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청년패스
진시황제,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다
양장
넥센미디어 2025.03.25.
베스트
동양사/동양문화 top100 2주
가격
29,500
10 26,550
YES포인트?
1,47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변경
배송비?
무료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01. 진나라의 31대 왕이자 중국 최초의 황제

· 13세의 나이에 진나라 왕에 즉위하다 / 34
· 여불위 아들이라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 / 40
· 왕위를 승계받고 22세에 모든 권력을 장악하다 / 43
· 유일하게 황후를 두지 않았다 / 46
· 통일 전쟁을 위한 체제 정비를 하다 / 50
· 중앙 집권제를 강화하다 / 53
· 군제를 개혁하고 오랑캐를 정벌하다 / 54
· 경제개혁을 단행하고 인재를 등용하다 / 55
· 여불위와 손잡고 왕이 되다 / 60
· 친족을 후대하고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다 / 64
· 춘추 전국 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하다 / 66
· 삼황오제서 황과 제를 합쳐서 황제라 칭하다 / 68
· 불로불사의 꿈을 꾸다 비참한 결과를 낳다 / 70
· 미신에 집착하다 / 71
· 태자를 지명하지 않다 / 72
· 영부소를 박대하다 / 72
· 시황제가 전국을 다섯 번 순행하다 / 73
· 순행 길에서 죽음과 환관이 유서를 조작하다 / 75
· 킹메이커 여불위를 만나다 / 77
· 여불위는 위나라 복양 출신이다 / 78
· 여불위가 영정을 왕으로 만들다 / 82
· 여불위가 승상보다 높은 상방의 자리에 오르다 / 86
· 여불위가 자살하기 전 땅을 왕관 삼아 머리가 아래로 향하도록 수직으로 몸을 세워 몸의 반만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 89
· 여불위가 정말 진시황의 아버지였을까? / 93
· 여불위의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들을 추방하거나 면직시키는 처벌을 내렸다 / 95
· 여불위는 떨거지 왕족을 일국의 왕으로 만들었다 / 98

02. 진나라의 통일 과정

· 진나라의 정치, 군사 정책이 변화를 맞이하다 / 112
· 분서갱유와 초한 쟁패를 거치며 소실된 기록이 굉장히 많다 / 115
· 진시황에게 천하통일의 계책을 진언한 울료는 위나라 사람이다 / 116
· 백기는 명장 중 하나지만, 동시에 수없이 많은 적과 포로를 죽여 학살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 120
· 백기가 포로 45만 명을 학살하다 / 125
· 포로 학살은 진나라에 이득이 되었는가? / 128
· 장평대전 이후 백기가 몰락하다 / 133
· 백기는 춘추 전국 시대 최고의 명장들 중 한 명이었다 / 139
· 백기가 죽다 / 144

03. 통일 전쟁의 시작

· 조나라를 1차 공격하다 / 150
· 조나라를 2차, 3차 공격하다 / 153
· 조나라를 4차 공격하다 / 156
· 기원전 230년 한나라가 멸망하다 / 158
· 기원전 228년 조나라가 멸망하다 / 162
· 기원전 225년 위나라가 멸망하다 / 174
· 기원전 223년 초나라가 멸망하다 / 179
· 기원전 222년 연나라가 멸망하다 / 190

04. 암살 시도를 세 번 당한 시황제 암살 미수 사건

· 시황제는 황제 즉위 전에도 많은 암살 시도를 받았다 / 198
· 형가가 시황제의 암살 시도가 실패하다 / 200
· 형가는 위나라에서 태어나 연나라에서 살았다 / 200
· 태자 단은 시황제에 대한 증오심이 깊었다 / 203
· 우리나라 고조선도 진나라에 스스로 신하라고 자처하였다 / 211
· 형가가 협객으로 평가되다 / 213
· 고점리가 암살을 시도하다 / 217
· 장량은 한나라의 귀족 가문 출신이다 / 218
· 장량이 진시황 암살을 계획하다 / 221
· 장량이 하비에서 황석공을 만나다 / 226
· 장량이 항백을 만나다 / 229
· 장량이 유방을 만나다 / 231
· 장량이 조국 한나라 부흥을 위해 노력하다 / 234
· 장량이 다시 유방에게 가다 / 236
· 유방이 장량에게 인심을 사게 하다 / 238
· 홍문연은 진나라의 수도 함양 근처의 홍문이라는 곳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 240
· 유방이 위기에 빠지다 / 245
· 번캐가 난입하다 / 247
· 유방이 도주하다 / 250
· 유방은 항우의 결정으로 천하의 벽지인 파촉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다 / 251
· 장량이 천하를 논하다 / 253
· 장량이 젓가락으로 천하를 설명하다 / 255
· 장량이 제후들을 움직여 천하대세를 종결짓다 / 267
· 장량은 유방에게 무엇을 달라고 먼저 요구하지 않았고, 유방을 떠나지 않았다 / 270
· 폐하께서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 273
· 유방이 제국의 수도를 고민하다 / 275
· 장량은 밥도 거의 먹지 않고 집 밖으로도 나서는 일이 드물었다 / 278
· 장량은 장자제 지역에서 신선처럼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 281
· 장량 자신은 재산이나 지위에 초탈했다 / 284
· 기원전 221년 제나라가 멸망하다 / 291
· 진시황이 마침내 천하통일을 이루다 / 296
· 진시황이 백월을 정벌하다 / 299
· 제국을 통치할 ‘황제’ 칭호를 만들다 / 301

05. 시황제의 정책과 분서갱유

· 정체성과 체계를 하나로 통합하다 / 306
· 분서갱유로 진나라 멸망을 초래하다 / 308
· 분서갱유는 사상 탄압의 단초가 되었다 / 311
· 분서갱유의 원인은 법가 통치에 저항한 시도였다 / 313
· 분서갱유는 과장인가? / 317
· 분서갱유는 유가를 위축시킨 사건이다 / 318
· 진시황의 말년은 갑작스럽고 또 폭압적으로 이루어지는 바람에 부작용이 심했다 / 325
· 진시황이 수은에 중독되었는가? / 327
· 미신에 집착하다 / 329
· 진시황이 사구에서 삶을 마감하다 / 330
· 사구 정변은 두 차례 있었다 / 333
· 분가가 본가를 몰아내는 조나라의 사구 정변이 일어나다 / 333
· 공자 장이 반란을 일으키다 / 334
· 공자 장이 살해당하다 / 335
· 분가가 본가를 몰아내는 조나라의 사구 정변이 일어나다 / 336
· 시황제의 죽음을 은폐하다 / 338
· 유서 조작과 부소가 자살하다 / 339
· 몽씨 형제가 죽다 / 340
· 분노한 사람들이 부소나 항연을 사칭하며 반란을 일으키다 / 342
· 시황제가 순행 중 위독해지자 부소를 처형한 후 승하했다고? / 345
· 만약에 부소가 황위를 계승했다면? / 349
· 진나라 멸망설? / 355
· 전국 시대의 재시작설? / 358

06. 무리한 대규모 토목공사

· 만리장성을 축조하다 / 366
· 중국 최초의 장성은 초나라가 쌓은 장성이다 / 368
· 조 ? 연 ? 진나라 등 세 나라가 쌓은 장성을 진시황이 통일 이후 연결해 지은 것이 시초였다 / 371
· 시황제가 만리장성을 무리하게 축조하다 / 376
· 명나라는 헌종 성화제의 치세 때인 1473년부터 산시 일대에서 40,000여 명을 동원하여 장성을 쌓기 시작했다 / 379
· 20세기에도 만리장성은 중국 현대사에 영향을 미쳤다 / 381

07. 진승오광의 난과 진나라의 멸망

· 진승과 오광의 난이 일어나다 / 388
· 진나라가 붕괴하기 시작하다 / 389
· 진승과 오광이 군사를 모으다 / 392
· 진승이 왕이 되다 / 396
· 진여가 또 다른 제안을 하다 / 397
· 장한이 등장하다 / 402
· 장초가 패망하기 시작하다 / 404
· 진나라가 역사 속으로 사리지다 / 414

08. 시황제의 평가

·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다 / 420
· 통치 체계를 확립하다 / 425
· 한나라는 진나라에 대한 부정적인 기록이 많은 편이다 / 426
· 황제들이 2대 황제, 3대 황제를 칭할 것을 기대었건만 이세 황제의 폭정으로 진나라가 멸망하다 / 433
· 후계자가 잘못 선정되다 / 437
· 시황제 본인이 바라던 하나된 중국을 이루지는 못했다 / 442
· 시황제는 법가사상을 신봉하다 못해 맹신했다 / 445

09. 만리장성과 진시황릉

· 만리장성은 연간 셀 수 없는 숫자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여행 명소다 / 454
· 현재 전체 장성 중 50%는 예전의 모습이 사라지고 다 파괴되었다 / 461
· 장성에는 각 지형에 맞는 건축 공법이 적용되었다 / 467
· 장성에 대해 중국 정부는 각각의 구간을 두어 관리한다 / 467
· 고북구(구베이커우) 장성 / 470
· 가욕관(자위관) 장성 / 471
· 둔황의 한 대장성 / 472
· 중국의 동북공정과 한반도 포함 시도를 하다 / 473
· 2012년 기준 만리장성의 길이가 기존의 두 배 이상 늘어난 21,196.18㎞라고 발표하다 / 476
· 만리장성이 우주에서 보인다? / 476
· 전국 곳곳에 연결되는 치도馳道와 군사 전용 도로인 직도直道라는 도로를 만들다 / 478
· 아직 릉이 출토되지 않은 황제는 진나라 밖에 없다 / 479
· 진시황릉은 진나라의 멸망 이후 긴 세월 동안 정확한 위치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 480
· 시양 마을 청년 6명이 우물을 만들고자 땅을 파던 중 도기 조각을 발견했다 / 485
· 시황제 릉은 산 전체가 하나의 무덤이다 / 488
· 부장품은 아직 제대로 발굴을 시작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다 / 489
· 병마용갱은 황릉이 아니라 황릉 주변에 있는 부장품이다 / 495
· 병마용의 주인은 진시황이 아니다? / 498
· 상나라 시대부터 청나라 시대까지의 제왕릉들을 비교하면 진시황릉의 능원이 가장 크다 / 501
찾아보기 / 504

저자 소개 2

한라대학교 영상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디자인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박물관, 전시관, EXPO 등 인터랙션, 인터페이스 적인 체험형 에듀테인먼트와 기술디자인에 대하여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국내 아트디렉터 권위자로 (사)한국공간디자인학회에서 우수 논문심사위원상 수상, 대한민국인물대상전 디자인콘텐츠 대상, 코리아혁신대상에서 디자인산업부문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사)전국여교수연합회 부회장 및 광고위원장, (사)한국색채학회 이사, (사)한국공간디자인학회 논문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등의 심의위원, 한국
한라대학교 영상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디자인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박물관, 전시관, EXPO 등 인터랙션, 인터페이스 적인 체험형 에듀테인먼트와 기술디자인에 대하여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국내 아트디렉터 권위자로 (사)한국공간디자인학회에서 우수 논문심사위원상 수상, 대한민국인물대상전 디자인콘텐츠 대상, 코리아혁신대상에서 디자인산업부문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사)전국여교수연합회 부회장 및 광고위원장, (사)한국색채학회 이사, (사)한국공간디자인학회 논문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등의 심의위원,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심사위원, 강원도 지역혁신위원, 인천광역시 경관위원, 경기도 경관위원, 원주시 공공디자인 및 경관·기술자문 위원이다.

김혜정의 다른 상품

『노무현의 품격』 (상, 하) 편집위원 『미국 대통령의 명연설문 재발견』 공편 『오바마의 품격』 공편 『존 F.케네디, 46세에 죽었지만, 천년을 사는 남자』 공편 『카멀라 해리스, 미국 첫 여성 대통령을 향해』 공편

배용구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3월 2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512쪽 | 130*150*35mm
ISBN13
9791193796146

출판사 리뷰

중국인들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중국인’ 중 공자에 이어 2위가 시황제입니다.

시황제 영정은 전국 시대 진나라의 제31대 왕으로, 춘추 전국 시대를 끝내고 중국 역사상 최초로 대륙을 통일한 인물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최초의 황제’라는 의미로 ‘시황제’라고 부르게 했습니다. 군현제 실시와 문자 · 화폐 · 도량형 통일 등 중국의 중앙 집권 체제의 기반을 마련하는 치적을 세웠으나 만리장성이나 아방궁 축조 등 대규모의 토목 공사와 분서갱유 사건 등 엄청난 폭정을 행사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영정은 전국 시대 진나라 장양왕의 아들로 기원전 246년 열세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즉위한 그를 대신하여 어머니 조희와 승상 여불위가 섭정을 맡지요.??사기??에 따르면 영정의 어머니인 조희는 장양왕이 태자가 되기 전 조나라에서 인질 생활을 할 때 여불위가 바친 기녀라고 합니다. 조희가 그 당시 이미 여불위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는 설이 있어 항간에서는 그가 여불위의 아들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영정은 어린 시절을 조나라에서 보냈고, 기원전 250년 아버지 장양왕이 진나라로 돌아와 태자에 책봉되면서 그 후계가 되었습니다.

장양왕이 죽고 즉위한 영정은 여불위를 상국에 임명하고 정치적 전권을 넘겼습니다. 이때 여불위는 훗날 영정의 오른팔이 되어 활약할 이사를 천거했습니다. 기원전 237년 영정은 드디어 친정을 선포합니다. 1년 전 영정의 어머니와 정을 통하던 환관 노애가 반란을 일으킵니다. 영정은 노애를 극형에 처하고 그의 가문을 멸했으며, 노애와 정을 통한 어머니를 감금시키고, 어머니와 노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을 죽입니다. 이 사건을 빌미로 당시 최대 권력자였던 승상 여불위를 해임하고 드디어 기원전 237년 친정에 임하게 됩니다.

친정을 시작한 영정에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은 바로 이사였습니다. 그는 전국 시대의 7웅 중 하나였던 진나라가 천하 통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고, 통일 이후에는 대륙을 통치할 많은 정책을 세운 장본인입니다. 순자의 문하였던 이사는 강력한 법가 사상가로, 철저한 법치만이 백성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영정 자신도 이사의 영향으로 법가 사상을 중시했고, 군주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강력한 군주제를 수립합니다.

영정은 기원전 230년부터 주변국을 정복하기 시작하여 한 ? 조 ? 위 ? 초 ? 연을 차례로 정복합니다. 그리고 기원전 221년에 제나라를 정복함으로써 중국을 하나의 국가로 통일했습니다. 그는 전설의 삼황오제(중국 역사를 시작한 전설상의 황제들)를 능가한다는 의미로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했으며, 자신을 시작으로 후손들이 제국을 이어나가기를 바라며 스스로를 시황제라고 칭했습니다.

통일 이후 시황제는 황제로서의 권력을 확립하기 위해 중앙집권 체제를 세우는 데 착수했습니다. 먼저 군웅들이 난립해 있던 전국 시대의 혼란은 지방 귀족들의 통치를 인정한 분봉제 때문이라고 여기고 중앙이 지방을 통치하는 군현제를 실시했습니다. 이사는 진나라의 영토를 전국 36개 군과 현으로 재편하고, 중앙에서 임명한 관리로 하여금 다스리게 했습니다. 이로써 진나라만의 중앙집권 체제가 정비되었고, 이 체제는 이후 중국의 중앙집권 체제의 기본 골격이 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시황제는 영토 확장도 계속하여 흉노를 물리치고 베트남, 해남도까지 군현을 설치했습니다.

또한 시황제는 전국의 문자와 화폐 ? 도량형을 통일하고, 전국에 도로와 운하를 건설했습니다. 먼저 승상 이사로 하여금 소전 문자를 만들게 하여 모든 공문서와 법령에 쓰이는 문자를 통일했습니다. 또한 황금을 상폐, 동전을 하폐로 하여 화폐를 통일시켰습니다. 도량형의 명칭도 통일했는데, 길이는 촌 · 척 · 장, 양은 승 · 두 · 통, 무게는 양 · 근 · 석으로 통일했습니다. 모두 효율적인 중앙집권 체제를 달성하는 정책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시황제는 업적만큼 폭정도 휘둘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분서갱유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시황제와 유학자들 사이의 마찰이 극대화되면서 벌어졌고 시황제는 최측근 이사와 함께 법가 사상에 기반을 둔 정책을 시행했는데, 유학자들은 이를 끊임없이 반대했습니다. 특히 제나라 출신의 박사 순우월淳于越이 옛 봉건제를 부활시킬 것을 주청하는 데까지 이르자, 기원전 213년 승상 이사는 유생들이 위험한 사상을 펼치는 것을 막기 위해 진나라 내의 모든 책을 태워 버려야 한다는 상소를 올립니다. 이에 시황제는 의학 ? 점술 ? 농경 분야를 제외한 모든 책을 불태우게 하고, 유교를 공부하거나 자신의 정책을 반대하면 극형에 처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분서 사건입니다.

갱유 사건은 기원전 212년에 벌어진 것으로 불로장생 약에 대한 시황제의 염원이 발단이었습니다. 신선 사상에 심취한 시황제가 불로장생을 꿈꾸며 방사(도인)로 하여금 불로초를 구해 오게 했는데, 방사는 불로초를 구해 오는 대신 도망을 갑니다. 이에 시황제는 자신을 속인 방사와 여러 분야의 학자 460여 명을 잡아 땅에 파묻습니다. 이 두 사건을 합쳐 ‘분서갱유’라고 하지요.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폭정으로 보기보다는 시황제가 난립해 있던 사상을 통일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대륙을 통치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시황제의 정책 중 백성들의 원성을 산 것은 단연 무리한 토목 공사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만리장성이죠. 이 만리장성을 축조하는 데는 150만 명의 백성들이 동원되었으며, 4년 만에 30만 명이 사망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그는 아방궁을 건설하기 위해 70만 명의 백성들을 동원했고, 후에 자신이 묻힐 능묘인 여산릉을 조성하는 데도 무리하게 백성들을 동원합니다. 이러한 대규모 토목 공사가 이어지자 나라의 재정이 바닥났고,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면서 민심이 흉흉해졌습니다.

암살 기도가 이어지면서 시황제는 더더욱 주위를 불신하고 고립되어 갑니다. 그러면서 시황제는 점차 죽음을 두려워하며 불로장생을 꿈꾸게 됩니다. 시황제는 불로초를 찾기 위해 수많은 방사들을 백방으로 보냈는데, 특히 방사 서복이 왜국에 불로초가 있다고 한 말을 믿고 많은 돈을 주고 불로초를 찾으러 보냅니다. 그러나 서복은 동남동녀 3천 명을 이끌고 왜국으로 향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죠. 이는 서복의 거짓말이었지만 시황제는 죽는 날까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나 기원전 210년 순행 도중 병을 얻은 시황제는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사기??에는 그의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황제의 마지막 순행길에 유성이 떨어졌다. 그 운석에는 ‘시황제사이지분始皇帝死而地分’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시황제가 죽고 천하가 갈라진다’라는 의미로, 시황제는 이에 충격을 받고 쓰러진 후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했다.” 라고 합니다. 시황제는 태자 부소를 후계자로 지목했으나 이사와 환관 조고 등의 음모로 부소가 자결하고 황자 호해가 이세황제로 즉위합니다. 이세황제가 즉위한 후 진나라는 진승과 오광의 난, 유방과 항우의 반란 등 숱한 내란에 시달렸고 호해는 결국 4년 만인 기원전 207년에 조고에 의해 강제로 자결했으며 이후 유방이 수도 함양에 입성하면서 진나라는 멸망합니다.

시황제는 사후 자신이 조성한 여산릉에 묻혔습니다. 1974년 서안의 한 시골 마을에서 우물 공사를 하던 중에 땅속에서 도기인형 조각과 쇳조각이 발견되면서 발굴이 시작되었고 전체 규모가 약 2만 5천 제곱미터에 달하는 4개의 갱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갱에는 많은 사람들이 순장되었다고 하며, 실물 크기의 흙 인형인 토용도 6천구 이상 발굴되어 당대의 군사 양식을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시황제는 거대한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으며, 여러 가지 엄청난 치적을 쌓았습니다. 여러 악정에도 그는 오늘날까지 중국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꼽히며, 그의 강력한 왕권에 대해서는 중국의 이후 왕조들과 주변 국가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2025년 2월 김혜정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26,550
1 26,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