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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 신화가 된 화가
2. 아름다운 시절 3. 잊지 못할 오산의 만남 4. 도쿄의 조선 유학생 5. 지유텐을 사로잡은 조선소 6. 사랑의 흔적, 엽서 그림 7. 암흑기의 별들 8. 격동의 시대를 거치며 9. 전쟁의 고난 속으로 10. 대표작들의 완성 11. 꺼져가는 불꽃 12. 이중섭 예술의 가치와 미학 13. 이중섭 연보 14. 참고문헌 15. 저자 후기 16.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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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 그가 살다간 시대는 세계사에서도 보기 드물정도로 불행과 혼란이 극데 달했던 때였다...그러나 그 어려웠던 고난의 시절은 그의 창작 의욕을 꺽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열정적이고 격정적인 삶과 예술을 낳았다. 이중섭의 창작에 대한 열정은 도대체 어디에서 솟아났으며, 그 결과물이 이토록 찬란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저자의 문제의식)
p.213.<흰소>는 범접하지 못할 위엄을 띠고 있다. 이 그림 속의 소는 아무도 공격하지 않지만, 건드리면 즉각 반격하며 분노를 토할 듯 하다.(흰소에 대한 저자의 평) p.65. 약간의 지식과 이해로도 문학수나 이중섭의 작업이 이 민족의 특성을 훌륭히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구근대 미술양식에 의해 자라나고 겨우 여기까지의 미로에 도착한 일본작가들에게는 역으로 문학수나 이중섭의 작업성격이 하나의 큰 반성의 쐐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1941년 4월 일본의 미술잡지 {비노쿠니}에 실린 한 평론) p.267.그(이중섭)은 누구에게나 애착을 주는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한국의 서양화 도입기에 있어서 가장 먼저 후진성을 탈피한 근대화의 선구자로서 비록 서구적인 자료로 그림을 그렸을 망정 그것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한 개성적이고 향토적인 작가였다...짙은 토착색...동양화가 갖고 있는 형식적이고 꿈에 잠긴 듯한 특질을 거의 완전무결하게 곁들이고 있다.(김병기의 평) --- 2000/12/07 (bingreu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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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이 평생 동안 그려오던 소 그림은 통영에서 완성되었다. 오상학교 시절부터 즐겨 그려오던 소 그림이 새롭고 독특한 표현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통여에서 그린 대표적인 소 그림은 <흰 소>와 <노을 앞에서 울부짖는 소>이다. <흰 소>는 담담한 표정으로 걸어가고 있는 소를 그린 작품이며, <황소>라는 제목으로 많이 알려진 <노을 앞에서 울부짖는 소>는 노을을 배경으로 울부짖는 듯한 소의 머리를 그린 작품이다.
이성운에 따르면, 이중섭은 제주도에서 본 소가 평안해 보여서 이를 많이 그렸는데 이제 통영에서 그 소 그림을 완성했다는 말을 했다 한다. 그의 득의작이라 할 만큼 이중섭은 이 그림들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의 말대로 서귀포에서 그렸던 수많은 소의 습작을 토대로 드디어 통영에서 맘에 드는 소 그림을 완성한 것이었다. 왜 이중섭은 제주도에서 마음에 드는 소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것은 당시만 해도 북한에서 지낸 5년 동안의 사실적인 화풍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해 개성적인 화풍을 발전시키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서귀포에서 그려진 <서귀포의 환상>이나 <섶섬이 보이는 서귀포 풍경> 등에는 그러한 영향이 드러나 있다. 환상적인 요소를 많이 지닌 그림이라 해도 그 요소 하나하나는 사실적인 분위기를 짙게 풍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통영에서 그려진 소 그림에는 다채로운 기법이 사용되고 있다. <노을 앞에서 울부짖는 소>의 경우 소가 고개를 들면서 울부짖는 순간을 포착했는데, 화면의 왼쪽으로 향한 얼굴과 오른쪽으로 향한 눈이 화면 양쪽 모두를 지배하고 있다. 벌린 입은 무어라 외치는 듯 한데 이러한 외침소리를 표현하고자 소의 안면과 목 주위를 유달리 주름지게 하였다. 코와 입을 노을만큼 선명한 붉은 색으로 칠하고, 또 이것의 반향인 듯 소의 머리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노을을 층지게 그려 소리가 퍼지는 듯한 느낌을 더욱 강화하였다. 고향 평원군은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노을을 배경으로 울부짖는 소는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함께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자신과 닮아 있다. 또한 식민지시대부터 민족의 상징으로 여겨져온 소를 통해 한민족이 처한 상황을 표상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홍익대학교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 <흰 소>는 이중섭의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작이다. 이 그림에서 두드러진 것은 굵고 짧게 그어진 흰 선이다. 형상을 따라 의도적으로 길게 그어진 검은선이 이 흰 선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고 있다. 붓으로 그어진 색이 화면 전체를 덮은 것처럼 보여 놓치기 쉽지만 자세히 보면 종이 위를 물감 칼로 다지면서 바탕을 물감으로 엷게 발라놓았다. 물감 칼로 문질러서 매끄럽게 만든 바탕이 충분히 마른 뒤에 힘찬 붓질을 할 수 있었고, 그 바탕 위에 검은 선을 그었으며 또 그 위에 흰 선들을 강조하듯 적절히 그은 것이다. 이 방식은 <달과 까마귀>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소머리 부분은 이런 바탕 위에 선과 색을 더욱 절묘하게 배합하여 그렸다. 특히 검은 색으로 그어진 턱수염은 최대한 거친 느낌을 자아내고 있는데 이 부분은 글씨 예술(서예)에서 '비백'(飛白)이라 부르는 기법을 연상케 한다. 그 위에 찍힌 흰 빛깔의 선도 다른 부분에 그어진 검고 흰 선과는 다른 성격으로 그어져 있다. 특히 코 둘레와 입을 이루는 희붉은 선은 마치 살아 있는 소가 거친 숨을 내쉬며 분노하는 듯 생동감을 더해주고 있다. 머리 부분에서 보인 이러한 절정은 목덜미를 지나 꼬리와 생식기를 거치면서 힘이 분산된다. 이 그림에서도 서예적인 특징이 두드러진다. <흰 소>는 범접하지 못할 위엄을 띠고 있다. 이 그림 속의 소는 아무도 공격하지 않지만, 건드리면 즉각 반격하며 분노를 토할 듯하다. --- pp.209-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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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의 생애에 관해 밝힌 몇 가지 사실들
이 책은 이중섭 개인에 대한 정보는 물론, 그 시대와 사람들에 대한 수많은 자료와 생생한 증언 등을 토대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이중섭의 생애에 대한 여러 편린을 모아 이중섭을 온전히 복원시키고자 하였다. 그중 대표적인 하나가 유복자 논란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중섭을 유복자로 알고 있다. 1970년대 후반에 출간되었던 시인 고은의 이중섭에 관한 전기에 그렇게 씌어져 있었고, 그러한 소문은 이중섭 생애의 비극성과 함께 정설처럼 굳어졌다. 그러나 이중섭의 아버지 이희주는 이중섭이 5세 무렵까지 살아있었다. 이중섭이 태어난 후 형 이중석이 결혼을 했는데 형수가 시집왔을 때 시아버지는 살아 계셨다고 한다. 이 사실은 이중섭의 조카 이영진이 그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었다는 증언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중등학교 시절 이중섭이 받은 미술교육에 관해서는 그간 매우 소홀히 취급되어왔으나, 이중섭이 오산학교에서 만난 도화교사 임용련과 그의 부인 백남순은 화가로서의 이중섭의 생애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사람들이다. 이 책에서는 최근의 조사 자료와 오산학교 선후배들의 증언들을 토대로 하여 이들과 이중섭의 미술세계가 갖는 연관성을 꽤 소상히 밝혔다. 뿐만 아니라 최근 이중섭의 일본에서의 활동에 대한 상세한 연구(김영나 교수)가 발표되었는데, 이 연구에는 그동안 자주 이야기되었으나 흔적을 찾지 못했던 루오 양식이 이중섭에게 미친 영향을 살필 수 있는 사례가 포함되어 있어 이를 이 책에 반영하였다. 그리고 이 루오풍을 창조적으로 극복하고 있는 저항적이고 격렬한 성격의 소 그림에 관한 자료도 책의 집필을 위한 조사 과정에서 발굴했다. 이로써 젊은 시절의 이중섭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986년 이중섭 30주기를 맞아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회고전시회가 열렸다. 여태껏 이루어진 전시회 중에서 가장 많은 작품이 출품된 전시회였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중섭 예술의 심층적인 이해의 지름길이 될 작품의 편년 작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진 형태이지만 초기 작품이 적지 않게 남아 있었고 특히 엽서 그림에는 연대까지 적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그리고 그러한 편년화 작업에 대한 몰각은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작품은 그것을 낳은 시대적 상황과 개인적인 삶의 굴곡을 떠나서는 올바로 이해될 수 없다. 이중섭은 피폐했던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순수한 성정과 불 같은 정열로써 우리 민족 또는 자기 자신의 고통스런 자화상을 쉬지 않고 그려냈다. 그의 그림에는 뼈와 가죽만 남은 채 고통으로 울부짖는 조선의 소가 있고 서로 끌어안으려 몸부림치는 봉과 황이 있으며 바닷가에서 천진난만하게 물고기와 게와 어울려 노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의 그림에는 삶에 대한 태도와 민족의식,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희망이 있으며 또한 압제와 분단의 아픔으로 일그러진 민족의 신음소리와 가슴 떨리게 그려보는 도원의 이상향이 있다. 작품의 색채와 표정들은 화가의 삶과 밀착되어 함께 고찰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출판된 이중섭 관련 단행본들은 작품 소재별·재료별 분류 방식으로만 편집되었으며, 호기심으로 부풀려진 소문들은 사실에서 꽤 멀어진 ‘이중섭 픽션’을 낳기도 했다. 그러므로 그의 생애를 평전으로 정리하고 작품을 편년화시키는 작업은, 그가 삶의 각 시기마다 창조해낸 수많은 작품들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생애에 대해서는 자료와 인물들의 증언에 기초한 가감없는 사실로써, 예술세계에 대해서는 작품 하나하나의 시대적 배경과 제작기법의 운용 등에 대한 고찰로써, 우리는 이중섭 예술의 진정한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화가 이중섭(1916∼1956). 이중섭은 20세기에 활동했던 국내 어느 미술가보다도 문제 의식을 갖고 탐구해볼 만한 점이 많은 화가다. 그는 전통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표현기법의 자기화를 이룩한 천재적인 근대화가였으며, 그 생애의 비극성으로 인해 일반에게는 신화처럼 덧씌워진 이야기들로 더 많이 회자되었다. 그러나 정말 이중섭 생애의 진면모는 왜곡되지 않고 잘 알려져 있는 것일까? 일반인들은 그의 이름을 손쉽게 들을 수 있는 것처럼 그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어렵지 않게 접하고 감상할 수 있는 것일까? 화가 이중섭과 그의 작품에 관한 논문도 적지 않으며 주변인들의 회고글이나 인터뷰가 여러 잡지에 실리는 등 이중섭은 그간 여러 사람과 매체에 의해 관심있게 다루어져왔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과장 없는 그의 생애를 만나고 그의 작품을 살필 수 있을 만한 단행본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었다. 이중섭 특별전이나 회고전 등을 계기로 출간된 도록들은 몇 종 있으나 한정적인 수량에다 고가여서 일반인들이 손쉽게 구해 볼 책은 아니었다. 그나마 이중섭을 접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던 『화가 이중섭』(고은)은 상당 부분 이중섭의 기인적 면모와 생애의 비극성에 초점이 맞춰진 채 픽션화되어 있어, 역사적 사실성에도 문제가 있었던 데다 작품에 대한 이해와 감상의 여지는 거의 없었다. 또 최근 출간된 『이중섭』(오광수)은 회화의 주제와 특성에 따른 분류 설명으로 이중섭의 삶의 과정 속에서 작품이 생산된 편년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