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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말
| 이서화 사람의 온도 낙원상가 옆 순댓국집 봄 한 채 칠월, 명옥헌 벌레 도서관 - 번역시 비로소 Finally | 이 경 슬픔이 싱싱하다 붉은 흙을 보면 가슴이 뛴다 파주에 오면 가깝다 작가의 영광 지금 돌들은 시간의 가르침을 받아 적느라 고요하다 - 번역시 그곳에 벽이 정말 있기는 했을까 Did the Wall Really Exist There? | 이채민 별의 별꼴 몽골의 향기 3 빛의 뿌리 미련한 사랑 감자를 볶을 때 - 번역시 고백서 confession | 김금용 물수제비 적혈마 노란 생각 꿈의 마지노선 장마, 그 틈새 - 번역시 티베트 수미산 チベット.須彌山 | 김유자 히메지성 동검도 속초 달에 홀린 피에로 백야라는 부사 - 번역시 카페 프랑수아 カフェフランソア | 김지헌 강릉에서 오래된 꿈 왕의 길 눈사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 번역시 손바닥 이불 A Palm Blanket | 김추인 선線의 미학 신의 화필 사막의 Dune 그리고 Cosmos 쿼바디스Quo Vadis - 번역시 달팽이의 말씀 The Word of a Snail | 박미산 샴발라 얼음집 와운산방 백록담 오동도와 까멜리아 - 번역시 꽃들의 발소리 Footsteps of the Flowers | 신은숙 고흐의 길 함부르크 남애 귀래貴來 흥업 - 번역시 해 달 별 종점 Sun Moon Star Last St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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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집 어디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 들리고 귀뚜라미는 또 어디선가 초가을 온도를 맞추는 듯 따라 운다 오늘 밤은 유독 따뜻하다 추운 이름이 따뜻한 이름이 되는 사이엔 폭염이 지나가고 다시 쌀쌀한 날씨의 목전이 되었다는 뜻이다 어느 여름에선 발열發熱이 인다 한때 그 이름을 휴대용 손난로처럼 마음속에 품고 다닌 적이 있다 초가을 밤 온도를 맞추는 보일러 소리 분명 지난봄 이후 아직 보일러를 틀지 않았는데 집 어디선가 흐느끼듯 보일러 소리가 난다 빈 이름이 많아질수록 추운 사람이 되어 간다 안과 밖 중 안쪽의 발열은 이름에서 생긴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 보일러 온도계를 누르듯 몇몇 이름들을 누르곤 한다 반소매와 긴팔 어느 쪽 옷을 챙겨 입을지 망설이듯 젊어 쌀쌀했던 사람 한나절이 되면 다시 후텁지근해지는 날씨처럼 짧은 환절기 같은 사람이 있다 ---「이서화_ 사람의 온도」중에서 우리는 봄에 파주에 온다 버릴 수 없는 유산 여기에 슬픔을 묻고 돌아간다 버리고 간 슬픔들이 쌓여 산이 되었구나 시퍼렇게 우거진 슬픔은 이제 그것이 슬픔인 줄도 모르게 되었을까 봄에 우리는 자는 듯 누웠는 슬픔을 깨우러 온다 슬픔이 너무 깊이 잠들지 않도록 홍수에 함몰 되어 떠내려가지 않도록 키가 웃자라 슬픔이 슬픔을 먹어버리지 않도록 전지가위로 고르게 잘라 주러 온다 건강한 슬픔을 위하여 봄은 슬픔의 가슴팍에 보랏빛 제비꽃을 피워 놓고 햇빛에 발효된 슬픔은 따뜻해 슬픔에게 등을 기대 흰 낮꿈을 꾸기도 한다 슬픔은 이제 강을 건넜을까 우리는 강을 건너온 사람을 여기 묻었다 강을 건너온 뒤로 다시는 강을 건너가지 못한 사람을 이 강가에 묻었다 ---「이 경_ 슬픔이 싱싱하다― 파주 1」중에서 불빛 한 점 없는 구릉지에서 형용사 동사 부사를 떼어버린 별의 별꼴을 보았네 기록되지 않은 유언들과 더하고 뺄 수 없는 유목의 첫, 첫, 첫이 와르르 안겨왔네 불붙은 도화선처럼 현란하고 문란한 밤하늘의 행적을 생의 절반을 소진하고 이제야 만나네 살에 박혀 울먹이는 언어들과 혀끝에 매달린 모래알까지 무한히 순해지는 밤 나 이제 눈 하나 감고 살아도 괜찮겠네 ---「이채민_ 별의 별꼴」중에서 산으로 둘러쌓인 호숫가에서 물수제비를 떴다 영화관도 슈퍼마켓도 식당도 게임방도 없는 널린 게 돌밖에 없는 벌판, 몇 개나 뜰 수 있을지 내기를 했다 누가 더 멀리 던지나 숫자를 셈하며 시끄러워지자 천산에 걸터앉았던 햇살이 박수를 쳤다 웃음보가 터진 물결이 꼬리를 흔들며 찰랑거렸다 모두 열 살 아이가 됐다 ---「김금용_ 물수제비」중에서 해자의 물은 고요히 흔들리고 있다 외부의 접근을 막으며 보호한다는 건 무엇인가 감싸고 있는 성에 어떤 일이 있어나는지 모르면서 해자는 외부에 닿아있다 오랫동안 의식 없는 너의 심장이 달리고 있다 폐는 바깥을 내부로 들여오고 내부를 바깥으로 흘려보낸다 병실 밖 플라타너스, 외피가 벗겨져 흰 둥치로 서 있다 잎들이 누워있는 네 몸 위 빛에 물결을 만든다 강한 것이 약한 것을 보호한다지만 해자의 물 위에 누워 흔들리는 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굳은 너의 몸을 감싸 안고 고요히 파도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해자의 둘레는 너무 길다 돌다가 주저앉아 물결을 바라본다 ---「김유자_ 히메지성」중에서 새벽을 몰고 온 바다 떠오르는 태양 바다가 서서히 보여주는 모노드라마 조금씩 변주되고 있는 초록의 악장들 이거면 충분하다고 이 넓고 탁 트인 세계를 지금 고통과 비애에 빠진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그대들 여기까지 얼마나 열심히 걸어왔든가 백사장에선 타닥타닥 불꽃놀이 깔깔대며 해변으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 이 뜨거운 풍경이면 충분하다고 청록의 두려움 물러가고 가을 산이 붉게 물들고 있다고 누구나 저 붉음을 즐기면 된다고 저 초록 속에는 푸른 피의 비명이 내장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 변방의 어느 죽음들에 빚지고 있는데 천 개의 슬픔이 가을을 향해 떠나지 못하고 나는 손조차 내밀지 못했는데 그대와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김지헌_ 강릉에서」중에서 하늘과 땅의 접지에 지평선이 누워 있다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는 선의 비의秘意 찔레의 5월은 벌 떼 붕붕대는 평원 지평선의 시간은 정지에 가깝다 아무도 그은 적 없는 선 누구도 의심한 적 없는 선 없으면서 있는 존재의 이름을 누가 맨 처음 불렀을까 몽상과 현실 사이, 영상 이미지를 구현하던 타르코프스키**의 정지화면에서 나, 오래 서성인다 멀리서 있지만 가까이서 없는 역설의 접점 없는 존재의 있음이라니 북해도 설원 아득히 누워 있던 한 금, 지평선 * 호모 에스테티쿠스: 미학적 인간 ** 러시아 예술영화 감독 ---「김추인_ 선線의 미학― homo aestheticus*」중에서 귀밝이술을 걸친 나는 비틀거리며 떠내려오는 얼음 부럼을 깨물면서 달 반대편으로 발을 쑤욱 집어넣었다, 제집인 양 식구들을 절구에 넣고 찧었다 초록 냄새 가득한 아이들이며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사정없이 먹어 치운 정월 대보름달은 밤새 울퉁불퉁 조약돌을 밟았다 처마 밑 시렁에 박힌 아이 별들이 계곡을 따라 물속에 매달리고 마가목 가지에 찢어진 그가 덜렁, 걸렸다 발목이 시큰했다 한밤 내내 싸돌아다니던 바람이 내 얼굴을 후려쳤다 눈과 귀가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갔다 겨우 지탱하고 있는 내 집, 달이 자꾸 무너졌다 ---「박미산_ 얼음집」중에서 제주 한경면에 와서 고흐의 길을 걷는다 돈 되는 귤나무를 뽑아내고 돈 안 되는 향나무 묘목을 심은 천리안의 그녀가 삼십 년을 돌본 길 세상의 소음을 가둔 길 향나무 가로수들 횃불처럼 타올라 초록 불길 하늘까지 치솟을 듯한데 고흐의 길을 따라가면 나무 벤치 하나 야생화들 수국 만발한 정원을 만난다 유럽의 어느 가정 뒤뜰을 거니는 듯 비바체에서 안단테로 흐른다 저 멀리서 베레모를 쓴 고흐가 흐흐 웃는다 고흐의 길처럼 나도 누군가의 길로 불릴 수 있다면 모두가 귤나무 심을 때 향나무 심는 정신으로 ---「신은숙_ 고흐의 길」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