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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섬옥수(纖獄囚) 1
섬, 섬옥수(纖獄囚) 2 섬, 섬옥수(纖獄囚) 3 섬, 섬옥수(纖獄囚) 4 섬, 섬옥수(纖獄囚) 5 섬, 섬옥수(纖獄囚) 6 섬, 섬옥수(纖獄囚) 7 해설: 신체적 사유와 생태적 합리성 작가의 말 |
李那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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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전에 켜놓은 신묘장구대다라니경 선율이 바람을 타고 허공에서 회오리바람처럼 휘돌더니 석주를 감고 범종을 두드리다 갯바위를 어루만지고 다시 경내로 돌아온다. 끊어질 듯 이어지며 유장하게 흐르는 여승의 다라니경은 급기야 자애의 마음을 사정없이 휘젓는다. 처음 들었지만 가슴을 파고들어 저 밑바닥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생의 앙금들을 끄집어냈다. 삭였다고 생각했던 앙금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눈을 지그시 감자 다라니경이 가슴으로 파고들어 애간장을 녹인다. 면벽하고 좌선하며 숱한 밤을 참선으로 지새웠을 여승의 고뇌가 폐부를 찌른다. 소리 죽인 한숨과 죽비와 눈물과 희열로 얼룩진 비장함. 다라니경의 담금질을 견디지 못한 자애의 감은 눈에서 소리 없이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섬, 섬옥수 1」중에서
입맛을 다시다 말고 인규는 마음을 가다듬는다. 고기는 사람이 낚는 게 아니라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아무리 날고 기는 고수나 노련한 어부도 억지로 고기를 잡을 순 없다. 그날의 조황은 바람, 수온, 조류, 물때는 기본이고 겸손한 마음이 더해져야 바다가 선물로 대물 한 수 걸어준다. 철들어 땅끝섬에 들어와 사시장철 고기를 낚 으며 살아온 지난 십여 년이야말로 ‘자연을 거스를 순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시간이었다. ---「섬, 섬옥수 2」중에서 반나절이 흘러 떠오른 정희의 시신은 천만다행하게도 온전했다. 갯바위에 부딪혀 찢기거나 성난 파도 등쌀에 물멍이 들어 얼굴을 알아보기 힘든 게 보통이었다. 그녀가 사고를 당한 장소는 아기업개당 절벽 바로 아래 아늑하니 들어앉은 좁은 만(灣)이라 특히 물살이 세기로 유명했다. 들물일 때는 한길 넘게 여를 품어 자리돔이며 벵에돔이 많이 들어와 낚시 포인트로도 유명하고 물질에 능숙한 잠녀들이 곧잘 작업하는 곳이다. 절벽에 뚫린 해식동굴을 불턱 삼아 잠녀들의 숨비소리가 갈매기 울음에 섞여 어쩐지 구슬프게 들리던 자리였다. ---「섬, 섬옥수 3」중에서 조상 대대로 섬을 지켜온 원주민과 돈벌이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연을 안고 들어온 외지인들이 모여 사는 땅끝섬. 하루가 멀다고 시비가 벌어지는데 명색이 파출소장을 지낸 자신이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게 영 껄쩍지근하다. 등대 옆 억새밭이 스산하게 머리를 풀어 헤쳤다. 미순의 넋이 여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것 같다. 처음 섬에 들어올 때는 낚시로 세월이나 죽이자고 온 게 아닌데……. 자신이 한없이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섬, 섬옥수 4」중에서 땅끝섬 여인들은 열이면 열 다 잠녀 출신이다. 그들은 오로지 자식 굶기지 않기 위해 물질을 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돈이 필요했고 그 ‘돈’을 벌기 위해 차갑고 깊은 물속도 두렵지 않았다. 그런 만큼 나름대로 철학이 있었다. 도덕이랄까, 양심이랄까. 나 살자고 남 짓밟지 않고 나 먹자고 남의 것을 빼앗지 않았다. 정직하게 꼭 먹고살 만큼만 벌면서도 순응했고 그런 어미 밑에서 자란 아들딸 역시 다르지 않았다. 평생을 물질과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섬사람들은 투박하고 거칠되 정직하고 욕심 사납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섬에서 주인 행세하는 저들은 누구의 자식인가……. ---「섬, 섬옥수 5」중에서 종태는 마을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온 일꾼이다. 마을 사내들은 품삯은 고사하고 기껏 담배 한두 갑 쥐여주거나 술 한잔 받아주고 자기 집 머슴 부리듯 부려왔다. 마을 잔치에 쓸 돼지 멱따는 일은 물론 복달임으로 개 잡는 일부터 집 지을 때 벽돌 나르고 시멘트 개고 담 쌓고 등등 힘쓸 일이 있을 때면 언제나 종태를 앞세웠다. 그러나 이제 아무도 차가운 물속에 들어앉은 그를 찾지 않는다. 이미 죽은 사람 취급이다. 소식 듣고 달려온 종태 어멍이 기함을 하며 몸부림치자 현씨 할망이 끌어안고 함께 운다. 두 노인네의 애간장을 녹이는 통곡 사이로 파도 소리가 끼어든다. 멀리서 종태의 어멍! 어멍 울지 맙서! 허흥……. 짐승처럼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다. ---「섬, 섬옥수 5」중에서 아이는 땅끝섬산(産)이다. 땅끝섬에서 잉태되어 섬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 섬의 바람과 햇빛, 공기를 마시며 자라고 있는, 땅끝섬이 고향인 아주 특별한 아이다. 사실 생을 마감하러 들어왔다가 남편 만나 결혼했고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을 얻었으니 그녀에게도 땅끝섬은 아주 특별한 장소다. ---「섬, 섬옥수 6」중에서 새 생명과 인연을 맺고 새 출발을 다짐하는 시점에서 다시 찾은 섬은 더 이상 땅끝이 아니다. 시작과 끝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려 있는 법, 내려오기로 치면 끝이지만 거슬러 올라가자면 국토의 시작 아닌가. ---「섬, 섬옥수 7」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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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말 어쩌다 이리 됐을까?”
탐욕과 이기심, 연민과 안타까움이 들끓는 마음의 감옥, 삶의 벼랑 끝에서 다시 희망을 발견하는 일곱 편의 ‘섬’ 연작소설 등단 25년을 맞는 작가 이나미의 3년 만의 신작 인간에 대한 사랑이 우리가 살아가는 근원적인 이유라면, 사람의 품성이 환경과 조건에 의해 어떻게 지배당하고 좌충우돌하는지…… 욕심, 시기, 질투, 미움, 연민도 사랑의 일종이라는 전제하에 여러 가지 사랑의 유형을 그려내고 싶었다. 때론 웅숭깊고, 때론 안타깝고 절망적인 심정으로, 또 때론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람 냄새 물씬 풍기게 쓰고 싶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올해로 데뷔 25년을 맞는 소설가 이나미가 전작 『수상한 하루』(2010) 이후 3년 만에 새 소설집 『섬, 섬옥수(纖獄囚)』를 펴냈다. 한반도의 남단 ‘땅끝섬’을 배경으로 섬에서 나고 자란 원주민과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섬에 흘러든 외지인 들이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7편의 이야기를 담은 연작소설이다. 작가는 “제목의 한자에서 유추할 수 있듯, 태생지인 섬에서 나고 자라 바다에 순응하며 모진 삶을 이어온 원주민들, 스스로를 유폐시키려고 찾아들었거나, 생존을 위해 먹고살려고 모여든 외지인들이 섬이라는 특수성, 폐쇄성 때문에 보이지 않는 창살에 갇힌 채 서로 부대끼며 갈등, 대립, 오해를 겪다 결국 사랑으로 구원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쓰고 싶었다”고 창작 의도를 설명한다. 풍랑을 잠재우기 위해 희생된 ‘아기업개 할망’의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 땅끝섬은 거친 바다에 둘러싸인 척박한 땅이지만 내 것 네 것 없이 마을 전체가 한 살림이고 한 마음이던 시절이 있었다. 세월이 바뀌고 인심이 달라지는 것이야 인지상정이라 해도 땅끝섬이 돈과 권력을 둘러싼 이전투구의 장으로 변하고 끔찍한 폭력사태까지 빚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섬이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부터다.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을 즐기기 위해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현금이 돌자 돈을 벌어보겠다고 들어온 외지인들과 터줏대감 행세를 하는 원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깊어진다. 원주민들은 외지인들을 ‘뭍것들’, ‘육지것들’이라 배척하고, 외지인들의 눈에 ‘마을 자치회장’을 비롯한 원주민들은 막무가내로 제 잇속만 차리려 드는 ‘기득권 패거리들’로 보일 뿐이다. 손바닥만 한 섬에서 관광객들 주머니만 바라보며 밥그릇 싸움 하는 상황이라 외지인을 경계하는 섬사람들의 배척과 텃세는 생각보다 심했다. 뭍것들이라는 차가운 시선과 부부 나이 차가 암만해도 수상쩍다는 수군거림에서 비롯된 왕따로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다. (「섬, 섬옥수 4」, 155쪽) 손님을 끌려는 경쟁이 과열되면서 들여오기 시작한 골프카가 섬의 무법자가 되고, 청정 바다에서 잡아 올린 수산물을 대신해 짜장면이 섬의 명물이 되는 요지경 속에서 섬을 아름답게 가꾸고 지키려는 노력은 ‘물정 모르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치부되며 땅끝섬은 점점 쓰레기와 소음으로 몸살을 앓게 된다.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이 무너진 자리에 이기심과 욕심이 들어차면 천혜의 자연 경관이 훼손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언제부터 땅끝섬의 명물이 골프카와 짜장면이 됐는가. 섬에 처음 오는 관광객들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즐비하게 늘어선 골프카 운전사들의 밀고 당기는 호객에 정신을 빼앗겨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걷기에 먼 거리인가? 배 시간이 한 시간이면 촉박한데 타고 도는 게 낫지 않을까……?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섬은 이제 골프카 반, 관광객 반이 됐다.(「섬, 섬옥수 5」, 185쪽) 그러나 땅끝섬이 갈등과 대립의 공간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평생 거친 바다에서 목숨을 건 물질로 자식을 건사해온 잠녀 할망들의 곡진한 삶과, 마을 사람들로부터 온갖 무시와 천대를 받으면서도 착한 심성을 잃지 않고 선한 행동으로 되갚을 줄 아는 종태, 생을 마감하러 들어왔다가 평생 함께할 인연을 만나고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을 얻은 혜자, 죽지 못해 사는 심정으로 절망의 끝자락에서 찾아들었던 섬을 다시 찾아 자신의 삶은 물론 섬의 앞날을 기꺼이 낙관하는 자애 등을 통해 땅끝섬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물든 곳이 아니라 연민과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으로 자리하며, 폐쇄된 끝이 아니라 활짝 열린 시작임을 알게 된다. 지난날의 미련과 애증, 회한을 다 내려두고 자신과 상대를 본래의 모습으로 마주하는 것에서 마음의 감옥은 빗장이 풀리고 ‘감옥이 되어버린 섬’도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변화한다. 빈손 쥔 외지인이 먹고살아보겠다고 새로 들어오든, 한때 현금 만지는 재미 쏠쏠했던 원주민이든, 오래전 내남없이 어울려 정겹게 살아왔던 이 섬에서 또 새로운 관계를 쌓으며 살아갈 것이다. 죽살이가 그렇지 아니한가. ( 「섬, 섬옥수 7」, 263~264쪽) 그리하여 “인간에 대한 사랑이 우리가 살아가는 근원적인 이유라면, 사람의 품성이 환경과 조건에 의해 어떻게 지배당하고 좌충우돌하는지…… 욕심, 시기, 질투, 미움, 연민도 사랑의 일종이라는 전제하에 여러 가지 사랑의 유형을 그려내고 싶었다. 때론 웅숭깊고, 때론 안타깝고 절망적인 심정으로, 또 때론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람 냄새 물씬 풍기게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절실히 와 닿는다. 문학평론가 최영호가 해설에서 “이나미의 소설이 던지는 대화의 출발점은 분명 바다와 섬이다. 그러나 작가의 소설적 대화는 바다와 섬을 거쳐 우리를 보다 깊은 심연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거기서 서로 다른 종들이 각자의 차이를 보장받으면서 함께 어우러지는 생태적 윤리와 합리성을 보게 한다. 그와 동시에 동일한 시각으로 지금의 우리 현실을 다시 주목하게 만든다”라고 말한 것도 작가가 ‘사람 냄새 물씬 풍기게’ 그려낸 ‘여러 가지 사랑의 유형’과 자연에 대해 보여준 ‘경외와 겸손’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