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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산과 뚜이안
대마는 자란다 그래도 대마는 자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온 사나이 시하눅빌 러브 어페어 보헤미안 랩소디 해설/ 고영직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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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몇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가끔씩 「솜산과 뚜이안」에 ‘시하눅빌 스토리 1’이라는 단서를 달아놓은 것을 떠올렸고 그때마다 약간의 부채의식을 느꼈다. 그러나 나를 가로막았던 것은 분주한 일상과 함께 ‘왜?’라는 단순한 의문부호였다. 말하자면 모국어에 내포된 당위성으로서의 민족적 주체성을 담보할 수 없는 소설을 왜 써야 하는지, 또 쓸 수 있는지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그것은 마땅히 품을 수밖에 없는 회의였을 것이다.
그 안개 속을 이리저리 헤매던 어느 새벽 연작의 마지막 편을 끝낸 후 내 앞에 확연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시아’였다. 그 아시아 너머에 한반도가 보였다. 그 새벽 나의 심장이 천천히 그러나 둔중하게 고동치기 시작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것은 십년 동안 잠들었던 소설쓰기에 대한 나의 엔진이 시나브로 시동하는 소리였다. ---p. 작가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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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현석 등을 중심으로 한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이 한국문학에 중요한 성과들을 내고 있다. 그러나 캄보디아는 우리에게 ‘킬링 필드’라는 무시무시한 이미지나 앙코르와트 유적이 있는 관광지로 기억될 뿐이다. 같은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해 있으면서 베트남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였던 캄보디아에 대한 이 같은 무지와 무관심은 한국이 참전한 전쟁이 인도차이나 전역에서 벌어진 전쟁이 아닌, ‘베트남 전쟁’으로만 기억되고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유재현은 우리 작가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캄보디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다. 작가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인도차이나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고 이 지역을 여행했다. 작가는 이러한 체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말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창비)라는 책을 간행했고, 이 책에서 “베트남전쟁을 인도차이나전쟁으로 불러야 옳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연작소설『시하눅빌 스토리』에는 작가의 이와같은 관심사들이 잘 스며들어 있다. 작가는 현재의 캄보디아 시하눅빌이라는 특정한 시공에서 벌어지는 ‘아시아적인 현상들’, 다시 말해 서구의 침략에 의해 근대적 과제들이 해결되지 못했거나 미뤄지고 있는 행태들을 낱낱이 고발한다. 살인과 마약, 도박과 매춘 알선 등은 이 소설집의 전반부를 이끄는 주된 테마이며 이런 그늘 속에 사람들의 마음속까지 파고든 어두운 단면들이 작가의 뛰어난 솜씨로 파헤쳐진다. 그러나 이 책에서 묘사된 시하눅빌이 어둡고 참혹하지만은 않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온 사나이」 「시하눅빌 러브 어페어」「보헤미안 랩소디」에 이르러 작가는 암흑의 한가운데에서 연대의 끈을 놓지 않는 인물들을 따뜻하게 그려냄으로써 희망적인 메씨지를 담아낸다. 「솜산과 뚜이안」 「대마는 자란다」 「그래도 대마는 자란다」는 솜산, 뚜이안, 삐, 비세쓰라는 네 젊은이의 악몽과도 같은 일상을 따라가며 진행된다. 이들은 모두 ‘천사백 달러’라는 돈의 행방을 따라다니지만 그 누구도 이 돈을 손에 거머쥐지 못하고 살해당하거나 돈을 빼앗기고 만다. 「솜산과 뚜이안」에서 솜산은 뚜이안과 결혼을 약속한 사이지만 도박판에서 애인의 돈을 모두 잃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베트남 출신 창녀인 뚜이안은 평소 친하던 경찰을 시켜 솜산을 살해하려 하고 솜산은 선수를 쳐 뚜이안을 마약으로 살해하고 자신은 산정오락성의 중국인들에게 처녀를 소개해준 대가로 받은 돈을 챙겨 도망친다. 이 소설에서 돈 때문에 서로를 죽이는 만행은 잔혹하게 진행된다. 작가는 작중인물들의 고난에 찬 삶의 역정을 소개하면서 이들의 신체와 영혼에 각인된 맹목적 생존논리를 묘사하는데, 여기서 민주캄푸치아 시절 전후의 내전 및 베트남과의 민족갈등 같은 요소가 부각된다. 또한 이처럼 피폐해진 이들의 내면이 바로 강대국의 침략전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강한 암시를 던져준다. 「대마는 자란다」는 솜산이 도피중 살해되고 난 후 그의 돈을 우연히 거머쥐게 되는 마약상 삐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삐는 캄보디아 젊은 세대의 전형적인 초상으로 그려진다. 그는 혁명군 출신으로 십년의 내전과 파행적 자본주의화의 물결에 떠밀려 정체성을 훼손당한 청년으로 오직 생존만을 위해 마약상이 된 인물임이 자세히 묘사된다. 「그래도 대마는 자란다」에서 삐는 경찰서에 구금된 옛 동료 비세쓰를 구출하고 치료해주는 데 돈을 거의 다 써버리고 만다. 또한 전 재산을 투자한 마약밀매 사업이 훈센 정부의 소각령에 의해 잿더미가 됨으로써 그 역시 거덜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여기서 한 개인은 군사정부와 관료주의 같은 더 큰 천적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만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온 사나이」는 이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조선인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리는 북한에서 파견된 왕궁경비대의 일원으로 시하눅빌에서 태권도 도장을 차렸다가 유일한 제자였던 보나리쓰를 격파 시범 도중 실수로 죽이게 된다. 혁명의 열정을 간직한 북조선 출신 리가 “명분도 없이 오직 돈만을 위해 벌어지는 아귀다툼”에서 자본주의의 타락을 목도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시하눅빌 러브 어페어」는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따듯한 인간미를 풍기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지뢰 사고로 남편을 잃은 찬나와 그녀의 딸 셍라이가 함께 결혼식을 올리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머리는 좋으나 얼굴은 못생긴 셍라이가 천하의 미남이지만 머리는 나쁜 라차니와 벌이는 사랑의 줄다리기도 흥미로우며 전쟁의 폐허 속에서 짝을 잃은 중년 세대인 찬나와 마카라의 애틋한 만남 또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형식과 내용 모두 실험적인 방식으로 씌어졌다. 작가는 줄거리에 의존하기보다는 시하눅빌에 모여든 외국인들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여리고 민감한 동성연애자 조르주, 가짜 학위증으로 시하눅빌에서 영어교사를 하며 보헤미안 스타일을 즐기는 릭, 세상을 떠돌아다니다 시하눅빌에 카페를 연 미국인 쌤과 토니, 혼열 프랑스인 끌로드, 그리고 인도차이나 전쟁에 참여한 군인으로서 유일하게 포로가 된 곳이 시하눅빌이라는 이유로 이곳에 사는 브릿저. 이들은 과거 침략 전쟁의 향수에 기댄 인물들이자 현재 진행중인 오리엔탈리즘의 주인공들임이 은근히 암시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