜 세계 일류의 교향악단을 만든 것이라 할 수 있겠다.” --- 「산학연관을 섭렵한 우주개발의 선구자, 최순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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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기술을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았던,
첨단 과학기술을 발명한 한국인은 누굴까? 불모의 시기, 혁신을 이룬 사람들 백신, 스마트폰, 인공위성, 반도체 등 과학기술은 일상생활은 물론 국가 경쟁력과 불가분의 관계다. 첨단 기술을 발명하고 혁신을 거듭하는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선진 문물을 외국에서 들여와 퍼뜨리는 데 그쳤을까? 과학기술의 역사에서 이름을 날린 인물들의 출신 국가를 떠올리면 이는 자연스러운 의문이다. 이 책은 온갖 경제적?정치적 어려움에도 산업의 기틀이 되는 과학기술을 갈고 닦아, 마침내 우리나라를 선진국의 반열에 올린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사는 서양의 과학을 받아들여 따라가기만 한 역사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과학사학자 송성수 교수가 발굴한 사람과 기업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우리나라의 철강이 각종 산업을 떠받치고, 한국산 자동차와 반도체, 휴대전화를 전 세계 사람들이 사용하는 현재는 우연이 아니다. 우리의 기술이 우주를 향하는 미래도 우연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이름을 기억하는 데 있다. 한국인의,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혁신 부산대학교에서 10여 년간 ‘인물로 보는 기술의 역사’를 강의해 온 저자는 서양 중심의 연구와 서술에 아쉬움을 느끼고 직접 한국의 사례를 찾고 모았다. 그중에는 익숙한 이름인 최무선과 장영실부터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으로서 근대 건축을 이끌었던 박길룡, 조선 최초의 여성 양의사 김점동, 대한민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개발한 최순달 등이 포함되었다. 아울러 삼성의 반도체, 현대의 자동차, 쿠쿠전자의 밥솥 등 국내 굴지의 기업이 명성을 얻기 이전의 이야기도 담았다. 예컨대 한국의 철강 산업을 주도한 박태준이 포항제철소를 건설한 과정에서, 해외 연수팀이 일본에 가 기술자들에게 술을 사주며 기술을 습득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2022년 쏘아 올린 누리호 개발 과정에서 국내 연구진이 러시아 기술자들과 동고동락하며 기술을 배웠다는 후일담을 떠올리게 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혁신으로 가는 지름길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객관적으로 보는 과학기술 위인전 이 책은 한국인이 주도한 과학기술의 발전사를 조명하지만 무턱대고 그들을 추켜세우지 않는다. 인물과 조직이 특수한 시대 상황 속에서 기술을 발명하고 혁신을 거듭하는 과정을 전달하면서도 ‘인물을 영웅시하는 신화에 빠지진 않았는가?’ ‘실무를 전담했지만 이름은 덜 알려진 주역이 따로 있는가?’ ‘공로와 과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는가?’ 등을 일관되게 묻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장영실만 해도 그렇다. 강수량을 재는 기구인 ‘측우기’는 실제로는 조선 제5대 왕인 문종이 즉위하기 전에 만들었지만, 장영실이 만들었다는 오해가 퍼져 있다. 저자는 오해는 물론 측우기의 원리가 꽤 단순하다는 점을 가감 없이 밝힌다. 동시에 그럼에도 장영실의 성취가 위대한 이유와 측우기의 가치를 보는 또 다른 관점도 함께 제시한다. 이름을 아는 인물이라면 그의 혁신이 객관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 보고, 낯선 인물이라면 그의 삶과 혁신의 과정을 재미있게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