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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가 보수에게
권영길홍세화 등저
이매진 2004.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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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여는 글
“내 기도가 이루어졌다, 태일아!”

특별기고
-“나는 죽는 날까지 민주노동당 당원일 것이다”홍세화

특집
우리의 꿈은 모두가 꾸는 꿈 - 권영길
왠지 맨 먼저 그 곳에 가야할 것 같았다 - 단병호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 외눈박이 국회 끝났다 - 손낙구
진보정치시대는 새로운 언론을 요구한다 - 이광호

기획- 진보가 보수에게
최순영이 박근혜에게
공무원노조 위원장이 고건 대통령 직무대행에게
막걸리 당원이 ‘노빠’에게
변호사 문광명이 국회의원 임종석에게
진보누리가 서프라이즈에게
송경아가 노혜경에게
김정진 변호사가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께
오지혜가 전여옥에게
심상정이 정동영에게
단병호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부록Ⅰ 부유세 10문 10답
부록Ⅱ 민주노동당 17대 총선 40대 핵심공약 및 분야별 공약

저자 소개 2

權永吉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1995 ~ 97년)을 역임했다. 1997년 국민승리 21, 2002년 민주노동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2000년부터 민주노동당 대표로 활동했으며, 2004년 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04년 국회 남북관계발전 특별위원회 위원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이 됐고. 2005년에는 한-중 의원 친선협회 부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2006년 민주노동당 의원단 대표를 지내기도했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실천하는 의원모임에 참여하여 대표가 되기도 했다. 한편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추진을 적극 반대하여, 한-미 FTA를 연구하는 의원모임에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1995 ~ 97년)을 역임했다. 1997년 국민승리 21, 2002년 민주노동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2000년부터 민주노동당 대표로 활동했으며, 2004년 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04년 국회 남북관계발전 특별위원회 위원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이 됐고. 2005년에는 한-중 의원 친선협회 부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2006년 민주노동당 의원단 대표를 지내기도했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실천하는 의원모임에 참여하여 대표가 되기도 했다. 한편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추진을 적극 반대하여, 한-미 FTA를 연구하는 의원모임에도 참여하여 공동대표가 되었고, 한미 FTA 졸속타결 반대 운동에도 동참하였다. 또한 한미 FTA 비상시국회의 공동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2004년부터 2008년, 2009년 세 차례에 걸쳐 시민단체의 국정감사 참관때, 국정감사 NGO 모니터링단 우수국회의원상을 수상하였고, 2009년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주최 국정감사 우수 국회의원에 선정되기도 했다. 18대 국회에서 그는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이 되었고, 2010년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이 되었으며 그해, 민주노동당 원내대표를 지냈다. 또한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국회 호민관클럽 공동대표 등에 선임되기도 했다.

2012년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의 예비 후보로 입후보하기 위해 김두관이 경상남도지사직을 사퇴하자, 권영길은 경상남도지사 보궐선거에 입후보하였다. 이어 민주통합당 측에서 후보자를 내지 않고, 야권 후보단일화를 함에 따라 권영길은 범 야권 경상남도지사 후보가 되었으나 12월 19일의 선거에서 2위로 홍준표에게 밀려 패하였다.

이석기 의원 사건으로 진보 진영이 뒤숭숭할 무렵이었던 2013년 9월 10일, 그는 정계 은퇴를 전격 선언하였다. 그는 "지금 진보 정당은 사실상의 사망 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다"라고 언급하였으며, 다시는 정당 정치에 들어서지 않고 시민운동에 종사하겠다고 말했다. 2013년 9월 10일 사단법인 권영길과 나아지는 살림살이 창립 후 이사장 재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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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저홍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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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 Se-hwa,ホンセファ,洪世和,

저자는 무역회사원, 난민, 택시기사, 언론인 생활을 거쳐 은퇴한 산책자의 일상을 보냈으며,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은행장(?) 명함을 자랑스럽게 휴대하였다. 1979년, 무역회사 주재원으로 프랑스에 체류 중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망명하였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사상의 자유 침해에 따른 난민으로 인정받아, 관광 안내·택시 운전을 하며 이주노동자로 생활하였다. 이때 집필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똘레랑스’라는 용어에 ‘공존’의 메시지를 담아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2년 귀국하여 언론, 출판, 교육, 사회운동,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최전선에서 활동하였다
저자는 무역회사원, 난민, 택시기사, 언론인 생활을 거쳐 은퇴한 산책자의 일상을 보냈으며,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은행장(?) 명함을 자랑스럽게 휴대하였다.

1979년, 무역회사 주재원으로 프랑스에 체류 중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망명하였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사상의 자유 침해에 따른 난민으로 인정받아, 관광 안내·택시 운전을 하며 이주노동자로 생활하였다. 이때 집필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똘레랑스’라는 용어에 ‘공존’의 메시지를 담아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2년 귀국하여 언론, 출판, 교육, 사회운동,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최전선에서 활동하였다. ‘장발장은행’의 은행장으로 시민 모임 ‘마중’을 통해 화성 외국인 보호소에 수용된 외국인들을 지원하였다. 주요 저서로 『미안함에 대하여』, 『결: 거칢에 대하여』, 『공부』,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생각의 좌표』, 『지구를 구하는 정치 책』 등이 있고, 『노루 인간』, 『딸에게 들려주는 인종차별 이야기』, 『왜 똘레랑스인가』 등을 번역했다.

2024년 4월 18일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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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4년 06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쪽수확인중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90816061

책 속으로

저는 그때 마음 속으로 대통령이 신자유주의의 구덩이에 빠져버렸다는 한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구덩이에서 빠져 나오지 않는 한 당선 당시 국민에게 약속했던 공약들은 결코 지킬 수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초국적 자본과 재벌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노동 유연화를 통한 자본의 활동영역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노동-사회정책은 물론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맹주인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에 대항해야 하는 외교정책에서도 개혁성을 회복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 p.

보수와 진보가 서로를 인정하고 치열한 논쟁을 하면서 한국사회의 상식을 넓혀나갔으면 합니다. 보수도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모습, FTA 타결에 항의해 투쟁하는 농민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모습, 노동자 투쟁으로 발생하는 불편을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 이런 것을 만들어 갑시다.

---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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