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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1부 1. 블라디보스토크 2. 희망을 쏘다 3. 페테르부르크의 밤 4. 이위종 5. 동의회 6. 많지 않은 시간 7. 살아남아야 한다 8. 국내진공 9. 더 큰일이 남았다 제2부 10. 귀환 11. 대동공보 12. 전명운 13. 동의단지회 14. 돌아온 사람들 15. 전쟁의 시작 16. 돌아오지 않는다 17. 하얼빈의 아침 에필로그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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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과 안중근에 대한 재조명
한ㆍ중ㆍ일ㆍ러시아의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을 둘러싼 미스터리 지금까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은 한국과 일본 간의 문제로만 국한해서 이해되어온 경향이 우세했다. 특히 일본은 이 사건을 안중근 의사의 개인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치부하고 싶어 했고, 일부에서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당사자가 안중근 의사가 아니라고 왜곡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보다 여러모로 복잡하고 민감한 데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이해하기 위해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포괄적이고 심층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하는 것도 바로 그래서이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일본에게 병합당하기 직전의 한국의 분노는 물론 청일전쟁 이후 만주와 중원으로 진출하려는 일본에 대한 중국의 두려움, 러일전쟁에서 패한 러시아의 일본에 대한 증오가 맞물려 있고 그 핵심에 이토 히로부미가 있었다. 그리고 정국을 독주하는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일본 정계의 반감도 작용했다. 따라서,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단선적이고 피상적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보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폭넓게 고찰하는 것이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길이 될 것이다. 평화를 위해 고뇌하는 인물 안중근 “그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공판 과정에서의 안중근의 진술과 쓰다만 미완의 [동양평화론]을 통해 드러나는 그의 세계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당대의 상황에 대한 깊은 인식이다. 그것은 그가 단순히 킬러가 아니었음을 웅변적으로 시사한다. 요컨대, 안중근의 행위는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깊은 성찰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본문 중에서)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한갓 테러 행위로 폄하하려는 시도는 일본 일각에서 오래 전부터 줄기차게 시도되어 왔다. 그러나 공판정에서의 진술과 미완의 [동양평화론]에서도 드러나듯이 안중근 의사는 일찍이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지사였고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세우고 교육에 매진한 교육자였으며, 동양평화의 길을 모색한 당대의 경세가였다. 그리고 그의 그런 다양한 면모의 밑바닥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깊은 신앙심이었다. 따라서, 안중근 의사의 생애, 특히 연해주에서의 마지막 2년은 광야에서 진리를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그것을 얻어 실천하려는 구도자의 삶과 닮아 있다. 일반적으로 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안중근 의사의 그런 면모를 통해 우리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한층 더 각별하게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