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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
빙화 푸른 등불의 요코하마 부활제 가위 자리 그림자놀이 적요 해설 ㅣ 정호웅 - 얼음꽃, 생명의 감각 작가의 말 |
李那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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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만나는 [봉인된, 은밀하고 성스러운 비밀]들
'빙화'에 수록된 작품 대부분은 중심으로부터 소외된 타자들의 힘겹고 고단한 현실, 그들의 상처 입은 내면의 풍광을 담아놓은 것이다. 그 타자들은 동성애자, 가부장 이데올로기의 희생자인 여성, 폭력적인 정치권력의 희생자 등 여러 얼굴로 등장한다. 첫 창작집보다 더욱 치밀하고 빈틈없어진 문체로 타자들의 소외된 존재성을 집요하게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생성과 소멸, 생명의 안타까움 그런 점에서 표제작인 '빙화'는 여러모로 주목되는 작품이다. 모스크바에 유학 와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던 젊은 한국 여성이 대학 기숙사의 화재로 엘리베이터에 갇혀 숯이 되고 말았다. 전화로 그 처참한 소식을 전해들은 서술자는 함께 어울려 행복했던 그녀와의 모스크바 생활을 추억하며 마음의 이별 의식을 혼자 치른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이나미의 문학적 관심이 모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빙화, 즉 얼음꽃의 이미지가 사실은 창작집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보아도 무방하리만큼 다층적이라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혹독한 현실과 뜨겁고 푸른 열정을 동시에 품고 있는 빙화의 다층적 상징의 핵심은 유한성과 소멸에 있다. 순수하고 푸른 열정, 생명, 그리고 사람 사이의 인연도, 본래의 물로 되돌아가는 녹아내린 빙화의 운명처럼 퇴색하고 잊혀져 종국에는 소멸되게 마련이다. 빙화의 이미지 속에는 만남과 이별의 이 같은 본질이 담겨 있다. 모든 생명은 얼음꽃처럼 그렇게 생성과 소멸의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운명을 안고 있는 것이다. 해서 ‘빙화’는 그런 생명의 안타까운 감각으로 더욱 아름답다. 소외된 타자, 그 존재성에의 탐구 ‘푸른 등불의 요코하마’는 레즈비언의 슬픔을 다룬 작품으로 타자들의 소외된 존재성을 묻는 이나미 문학의 첫머리에 놓일 만하다. 동성애를 다룬 작품들의 문제의식은 대체로 동성애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악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의식 위에 세워진 도덕과 사회적 법적 제도 등에 내재된 폭력성을 들추어내는 데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푸른 등불의 요코하마'는 이와는 다른 시각으로 동성애자의 고통과 슬픔을 들여다보려 한 작품이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들의 경우보다 성적 관계의 기회가 매우 적다거나 설사 기회가 왔다손치더라도 그 지속성이 너무나 약하다는 것, 그래서 매우 불안정한 성격의 것이라는 사실 등이 그것이다.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된 이 작품의 경우, 주인공 스스로도 용납하지 못하는 위악적 말과 행위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무너져 가는 모습에 대한 서술이 어딘가 과잉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작가의 다분히 의도된 글쓰기에서 연유된 듯하다. 성적 소수자인 동성애자의 성적 결연의 기회와 지속성을 문제삼는 이나미의 문제의식은 타자를 소외시키는 현실의 폭력성을 폭로하고 그것과 맞서고자 하는 대결의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수자인 타자의 소외 현실을 다룬 대부분의 소설과 크게 다르다. [슬픔의 응시, 견딤의 자세] 그들만의 연대를 통한 치유 이나미 소설 속의 중심인물들은 거의 예외 없이 상처로 인한 고통 속에 현실을 견뎌내는 투쟁자들이다. 대부분이 중증의 불면증 환자이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인기피증을 보이고 자기 폄하에 때때로 자기 파괴의 충동에도 쉽게 휩쓸리는 인물들이다. 깊은 연민의 마음으로 스스로 유폐된 이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시선(서술자 혹은 작가)은 끝내 그 위악과 자폐의 세계, 자기 폄하와 혼돈의 세계를 기꺼이 끌어안는다. 그러나 그 연민은 동정의 마음이 아니다. 상처 입은 영혼이 상처 입은 영혼을 끌어안는 것, 다시 말해 스스로의 상처를 감싸안는 마음으로 타인을 감싸안는 그 마음은 오히려 함께 신생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다. 그리하여 타인의 [위악이 안쓰럽고 가엾]다고 말하면서 그 [수척한 그림자에서 나를 본] '가위'의 주인공은 [그녀가 또 하나의 나]임을 인식하고 결국 [피로가 더께 앉은 외투를 벗고 싶]은 욕구와 동시에 [그녀의 낡고 해진 외투도 벗겨 주고 싶다]고 진술하기에 이른다. 소외된 자들, 외로운 자들, 상처 깊은 자들의 현실의 고통은 그들끼리의 이해와 연민 어린 연대를 통해 치유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