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들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참 어렵고 필생의 해결 과제가 되는 게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이 세상에 나온 나의 유일한 목적 아니겠는가.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인가? 정답은 없다. 오직 나 스스로만이 해법을 갖고 있다. 나 자신을 과장하거나 방어하는 일 없이, 선악이나 도덕의 잣대에 비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참된 자기를 회복할 수 있게 해준다. 그 참된 자기가 유일무이하고 이상하기 그지없는 바로 나니까.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 중에서 우리가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자신과 자기 시대의 시련과 고통에 대해 과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며, 대수롭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소박한 생활 안에서 행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과 기도, 관계맺음과 혼자 있음이 저절로 박자를 맞추며 하나의 거대한 물줄기를 이어갈 수 있다면 갈등이라는 것도 별것 아니겠다. 일을 도모하는 것과 자기의 내적 공간으로 물러나 있는 것은 모순되지 않을 것이다. 만남과 혼자 있음이라는 상반된 경계에서 평온할 수 있다면 사실 모든 순간이 기도가 되겠다. ---「침묵과 말의 동거」 중에서 상처를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상처와 옹이는 살기 위해 만든 것, 상처도 실수도 죄조차도 살기 위한 것이다. 죽어버린 생명에 상처가 생길 리 없다. 죽음을 작정한 자에게 흉터가 새겨질 리 없다. 옹이와 상처는 더 큰 생명과 사랑을 품을 수 있는 통과 의례. 단단하고 지난한 어두운 시간대를 참으로 오래 견디며 통과한 존재만이 오래도록 타오를 것이다. 하여 오랫동안 세상을 환히 데워 줄 것이다. ---「불을 피우다」 중에서 찾아온 고통을 어떤 생각으로 채색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일 때 고통은 불행과 손잡지 않는다. 아픔을 죄의식과 원망과 불운으로 색칠할 때 불행이 된다. 온갖 해석과 이유와 탓을 거둘 때 나는 살아난다. ‘나는 슬프다’, ‘나는 불행하다’는 생각에서 술어를 모두 거둘 때 변치 않는 나로 돌아온다. 수많은 지식이 인도하는 처방책조차도 다 잊고 지그시 견디는 것만이 고통을 넘어서는 길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중에서 저를 사랑한다면 당신이 저를, 제가 생겨먹은 것보다 별 볼 일 없이 우습게 보아주길 바랍니다. 그래서 기대도 낙망도 없기를, 저도 당신에게 그러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일이 세상의 모든 족쇄로부터 벗어나 천연의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기를. ---「당신이 등을 내주었던 것처럼」 중에서 오해 때문에 오래 격조해 있어도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잘못했어도 잘못하지 않았어도 당신 마음이 그에게로 향하고 있다면 괜찮습니다. 상대가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 마음이 사랑으로 가는가가 중요합니다. 수신보다 중요한 건 내가 보낸 발신입니다. ---「사랑은 이해를 넘어선다」 중에서 |
|
“가장 나다운 내가
가장 당신다운 당신을 만날 때 우리는 꽃으로 피어납니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용기 전라북도 전주에서 이웃 할머니들이 나눠준 씨앗을 심고 자투리 천으로 바느질을 하면서 때로 우습고 아프고 이상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김해자 시인. 드넓은 밭을 혼자서 경작하는데도 힘들어 보이지 않는 콩할머니, 뚱딴지감자라면 죽고 못 사는 마이뚱 씨, 나무와 말을 하는 여자, 무엇이든 더 줄 것 없나 고심하는 나무 아저씨, 저들만의 세계와 언어를 가진 아이들, 세상으로 나서길 주저하는 청년들……. 각자가 조금씩 다르고 이상한 사람들이다. 풀벌레와 말을 하고 얻어먹기를 좋아하는 시인 자신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책에는 시인의 삶 속으로 들어온 사람들, 그가 다가가 하나가 된 자연, 세상의 이야기가 구체적인 사건들과 함께 기록된다. 오늘도 일하고 먹고 만나며 늙어가는 실체와 생활과 사유로 밀도 가득한 김해자 시인의 글은 잊고 있던 인간의 착하고 단단한 본성을 재발견해나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은 깊은 안도와 위로,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로 다져진 작가의 탄탄한 필력과 삶을 대하는 진정어린 그의 태도가 녹아 있는 글은 한국 에세이의 정수를 보여준다 하겠다. = 유일무이하고 이상하기 그지없는 나를 찾아서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에서 시인은 시종 포기할 수 없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연민,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과 유머를 잃지 않는 인간 본성에 천착한다. 병든 도시를 병든 몸으로 떠나 스스로 운둔자가 된 시인의 화두는 여전히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인가?”이다. 그에 대한 하나의 정답은 없다. 오직 자기 자신만이 해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과장하거나 방어하는 일 없이, 선악이나 도덕의 잣대에 비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참된 자기를 회복할 수 있게 된다. 그 참된 자기가 유일무이하고 이상하기 그지없는 바로 ‘나’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고유성을 되찾을 때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게 된다. 그때 비로소 분별과 분리로부터 오는 오해와 상처에서 자유로워지고, 삶으로부터 소외된 자신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이질적인 것들끼리 만나야 새로운 것을 낳고,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야 생명이 잉태되듯이 이상한 나와 이상한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과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불안한 존재들을 위한 지금 여기에서의 사랑법 자신의 삶에서는 주인공이지만 과로하기 마련인 문명 속에서 어느 순간 일로부터, 관계로부터 소외되어 가는 현대인들은, 다들 자신의 자리에서 각자가 감당해야 할 삶을 치르고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더 외로운 사람들은 ‘삶이 애초에 이리 어려운 것이었던가?’ 싶다. 시인은 오직 사랑만이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저 생긴 대로 본성을 드러내도 두렵지 않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일이다. 또한 진정한 사랑은 사랑과 삶을 분리시키지 않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삶에 대한 사랑은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핵심”이다. 오늘 여기에서의 삶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타인에 대한 사랑도 미래에 대한 기대도 진실되지는 않은 것이다. 아픔에 저항이 곱해져야 고통이 된다고 한다. 힘겨운 감정 또한 저항과 억압이 곱해져야 파괴적 감정에 이른다고 한다. 너와 나의 구분, 옳고 그름을 가르는 분별을 내려놓고 나에게 온 상황을 그저 바라볼 일이다. 저항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 아픔도 잠시잠깐 존재하다 그냥 지나간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아픔조차도 무의미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과 나에게 주어진 고통을 과장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오늘 하루의 노동과 하루치의 기쁨이면 족한 것이다. 아파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공감과 위로 한창훈의 소설 『꽃의 나라』에는 서로 다른 관계, 다른 역할을 하는 친구의 가족들을 보고 “너희 집 참 이상하다”고 말하는 세 친구가 등장한다. 나와 타자의 구분, 서로 다른 생각과 삶의 방식들 때문에 “이상하다”고 말한다면, 그들 각자가 고유한 자기를 잃지 않아서 듣는 소리라면 세상에는 더 많은 이상한 사람들이 살아도 좋을 것이다. 흙이 단단하고 풍부해야 나무가 강하게 치고 나올 수 있는 것처럼 상생과 상극이 순환할 때 나무는 더 나무다워지고 숲은 더 풍성해질 것이다. 오늘도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각자가 다 이상하길 기대해본다. 김해자 시인의 글은 어쩌면 고집스러워 보인다. 순발력을 요구하는 시대에 때로 너무 진지한 사람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감각적인 신진 에세이스트들의 글에 비하면 소박하기까지 하지만 그만큼 삶과 사람에 뿌리를 두고 있는 그의 글과 삶을 관조하는 시선은 담담하면서도 울림이 크다. 있는 그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와 이 시대의 사람들 이야기를 읽다보면 유머러스함 속에서도 위기의식을 느낄 수 있다. 그 글에서 우리는 웃고 있지만 슬픔을 느끼고, 슬픔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존재의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글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쓰는 자와 담긴 자가 다르지 않은 김해자 시인의 글은 많은 깨달은 이들이 전하는 공감과 위로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실체가 있는 반성과 처방이 되어 독자들의 생활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