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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nz Schlaff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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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문학은 과연 없는가 - 독일 문학의 본질에 대한 명확한 해부, 분석
독일 문학은 이탈리아나 스페인, 또는 프랑스 문학이 전성기를 훨씬 넘긴 175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세계 문학의 반열에 올랐다. 왜 독일 문학은 이렇게 늦게 전성기를 맞이했는가? 그리고 왜 짧은 기간 부흥했다가 사라졌는가? 이러한 의문점들을, 하인츠 슐라퍼 교수는 독특한 문체와 사유로 도발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는 원서 150여 페이지의 짧은 분량에 각주 하나 없는 에세이 형식으로, 독일 문학의 생성 과정, 본질, 현재를 다 말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독일 문학은 없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잠시 있다가 사라졌다. 중세의 독일 문학은 라틴 어를 사용하는 수사들에 의해 주로 기록되어 왔으며, 12세기 말경 비로소 독일어로 쓰였지만 프랑스의 고전 문학이 즐겨 썼던 소재들을 들여와 번역, 개작하는 등 그 원류가 독일적인 것으로 보기 어렵다. 그러다 15세기 중반 서적 인쇄술이 도입되지만 당시 서적 인쇄와 출판업계가 성직자들이 찾는 라틴 어 전문 서적을 찍어내다 보니, 결국 기록 문자와 민중의 언어가 분리된 독일 내 귀족 특권 문학으로서 존재했던 독일 문학은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독일 문학은 귀족의 언어인 수사학이 종말을 고하고 매너리즘이 극복되고 난 이후인 1770년에서 1830년 사이에, 즉 고전-낭만주의의 괴테 시대에 일시적으로만 있었고, 그 후에는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유대 인 작가들과 가톨릭 작가들에 의해서 주도된 세계적 차원의 독일 문학이 부상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20세기 독일 문학의 담당층이었던 유대 인과 가톨릭 작가들이 사라짐으로써 독일 문학은 종말을 고했다고 한다. 2002년 3월 초에 출간된 이 책은 그해 7월에 이미 2만 부가 팔렸고, 「쥐트도이체 차이퉁」(2002년 2월 26일), 「슈투트가르트 차이퉁」(2002년 3월13일), 「디 벨트」(2002년 3월 16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2002년 3월 19일) 등 굵직한 일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슈피겔』(2002년 9월호) 같은 잡지와 학술지에서 차례차례 격론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에 대한 비평은 당시에 이미 이 책의 두께보다 많은 2백여 페이지가 쓰였을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이 책은 중세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독일 문학을 다루면서 독문학자들에게 잊힌 문제를 다시 활성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전공자들뿐만 아니라 독문학을 읽으려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독특한 독문학의 특성을 밝힘으로써 그런 형식 뒤에 숨겨진 문학성을 지닌 작품들을 기꺼이 읽을 수 있는 힘을 준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을 썼으며, 책의 끝부분에서 <이 책은 독자가 다시 독일 문학을 읽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짧다. 이 책 또한 그 독일 문학이 없이는 생기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직접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 여러 명의 학자들이 각기 자신의 세부 전공 분야를 쓰고 독일 문학의 전체 역사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에게 유보하는 기존의 독일 문학사와 달리, 한 독문학자의 일관된 관점으로 문학사를 서술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제목의 의미 이 책의 원제는 역자는 이 책의 제목을 만드는 데 고민했음을, 옮긴이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원제가 〈Die kurze Geschichte der deutschen Literatur〉이므로 〈짧은 독일 문학사〉라고 번역해야 하지만, 그러면 문화적 이질성으로 인해 진부한 느낌이 발생했다. 그래서 저자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러잖아도 이 책은 〈독일 문학의 형성사〉 또는 〈독일 문학의 본질과 형성 과정〉, 〈독일 문학의 특성〉, 〈독일 문학사의 인상학〉 등의 제목을 붙여 볼까 생각했으니 그 방향으로 고려해 보라고 권했다. 이런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슐라퍼의 독문학 동화〉, 〈슐라퍼의 기발한 이야기〉같이 아무렇게나 붙여도 좋다고 농담을 했다. 나는 그 농담을 믿었다. 그래서 〈독일 문학은 없다〉라는 과감한 제목을 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