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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프롤로그: 오페라와의 대화, 시대와의 대화 모짜르트의 <코지 판 투테> 로시니의 <세빌랴의 이발사>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 푸치니의 <라 보엠>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 차이코프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 비제의 <카르멘> 베르디의 <오델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푸치니의 <토스카> 푸치티의 <나비부인> 베토벤의 <피델리오> 도니제티의 <루치아> 베르디의 <나부코> 베버의 <마탄의 사수> 베르디의 <운명의 힘> 마스카시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 문호근의 음악과 삶: 이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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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렇게 생각해 보지요. 1810년경에 나왔던 '귀신 이야기책'에서는 이 아가씨가 총을 맞아 죽고, 아가씨의 부모들도 아가씨의 애인도 모두 미쳐 죽어버리는 비극적인 결말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오페라로 만들면서 이렇게 '선'이 '악'을 무조건 이기는 행복한 결말로 만들어놓은 것이죠. 그렇다면 왜 이야기책에서는 가혹하게 다룰 수 있는 일을 극장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요. (사실 이런 예는 이 오페라뿐만 아니라 다른 오페라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거든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이야기책은 혼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이야기의 충격을 혼자 마음속으로 삭일 수 있지만 극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순간에 충격을 받기 때문에 각자의 마음속에 충격을 삭일 새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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