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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ㆍ 7
01. 암살당한 케네디 - 존 F. 케네디 저격당하다 ㆍ 20 - 냉전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ㆍ 22 (연설문) 암살당하기 전 발표하려던 연설문 ㆍ 23 - 오스왈드는 어떤 사람이었나? ㆍ 24 - 댈러스에 도착하여 딜리 플라자로 가는 길에 저격당하다 ㆍ 26 - 왼쪽에 마지막 총알을 맞았다 ㆍ 27 - 범인을 보았다는 목격자는 없었다 ㆍ 33 - 오스왈드가 경찰관 J. D. 티핏을 살해하다 ㆍ 34 - 오스왈도가 잭 루비에 의해 살해되다 ㆍ 37 - 암살 영상과 사진을 캡처하다 ㆍ 39 - 공식 조사를 하다 ㆍ 41 - FBI가 수사하다 ㆍ 42 - 워렌위원장을 선출하다 ㆍ 43 - 클레이 쇼를 재판하다 ㆍ 45 - 짐 개리슨 클레이쇼의 증명 - 1991년 작 “JFK” 중에서 ㆍ 48 - 록펠러위원회가 재조사하다 ㆍ 57 - 교회위원회가 조사하다 ㆍ 59 - 하원 암살위원회가 창설되다 ㆍ 59 - 「JFK기록법」에 박차를 가하다 ㆍ 60 - 잔디밭의 나무 울타리의 이론은 이렇다 ㆍ 62 - 수많은 의혹과 음모론이 제기되다 ㆍ 63 - 암살 배후 의심 대상은 이러하다 ㆍ 69 - 케네디를 목표로 한 게 아니다? ㆍ 74 - 존슨이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다 ㆍ 78 02. 동갑내기 박정희와 케네디 - 동갑내기 박정희가 케네디 초청으로 미국을 첫 방문하다 ㆍ 82 - 박정희는 필요한 부분들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였다 ㆍ 90 - 베트남 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하다 ㆍ 92 - 브라운 각서가 체결되다 ㆍ 96 - 박정희 대통령이 1961년 11월 11일 방미길에 오르다 ㆍ 104 - 1961년 11월 14일 박정희와 케네디가 정상회담을 하다 ㆍ 105 - 한국 고교생 반기문이 케네디를 만나다 ㆍ 114 03. 존 F. 케네디의 가문 - 엄격한 어머니한테서 자랐다 ㆍ 118 - 명문 케네디가의 정치 가족의 일원이다 ㆍ 128 04. 군생활 - 해군에 입대하다 ㆍ 146 -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이 임박하자 대학 진학을 취소하다 ㆍ 148 - PT-109 및 PT-59를 지휘하다 ㆍ 149 -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롤 모델이었다 ㆍ 155 05. 상 · 하 의원 시절 - 공화당 후보를 꺾다 ㆍ 158 - 상원 의원에 출마하다 ㆍ 162 06. 대통령 후보와 대통령 시절 - 196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선언하다 ㆍ 178 (연설문)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 수락 연설문 ㆍ 182 (연설문) 휴스턴 목회자 회의 연설문 ㆍ 188 - 닉슨과 함께 텔레비전 토론회를 하다 ㆍ 192 - 최연소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다 ㆍ 193 - 닉슨에 근소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다 ㆍ 197 - 워싱턴 D.C. 무기고에서 취임식 전 무도회를 주최하다 ㆍ 200 - 취임식 전날 많은 눈이 내렸다 ㆍ 201 - 취임식이 진행되다 ㆍ 202 (연설문) 케네디 대통령 취임연설문 ㆍ 205 - 케네디 취임식에서 로버트 프로스트가 시를 낭독하다 ㆍ 212 - 「The Star-Spangled Banner」를 마리안 앤더슨이 부르다 ㆍ 213 - 연설문은 테드 소렌슨이 작성하다 ㆍ 215 - 연설문은 군비 경쟁을 강조했다 ㆍ 216 - 연설의 중심 주제는 의무와 권력의 관계이다 ㆍ 216 - 유명인들을 초대하다 ㆍ 218 - 5명의 대통령과 영부인이 참석하다 ㆍ 218 - 백악관까지 행진하다 ㆍ 219 - 20세기에 태어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다 ㆍ 219 -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The Gift Outright」를 낭송하다 ㆍ 220 (연설문) 케네디 대통령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 추모 연설문 ㆍ 234 - 백악관 고위 관료를 선출하다 ㆍ 240 07. 국내정책 - 케네디는 그의 국내 제안을 “뉴 프론티어”라고 불렀다 ㆍ 244 - 행정부가 제안한 54개 법안 중 40개가 의회를 통과했다 ㆍ 245 - 경기부양책을 의회가 통괴시키다 ㆍ 249 - 뉴딜 정책 이후 가장 중요한 세제 개혁이 이루어졌다 ㆍ 252 - 근로자에게 유급 초과 근무가 허용되었다 ㆍ 254 - 직업교육 등록을 크게 증가시켰다 ㆍ 255 - 실업급여와 복지혜택이 확대되었다 ㆍ 257 - 의회를 통과한 인두세 반대 수정안을 지지하다 ㆍ 259 - 노인 주택 기금을 증액하다 ㆍ 260 - 직업소개소의 서비스를 확대하다 ㆍ 262 - 지역 사회 서비스 시설의 건설을 위한 연방 지원을 승인하다 ㆍ 263 - 여성의 평등권을 위한 여성지위위원회가 설립되다 ㆍ 265 - 연방정부의 권한을 확대하다 ㆍ 269 - 농업 정책으로 지역 단체에 대출을 제공하다 ㆍ 269 - 「중요한범죄방지법」안을 통과시키다 ㆍ 270 - 미 해군 특수부대를 창설하다 ㆍ 270 - 민권 운동으로 많은 흑인을 공직에 임명하다 ㆍ 272 - 민권과 인종 차별 철폐를 지지하는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ㆍ 276 - 앨라배마다대학교 흑인 사건이 발생하다 ㆍ 281 - 인권 메시지를 보내다 ㆍ 284 - 민권법안을 의회에 보내다 ㆍ 292 - 우주에서의 국제 협력을 제안하다 ㆍ 296 - 달에 가기로 결정하다 ㆍ 298 (연설문) 라이스대학교에서 미국의 우주 노력에 관한 연설문 ㆍ 328 - 존 F.케네디 우주센터가 세워지다 ㆍ 306 08. 외교정책 - 평화봉사단을 출범시키다 ㆍ 310 - 냉전과 유연한 대응으로 방어 전략을 구현하다 ㆍ 311 - 탈식민지화와 비동맹 운동을 창설하다 ㆍ 313 - 유엔 채권 발행 법안에 서명하다 ㆍ 315 - 피그만을 침공하다 ㆍ 317 - 몽구스 작전을 승인하다 ㆍ 319 - 비엔나 정상회담에서 흐루시초프를 만나다 ㆍ 321 - 라틴 아메리카와 공산주의 억제를 위해 진보 동맹을 설립하다 ㆍ 322 -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 ㆍ 325 - 베를린 4개 구역 권리를 주장하다 ㆍ 328 - 소련에 대해 좀 더 유화적인 입장으로 수정하다 ㆍ 329 - 케네디 정서와 유산을 떠 올리게 하다 ㆍ 332 - “나는 도넛이다” 의 오해가 미디어에 의해 반복되다 ㆍ 333 (연설문)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 ㆍ 337 - 1961년 서베를린 연설로 85%의 지지율을 기록하다 ㆍ 339 - 쿠바 미사일 위기로 해상봉쇄를 결정하다 ㆍ 342 (연설문) 쿠바 미사일 위기에 관한 연설문 ㆍ 350 - 라오스에 대해 조심스럽게 움직이다 ㆍ 355 - 베트남에 주둔 미군을 확대하다 ㆍ 358 - 도미노처럼 무너진다는 가정에 기초하다 ㆍ 358 - 오랫동안 미뤄왔던 정치 및 경제 개혁을 단행하다 ㆍ 358 - 베트남 전쟁 공약의 미래에 대해 고심하다 ㆍ 359 - 진압될 때까지 남베트남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다 ㆍ 360 - 이스라엘은 인내하고 번영할 것이다 ㆍ 368 - 이라크에 무기 거래를 승인하다 ㆍ 371 - 조상의 고향인 아일랜드를 방문하다 ㆍ 372 - 아메리칸대학교 졸업식에서 세계 평화 연설을 하다 ㆍ 373 (연설문) 아메리칸대학교 연설 - 세계 평화 연설문 ㆍ 375 - 소련과 더 나은 관계를 구축하기로 결심하다 ㆍ 383 - 소렌슨이 연설문 작성과 특별 고문으로 일하다 ㆍ 385 - 서방 방송사에 대한 방해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ㆍ 387 - 부분적 핵실험을 금지하다 ㆍ 389 - 미국 역사상 최악의 방사능 사건을 초래하다 ㆍ 390 - 원자력 통제에 관한 국제적 논의를 촉구하다 ㆍ 392 -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을 촉구하다 ㆍ 443 - 캐슬 브라보 이후 정지 협정을 촉구하다 ㆍ 395 - 흐루시초프가 모라토리엄을 요구하다 ㆍ 406 - 새로운 노력을 하다 ㆍ 424 - 모라토리엄(지급 유예)을 해제하다 ㆍ 426 - 핵실험 제한에 대해 공통점을 찾다 ㆍ 431 - 전제조건 없는 핵실험 금지 협상을 선택하다 ㆍ 434 - 모스크바 협정 이후 조약을 비준에 서명하다 ㆍ 441 - 평화적 핵폭발을 금지하다 ㆍ 444 - 100개 이상의 국가가 조약에 서명하다 ㆍ 445 - 대기 중 방사성 입자의 양이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하다 ㆍ 445 - 위반 사고가 일어나다 ㆍ 447 09. 케네디 장례식과 영원한 불꽃 - 시신 부검을 하다 ㆍ 452 - 장례를 준비하다 ㆍ 453 - 국가 장례식을 준비하다 ㆍ 455 - 백악관에 안치되다 ㆍ 457 - 공개 관람이 허용되다 ㆍ 460 - 외국 군대가 등장한 유일한 장례식이었다 ㆍ 461 - 케네디 시니어를 제외한 가족은 대성당에서 기다렸다 ㆍ 463 - 「아베 마리아」가 불러졌다 ㆍ 464 - 케네디와 동갑인 박정희가 조문하다 ㆍ 465 - 존 F. 케네디 ‘영원한 불꽃’이 타오르다 ㆍ 467 - 영구 묘지를 개발하다 ㆍ 471 - 새로운 묘지를 건설하다 ㆍ 475 - 새 무덤에 봉헌하다 ㆍ 478 - 묘지가 새로운 매장으로 변화되었다 ㆍ 479 - 알링턴 오크의 묘목이 심어졌다 ㆍ 481 - 유지보수 작업을 하다 ㆍ 481 - 이주자의 불꽃으로 항해하다 ㆍ 483 - 문화적 영향이 미치다 ㆍ 483 - 하프 달러의 주조를 승인하다 ㆍ 486 - 영웅적인 인물로 신화화 되다 ㆍ 487 - 텍사스 주립 기록 보관소에 유물이 보존되다 ㆍ 490 10. 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 매우 영리했다 ㆍ 495 - 34세의 나이에 영부인이 되다 ㆍ 497 -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하다 ㆍ 501 - 6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다 ㆍ 555 11. 케네디 평가 - 비극의 케네디 가문이었다 ㆍ 510 - 미국에서 가장 확고한 정치 가문이다 ㆍ 513 - 폴 화이트상을 수여받다 ㆍ 514 - 건강 문제에 시달렸다 ㆍ 515 - 스캔들에 휩싸이다 ㆍ 518 - 평균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 ㆍ 521 - 신화적인 웅장함과 강력한 향수를 반영했다 ㆍ 522 - 대중적 인지도가 매우 높았다 ㆍ 523 - 후광이 과한 대통령 아니냐는 평가도 받았다 ㆍ 524 - 피그만 침공은 역사상 최악의 실패 중 하나였다 ㆍ 525 - 대내 정책은 존슨 대통령 때 극적으로 부활됐다 ㆍ 527 - 진보적인 생각과 능력 자체는 뛰어난 대통령이었다 ㆍ 530 - 대외 정책으로 소련 지도부의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본인이 원하는 것을 이뤄냈다 ㆍ 531 - 대내 정책으로 흑인 민권 운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ㆍ 533 - 공화당원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ㆍ 534 - 에드워드 무어 케네디 죽음으로 파란만장한 케네디 가문, 역사 속으로… ㆍ 534 - 형들 사망 후에 자신의 13명의 조카와 조카딸들을 위하여 대리 부친의 역할을 맡았다 ㆍ 540 - 여비서 메리 조 코페크니가 타고 가던 자동차가 바다에 빠져 코페크니가 사망한 “채풔퀴딕 사건”으로 논란이 되었다 ㆍ 542 - 상원의 사자였다 ㆍ 544 - 오바마를 지지하다 ㆍ 546 -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다 ㆍ 549 - 로버트 F. 케네디 아내, 에델 케네디가 2024년 10월 10일 96세로 세상을 떠나다 ㆍ 5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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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빌 클린턴과 오바마 대통령의 롤 모델이 된 케네디” 미국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인 존 F. 케네디 는 정치적인 후대들에게 정신적인 지주였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전 대통령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입니다. 1963년 7월 케네디가 암살당하기 5개월 전 클린턴은 고등학교를 다니던 16살 때 각 지역 우수 고등학생 그룹으로 선발돼 백악관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단 몇 초간의 짧은 대면이었지만 클린턴은 그 만남으로 자신도 정치인이 되겠다는 희망을 굳혔고 결국 30년 후 대통령이 됐습니다. 솔직함과 진정성으로 대중을 사로잡으며 미국인들이 가장 갈구하던 화두 ‘변화’를 내세워 흑색 돌풍을 일으킨 오바마 대통령을 미국인들은 ‘검은 케네디’라고 부릅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1962년 충북 충주고 3학년 때 국제적십자사 비스타(VISTA) 프로그램의 한국 대표 4명 중 1명으로 선발돼 미국 워싱턴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반 총장은 1962년 8월 42개국에서 선발된 학생 102명과 함께 미국에 도착해 10명씩 조를 짜 미국적십자사 지부를 방문했습니다. 반 총장이 속한 조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일주일을 보낸 뒤 오리건주의 포틀랜드와 워싱턴주의 스포캔도 방문했습니다. 반 총장은 “관광도 하고 소풍도 가면서 미국의 풍물을 배우는 과정이었다.”면서 “특히 자동차를 탄 채 영화 구경을 하는 드라이브 인 극장이 인상 깊었다.”고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반 총장은 백악관 방문 당시 케네디 대통령을 면담한 것이 평생 공직에 몸담을 결심을 하게 한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백악관에서 학생들은 차례로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하고 단체 사진을 찍었으며 수줍음이 많았던 반 총장은 적극적인 여학생들에게 앞자리를 내주고 뒷줄에서 미소를 지으며 케네디 대통령을 바라보는 모습이 당시 사진에 남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영어 신동’으로 불렸고 충주고 재학시절 미국 정부가 주최하는 영어 말하기 대회에 입상해 백악관에 초청, 당시 케네디 대통령과 만나면서 외교관의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암살당했지만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 국민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은 국민에게 용기와 자신감 넘치는 리더십, 꿈과 희망을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다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미국은 1960년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공화당의 닉슨 후보에 맞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존 F. 케네디였습니다. 처음에 프린스턴에서 공부를 시작했으나 병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1936년에 다시 하버드 대학 정치학과에 들어갔습니다. 대학 시절 동안에 영국을 자주 여행했는데, 당시 아버지가 영국 주재 대사로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얼마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 해군에 입대합니다. 1945년에 해군 복무를 마친 케네디는 통신기자가 되어 샌프란시스코의 유엔 창립 회의와 포츠담 회담을 취재합니다. 1946년에 그는 29세밖에 안 되었지만 그의 외할아버지 존 F. 피츠제럴드가 전에 차지했던 매사추세츠 제11선거구에서 민주당 하원 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두 번이나 재선되었습니다. 1953년에 케네디는 재클린 리 부비에와 결혼을 합니다. 그녀는 로드 아일랜드에서 사회적 명성을 날리고 있던 집안의 딸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축구를 하다가 다친 끈질긴 척추통을 치료하기 위하여 그는 1954년에 수술을 받았는데, 병원에서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썼어요. 이 책은 미국 의회에서 역사상 뛰어난 일을 한 의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1957년 전기 부분에서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1956년에는 39세의 젊은 나이로 시카고의 민주당 전당 대회에서 애들라이 스티븐슨의 지명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 후 부통령 후보에 오르내렸으나 그 당시에는 후보로 지명되지는 못했어요. 이때부터 1960년의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기 위하여 착실히 준비했고, 마침내 1960년 7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 대회에서 1차 투표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습니다.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는 1960년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케네디는 대통령직에 1961년 1월 20일부터 1963년 11월 22일까지 있었고, 임기 동안에 피그스만 침공, 쿠바 미사일 위기, 베를린 장벽, 우주 경쟁, 베트남 전쟁 간접 개입, 흑인 민권 운동 등 많은 일이 일어났어요. 케네디는 미국 대통령 중에서 유일한 로마 가톨릭 신자라는 점과, 상류사회에서 잉글랜드계 혈통에 밀리던 아일랜드계 혈통 때문에 기독교 근본주의를 내세운 미국 공화당 세력이나 영국 보수당 세력에 심한 반발과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반유대주의 반영 제국주의를 내세우며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아일랜드의 공화주의 반영국 제국주의 무장단체인 아일랜드의 IRA를 강력하게 지지하면서 이스라엘 우익 단체에 대한 상당한 불편한 감정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아름답고 우아한 아내 재클린 부비어와 함께 케네디는 1960년대 새로운 자유의 상징으로 미 국민에게 변화를 보여주며 격변을 일으켰습니다. 케네디는 “제가 가진 모든 생각과 정신을 전 세계의 자유라는 대의에 헌신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제 가장 훌륭한 자랑거리는 이겁니다.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 케네디는 CIA와 분노한 쿠바 망명자가 일으킨 카스트로 독재 정부와의 비밀 전쟁을 이어받습니다. 카스트로는 성공한 혁명가로 미국 산업 이익에 위협이었습니다. 이 전쟁은 1961년 4월 피그스만 침공이 참패로 돌아가며 막 내리고 케네디는 쿠바 망명자 단체의 공군 전력 투입을 거부하며, 사회적 책임을 떠 안자 CIA가 사사로이 자신을 속이고 쿠바의 미국 침공을 종용했다고 주장합니다. 1962년 10월, 전 세계가 핵전쟁 전에 이르자 케네디는 격리 조치를 취합니다. 미국 해안에서 145㎞ 떨어진 곳에 소련의 핵미사일 존재 여부를 발표한 직후였습니다. 더 많은 미사일을 실은 소련 함선이 쿠바로 향했지만, 마지막 순간 함선을 되돌린다. 전 세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케네디가 소련 총리와 거래했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러시아가 미사일을 거두는 대신 쿠바를 침공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케네디가 공산주의를 무르게 대응한다는 의혹도 퍼졌습니다. 케네디는 라오스와 베트남 전쟁에도 휘말립니다. “베트남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정부가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게 더 노력하지 않으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이건 그들의 전쟁입니다. 승패도 그들에게 달렸죠.” 그해 운명적인 초여름 케네디는 아메리칸대학에서 자신의 새 비전을 제시합니다. “어떤 평화를 의도하고 어떤 평화를 추구합니까? 전쟁 무기에 따른 미국의 지배에 의한 평화는 아닙니다. 소련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재검토해야 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연결 고리는 우리 모두 이 작은 행성에 살고 있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아이들의 미래를 소중히 여긴다는 겁니다. 우리 모두 다 같은 인간이죠. ” 텍사스 댈러스에서 케네디 대통령 자동차 행렬에 세 발의 총격이 가해졌다. 첫 소식에 따르면 대통령께서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며, 총알 세 발이 발견됐고 코널리 주지사도 맞았습니다. 대통령께선 6.5㎞ 떨어진 병원에 급히 이송됐으며 총알이 목 아래를 관통해 머리 뒤로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확인된 바는 없고 수혈이 이뤄지고 병자 성사가 진행됩니다. 댈러스에서 공식 발표가 있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께서 서거했다고 …. 46세에 죽었지만, 천년을 사는 남자, 존 F. 케네디였습니다. 부통령 존슨이 병원을 나섰다. 곧 취임 선서를 하고 미국 36대 대통령이 됩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님께 감사드립니다. 김혜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