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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 그대들에게
1장 나이 듦은 시듦이 아니라 피어남 2장 신인류가 온다 3장 보험 대신 운동 4장 공간이 나를 만든다 5장 내 몸을 위한 패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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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적이고 독립된 노년의 삶을 준비한다는 것에 대하여
저자는 우리가 관용적으로 쓰는 ‘내가 나이 들어서’라는 말에 일침을 가한다. 나이 들었다는 것에 모든 이유를 붙여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는 태도는 죽은 삶이나 다름없다. 100세 시대에 과거의 나이 문법을 거론하는 것은 앞으로 살아갈 여생이 너무나 공허하고 무의미해질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나이 들었어도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자고 말한다. 60대면 여생이라고 말하기가 애매할 정도로 수십 년을 더 살아야 한다. 기대수명이 길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긴 세월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롤모델도 없는 현실이다. 아직은 요양원이라는 틀에 갇혀 있지만 앞으로는 또 다른 모습의 수많은 시니어 산업이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다양한 시니어상도 존재하게 될 것이다. ?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세대를 넘어 소통할 수 있다면 요즘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 문화에서는 나이로 순서를 정한다. 50대 이상에게 이 문화는 더욱 익숙하다. 경제, 정치, 문화의 변화에 따라 나이 대의 문화가 다르고 우리는 이걸 세대 차이라 부른다. 세대 간극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이슈는 늘 소통이다. 요즘 젊은 애들은 달라, 라는 말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늘 있어 왔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나와 다른 세대를 부정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나이와 관계없이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궁금해 하며 평등한 관계에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세대 간의 간극을 좁히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가 50대 후반임에도 30대 중반의 친구가 있을 수 있는 이유다. 그는 나이를 묻고 순서를 정해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가 사람 간의 위계를 정하고 아랫사람이 하는 말은 듣지 않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제 어른의 정의도 달라져야 한다. 젊은 세대에게 귀 기울여 듣고, 젊은 세대가 귀 기울일 수 있는 지혜로운 어른의 역할을 할 때 비로소 사회도 관계도 건강해질 수 있다. ? 죽을 때까지 제 발로 화장실을 가려고 보험 대신 운동 평균연령 100세 시대가 다가온다. 요양원이 늘어날 것이고 간병인 수요도 당연히 늘 것이다. 그만큼 기대수명보다 건강수명이 점점 더 중요해졌다. 건강수명이 중요해졌다는 건 내 자신의 책임도 중요해졌다는 말이다. 내 몸을 내가 돌보지 않고 되는대로 살다가 병든 몸을 다른 사람에게 책임지게 한다면 노령화 사회는 그야말로 병든 사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내 몸을 돌보고 건강을 유지한다면 노령화 사회는 또 다른 생산을 만들 수 있다. 늙으면 아픈 게 당연한 거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건 한편으로는 내가 내 몸을 돌보지 않은 것을 증명하는 셈이기도 하다. 저자는 몸으로 증명하지 않는 건 아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이 먹는 걸 두려워하는 이유는 대부분 돈 떨어지고 아프게 되는 걸 걱정해서일 터다. 저자는 돈은 내 맘대로 벌 수 없지만 몸은 내 의지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몸을 만들어놓으면 가난에 대한 공포도 줄어들고 없던 자신감도 생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내 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내 몸을 학대하지 않는 실천이 필요하다. 먹는 것에서부터 말하는 것까지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중심에 생각이 있다. 생각이 낡아지지 않게 끊임없이 배우고 실천하는 연습이 더욱 필요하다. 움직일 수 있을 때 죽도록 움직여야 누워서 보내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라. 나 같이 쓸데없는 인생도 달라졌으니 그대들의 인생도 분명히 달라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