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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와 함께한 53년
1장 음악가를 꿈꾸다 2장 이부카 마사루와의 만남 3장 소니에서의 첫 지휘 4장 소니 디자인, 광고, 상품개발 전략 5장 10ssu 만에 일본 최고의 레코드 업체가 되다 6장 디지털을 향한 꿈 7장 소니, 할리우드로 진격하다 8장 소니가 게임의 주역이 되다 9장 또 하나의 인생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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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는 신문광고에는 유명 여배우를 기용하지 않고 상품 사진을 중심으로 내기로 했다. 유명인을 광고에 등장시키면 광고료와 별도로 모델료를 지불해야 한다. 우리가 정말 팔고 싶은 것은 소니 제품이다. 따라서 디자인에 최대한 정성을 기울였다. 광고를 할 때도 상품이 가장 눈에 띄도록 배치했다. --- p.92
나는 기록시간의 길이는 음악의 악곡 시간을 따져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LP레코드에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designtimesp=23892>을 전부 수록할 수 없었다. 따라서 나는 주요 악곡을 콤팩트 디스크 한 장에 넣으려면 지름 12센티미터, 75분 정도의 용량이 필요하다고 r주장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유명 지휘자가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designtimesp=23893> 시간을 거의 다 쟀다. 그 결과 75분이면 바그너의 곡을 제외한 주요 악곡 대부분을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필립스와 달리 소니의 주장은 확실한 근거가 있었다. 필립스는 이런 점을 전혀 감안하지 않았다. --- p.108-109 영화사 매입은 가정용 비디오 테이프 리코더 ‘베타맥스 방식’이 ‘VHS 방식’에 패배하면서 계획하기 시작했다. 콤팩트 디스크를 구체화할 때 ‘CBS 소니’가 있었듯이 ‘만일 소니에 영상 소프트웨어가 있었다면 흐름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략)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소니가 컬럼비아영화사를 매입한다는 계획이 확실해지자 곧바로 <뉴스위크 designtimesp=23903>에 ‘일본, 할리우드 진격’이란 특집기사가 실렸다. 잡지 표지에는 컬럼비아영화사의 상표인 ‘자유의 여신상’에 게이샤 풍의 옷을 걸친 모습이 실렸다. 소니가 흡사 미국의 영혼을 돈으로 산 듯한 보도였다. --- p.229-234 나의 65번째 생일이 다가온 1995년 1월, 이데이 노부유키를 내 사무실로 불러 “당신을 소니 차기 사장으로 지명하겠다”라고 내 뜻을 전달했다. 가장 놀란 사람은 이데이 노부유키 자신이었다. 그는 출장지에서 “저는 사장 그릇이 아니므로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요”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중략) “이데이 노부유키, 14명의 후보 누르고 소니 사장에 오르다.” 대중매체도 의외의 인사에 놀랐는지 큰 헤드라인이 일제히 신문을 장식했다. --- p.270-271 소니가 다른 회사를 모방하지 않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회사가 소니를 따라할 수 없도록 상품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요컨대 상품기획의 표준을 스스로 정하거나 장인정신이 빛나는 기술로 증명된 메커트로닉스(mechatronics: 기구와 전자공학의 합성어)를 보유해야 한다. --- p.280-28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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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브랜드, 전후 일본의 상징 소니
'소니'하면 떠오르는 것은? 트랜지스터 라디오, 워크맨, 베가(WEGA) 등 소니의 TV, 노트북 컴퓨터 '바이오' 등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젊은이들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아이보(소니가 만든 애완견 로봇)를 내세울지 모른다. 취향에 따라 소니라는 이름을 음반이나 영화와 연결시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 브랜드 소니의 영역을 이처럼 넓힌 주역(主役), 오가 노리오 회장의 ‘소니 인생’을 들여다보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씨실과 날실을 구성하며 끊임없이 뭔가를 추구하며 발전한 소니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법하다. 1953년에 소니에 입사해 32세의 나이(1962년)에 이사로 취임해 1982년에는 사장, 1995년부터 회장으로 활동해서 2003년, 72세되던 해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까지 무려 53년이라는 세월을 소니에 몸바친 이 우직한 기업가의 자전적 경영일지에는 전통적인 가전 왕국 소니가 디지털 시대의 선두주자중 하나로 거듭나게된 모든 궤적이 담겨있다. 소니의 영광을 이뤄낸 명지휘자, 오가 노리오의 자전적 경영일지 51년 도쿄예술대의 한 대학원생이 일본 최초의 녹음기 시연장에 들어서서 이른바 'VIP이펙트'라는 기기를 살펴보고 있었다. 마침 기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음악도였던 '그'는 진동과 소리왜곡 등 제품 설계상 개선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설계담당 공장장은 이 ‘건방지지만 똑똑한' 학생을 다시 보게 됐다. 2명이었던 이 회사 창업주들은 이 비범한 천재를 9년이나 쫓아다닌 끝에 음악을 함께 한다는 조건을 달아준 후에야 간신히 영입에 성공했다. 이 책은 ‘바리톤 가수 오가 노리오’를 꿈꿨던 저자가 이후 경영자의 길로 들어서 50년간 걸었던 경영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2여년간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經濟新聞)에 ‘나의 이력서’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저자는 소니가 걸어온 길이나 자신이 경영자로서 실천한 일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소니뿐만 아니라 일본 제조업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데 도움을 줘야 한다는 의무감이었다. 무언가 발견할 때의 기쁨, 미지의 세계에 순수하게 감동하는 기분 세계적 기업을 일궈낸 이 책의 저자를 사로잡은 화두는 '감동'이다. 저자는 항상 보기에 아름답고 성능도 뛰어나며 그 제품을 갖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제품을 만들려 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날 때의 두근거리는 마음, 무언가를 발견할 때의 기쁨, 미지의 세계에 순수하게 감동하는 기분을, 소니라는 기업과 그 제품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일깨워주는 회사가 되기를 바랬다는 것이다. 또한 브랜드와 디자인의 중요성에 주목했던 저자는 ‘소니다움’을 강조한 상품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할리우드 기업을 사들이고 게임 개발을 하는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라는 두가지 면을 모두 생각하는 경영을 실현했다. 저자가 말하는 주요 성공요인 중 하나가 바로 하드웨어 쪽과 음악, 영화 등 소프트웨어를 모두 수용했다는 것이다. 저자의 생각으로는 하드웨어를 팔려면 소프트웨어가 필요하고, 소프트웨어가 팔리면 하드웨어도 팔 수 있다는, 둘 사이의 상승효과가 작용한다는 것이었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CEO 저자가 소니의 CEO로 활동하면서 이뤄낸 업적 -- 워크맨, CDP, 미니디스크, 컬럼비아 영화사 인수건, 플레이스테이션 대박 등 --이 말해주듯, 그는 확실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번뜩이는 영감으로 국민들에게 희망을 일깨웠다. 그는 탁월한 직관력에 지휘력, 그리고 알수 없는 영역의 '그 무엇'까지 더해서 세계 산업계의 풍향계를 정하고 국력의 향방까지 가늠하게 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확실히 이 책의 저자인 오가 노리오와 같은 경영인들이 보여준 직관과 경험과 지식으로 무장된 그 탁월함에 목말라하고 있다. 손수 제트기를 운전한다는 그는, “사람이 비행기를 타면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다. 72세까지 최고경영자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남들이 자는 시간에도 조종실에서 운전하는 것처럼 살아 왔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 최고경영인에게 요구되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