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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릭-클래식의 새 지평을 연다!! '막심: 피아노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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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1
Bonus Track
CD 2 - AVCD
막심,막심 므라비차, Maksim Mrv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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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릭 제임슨의 설명에 의하면 혼성모방이라는 개념은 토마스 만의 소설 '파우스트 박사'에서 빌려온 것인데, 토마스 만은 이 개념을 현대음악의 중요한 두 흐름인 쇤베르크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 대한 아도르노의 저술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또한 제프리 키프니스(Jeffrey Kipnis)는 하이브리드적인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으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예로 들면서 설명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적 풍부함은 선대의 작곡가들에 비해 상당히 앞서 있었으며, 본래의 요소는 차별화된 것이며, 강력한 혼성물(hybrid)이며, 새롭고 독특한 음악적 형태를 구성한다. 이러한 말년의 명작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했던 테크닉은 많은 부분 그의 초기작품에서 유래한다." 그는 모차르트의 협주곡이 바로크의 콘체르토 형식과 고전주의의 소나타 형식의 합성을 통해서 탄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모차르트가 이 두 개의 대립되는 양식을 하이브리드화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하이브리드화의 현상은 모차르트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음악에서 공공연하게 시작된 것이다. 예를 들면 몬테베르디의 제1작법과 제2작업의 결합 또한 하이브리드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부터 이어지는 수많은 모방기법은 오늘날 하이브리드화를 추구하는 모든 예술의 기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하게 되는 음악의 대표적인 하이브리드 현상의 예는 바로 크로스오버이다. 클래식 음악으로 대표되는 고급음악과 록, 재즈 같은 대중음악의 결합이 그것이다. 물론 이를 두고 처음에는 '외도'라는 표현을 썼지만, 두 음악 분야를 넘나드는 혹은 한순간의 만남을 가진 음악인들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지금은 그 경계가 사라지고 하나의 양식화 되어가고 있다. 주로 음악산업에서 사용된 이 용어는 어느 음반이나 아티스트가 다른 종류(장르)의 차트에 등장하는 것을 지칭하는 말로 시작되었다. 음악에 있어 크로스오버의 본격적인 논의는 60년대 미국에서 일어났다. 처음에는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으로 나뉘던 인종적인 단절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미국의 음악차트에 올라와 있던 음악장르는 인종과 지역, 계급, 성별에 따라 분리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컨츄리 음악은 전통적으로 백인들의 음악이었고, 리듬앤블루스는 흑인들의 음악이라는 식이었다. 음악에서의 크로스오버는 70년대 말과 90년대 중반에 크게 일어났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조지 거쉰의 '포기와 베스'를 편곡한 것이나, 밥 제임스, 에릭 카멘, 루이스 터커 같은 이들이 클래식 음악을 편곡해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것을 비롯해, 런던 심포니나 로열 필하모닉 같은 클래식 연주단이나 연주자가 팝음악을 연주하거나 팝 아티스트들과 함께 공연하면서 대중적인 관심을 끌게 된다. 이런 현상은 프로그래시브 록의 탄생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딥 퍼플이나 무디 블루스, 르네상스 같은 록밴드들은 오케스트라의 심포닉한 사운드를 구현해내는 것을 목표로 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통해 록과 클래식이 조화된 음악을 선보였던 것이다. 더불어 마일즈 데이비스에 의해 시도된 퓨전 재즈도 크로스오버 운동이 보다 발전되어 만들어낸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재즈와 록, 힙합과 재즈, 클래식과 재즈 등 다양한 혼종성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리고 90년대 이후 일렉트릭 악기들로 무장된 클래식 음악들이 등장하게 된다. 혼종성의 무대가 클래식 음악으로 옮겨온 것이다. 그 첫 시도는 바네사 메이의 'The Violin Player'로 시작됐으며, 그 역사는 이제 막심 마라비차의 'The Piano Player'로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되었다. 글 / 김경수(음악 컬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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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리로디드
오늘날 음악시장에 불고 있는 불황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80년대 이후 급성장해 90년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던 음악산업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불법복제와 유통의 문제 뿐 아니라 단순히 음악만 가지고는 더 이상 대중적인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산업자체의 변화된 환경에서 오는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단적으로 국내 가수들의 활동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가수들이 새로운 앨범을 내는 기간이 점차 길어지고 있는 점과 음악활동보다는 기타 방송, 연예 활동에 치중하고 있는 점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음악 활동 자체보다는 음악을 둘러싼 연계산업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오늘날의 문화현상과 그와 관련된 산업의 변화를 보여주는 한 가지 예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그런데 열악한 시장환경에도 불구하고 최근 음악계에서 대중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분야가 있는데, 바로 팝페라라고 불리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들이다. 최근의 인기차트 최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음반들 대부분이 이 팝페라 가수들의 앨범들이다. 이 분야 최고의 가수인 사라 브라이트만을 비롯해, 안드레아 보첼리, 이지, 샬롯 처치, 알렉산드로 사피나, 러셀 왓슨, 국내 최초의 팝페라 가수라는 임형주, 클래식 성악가이면서 국내에서는 대중적인 음악활동을 더 많이 하고 있는 조수미 등 많은 가수들이 팝페라 형식의 음반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팝페라는 성악분야에만 한정된 음악장르인데, 최근의 현상은 팝페라와 유사한 이런 현상이 기악분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에 국내에 소개되어 화제를 모았던 혼성 8인조의 플래닛이나 여성 현악 4중주단인 본드 같은 소위 일렉트릭-클래식 밴드들의 등장이 그것이다. 이들의 특징은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면서 어쿠스틱 악기와 일렉트릭 악기들을 혼용해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의 음악을 융합해낸다는 점이다. 또한 이들의 음악 활동은 기존의 클래식 연주자들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데, 장소와 대상을 달리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조용한 분위기의 콘서트홀보다는 야외 공연장과 방송국의 대형 스튜디오를 선호하며, 주요 관객의 대부분도 젊은 신세대들이 차지한다. 또한 무대 위에서의 열광적인 분위기는 록 콘서트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파격적이고 흥미로운 점 등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음악의 형식이나 표현에서 모든 경계가 사라지면서 여러 스타일과 음악 요소들이 섞여 혼종성을 띤 음악을 선보인다는 것이다. 즉 이들이 연주하는 곡들이 클래식 음악인지 록 음악인지 분명하게 구별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스타일의 음악은 바네사 메이를 필두로 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지만 최근에는 악기의 종류와 스타일에서 보다 다양하고 파격적인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 일렉트릭-클래식 분야 최초로 막심이라는 피아니스트가 'The Piano Player'라는 앨범으로 새로운 음악을 선보인다. 문화인류학자인 레나토 로살도는 '문화와 진리'라는 저서의 '경계 넘나들기'라는 장에서 "우리들 모두는 20세기 후반의 상호 의존적인 세계에 살고 있으며, 그 세계는 국가/민족적 경계, 문화적 경계에 뚫린 수많은 구멍을 통해 상호간 빌려오기와 빌려주기로 특징지어지는 세계이다"라고 말한다. 즉 오늘날 문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빌려오기와 빌려주기'라는 상호모방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문화현상 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 전지구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 예가 복합 건축물인 복합영화관, 주상복합아파트 같은 것이다. 복합영화관은 단지 상영관이 여러개인 다중영화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영화 상영과는 관계없는 다른 용도, 즉 근린생활시절, 운동시절, 전시시절, 업무시설, 판매시설 등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건물을 말하며, 쇼핑, 식사, 관광, 휴식 등을 제공하며 최근에는 주거까지 가능한 시설로 만들어지고 있다. 순수성보다는 혼성적이고 복합적인 것을, 표현의 풍부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복수적이고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는 것을 선호하는 게 오늘날의 코드인 것이다. 이를 위해 새로운 스타일이나 양식, 장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조합하고, 재배치시키고, 조립함으로써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취한다. 오늘날의 예술은 더 이상 발터 벤야민이 그토록 외치던 아우라나 진정성을 예술작품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시대를 맞았다. 놀라운 테크놀러지에 의해 예술작품은 처음부터 대량으로 생산 혹은 복제된다. 그러므로 더 이상 진품과 복제품의 구별이 사라지고 그것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더군다나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우리는 원본 없는 이미지가 그 자체로서 현실을 대체하며, 그 이미지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시뮬라크르의 시대에 살고 있다. 순수하게 창작된 예술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시대 때부터 등장한 이야기다. 그것이 이데아가 됐든, 현실세계가 됐든 모든 생산활동은 모방의 일종이며, 예술 또한 그러하다고 주장한다. 벤투리는 '과거의 현존'이라는 말로 패러디를 정의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요한 기법으로 소개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하이브리드는 패러디를 넘어선다. 우리는 왜 이 혼종성(hybridity)에 열광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놀라운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하이브리드는 극단적으로 이질적이며 서로 배타적인 관계에 있는 것들을 화해시키는 힘이 있으며, 이미 완성된 형태로 더 이상의 발전이 없는 것들을 혼합하여 새로운 것으로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오늘날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세상에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유일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