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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시작 중간 끝 감사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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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포크너가 의미한 바가 무엇인지 말해 주고 싶어 하셨다. 나는 꼭 알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 의미를 완전하게 알지 못하더라도 어떤 리듬을 좋아하거나, 어떤 맛을 음미할 수 있는 거니까.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앎, 지식이다. 맨 처음 나는 내가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마지막에는 내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이 두 상태의 중간 부분쯤에서 나는 진실을 본다. 중년으로 접어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이 세상을 바꿀 수 없으리란 확신을 갖게 된 날이 있었다. 불현듯 그날이 기억났다. 뉴욕의 한 건물 51층에서,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회사원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수천 명의 여자들이, 그리고 수천 명의 남자들이, 버스로, 기차로, 택시를 잡기 위해 활보하고 있었다. 수만, 수천의 개미들이 자신의 땅굴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그저 톱니바퀴, 너무 작아 눈에 보이지도 않을 일개미들에 불과한 것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고, 내가 속한 지구의 작은 코너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그들이 속한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돕는 것일 뿐. 이것이 내가 배운 한 가지다. ---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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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생활인 사람의 이야기
어떤 이에게는 죽음이 곧 생활이다. 〈내가 죽음으로부터 배운 것〉의 저자 데이비드 R. 도우처럼 말이다. 데이비드 R. 도우는 사형제도에 반대하면서, 미국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텍사스주에서 사형수 전문 변호사로 일한다. 그는 그야말로 죽을 만한 죄를 지은 사형수를 변호하는 일을 한다. 그 스스로도 왜 그런 사람들을 구하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인간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가 인간에게 있을까 하는 고민과, 충분히 죄를 뉘우친 사람을 꼭 죽여야만 하는가 하는 고민에 빠지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러나 텍사스주에서 그의 승률은 그리 높지 않고, 변호하던 사형수가 죽어가는 걸 지켜봐야만 한다. 내 인생은 내 것인가 혹은 남의 것인가 도우를 친자식처럼 아껴주던 장인어른이 흑생종이라는 암의 일종에 걸린다. 장인어른은 치료를 거부하고 남은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가족은 장인어른의 인생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며 치료를 받기를 바란다. 사형수와 장인어른 모두 죽음을 앞두고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지만, 그들을 대하는 태도와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세는 다르다. 그러면서도 공통점은 있다.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이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절대적인 것이라서, 저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 과연 삶이란 것에 노력을 할 필요가 있을까? 저자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도 책의 말미에 작은 희망을 보여주는 미덕을 발휘한다. 이 책은 저자가 밝혔듯이 저자가 직접 기록하고 취재한 실화다. 드라마가 일어날 것 같지 않는 실제 이야기가 더 드라마틱하며, 저자의 글 솜씨는 전문작가 이상으로 화려해서 글에 깊이 파묻히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과연 죽음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숙고해 보는 것은 오히려 삶을 아름답게 사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