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
흐린 기억 속의 거리 1968년의 목소리 아라베스크 시간의 상처 게임의 법칙 상처의 흔적 어디에도 없는 거리 청도 감나무 에필로그 |
김제철의 다른 상품
|
몇 년 전 남부지방을 여행하던 중 들른 한 동네에서 감나무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의 감나무엔 씨 없는 감이 열리는데 다른 지방에 옮겨 심으면 씨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다른 지방의 감나무도 그곳에선 씨 없는 감을 맺는다고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느끼는 바가 많았다. 씨 없는 감이란 어떤 의미로 불구의 과실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씨 없는 감밖에 생산하지 못하는 그곳 또한 척박한 땅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그러나 그 불구의 과실이 지역적 특산품이 되고 그곳 사람들의 중요한 수입원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모든 존재하는 것에 대해 경건해지는 마음이 되었다. 그 어떤 것도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임을 자각하면서. 아울러 우리가 외면해도 좋을 소중하지 않은 삶의 공간 또한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 삶의 질서도 그런 인식에서 출발되어야 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 인식은 용서와 화해의 정신이 바탕이 될 때 가능하리라 여겨진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제각기 다른 생각으로 나뉘어 의심의 눈초리로 서로를 바라보며 안타까울 때 넘치는 삷보다는 결핍의 삶이, 죄 없는 자들끼리만의 외로운 세상보다는 죄 있는 자들까지도 포함한 시끄러운 세상이 더욱 아름답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
문중의 일로 고향을 찾은 회계사 윤창세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삼십여 년 만에 우연히 먼 친척 윤여진을 만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녀 집안의 비극을 떠올리게 된다. 이십수 년 전 어느 날 그녀의 아버지 성천 어른과 오빠 윤여송, 그리고 오빠의 큰아들이 한꺼번에 죽음을 당했던 것. 그 비극에서 살아남은 오빠의 둘째아들 현빈은 그녀의 아들이 되었고 대학생이던 남동생은 반정부 투쟁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녀는 이민을 떠났다가 거의 이십 년 만에 돌아온 길이다.
현빈은 어린 시절에 살던 항구도시에 들렀다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옛 거리를 찾지 못한 채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영주를 만나게 된다. 이십수 년 동안 평온하게 살아온 그이지만 그에겐 기억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고 싶은 이상한 욕구 같은 게 있다. 창세는 민경준과 함께 지인 우정복의 주선으로 중학 시절 보았던 무협영화 <외팔이 검객>을 보게 된다. 그리고 윤여진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창세를 만난 윤여진은 현빈이 죽은 오빠의 아들임을 밝히며 그 아이에게 <돌아온 외팔이>란 중국무협영화 테이프가 배달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그녀에겐 외팔이와 관련하여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상처가 있다. 고향에서 그녀의 아버지와 오빠, 그리고 조카를 죽인 장본인이 외팔이였던 것. 그녀는 사형당했다는 외팔이가 살아있거나 그 아들의 소행이 아닌가 두려워한다. 사태의 심상찮음을 느낀 창세는 진상의 파악에 나선다. 그리고 고장명의 도움을 통해 테이프를 보낸 사람이 정부 실세의 비서임을 밝혀낸다. 한편, 이영주는 실세 정치인의 비서인 신정하를 통해 현빈이 죽은 윤여송의 아들이자 유력한 정치인 윤여준의 조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야당 소장파에서 차기 대선 후보로 밀고 있는 윤여준의 행동을 제어하기 위해 그의 상서롭지 못한 가족사를 이용하려 한다는 것도 알아낸다. 현빈의 비밀을 알게 된 이영주는 어떻게 할 것인가 스스로 선택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그녀는 현빈을 위해 행동하려 하지만 어떤 방법이 최선인지 판단이 되지 않아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그녀는 현빈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한편, 창세는 살인자의 아들이 신분을 바꿔 남쪽 소도시에서 목회자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경찰청에 지인이 많은 민경준을 통해 알아낸다. 그리고 윤여진과 함께 현빈의 생모가 살고 있는 제주도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현빈이 다녀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 사이 이영주는 현빈을 외팔이의 아들이 목사인 교회가 있는 동네로 데리고 온다. 전혀 현빈이 자신의 과거에 대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는 듯하자 그녀는 일단 진실을 감추기로 한다. 그리고 부분적인 사실만 설명함으로써 현빈에게 일어난 일들의 의혹을 정리한다. 물론 그것은 현빈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그리고 청도 감나무의 신비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어서 마침내 윤여진이 살인자의 아들 조성현을 만나게 된다. 물론 그녀는, 오히려 살인자의 아들로 살아 왔을 조성현의 고통을 이해하면서 그에 대한 원망 같은 건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한 현빈의 충격이 염려스러울 따름이다. 조성현이 들려주는 청도 감나무 이야기를 들으면서 윤여진은 그가 이미 진정한 하나님의 일군으로 살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면서 모두를 위해 진실을 밝히려고 마음먹으면서 잠시 시간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금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