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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왜 포르노를 이야기하는가?
1. 숨겨진 방: OAV 이전의 에로틱 아니메 2. 내부 들여다보기: 아니메 포르노그래피의 기교 3. 마법소녀들 자라다: 쇼조 아니메의 발전 4. 고통받는 미소년들: 쇼넨아이 아니메 5. 비틀린 <크림 레몬>: 대중시장의 금단의 열매 6. 구타, 간질임, 비명: 나가이 고의 코믹-에로틱 호러 7. 유두와 촉수: 성, 공포, 악마 8. “역겨운 만화들, 없애버려!”: 아니메, 서구로 가다 9. 옆집 소녀와의 섹스: 에로틱 아니메의 뿌리 10. 아니메의 향방: 인터랙티브 에로티카와 디지털 데이트 11. 동양의 플레이보이: 유-진의 <고등학교에서 온 사진> 12. 작품 목록: 에로틱 아니메 필모그래피 저자 후기 역자 후기 용어 참고 및 추천문헌 색인 |
Jonathan C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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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징가 Z>나 <포켓몬> 같은 텔레비전 시리즈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들까지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 몇 가지만 꼽아보더라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스펙트럼의 폭은 너무나 넓다. <날아라 슈퍼보드>, <머털이>, <달려라 하니>, <아기공룡 둘리> 같은 극소수의 작품들―국내 제작물이라는 사실이 홍보의 핵심이던―을 제외하면, 우리가 보고 자란 만화영화 대부분은 일본인의 머리와 손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다양한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도 성애적이고 색정적인 접근만큼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끝없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범주가 있을까? 이 범주 안에는 일본 문학의 고전인 이하라 사이카쿠(井原西鶴)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정교하고 우아한 <호색일대남>이 있는가 하면,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울 만큼 폭력적이고 잔인한 <초신전설 우로츠키 동자> 같은 작품도 있다. 일본 문화에 알게 모르게 친숙해진 우리에게도 놀라울 만큼 상상과 예상을 초월하는 에로틱 아니메. 과연 서구에서는 에로틱 아니메를 얼마나 잘 알고 있으며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저패니메이션? 아니메? 하드코어? 알려져 있는 대로 저패니메이션은 ‘Japan’과 ‘animation’의 합성어고, ‘아니메’는 애니메이션의 일본식 영어다. ‘코어core’는 ‘포르노그래피’와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는 용어로서 강도에 따라 ‘소프트코어’와 ‘하드코어’로 구분된다. ‘하드코어’ 장르 중에는 ‘하드고어’ 장르와 중첩되는 작품들이 많다. ‘유혈, 핏덩이, 꿰뚫다’의 뜻을 가진 ‘고어(gore)’는 일반적으로 금기시되는 폭력적이고 끔찍한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심리적인 해방감을 느끼게 하는 장르다. 하드코어 아니메가 하드고어 장치를 사용한 것은 남성의 성기가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촉수(남성 성기의 대체물)를 가진 괴물이나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악마는 남성의 성기 없이도 여성에게 성적인 폭력을 가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에 만연한 기이한 도색문화가 검열이라는 법적 테두리를 교묘히 피해 만들어낸 형식이 바로 하드코어 애니메이션인 것이다. 이 책에서는 특히 OAV(Original Animation Video)로 출시되는 에로틱 아니메를 다룬다. 1983년 12월에 시작된 이 형식은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극장에서 개봉되거나 텔레비전 시리즈로 제작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관객을 향해 바로 제작 ? 출시되는 비디오다. 하드코어 애니메이션은 관객에게 직접 파고드는 OAV라는 형식과 결합되면서 은밀하면서도 화려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성폭력과 동성애, 롤리타와 미소년 _ 에로틱 아니메의 주제들 하드코어 저패니메이션의 특징이라 하면 비정상적인 성적 행위와 폭력으로 이루어진 극단적 사도-마조히즘의 세계다. 마에다 도시오(前田俊夫)의 <초신전설 우로츠키 동자>나 <요수도시> 같은 작품(7장에서 설명)에는 기괴하고 음란한 악마적 존재가 등장하고 끈적거리는 체액이 넘쳐난다. 이런 작품들은 처녀성에 대한 도착적인 욕망으로 섹슈얼리티의 잔인한 쾌락을 가차 없이 보여주며 관객을 제압한다. 미성년 소녀를 주인공으로 여성동성애와 남매간 근친상간에 이르는 주제들을 적나라하게 다룬 <크림 레몬> 시리즈(5장에서 설명)는 일본 내에서도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굳이 ‘18禁’ 표시가 붙은 작품이 아니더라도 저패니메이션에 성(性)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이런 성애의 내용은 코미디나 공포물의 요소 또는 SF 장르의 설정들을 빌려오면서 숨겨지기도 하고 노골화되기도 하며 다양한 하위 장르로 분화되었다. 특히 저자들은 순정 만화에서 빌린 요소들을 사용한 쇼조(少女) 아니메와 미소년들의 사랑을 다룬 쇼넨아이(少年愛) 아니메에 애정을 표하고 있다. 쇼조 아니메에는 ‘새리’에서 출발해 ‘밍키’를 거쳐, ‘세일러문’으로 꽃을 피운 일군의 마법소녀들이 있는가 하면, 남장을 하고 여성들의 꿈을 대신 이뤄주는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오스칼 같은 인물도 있다. 그러나 소녀들의 소망을 충족시켜주던 이 장르는 곧 소녀를 탐닉하는 롤리타 콤플렉스(일본식 영어로는 ‘로리콘’)로 변질되고 만다. 이는 저패니메이션 아니메가 대부분 남성 관객을 대상으로, 철저하게 남성중심적인 에로티시즘을 이상화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은 비정하게 드러내 보여지지만 남성의 몸은 초현실적인 생물이나 기계 등으로 대체된다. 여성 동성애는 자주 다루어지지만 남성 동성애는, 미소년을 하나라도 더 보고 싶어하는 여성 관객들을 위한 몇몇 작품을 빼고는 거의 용납되지 않는다. 여성 동성애에 빠진 이들은 결국 이성애적 사랑에 눈을 뜨면서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남성 동성애에 빠진 이들은 고통을 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그렇다면 일본의 성적 관념이 그대로 반영된 아니메에서 최후에 선택되는 인물은 누구일까? 저자들은 에로틱 아니메에 등장하는 여성을 옆집 소녀, 말괄량이, 처녀, 연장자, 이방인, 어린이로 유형화하고 있다. 이중 남성에게 구원받는 것은 오직 옆집 소녀형이다. 아무 위험도 없지만 자신도 모르는 매력이 숨어 있고 그럼에도 일본 남성들을 위해 헌신할 마음가짐을 갖춘 순결한 캐릭터만이 살아남는 것이다. 플롯 전개에 실마리를 제공하는 어린이들을 제외하고, 고정적인 성역할을 거부하는 말괄량이형이나 성을 이미 경험한 연장자, 이국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이방 여인들은 사랑에 실패하거나 극단적으로는 능욕 당하고 강간당하며 온몸이 찢겨 죽고 만다. 아니메, 일본을 떠나다 _ 번역과 마케팅의 문제 저패니메이션의 파급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은 월트디즈니의 배급망을 타고 서구 구석구석을 파고들 것이고, 성적인 함의가 풍부한 텔레비전 시리즈를 보고 자란 전 세계의 10대들은 점차 하드코어에 매료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저패니메이션은 일본이라는 매우 구체적이고 제한된 지역에서 일본인의 정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형식이다. 일본의 정치, 사회, 경제 그리고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화적 산물인 동시에 일본인의 판타지를 만족시키기 위한 상상의 세계인 것이다. 일본을 막연히 이국 취향의 대상 정도로 여기고 있는 서구에서 접하는 아니메는, 일본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편견과 오해의 발단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이 책의 저자들은, 성과 폭력에 관대한 일본문화를 비난하지도, 옹호하지도 않을 뿐더러 왜 일본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분석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지점은 영국 내의 검열과 번역 및 마케팅의 문제다. 스스로의 행동을 책임질 수 있는 성인에게 검열이란 노파심에 가득 찬 어리석은 행위일 뿐이다. 또한 번역이라는 과정은 번역자의 의도가 그대로 반영되기 십상이어서 검열로 잘린 아니메에 번역이 가해지고 더빙이 입혀지면 원작에 담긴 의미는 전혀 다른 것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는 것이다. 두 저자들은 “서둘러!”라는 단순한 대사가 “네 분홍 엉덩이 좀 움직여!”로 번역되는 현실, 실제 내용이나 제목과 무관하게 ‘devil’이니 ‘demon’ 따위를 붙여서 구매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행위, 아니메 한 편 제대로 본 적도 없으면서 온갖 사회병리와 아니메를 꿰맞춰버리는 언론인들의 오만함을 향해, 선입견 없이 아니메를 대하자고 주장한다.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하드코어 저패니메이션은 서구의 포르노그래피와 달리 음지의 문화가 아니다. 명랑만화에서 유머를, SF영화에서 상상력을 흡수하면서 이야기 속에는 일본 전래괴담을 절묘하게 혼합한다. 이 작품들을 보면서 표현기술과 구성에 탄복만 할 수도 없지만 단순히 우리의 잣대를 기준 삼아 백안시할 수도 없는 것이다. 문화는 서로 다르며, 일본 사회는 자기의 방식으로 섹슈얼리티를 관리하고 이미지로 재생산하고 그 속에서 쾌락을 끌어냈다. 애니메이션은 광고나 뮤직비디오는 물론 예술작품과 컴퓨터게임에도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하나의 작품에서 시작해 다양한 매체로 발전될 수 있다. 적은 비용으로 지속적인 재가공이 가능하기 때문에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영화로, OAV에서 게임으로, 그리고 다시 캐릭터 산업과 테마파크 산업으로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주로 소수의 관객과 성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아직은 다양하게 분화되지 못한 에로틱 아니메 산업 영역은 오히려 개발의 여지가 더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 미감에 호소하는 에로티시즘 애니메이션이 뿌리를 내리고 더 큰 산업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