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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 베아트릭스 대 식물학자들 2. 숲의 그물망, 우드 와이드 웹 3. 아틀란티스 비밀 낙원 4. 빈대와 버블 보이 5. 혁명의 원자 6. 창세기 다시 쓰기 7. 에덴의 새 정원사 참고 문헌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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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세상을 조용히 움직이는 힘
저자는 머리말에서 학교 시절 겪은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의 과학 선생님은 교실 뒤쪽에 어항을 건조시켜두었는데 초여름에 한 번 거기에 물을 부었다. 곧 어항 속에서는 바다새우가 자라났는데 그 물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바다새우는 기적처럼 한 배의 알을 낳았다. 바다새우는 무엇을 먹고살았을까. 친구들은 선생님이 어항에 몰래 무언가를 넣었으리라고 의심했다. 이 바다새우가 먹고산 건 새우알 표면의 작은 미생물 포자였다.
대부분의 미생물(박테리아, 균류, 단세포 생물을 통칭하는 말)은 수천분의 1밀리미터이다. 만약 박테리아가 잎담배만큼 확대된다면 사람은 24킬로미터가 될 것이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미생물에 대한 연구는 늦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 미생물에 대한 중요성에 대한 인식 역시 늦게 올 수밖에 없었다. 미생물에 대한 편견 역시 미생물의 가치를 알아차리는 데 방해가 되었다. 생물은 미생물과 ‘공생’할 때에만이 온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공생’이란 과학적으로는 두 가지 다른 생물체가 오랜 기간에 걸쳐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는 것을 뜻한다. 생물계에서 공생은 예외적이기보다 보편적이다. 잘 알려진 이야기부터. 콩과식물은 땅에 부담이 되지 않는 도리어 땅에 비료를 주는 것처럼 여겨지는데 이는 콩과식물의 공중질소 고정을 통해서이다. 공중질소 고정은 질소 사이의 삼중결합을 끊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자연계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이 공중질소 고정은 콩과식물과 공생하는 뿌리혹박테리아 때문에 일어난다. 둘 사이에 공생이 맺어짐으로써 양성 피드백 작용이 이루어진다. 자신의 개체군이 증가하며, 콩과식물 역시 생장을 촉진한다. 영국에서는 50여 종의 야생난 중에서 적어도 3분의 1이 멸종 위험에 처해 있다. 하지만 희귀한 표본이 야생 상태에 재도입시키기 위해서는 난과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균류를 찾아내는 작업밖에 없다. 어떤 식물의 생존이 다른 생물체에 좌우되는 것이다. 식물은 땅 속 깊이 내린 뿌리를 연결하는 균근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간의 생존을 도모한다. 뿌리는 영양분을 향해 가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균류와 뿌리의 접점을 통해 균근 균류가 탐색한 영양분을 흡수해야만 한다. 균사는 식물이 뿌리는 만드는 데 소요하는 에너지의 100분의 1만으로 토양을 뚫고 영양분을 탐색, 추출할 수 있다. 그늘 속에 있는 어린 나무에게 균근 네트워크를 통해 영양분이 풍부한 키 큰 나무가 영양분을 나눠주기도 한다. 숲 나무 아래 가끔씩 고개를 내미는 버섯의 밑으로는 수백 피트에 이르는 균사체의 실체가 숨어 있다. 균류는 인터넷에 중독된 사람처럼 영구적으로 온라인 상태에 있다. 균류의 사전에 외로움은 없다. 저자는 이 그물 조직을 ‘www: wood wide web’이라고 말한다. 균류의 이러한 평등 정신은 역동적인 재분배로 이어진다. 잔디밭 표면이 고르지 못할 때 정원 잔디를 들쑥날쑥하게 깎더라도 2주 뒤면 거의 같은 높이가 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균근이 공공복지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공생을 탐구한 과학사의 이단자들 미생물이 덮어쓴 ‘박멸의 대상’이라는 카테고리는 미생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방해했다. 잰 삽이 말했듯이 미생물들은 “숙주로부터 올바른 유전을 빼앗아가는 도둑이나 마찬가지라는 취급을 당”했을 뿐이었다. 편견으로 미생물을 대한 대표적인 인물로 파스퇴르를 들 수 있다. 멸균 방법을 창안하여 현재 ‘멸균’의 영어 단어 ‘pasteurization’에도 남아 있는 파스퇴르는 미생물을 박멸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파스퇴르가 가진 정치의식과 시대도 그러했다. 파스퇴르는 프랑스 혁명 때 왕을 살해한 군중을 비난했고 그때 그는 군중을 미생물에 비유하며 “박테리아더러 우리의 신체를 점령하도록 한다면 우리는 공격자와 구별할 수 없는 곪은 박테리아 덩어리로 분해되고 말 것이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생물과 공존하고 있다는 혹은 공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먹힐 수 있겠는가? 지의류는 균류와 조류가 상호 공생하는 집합체이다. 하지만 지의류가 두 가지의 생물이 공존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생물학자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1869년 슈벤데너가 지의류의 분류에 관한 ‘이중가설’을 펼치자 저명한 영국의 박물학자인 제임스 크롬비는 “유용하고 기분 좋은 기생이라……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포로로 잡힌 조류 처녀와 폭군적인 균류 주인 사이의 부자연스러운 결합이라니”라며 비하했다. 이런 단견에 ‘지의류와 조류의 공생’을 주장한, 탁월한 생물학자 베아트릭스 포터도 희생되었다. 베아트릭스 포터는 피터 래빗을 탄생시킨 위대한 동화작가이지만 만약 그가 과학자로서의 삶에서 좌절을 맛보지 않았다면 농촌으로 은둔하지 않았을 것이고 피터 래빗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피터 래빗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다행스런 일일 테지만). 이 비극적 스토리에는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차별 역시도 가세했다. 그녀는 과학에 대한 열정을 동화작가로서의 명성을 쌓는 중에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만의 비밀일기에 “버섯은 다시 나올 것이고 화석 역시 영원할 것이다…… 나이가 많이 들면 다시 이 일을 하고 싶다”고 썼다. 그녀의 발언이 무시된 지 정확히 백 년이 지난 1997년에야 그녀를 기리는 회합이 열리고 린네학회는 부당하게 그녀를 취급한 것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이를 알고 나면 피터 래빗 그림책에 나오는 바위 위의 지의류에 무심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톰 웨이크퍼드가 발굴한 과학사 톰 웨이크퍼드는 작은 미생물을 찾아 나서면서 생물사에서 버려졌던 소중한 것들을 발굴해냈다. 베아트릭스 포터의 이야기가 그렇고 일반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마굴리스의 탁월한 견해가 그렇다. 이 둘은 모두 여성이다. 베아트릭스 포터가 여성이기 때문에 겪은 굴욕과 모욕은 과학사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으로 전개되었나를 잘 보여준다. 톰 웨이크퍼드는 이 책에서 감식안과 건강한 철학으로 미생물과의 공생이 주는 교훈을 적절하게 평가한다. 공생은 단지 미생물과 생물의 상호 이익을 도모하는 친밀한 협력 관계만이 아니다. 창안되었을 때는 과학적인 용어였지만 곧 불온시된 역사가 이를 말해준다. 자본주의 개인의 독립성을 부정했기 때문에 공생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부정되었고, 이는 역으로 과학적인 개념에 대한 평가로까지 이어졌다. 진화란 적자생존, 약육강식이며 “이빨과 발톱으로 피투성이가 된” 자연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이미지가 만연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박테리아가 틈입한 생물체 간의 투쟁을 거친 공존을 통해서 진핵세포가 기원했고, 다른 한쪽이 죽으면 다른 한 쪽 역시 살 수 없는 깊은 상호의존성을 통해서 생물체는 진화했다. “지금 가장 긴급한 메시지는 다른 모든 생물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미래가 완전히 커다란 생물학적 전체의 미래와 생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다 능동적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